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막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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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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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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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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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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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막타빌런 3

DUMMY

적응에는 노력이 필요했다.


새벽일찍 숲 속을 거닐며 듣는 산새소리처럼,

사방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들 중 내 지성을 아득히 넘는 심연의 것들도 간혹 섞여있었고, 그다지 알고 싶은 사생활과 쉐도우워커가문의 뒷면까지.. 과포화된 정보가 넘쳐흘렀다.


오늘도 서고로 향했다.

저택서고의 규모가 작진 않았지만,

전생을 학자로 살아온 내 기준에서 다 아는 책들.

그럼에도 사람들의 속마음이 들끓는 외부공간에서 피난할 수 있는 훌륭한 도피처였다.


“이리 행차해주시는 것도 오늘로 마지막이시겠군요.”


늘상 지키고 앉은 서고지기가 있긴 했어도,

쿠키와 차를 가져오는 메이드를 볼 때 음란한 성교를 상상하는 것 외에는 책 읽는 속마음만 내비치니 나름 안정된 장소였다.


“아쉬운 게 전가요, 시간마다 여기로 배달되는 간식인가요?”

“둘 다라고 해두죠.”


서고지기가 능청스레 웃었다.


“요청하셨던 도서들은 늘 앉으시던 자리에 진열해두었습니다.”


두터운 책들이 늘 앉던 서고지기와 가까운 책상에 놓여있었다.


“늘 고마워요.”


쌓여있는 궁중예절백서, 현대가문승계기록서따위는 핑계거리일 뿐

내가 읽고싶는 건 저 배가 불룩나온 중년의 서고지기 본인이다.


시실리아가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현시대보다 한 단계 진보한 암흑시대 마도학회의 대학사를 역임했던 내게도 정보가 없는 특이한 무언가다.


고위계 정신마법학에 일방적으로 자신의 사고를 날리는 텔레파시 마법따위는 존재하지만,

마나를 전혀 소모하지않고 상대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은, 말그대로 악마나 신의 무엇인가로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시실리아가 악마와 내통한 마녀였단 말인가.

시실리아는 카이곤 쉐도우워커에게 헌신하기 전까지 평범한 농부의 여식일 뿐이었다.

현명한 조언을 많이 남겼다곤 하지만 그녀가 마법 혹은 마술 쪽으로 능통했다는 기록은 없었고,

요며칠 생전 시실리아와 친밀했던 늙은 가솔들을 추궁하며 속마음을 읽어본 결과,

시실리아는 정말로 아름다웠다는 사실말고는 단 한 톨도 마녀로 의심될만한 행적이 없었다.


나는 시실리아가 남긴 유산에 대해 더 정확히 알기 위해 실험대상이 필요했다.


무턱대고 집사나 메이드를 하나 앉혀두고,

그들에게 협조를 요청한 뒤 마음을 읽는 실험을 한다면, 실험의 당위성이 의심됨과 동시에 ‘넷째 도련님이 악마 들린 것 같다.’는 소문이 퍼지는 위험까지 감내해야했다.


그러던 와중 훌륭한 실험대상으로,

서고지기가 당첨되었다.


저택의 서고는 친족 외에는 접근이 불가해서,

이따금 셋째 레인이 방문하여 대량의 도서를 안아갈 때 외에는 방문객이 없었다.

외부인의 사고가 끼어들 틈이 없으니 좋았다.


또한 서고지기는 매번 펼쳐둔 책을 손에 꿰고 사는데,

이 또한 내가 바라던 바였다.


나는 임의적으로 시실리아의 유산에 대해 총 다섯가지 단계를 염두해두었다.


첫 단계는 근접한 상대방이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고, 의식적으로 상념을 할 경우다.

이 경우에는 들려오는 속마음이 매우 뚜렷하고 도리어 내가 듣고 싶지 않더라도 가상의 고막에 대고 직접 속삭이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린다.


두 번째는 상대방이 단순히 어떤 생각만 몰두하고 있을 경우다.

이때는 상대를 시야에 넣고 귀 기울여야, 그들이 혼잣말로 궁시렁대는 듯한 속마음을 들을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부터는, 상대를 꿰뚫는 통찰의 영역이다.

내가 상대에게 집중했을 때 느껴지는 상태인데, 이 때는 신기루처럼 상대의 시각이나 청각, 후각따위가 공유되는 감각을 느낀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기억과 무의식의 영역까지 옅보는 것까지 염두했는데,

아직 경험하진 못했고 내 추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뒷덜미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입술이 닿자 그 접촉면부터 전기가 타오르는 듯한 찌릿한 흥분이 뒷덜미와 척추를 타고 흘러내려와 사타구니 사이로 강렬하게 벼락쳤다. 내 굵은 손가락들이 작은 갈고리채가 되어 그녀의 새하얀 어깨와 등을 간지럽게 파고들며 허리근육을 따라 엉덩이를 움켜 쥐었을 때, 그녀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새된 신음소리와 함께 움츠러든 몸에서 흘러나오는 열감이..’


-도련님 들어가도 될까요?


문 밖에서 들려오는 메이드의 목소리에,

서고지기는 황급히 제 손에 들린 음란소설을 접어 숨기고 제목이 길고 어지러운 추리소설을 손에 들었다.


“오늘은 간식을 빨리 부르셨습니다?”

“아침을 제대로 못 먹어서. 어, 들어와.”


메이드복에도 숨겨지지않는 풍만한 몸매와 분홍빛 볼살.

서고지기는 점잖은 척을 하면서도 곁눈질로 방문한 메이드를 살펴댔다.

메이드가 은쟁반을 놓고 그 위에 실린 케이크와 쿠키, 차를 옮길 때마다, 서고지기는 그녀의 뒷태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아예 이 쪽으로 돌아앉았다.


서고지기의 감정이 요동친다.

특이점이 왔다.

몇 번의 실험 끝에 알게 된 건, 상대방의 감정이 격해질 때에는 1단계, 2단계를 뛰어넘어 쉽사리 3단계의 시각정보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분노나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살인이 아닙니다.” 탐정 그롤리가 말했다. “그렇다면 계획범이란 말입니까?” 형사는 한껏 긴장하여 되물었다. “아닙니다, 그보다 심합니다.” 탐정 그롤리는 피묻은 바닥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종교의식입니다. 그러니 범인은 바로..”]


드디어 나는 서고지기의 시야에 걸쳐 있는 추리소설을 한 토막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도련님.”




***




“그래서 끝끝내 배웅도 안하시고, 부르지도 않으십니까.”

“자네가 그런 감상적인 조언을 할 줄은 몰랐는데.”


대도왕 카이곤의 대답에,

미궁 3계층 관리자 가가헬름은 고개를 저었다.


“이안 도련님은.. 섬세하신 분이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유약하다는 말을 돌려 말할 필요없다.”


미궁 각 계층 관리자들은 정기회의가 끝났음에도, 모두들 떠나지않고 둘의 대화를 빤히 바라보고있었다.


“첫째도련님이 아카데미 졸업식날 무슨 일을 벌였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 강인하신 분께서 말입니다. 가신으로서 이런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 지상에서 쉐도우워커 가문의 망토는 무겁기만 한 게 아닙니다.”

“자네는 걱정이 많아서 문제군.”

“단순한 걱정이 아닙니다. 미궁도시 밖으로 한 발자국도 떼본 적 없는 막내도련님이 혹시 변고라도 당한다면..”

“당한다면, 뭐?”


대도왕 카이곤의 목소리에 높낮이 변화가 없었다.

각 층계에서 모험가 사상자가 몇이었는지, 각 층계에 공급된 무구와 최근 증가한 마물 숫자를 들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자네 직무를 내던지고 태양 아래에서 복수극이라도 벌 일텐가?”


카이곤은 팔짱을 끼며 물어왔다. 거대한 팔뚝과 더불어 그 사이에 끼인 흑색갑주가 묘한 쇳소리를 냈다.


그에 지지않고 3계층 관리자 가가헬름도 한껏 웅크렸던 어깨를 폈다. 그 또한 젊을 적에는 오우거를 맨손으로 찢어죽이던 전사였기에, 확고한 뜻을 전할 때는 물러서지 않았다.


“사태의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요. 함부로 업무를 내팽개치진 않겠으나 좌시하지도 않을겁니다.”

“쉐도우워커의 가신으로인가, 아니면 자네가 흠모하던 시실리아의 아들이라서인가?”

“그 말씀은 받들기 어렵습니다. 여기 원탁에 앉은 이들 중에 시실리아님의 은혜를 입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가가헬름의 말에 따로 첨언하는 자는 없었으나,

원탁에 두른듯한 흉흉한 눈빛들이 대도왕 카이곤에게 답하고 있었다.


카이곤은 쓴 와인이라도 들이킨 것처럼 입안이 텁텁해지는 기분이었다.

계층관리자들이 반기를 드는 일이야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니 상관없다만,

한 번 뱉고 듣기도 버거운 시실리아의 이름이 두 번이나 오고 갔기 때문이다.


“저기..”


정적을 깬 건 2계층 관리자 소피엔느였다.

조용한 그녀가 어떤 의견을 내비치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원탁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로 향했다.


“뭔가.”

“주군께선.. 자제분이 선조들의 방에 방문하신 일을 아시는지요..”

“선조들의 방에? 레인?”

“아니요..”


카이곤은 왕좌 팔걸이에 팔과 턱을 괴며 되물었다.

대화의 흐름상 방문한 이라면,


“이안?”


소피엔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 저택 밖을 나섰다는 사실도 의외였지만,

그 장소가 선조들의 방이라니.


대도왕 카이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4계층 관리자 루터버그에게로 향했다.


소피엔느가 관리하는 2계층에 지하감옥과 선조들의 방이 있듯이,

바로 여기 4계층을 관리하는 루터버그는, 4계층 관리자 겸 4계층에 자리잡은 쉐도우워커 저택의 집사장도 겸하고 있었다.


첫째 아슬란이 없는 지금.

지근거리에서 이안에게 그런 조언을 해줄만한 인물도 그 밖에 없었다.


루터버그는 둥그런 단안경을 만지며 말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는 다른 미궁관리자와 다르게 모험가 출신이 아닌 몰락가문 출신의 뛰어난 행정가로서, 쉐도우워커 가문 내부사정에 누구보다 빠삭했다.


최근 루터버그에게서,

‘저택 사용인들 사이에서 넷째도련님 이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라는 괴상망측한 이야기를 들은 탓에,

카이곤은 가신들이 자신을 상대로 짓궂은 장난이라도 치는가 싶었다.


“자네가 모르면 누가 알겠는가. 요즘 이안에 대해 그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게 자네인데.”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돌로랑스 마님 사람입니다.”


카이곤은 흔치않게 미간을 찌푸렸다.

루터버그가 쏘아부친 한마디로 입씨름은 시작도 되기 전에 종결지어졌다. 그는 현재 쉐도우워커가문의 안주인인 돌로랑스가 데려온 자다.

둘째 세이건과 셋째 레인의 열렬한 지지자가 굳이 이안에게 득이 되는 말을 꾸며낼 필욘 없었다. 그가 전하는 소식은 담백한 진실이었다.


그런 루터버그가 넷째 이안을 아낄 수는 있어도, 향후 후계문제에 영향을 끼칠만한 조언은 했을리 만무했다.

가령 예를 들어 유학을 떠나기 전에 선조들의 방에 가서 제를 올리라는 둥의 것 말이다.


“저기...”

“소피엔느, 발언할때마다 일일이 허락을 구할 필요없다. 고하라.”

“..그 묘지기를 데려왔는데요...”


카이곤은 진실과 거짓이 우려될 때에는 증인이나 증거를 집요하게 요구하기도 하는데,

계층관리자의 발언까지 그런 과정이 필요하진 않었다.

이미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관리자로 두고 있기 까닭이다.

그럼에도 소피엔느는 주군의 성정에 맞게 증인을 회의장에 불러들였다.


“들라하라.”


집무실 문이 열리고,

카이곤에게도 익숙한 노인 하나가 발을 들였다. 게으르긴 해도 예법과 처세에는 능통한 인물이기에, 나쁘게 평가하지 않던 묘지기였다.


“2계층에서 묘지기를 맡고 있는 산토스라고 합니다. 미궁도시의 적법한 통치자이시자 대협곡 너머의 마술사왕을 물리치어 대륙을 구원하신 영웅 대도왕 쉐도우워커 주군을 뵈옵니다.”


묘지기 산토스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아는 얼굴이구나. 이안이 제를 올렸다고.”


대도왕 카이곤의 인물평에 빠진 것이 있다면,

묘지기 산토스는 젊을 적 음유시인이었고,

또한 제가 할 수 있는 선 내에서는, 손에 쥐어진 금화 값어치의 갑절은 해내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이레 전 저는 예기치 않은 편지 한 통을 받아들었습니다. 수려한 필체로 쓰인 그 편지는 이안 도련님의 것이었습니다. 저같이 보잘 것 없는 아랫것에게도 극진한 예절를 베푸신 것이지요. 이 늙은 제가 살아오며 그런 배려를 받아본 경우는 정말이지 손에 꼽습니다. 기쁜 마음에 버선발로 뛰어나가 도련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이안 도련님을 만나뵙게 되었을 때, 저는 생전 시실리아 마님이 살아 돌아오신 줄로만 착각했습니다.”


시실리아의 이름이 들리자,

원탁에 둘러앉은 관리자 몇 몇은 자세를 고쳐앉으며 묘지기 산토스 쪽을 바라봤다.


“이안 도련님의 눈동자에는 깊은 은하수가 들어있으셨습니다. 그 속에는 젊은 생기와 더불어 떠나가신 시실리아 마님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묻어나오는 듯 하였습니다. 그 분은 마치 깊은 밤하늘이 지상으로 현현한 존재처럼 보이셨습니다. 비단같은 흑발에 시실리아 마님을 닮은 얼굴은 달처럼 빛나셨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불필요하게 제 감상을..”

“아니네, 아니야. 계속하게.”


3계층 관리자 가가헬름이 솥뚜껑만한 손바닥을 흔들며 종용했다.


계층관리자들이 카이곤의 심복이긴 하지만,

그렇다한들 스스로 저택에 틀어박혀버린 이안을 제대로 볼 기회는 없었다.

시실리아의 죽음이 그렇게 만들었고, 유일한 혈육이던 첫째 아슬란의 추방이 이안을 더더욱 쥐구멍으로 숨어들게 만들었다.


이안의 어린시절 모습만 기억하는 그들에게,

산토스가 묘사하는 이안은 전설 속 동물보다는, 이젠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옛동료 시실리아를 연상케 했다.


“그러시다면..”


묘지기보다 음유시인으로 더 오래 살았던 산토스는 슬슬 혀가 풀려가며 왕년의 전성기 시절로 돌아갔다.


그가 이안과 만났던 짧은 경험에 대한 서사시는 장엄하게도 이어졌고,

이안이 제 눈물로 시실리아의 묘판을 닦아 새 것과 다름없게 만들었다는 파트에서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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