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막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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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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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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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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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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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막타빌런 4

DUMMY

황금시대를 걸쳐 살았던 노인네들이 부리던 투정은 헛소리가 아니었다.


몇 차례의 검문과 길을 막아서는 불량배들이 있긴 했으나,

식료품마차의 쉐도우워커가문 깃발을 보면 저절로 길을 열어줬다.


지상이 가까워질수록,

코끝이 간지럽고 이마부터 뜨끈해지는 감각이 일더니,

어느새 미궁입구에 도착했다.


고대엘프어가 각인된 거대한 문이 열리자,

형용할 수 없는 밝은 빛이 쏟아졌다.


연애상담을 해결해줬던 집사에게 선물받은 검은유리알 안경을 서둘러 썼다.

그 어떤 마법사의 마법으로도 구현할 수 없는 강렬한 빛이었다.

검은유리알 안경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눈이 멀지도 몰랐다.


저 빛에 닿는 순간 내 몸이 불살라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지만,

앞서가는 여러 모험가들이 아무렇지않게 햇살을 받으며 기지개를 펴는 모습을 보고는 망토를 여미는 것으로 만족했다.


‘온 하늘에서 생명의 기운이 쏟아져 내렸다.’같은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던 노인들의 말이 실감되었다.

코로 들이키는 숨마다 살아움직이는 초록이 내뿜는 잎향으로 스며있었다.


황금시대를 말할 때,

‘악을 멸하는 빛줄기가 끊임없이 내리쬐는 시간이, 하루의 절반 이상이었다.‘라고들 하지않는가.

정말이지 맞는 말이다.


언데드가 대륙 전역에 들끓던 암흑시대의 생애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하늘 끝에서 신이 쉼없이 지상을 축복하는 모양새로 밖엔 묘사할 바가 없었다.


“도련님, 정말 괜찮을까요?”


마부가 물어왔다.

마차를 몰면서도 저택에서의 일을 계속 머릿 속으로 되뇌고 있었기에, 무엇에 대한 걱정인지 뻔했다.


“뭘 말이죠?”


그래도 한 번 쯤은 되물어줘야한다.

어느 누가 속옷 안쪽까지 훤히 들여다보는 인간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겠는가.

시실리아의 유산으로 타인의 생각을 통찰할 수 있단 사실은, 될 수 있는 한 숨기는 게 좋다.


“아시지 않습니까. 땅 아래에서 감히 카이곤 주군의 명을 거스를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렇겠지.

후대에 남겨진 카이곤 쉐도우워커에 대한 기록은 워낙 비현실적인 내용이어서,

황금시대에 그런 사건이 있었다기보다는 그가 지닌 권위에 대한 문학적 비유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 본 카이곤 쉐도우워커는 정말로 기록상의 괴물이 맞았다.

그가 오래 살아았더라면 암흑시대가 늦춰졌을거란 추측은 망상이 아니었다.


“괜찮아. 아버님의 시간을 뺏기 싫었을 뿐이니까.”


아카데미로 출발하기 직전,

예정에도 없던 카이곤의 호출이 있었다.


아비가 자식 유학길 전에 배웅하는 일이야 황금시대에 별일도 아니겠지만,

카이곤과 이안 사이는 단순히 부자관계라고 일컫기에는 미묘한 사이다.

실제로 피가 섞였는지도 알기 어렵고, 중간다리 역할인 어머니 시실리아가 죽은 이후로는 서로에게 사회적 책임만 남은 묘한 관계.


게다가 오늘은 미궁도시 계층관리자들과 정기회의가 있는 날 아닌가.


계층관리자는 미지의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아카데미로 도망치게 만든 원인 중 하나.

떠도는 소문으로, 그들 중에 마계 레메게톤을 다녀와 영혼을 꿰뚫어 보는 자도 있다기에, 웬만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혹시나 지금의 내가 원래 이안이 아니라 암흑시대에 살던 대학자라는 사실을 누군가 알게 된다면,

그대로 후세에서 넘어온 악마에 씌인 빙의자나 다름없으니..


나는 그 순간 떠오르는대로 변명 아닌 변명을 전령에게 전하고는 황급히 마부를 재촉해 식료품마차에 올라탔다.


“아무튼 전 모르는 일입니다. 돌아가면 도련님이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고 전하겠습니다.”


나는 가볍게 끄덕이고 주변 전경을 살폈다.


햇살이 내리쬐는 대지, 견고한 백색 성벽과 영양상태 좋은 인간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까지.

암흑시대라면 꿈도 못 꿀 천국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역시 도련님이 보기에도 지상엔 신기한 것들 투성이시지요?”


장년 나이의 마부는 내 모습을 힐끗 보고는 웃었다.

지금 이안이 한참 어린 나이라,

그는 자기 자식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치?”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련님만 그런 게 아닙니다. 제아무리 지상에 살던 이라도 레온시티에 처음 방문하면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게 인지상정이지요. 도련님은 레온이 어떻게 지어진 도시인지 아십니까?”


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고개를 저었다.

이 당시의 이안은 그다지 학식이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레온시티는 제국이 강성하던 시절, 초대황제 드래곤샹귤러스께서 직접 고안하신 계획도시입니다. 초대황제시절에 이 땅은 지옥의 입구로 불리던 곳이었지요. 지하로는 거대 미궁이 끝도 없이 이어져있고 지상에는 하늘을 뚫고 자라는 마탑이 자리잡고 있었으니 언제든지 괴물들이 쏟아져나와도 이상할 것 없는 곳이었지요, 저기 저 구름 위까지 솟아있는 게 그 유명한 검은 탑입니다.”


마부가 가리킨 먼 북쪽.

구름너머 하늘 끝까지 닿은 검은 탑.


저 탑이 무너지는 게 대전쟁의 시발점이다.

막상 실제로 보니 분노나 두려움의 감정보다는 신기함이 앞섰다.


“높네요.”

“높죠. 그 끝이 아직도 확인되지않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주변의 탑들이 낮은 건 또 아닙니다. 한 도시에서 오색탑을 다 볼 수 있는 것도 황궁이 있는 황도말고는 레온이 유이하거든요.”


시야를 조금 내리자,

백색도시를 빙두른 기둥형태의 다섯 탑이 보였다.


한 도시에 마탑이 둘 이상 지어질 수 없다.

고지식한 마법학회의 오래된 규율조차 초대황제의 권위 앞에 어쩔 순 없었다.


통찰력이 뛰어났던 드래곤샹귤러스 초대황제는, 언젠가 이 도시에서 벌어질 거대한 재앙을 예견했고, 마법학회의 다섯학파에게 백색탑, 적색탑, 청색탑, 황색탑, 녹색탑을 모조리 짓게 했다.


그 덕분에 최초의 전투에서 인간은 미력하나마 승리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미봉책이었지만..


예언된 재앙에 대비하여,

레온시티는 전초기지처럼 지어졌다.


열 여섯의 기사단,

교회 성기사본부.

신전 여신수호군.

전대륙 길드 지부가 대부분 지어졌고,

미궁입구와 검은 탑을 둘러싼 성벽, 그 위에 지어진 발리스타 화살촉이 내부를 향해져있었음에도,


도시 북쪽의 무너진 검은 탑에서 쏟아지는 괴물과.

도시 남쪽 미궁도시에 용솟음치는 이계의 무언가를, 인류는 막아내지 못했다.


나는 그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 몸의 원주인, 이안 쉐도우워커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


“... 그러다보니 레온시티는 대륙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하나지요. 대륙 어딜가도 이만한 도시는 찾기 힘들죠. 지도로 보셨겠지만 도시 전체는 위아래로 긴 마름모처럼 생겼답니다. 지금 저희가 나온 미궁입구가 남쪽이고 저 검은탑이 북쪽에 있지요. 도련님이 가실 레온아카데미는 도시 중심부에서..”

“내려줘.”

“예?”


심심한 마부의 도시역사 설명을 더 들어도 상관없지만,

지상으로 올라온 이상 해야 할 일이 밀려있었다.

특히나 아카데미는 한 번 들어가면 외출조건이 까다로운 터라 오늘 중으로 마무리해야했다.


“도련님 아직 아카데미까진 멀었습니다.”

“구경하고 싶어서 그래.”

“안됩니다. 안그래도 초행길이신데 이런 공도에 내려다드릴 순 없습니다.”

“방금 그랬잖아. 레온시티가 안전하다고.”

“길을 잃으실 수도 있지요. 레온시티라도 불량한 인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쉐도우워커가 깃발 아래에서 벗어나면 위험천만한 일 뿐입니다.”

“걱정은,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는 내내 내 곁에서 몽둥이라도 들고 있어줄거야?”

“그건 아니지만은요..”

“나도 이름이 쉐도우워커로 끝나는 인간이야. 저 깃발이 없더라도.”


얼마간 옥신각신을 겪은 끝에,

마부는 결국 내 고집을 꺽을 수 없단 걸 깨닫고는 마차를 멈춰세웠다.


“카이곤 주군의 명도 받지 않는 도련님이랑 괜한 언쟁만 벌였군요.”“데려다줘서 고마워.”

“대로를 타고 북쪽으로 쭉 올라가셔서 큰 광장이 나오면 그 곳에서 동쪽에 큼지막한 아카데미 건물이 보이실겁니다. 혹시 대로를 벗어나시면 저기 저 청색탑으로 쭉 가시면 됩니다. 아시겠어요?”

“알아 알아.”

“전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혹시라도 도련님이 실종되면 전 도련님이 마차에서 뛰어내리셨다고 말할겁니다.”

“걱정마. 조심해서 가.”


쉐도우워커가 깃발이 꽂힌 마차에서 내린 나를 훑어보는 이도 있었지만, 내가 짧은 지팡이에 의지해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하자 이내 시선이 거두어졌다.

거추장스러운 쉐도우워커 망토없이 평범한 여행자처럼 입었기에 금방 인파에 스며들었다.




***




“..조금 놀랐습니다.”


남자는 내가 건넨 수표와 거기에 직접 써준 필체를 확인하고서야,

겨우 의심을 거두었다.


“그렇습니까.”

“보내주신 편지에 쓰인 필체가 워낙 훌륭하셔서 학식이 깊은 대마법사라도 되시나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남자는 제 안경을 고쳐쓰며,

내 필체를 몇 번이고 확인해댔다.


“이런.. 인사가 늦었습니다. 법률가 빌마 되르브입니다.”

“이안 쉐도우워커입니다.”

“쉐도우워커라니.. 귀하신 분께서 굳이 이런 골목 작은 법률사무소까지 찾아오신 연유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예상이 가는 추천경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제가 법률가가 된 초년이라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미궁도시와 연이 닿을 일은 없었거든요.”


작은 사무실.

젊은 법률가.

누가봐도 영 구미가 당길 파트너는 아니었다.

가진 인맥도 적을 것이고, 업무 노하우도 바닥수준.

그럼에도 나는 이 남자 빌마 되르브를 고를 수 밖에 없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님의 추천이라.”

“아버님이시라면... 아 그러시군요.”


카이곤 방패는 참 여러모로 편리하다.

대도왕이라는 타이틀답게 대륙 방방곳곳에 넓은 정보망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수하들이 그득하기 때문에, 뭔가 유별난 짓을 하더라도 ‘카이곤’이라는 이름만 들먹이면, 그림자 속에서 모든 개연성을 맞춰주기 때문이다.


“저를 추천해주셨다니 감사한 일이면서도, 뭔가 오싹하군요. 역시 사람은 어디가서 나쁜짓하고 살면 안되나봅니다.”


법률가 빌마 되르브는 역사에는 기록되지않는 자다.

그의 존재는, 늙은 이안 쉐도우워커의 주름진 입술을 통해 알게 되었다.


‘빌마 되르브.. 지긋지긋한 놈이었지.’


가족도 아니고, 충성도, 의리도 아닌.

단지 계약간의 의뢰관계 때문에,

빌마 되브르는 어떤 귀족의 금고 위치를 이안 쉐도우워커에게 실토하지않았다.

그것도 무려 2개월이나 피부와 살이 뜯겨나가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그러니 가치없는 빌마의 혀를 뽑아죽였지. 자네는 그런 영양가없는 고집을 부리지말게, 세상사 더불어 쉽게 쉽게 살아가는거지.’


늙은 이안 쉐도우워커는 조언을 했지만,

지금 내게는 그 누구보다 지독한 고집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어즁간한 신뢰는 누구라도 지키지만,

목숨을 넘어서는 신뢰는 역겨운 고집을 지닌 꽉 막힌 인간이 지킨다.

그런 인간이 지금 눈앞에서 종이뭉치를 넘기고 있는 빌마 되브르, 지독한 이안 쉐도우워커조차 혀를 내두른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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