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막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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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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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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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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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막타빌런 2

DUMMY

“두 번째, 어린 너는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형평성과 더불어 공정성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누군가는 귀족이라서, 누군가는 능력이 있어서, 또 누군가는 보석금을 냈기에,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동일하지 않은 처벌을 받는다면 그 사회는 신용을 잃고 균열이 일어난다. 이건 네 좋을대로 범죄자 한둘을 가져다 써서 얻는 이점보다 수천 배가 넘는 해악으로 돌아올 것이다.”


레인은 알아들었냐고 묻듯이, 자신의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카데미에 가서 그런 멍청한 이야기는 하고 다니지마라. 몽상가를 환영하는 교육집단은 없다.”


여기서 반박하려면,

미래에서 빙의해온 내 상황과 이안 쉐도우워커가 미래에 행할 악행, 대륙에 덥칠 이계의 존재들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해야하니 적당히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악마빙의자로 몰려 불타 죽느니 말싸움에 한 번 져주는 게 나으니까.


“그래도 범죄사실들을 세분화하여 차등된 처벌규정을 두자는 것과 감옥 내에서 반성태도를 양형기준으로 삼자는 의견은 나쁘지 않았다. 아카데미에 가기 전에 시간이 된다는 그 의견에 대해서는 논의해봐도 좋을 것 같다. 그 이야기를 전하러 왔다.”


그 말을 남기고,

레인은 올 때처럼 내 의견을 묻지않고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대화내용 전반이 대체적으로는 혼나는 과정이었지만,

결국은 한 번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러 온 거였다.


편지에 쓴 내용부터 내가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

대전쟁이 장기화되자 어떻게든 군사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범죄자도 동원하려는 석학들이 머리를 싸메고 만든 신법령이니,

이 시대 기준으로는 선진형법.

제대로 일하는 레인이 보기에도 그냥 흘려넘길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음이 당연하다.


나는 한숨 돌리고 허가서를 살폈다.

선조들의 방에서 주의사항, 금지되는 것들이 빼곡이 적힌 강령.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에 한 번만 읽고 바로 선조들의 방으로 향했다.




***




가장 후회한 것.

가장 궁금한 것.


자서전을 쓰다 보면,

과거를 더듬고 잊혀진 기억도 되살아난다.

정작 본인조차도 의식하지 못했던 일들이 고통으로 다가오는 이도 있고, 행복감으로 차오르는 이도 있다.


늙은 이안 쉐도우워커의 얼굴은 욕심과 아집으로 가득차있었다.


‘과연 뭐였을까, 그게 무엇이었든 그것만 있었더라면...’


후회, 번민, 고뇌.

둘째형 세이건 쉐도우워커에 대한 챕터를 쓸 시기, 이안 쉐도우워커에게서 비쳤던 감정들이다.


세이건을 암살한 것을 후회하느냐?

그렇지 않다.

세이건 휘하 일가를 학살한 것에 고통스러워하느냐?

그렇지 않다.


이안 쉐도우워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세이건의 보물, 과연 뭐였을까?’


지금의 나처럼,

원래 역사의 세이건 쉐도우워커는 왕립아카데미로 향하기 전,

제를 올리기 위해 조상들의 방으로 향했다.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지만,

먼 훗날 세이건이 쉐도우워커 가문을 이어받는 승계식날, 만취하여 즐겁다는 듯이 떠들어댔다.


-그 날, 나는 선택받았다.

-그 날, 나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그 후로 스스로 입단속을 한건지,

세이건은 입을 다 물었지만,

이안 쉐도우워커는 확신하고 있었다.


세이건이 아카데미 유학 직전 방문한 선조들의 방에서,

모종의 보물을 취했다는 사실을.


늙은 이안이 기억을 더듬으며 내게 알려준 것들은,

세이건이 원치 않는 아카데미행으로 기분이 나빠져있는 상태였고,

반강제적으로 선조들의 방에 혼자 남게 되자,

분노로 그 성지를 파괴했었다고만 전했다.


‘덕망없는 녀석이었는데 말이야.’


이안 쉐도우워커가 말하는 세이건은,

능력은 있지만 독단적이고 안하무인의 성격이었다.

그건 이 시대로 떨어져 실제로 마주해본 나도 절절히 느끼고 있다.


‘그런 녀석이 도대체 무슨 보물을 쥐었기에 아카데미의 콧대 높은 귀족가 자제들을 그렇게 홀려댔냐는거지.’


여기서부터는 늙은 이안의 창작 영역이다.

이안 쉐도우워커는,

둘째 세이건이 선조들의 방에서 어떤 보물을 얻었고

그걸 이용해 많은 이들의 환심을 샀다고는 하지만,


사실 세이건이 대단한 사교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안에게만 못되게 군 것 일 수도 있고,

어두운 미궁도시에서만 생활하던 세이건이 밝은 지상으로 나아가니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밝은 성격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확신해선 안된다.


“도착하였습니다. 넷째 도련님.”


안내를 맡은 묘지기가 말했다.

그는 동행 내내 들고 있던 랜턴을 내게 건넸다.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서 가는거죠?”

“잘 알고 계시는군요. 복도를 따라 이동하시다보면 한 눈에 알아보실 수 있는 입구가 보이실겁니다.”

“알고있습니다. 전에 와봤었거든요.”


그렇게 대답하기로 했다.

나는 처음 오는 길이지만, 어린시절 이안 쉐도우워커는 첫째형 아슬란의 손에 이끌려 몇 번이고 가문회 행사때마다 오고 갔던 길이니까.


묘지기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저같은 아랫것이야 눈 먼 눈이고 귀 먹은 귀지만, 이토록 넷째 도련님을 다시 뵐 줄은 몰랐습니다.”

“생각이 어려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륙을 공포로 물들이던 쉐도우워커가 선조들께서도 이토록 고요한 안식 속에 영면을 취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고통도 두려움도 흩어지는 바람에 불과할 뿐이지요. 잘 이겨내주시어 이 노구가 되려 도련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고개 숙이는 관리인에게 가볍게 묵례했다.

인자한 얼굴을 뒤로하고 복도를 거닐었다.


선조들의 방으로 향하는 복도는 장식 하나 없는 회백색이었다.

큰 간격으로 세워진 기둥들에 고대 엘프어로 쓰인 안식기도문이 적혀있을 뿐.


선조들의 방 앞에 도착했다.

쉐도우워커 가문 문양이 그려진 나무문.

그게 다였다.

별도의 보안도, 경비도 없었다.


인류 숫자가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황금시대에도,

미궁도시 제 1 가문 선조들이 안치된 성지로 발을 들일 바보는 없었다.


선조들의 방 내부, 벽면에는 손바닥만한 작은 문양이 빼곡하게 그려져있었다.

문양 속에는 이름과 짧은 업적이 기록되어,

그 너머에 특별한 염처리를 거친 선조 시신들이 안치되어있음이 예상되었다.


쉐도우워커 가문의 기록은 문헌으로 거의 남아있지않았다.

내가 지니고 있던 쉐도우워커 가문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 늙은 이안 쉐도우워커에게서 나온 것이다.


말이 좋아 대도 가문, 미궁도시와 지하길드의 수장이지..

동과 은의 시대에는 이름난 귀족들이 잘 때도 갑옷을 입고 자게 만든 암살가로 대륙에 명망을 떨쳤다.

이런 가문이 가진 비밀이 한둘일까.


나는 망토 아래에 숨겨두었던 석판을 꺼내들었다.

석판에는 벽면에 새겨진 문양과 똑같은 문양이 그려져있었다.


‘세이건은 선조의 보물을 도굴한 파렴치한이야.’


늙은 이안 쉐도우워커는,

둘째 세이건이 누구의 묘를 건드렸는지,

그 묘에서 어떤 보물을 훔쳤는지.

몇 번이고 고민했다.


결론은,

7대조 데바인, 11대조 유리게돈.

둘 중 하나.


암살과 전쟁공작에 전통한 쉐도우워커집안에도,

특이한 조상 한 둘은 있었다.

악마와 계약했다는 데바인과 어떤 마술사를 죽이고 금단의 마술서를 얻었다는 유리게돈.


늙은 이안 쉐도우워커는 이렇게 말했다.


‘분명 그 둘 중 하나일거다. 데바인 쉐도우워커는 용맹한 드래곤슬레이어도 최면을 걸어 제 심복으로 만들었고, 유리게돈 쉐도우워커는 사랑에 빠지는 묘약으로 일국의 공주를 첩으로 들였어.’


그들의 묘 안에 악마의 아티팩트나 금서가 놓여있었고,

우연찮게 세이건이 그를 발견했을거라고...


그 말을 듣던 당시에는 권력의 높낮이가 하늘과 땅 차이였기에 반박하지 않았지만,

권력자였던 늙은 이안도 제 가문에 무관심했기에 간과한 점이 하나있다.


쉐도우워커가문은 장례풍습 상 검은색 수의 외에는 그 어떤 부장품도 넣지않는다는 사실이다.

제 아무리 날고 기던 조상이라 하더라도,

죽음은 그림자로 돌아가는 과정일 뿐이라서다.


물론 세상만사 예외는 있다.

나는 가장 아랫줄의 묘판의 이름을 읽었다.


[시실리아 쉐도우워커]


대도왕 카이곤 쉐도우워커의 첫 번째 부인이자, 장남 아슬란과 사남 이안의 친모.

즉, 현재 몸의 어머니.


강제로 왕립아카데미에 진학하게 된 차남 세이건에게 가장 분노받았던 이는 누구일까.


소시오패스 기질이 다분했던 늙은 이안 쉐도우워커에게는 어려운 난제였겠지만,

마음이 따스한 나는 당연히 이 밀실의 비밀을 손쉽게 풀어낼 수 있었다.


나는 시실리아의 묘문을 부수고,

허리를 깊이 숙여 묘 내부를 더듬었다.


세이건의 분노를 사고,

쉐도우워커의 이름을 지녔으면서도 쉐도우워커의 핏줄이 아니고,

평범한 여인임에도 대도왕 카이곤을 사로 잡은 여인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녀가 처녀시절 행했던 의뭉스러운 행적 또한 여러 역사서를 통하여 교차검증하였다.


죽은 시실리아의 뼈조각을 몇 번이고 뒤집은 끝에,

무언가 이질적인 게 손에 걸렸다.


[못난 엄마가]


종이였다.


첫 장은 장남 아슬란에게 남긴 편지였다.

아슬란과의 추억, 좋아하는 요리 레시피, 해주지 못한 이야기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이안, 약한 엄마가 힘이 되어주지못해 미안하구나.]


두 번째 장은 이안의 것.

대충 이안이 두 발로 걷기도 전에 떠나게 되어서 미안하다는 뭐 그런 진부한 내용이었고,

마지막줄 밑에는,


[너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검은 머리카락으로 만든 반지가 달려있었다.


꽤나 오컬트적인 선물이다.

십수 년을 묘 속에 있었으면서 썩지않은 걸 보아 마법적 작용이 들어간 아티팩트임은 분명한데..


보통은 도굴꾼을 물리칠 용도로 부장품에 저주를 걸어두겠지만,

이렇게 보란 듯이 아들들의 이름이 적힌 편지에 붙여두었으니..


나는 손가락에 시실리아의 유품을 끼웠다.

그 순간, 머리카락 반지가 검은 가루가 되어 형체도 없이 가라앉더니 사라져버렸다.


“어...”


손바닥을 앞뒤로 뒤집어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한들 몸에 특별한 변화가 있다거나 마나나 오러가 흐르지도 않았다.


원래세계의 세이건이 취한 무엇인가는 이 반지였음에 분명하다.

그가 사람들을 홀렸다고 했으니,

혹시 내 몸에서 달콤한 향이라도 날까 싶어 팔등에 콧구멍을 대고 깊이 숨을 들이켜봤으나 무취였다.


머리카락 반지가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는 차후에 확인하고,

당장 급한 건 부숴버린 시실리아의 묘문을 복구하는 일이다.


나는 가져온 석판에 [시실리아 쉐도우워커]의 이름을 다시 새겼다.

원래세계에서부터 명필이란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기에 필체를 따라 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묘문을 부수면서 나온 조각과 가루를 시실리아의 묘내에 쓸어넣고 가져온 접착제를 빙두른 석판을 맞춰 넣자, 깨끗해진 것만 빼면 처음과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었다.


랜턴을 다시 쥐고 선조들의 방을 나섰다.

복도 끝, 나를 기다리던 관리자가 미소지었다.


그가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나를 맞이했다.


‘에휴 얼마나 쳐있는거야, 귀찮은 잡종새끼.’


내가 멈춰서자 관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 두고 온거라도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오래 기다리느라 지치셨지요?”


‘그걸 말이라고 쳐하나, 뭐 주워먹을 게 있다고 쉬는 사람 불러내서 이 지랄을 시켜, 쉐도우워커 핏줄도 아닌 쥐방울만한 새끼가.’


“그럴리가요. 이 곳은 항상 제게 마음의 안정을 주는 곳입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합니다. 시간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십니까.”


‘그래, 일년에 몇 번 니 애비랑 애새끼들 올 때 말고는 쳐노는 일자린데 안 편하겠냐? 어휴 귀신나올까 무섭네. 이 좆만한 새끼야 얼른 쳐가라. 쉬는 날 좀 쉬자.’


“풉. 풉..푸하하.”

“도.. 도련님?”


‘뭐야 이 새끼 무섭게 왜 쳐웃어?’


시실리아가 이안에게 남긴 유산이 무엇인지 알게 된 나는,

쉽사리 웃음을 그칠 수 없었고,

유쾌한 마음으로 시설관리자에게 금화 한 장을 쥐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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