아카데미 막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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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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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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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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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막타빌런 1

DUMMY

“네가 가겠다고.”


눈 앞의 존재는 이질적인 외형을 지녔다.


짙은 색조화장.

시체와도 같은 백색피부.

여성같은 수려한 이목구비지만,

목 아래 거대한 육체와 그를 감싼 흑색갑주.


존재 자체가 혼란스러운,

이 남자는 왕도 아래 미궁도시를 지배하는,

대도왕, 카이곤 쉐도우워커.


“예, 아버님.”


그리고, 지금 이 몸의 아버지.


“이안, 호기라면 관두어라. 그 곳은 단순한 학원이 아니다.”


이안 쉐도우워커.

어쩌다 이런 악당의 몸에 깃들었을까.


“왕립아카데미에 간다는 건 왕실의 포로생활을 자처하는거나 마찬가지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어쩌다 이런 과거로 와버린걸까.

이 끔찍한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된걸까.


“제게 주어졌고, 제가 감내해야만 할 일입니다.”




***




선명히 기억한다.

젊은시절 보았던,

이안 쉐도우워커란 이름을 가진 노인의 모습을.


절뚝이며 걷고,

웃는 얼굴이 유난히도 서슬퍼렇던.


자신의 형제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미궁도시의 주인이 된 찬탈자.

황실과 일곱왕국을 제 발아래 두고 대륙을 어둠으로 물들인 악인.


그는, 별 것 아닌 학자였던 내게 유난히 친한 척 했었다.

그의 과거를 책으로, 입으로 전해들었기에 그런 순간마다 소름끼쳤다.


‘자서전을 쓰려 하는데, 도와주겠나?’


결국 알게 된 건,

그가 내 ‘필체’를 마음에 들어했단 사실.


‘그러겠습니다.’


내게 그의 부탁을 거절할 힘은 없었다.


몇 주 정도로 예정되었던 자서전 대필작업은,

‘깜빡했었군, 그런 일이 있었는데.’ 한 마디에 처음부터 모조리 새로 써야 했던 반복작업으로,

몇 달, 몇 년으로 늘어났다.


나쁠 건 없었다.

충분하다 못해 분에 넘치는 부가 쌓였다.

이안 쉐도우워커의 측근이라는 소문이 퍼졌고 주변인들이 저절로 두려워했다.


그 시절, 우쭐대던 마음도 없진 않았다.

사자 등에 올라탄 토끼처럼.


“이안! 이 멍청한 새끼야!”


그렇다한들 아직 이안의 이름으로 불리는 건 익숙치 않은 일이다.


세이건이 내 멱살을 붙잡았다.


“왜 이러십니까, 세이건 형님.”


세이건 쉐도우워커.

대도왕 카이곤의 둘째아들이자,

현시점 미궁도시 지배자의 후계로 점지된 인물.

그리고 이 몸에게는 호적상으로 둘째형.


원래 역사대로라면, 세이건은 훗날 이안 쉐도우워커에게 암살당한다.


“가라고 할 때는 때려죽여도 안 간더니! 서류도 다 보내고 짐도 다 챙겨놨더니 네가 쳐간다고 아버님께 고해? 이 음흉한 새끼 뭔 꿍꿍이인진 모르겠지만 니 좆같은 생각대로 될거라 생각지 마라!”


아이고 작은 영주님 자중하세요..라며 세이건을 따라온 부하들이 양팔을 붙잡아 막지않았더라면, 분명 세이건은 내 광대뼈가 내려앉을 때까지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을거다.


먼 과거에 죽어버린 인물이라 자세한 기록은 없었으나,

이안 쉐도우워커 자서전 작업을 통해 알게 된 세이건은 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미성숙한 인간이었고,

직접와서 겪어보니 실제로도 그러했다.


나는 구겨진 옷을 손으로 문질러 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십니다.”

“오해? 오해? 놔! 놔봐! 이 개같은 새끼, 열병에 걸렸다고 놔두는 게 아니었는데, 확 죽여버렸어야했는데! 놓으라고!”

“저는 두렵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뭐?”


멧돼지처럼 난동을 부리던 세이건이,

깊은 미간의 주름을 만들며 노려봤다.


“제 생각이 짧아 지상의 아카데미에 올라가는 일을 두려워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열병으로 쓰러져있던 며칠간, 저는 제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며 한 가지 더 큰 두려움을 깨달았습니다.”

“...”

“저는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입니다. 이안 쉐도우워커에서 쉐도우워커라는 성을 떼어내면, 인간 이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놔, 세이건은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조금은 열을 식히고 부하들의 손에서 벗어났다.


늙은 이안 쉐도우워커가 말했었지..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네.’


자서전을 쓰는 당시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이 시대에 떨어져보니 그의 말 그대로였다.


어린시절 이안은 유약하고 꿈도 없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었다.


이안 위로 세 명의 형들.

출중한 재능을 지닌 천재들이었고,

사남 이안은 범재에 선천적인 장애아.


가장 이안을 위축되게 만드는 건..

쉐도우워커 혈통이라면 타고난다는 비전,

쉐도우워킹을 하지 못한단 사실.


그 사실은 단 하나의 추론 밖에 낼 수 없었다.


‘쉐도우워커의 씨가 아니었던게지.’


나는 세이건 쉐도우워커의 손을 잡았다.


“형님 저는 쉐도우워커 가문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응당 왕실의 포로가 되어야할 자는 저여야 합니다. 형님은 이 미궁도시를, 쉐도우워커 가문을 지탱하실 다음 기둥 아니십니까.”


세이건은 나의 시선을 피하며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바지에 손을 닦았다.

무어라 말하려 윗입술을 옴짝달싹거렸으나

말이 바로 나오진 않았다.


둘째 세이건,

저렇게 짐승같아 보이긴 해도,

대도왕 카이곤을 꼭 닮은 재능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역사학자들은 이안 쉐도우워커가 다리를 저는 게,

세이건을 암살한 직후. 이안이 세이건의 아카데미 동료들과의 일전을 벌이다 다친 상처 때문이라고 떠들어댔지만.


헛소문이다.

이안은 태생적 장애아다.


“너.. 너 지켜본다. 이안.”


세이건은 분이 풀리지않은 얼굴로 뒤돌아떠났다.

나도 왼발을 절뚝이며 반대편 복도로 향했다.




***




황금시대를 살았던 늙은이들이 잠꼬대처럼 말하곤 했다.


인간이 지배했던 광활한 영토.

부와 부를 쌓아 올린 황금성.

마계를 짓밟던 강력한 군대와 전설 속에나 등장할 법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암흑시대에 태어난 내게는,

환상같이 느껴졌다.


언제나 검은 피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왕자들의 망토처럼 푸른색이었다고?


들판에 곡식이 끝없이 자라있고,

숲에 가면 나무마다 달콤한 과일이 달려있었다고?


그게 천국이지 뭐가 천국이겠는가.

그런 세상을 살았던 이전 세대들은 도대체 뭐가 부족했기에 서로 싸우고 협잡하다가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사실.

눈 앞에 놓인 존재, 이안 쉐도우워커때문이다.


나는 거울의 먼지를 닦아냈다.


자서전 대필을 부탁하던 늙은 이안 쉐도우워커는,

그가 먹은 나이만큼이나 유순한 노인처럼 보였지만,

이따금 비치는 눈빛에 살의도 분노도 아닌 것이, 상대로 하여금 잔뜩 낀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독파해본 머리 달린 인간이라면 안다.


이안 쉐도우워커가 각국의 분열을 조장하고,

국경마다 크고 작은 전쟁을 일으킨 흑막이었다,

그로 인한 이권을 챙겨먹은 악인 중의 악인.

악마에 가까운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노인 이안 쉐도우워커와는 다른,

별개의 존재로 보일만큼 순한 눈빛을 지녔다.


그래, 이 얼굴.

이 머리카락.

이것 때문에 어린 이안 쉐도우워커는 점점 악마로 성장해나갔을지 모르겠다.


카이곤 쉐도우워커도,

세이건 쉐도우워커도.

그 둘 뿐만 아니라 쉐도우워커라는 가문명을 지닌 자라면,

은발과 적안에 날카로운 늑대와 같은 생김새를 지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자아내는 외향을 지녔다.


그런데 이안 쉐도우워커는,

굽지않은 생강쿠키 반죽처럼 희멀겋게 생겨 어디가 모자라보이는 이목구비는 물론이고,

혼자만 불쑥 짙은 흑발을 지녔으니...


이안이 쉐도우워커의 핏줄이 아니란 사실은,

저명한 생물학자가 아니라 지나가는 길가의 어린애라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얼굴근육을 움직여 온갖 표정을 지어보았다.

아직은 귀염성이 남은 소년.

이 얼굴로 귀족과 기사단을 분열시키고,

인류를 파멸로 이끌 최악의 지도자가 되었다 생각하니

거울을 박살내버리고 싶어졌다.


“도련님, 답신이 왔습니다.”


침실 문 밖에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 나갈게.”


외투를 챙겨입고 문을 열자,

집사가 한 장의 봉투를 쥐고있었다.

집사도 집사지만,

그 뒤에 은발적안의 누군가도 서있었다.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않은,

쉐도우워커 가문의 삼남이다.

눈빛이 내게 호의롭지는 않았다.


집사는 얇은 봉투를 건네고,

격식차린 인사를 끝으로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이안, 이야기 들었다. 세이건형님이 실수했다지.”

“아닙니다. 레인형님.”


얇은 팔과 목.

갸름한 턱이 움직이며 내뱉어진 미성의 목소리.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삼남으로 알려진 셋째 레인 쉐도우워커는 여자다.

그도 굉장히 허술하게 남장을 한,


똑단발에, 여성성을 숨길 생각이 없어보이는 이목구비임에도 불구하고,

쉐도우워커 가문의 위엄때문인지

레인을 영애로 대하는 자는 없었다.


처음 레인을 보았을 때는,

일종의 장난인가 싶었지만

공적인 자리나 아랫사람들의 태도가 변함없는 걸 보아, 저택의 모든 이가 환각마법에 걸린 게 아니라면 진지하게 레인을 삼남으로 대하고 있었다.


유추하건데 후계구도의 문제일 수도 있고,

레인 쉐도우워커의 특별한 성정체성이 이유일 수도 있지만,

내 관심사는 아니었기에 신경 끄기로 했다.


문서상으로나 형제일 뿐.

우리 사이에 어떠한 좋은 접점도 찾을 수 없었다.

둘째 세이건과 짧은 말씨름을 했다고 위로차 방문하는 각별한 관계는 아니었던 듯한데..


“별일 아니었습니다. 제가 세이건 형님께 따로 양해를 구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여 서로간에 오해가 있었을 뿐입니다. 대화로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래?”


레인이 손을 내밀었다.

방금 내가 집사에게서 받아든 봉투를 내놓으라는 제스처.

거절하려면 거절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진않았다.


레인은 봉투의 실링을 가볍게 뜯어 편지 내용을 살피더니,

눈썹이 묘하게 비틀렸다.


“네가 갑자기?”


편지지의 내용은,

선조들의 방에 출입을 허락한다는 허가서.


“비록 아카데미와 본가의 거리가 멀다곤 할 수 없으나, 입학한 후로는 쉬이 찾아뵙기 어려울듯하여 가문회 기간이 아님에도 인사올리려합니다.”


선조들의 방은,

이름 그대로 쉐도우워커 가문의 선조들이 안치되어있는 사당과도 같은 공간.

신전도 교회도 그 외의 사교도도 따르지 않는 쉐도우워커 가문에게 있어서는 성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원래의 이안 쉐도우워커는,

사춘기시절 반항심과 더불어 가문 내 친지들에 의해서 선조들의 방에 출입하는 행사에서 명백히 배제되어있었다고 한다.


“그래, 알겠다.”


걱정과 달리 레인 쉐도우워커는 순순히 허가서를 돌려주었다.


“저기.”


볼일이 끝났다는 듯이 돌아가려는 레인을

내가 붙잡았다.


“저번에 편지 한 통을 보내드렸습니다만, 읽어보셨습니까?”

“아, 그거.”


역시 평범한 남매, 아니.. 형제도 아닌데 아무 이유없이 찾아온 게 아니었다.

내가 뜬금없이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몸소 방문하신거다.


“재밌는 이야기긴 했다. 공적이 높은 자들을 선별하여 사회에 봉사시키며 외부활동을 허락하자는 거.., 제 삼 자가 보기에는 권력을 이용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죄인을 석방시켜주자는 헛소리지만.”


셋째 레인 쉐도우워커는,

미궁도시 지하감옥의 관리자이기도 했다.


“제 뜻은 그런 게 아닙니다. 죄인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 외에도 쓰임이 있을 때 쓸 수 있다면 마땅히 쓰는 게 옳지 않을까 하여 상의해보고 싶어 말씀드린겁니다.”


훗날 대륙 전반에 화마가 휩쓸 대전쟁이 시작된다는 걸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지하감옥에 수감되어있는 특정인물 몇 명을 꼭 빼내고 싶었다.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네 의견을 각하하마, 첫 번째, 지하감옥은 재밌는 장난감인형을 모아둔 나무상자가 아니라 사회에 격리시켜야할 병균덩어리를 실용적으로 분리시켜놓는 체계다. 쉐도우워커가 사남이 한 장의 의견서를 내놓는다고 휘청거릴 수 있는 법과 규율이 아니다.”


레인이 두 번째 손가락을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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