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막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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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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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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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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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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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막타빌런 5

DUMMY

그런 인간이 지금 눈앞에서 종이뭉치를 넘기고 있는 빌마 되브르, 지독한 이안 쉐도우워커조차 혀를 내두른 인간이다.


“보내주신 서류는 모조리 검토해봤습니다만, 아직 공인상인회에서는 한 번도 설립된 적이 없는 형태 상단이라..”

“상법에 위배되는 점은 없을텐데요.”

“네, 네, 당연히 법률상으로는 문제가 되지않습니다만, 아무런 보증없이 미래에 있을 효용성만 따져 투자한다는 게 과도한 위험성이 있기도 하고, 의뢰인께서 쓰셨던 그 단어도 처음 듣는거라..”

“가치투자요?”

“네, 맞습니다. 제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신뢰가 형성된 제 삼 자와 협업하는 형식으로 전환하는 걸 추천드립니다만.”

“아뇨. 미리 작성해드렸던 원안대로 상단을 설립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가 없었다는 말씀도 정정하셔야할 듯 합니다. 백작위이상급 귀족이나 왕실, 종교회에서도 특정 길드나 원정대에 투자하여 그들이 돌파한 던전의 마석이나 보상금을 분배하는 경우가 있지않습니까.”

“그쵸. 하지만 그 경우는 갑이 을의 지분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아예 처음부터 기사단과 용병단 형식으로 그 집단의 설립과정에서부터 투자하여 높은 신뢰와 주종관계가 성립된 사례입니다.”

“그럼 여신투사원정대는요?”

“그.. 여신투사원정대같은 경우는.. 그러니 굉장히 이례적인 사안입니다. 아시다시피 종파차별과 별개로.. 그들은 미래를 본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예, 리스크가 조금 적어집니다. 실제 결과로도 보여주니까요.”

“그러니 법률가께서 걱정하시는 부분은 리스크군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만, 하나만 꼽으라면 맞습니다.”


나는 앞으로 쏠렸던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붙였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쉐도우워커가문은 모두 은발적안입니다. 아십니까?”

“알고있습니다.”

“제 눈동자가 무슨 색으로 보이십니까.”


나는 쓰고 있던 검은알안경을 벗었다.


“...진갈색입니다.”

“맞습니다. 이 머리카락도 염색을 한 게 아니라 태생적인 흑발입니다.”


변호사 빌마는 할 말이 없는지 찻잔을 홀짝였다.

그도 내 외모 때문에 쉐도우워커가라는 내 신원을 몇 번이고 재확인했으니까.


“똑똑하신 분이니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실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 나이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대충 그려지십니까.”

“죄송합니다. 그거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할 일은 아니시죠. 어쨌든 저는 쉐도우워커가에서 돌연변이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가문에서 버림받아 레온하르트 왕가의 포로이자 레온아카데미의 원생이 되러 가는 길입니다. 과연 제가 가문에서 버림받을거란 사실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고 계셨겠지요. 조금만 대화해보아도 명석하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네,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벌거숭이가 되어 지상으로 쫓겨났습니다. 쫓겨날거란 사실은 평생 직감했죠. 그런 저는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했을까요. 그래도 가문에서 무언가를 쥐고 나와야 먹고 살만한 미래를 그릴 수 있지않을까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들어올 때 보셨다시피 제 몸이 말썽이라 가문의 금고를 도둑질 할 수도, 금괴를 쥐고 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가문에서 단 하나, 제가 취할 수 있는 보물이 있었습니다.”

“보물이요?”

“네, 무게도 없고, 부피도 없고, 만질 수도 냄새도 없는 보물, 뭔지 아시겠습니까.”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정보입니다. 저는 미궁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미궁을 탐색하고, 돌파할 파티든 원정대든 제 뜻대로 투자하겠습니다. 쉐도우워커가의 배신자가 아니라 제가 만들 상단의 이름으로요.”


이해되셨습니까,라는 말은 굳이 하지않았다.


미궁도시의 지배가문에서 방출된 돌연변이.

그 돌연변이가 가문에서 쫓겨날 걸 대비하여 준비해왔던 미궁에 대한 비밀정보.

그 사실을 기반으로 빌마 되브르는 머릿 속 주판을 빠르게 굴렸다.


나는 정보와 투자금을 제공하고,

빌마는 미궁탐색팀를 고용한다.

나는 내 이름을 숨기고,

빌마는 이름값을 내건다.

나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파티는 보물을 얻고, 상단은 부를 축적한다.


전생에는 자신의 혀를 뽑아 죽였던 자와 함께 부자가 되는 꿈을 꾸는 빌마를 보며,

나는 웃음을 숨기기 위해 찻잔을 홀짝였다.




***




레온아카데미를 찾는 일은 어렵지않았다.

화려하게 장식된 온갖 귀족마차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도시의 한 점으로 향했으니까.


“저거봐 이글룻 가문 깃발이야.”

“그 바로 뒤는 베어본인데?”

“어째 원수집안끼리 나란히 온대?”


매년 봄쯤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벤트인지라,

그 행렬을 구경하는 이들도 만만치 않게 있었다.


“저긴 무슨 가문이래? 방금봤어? 엘프아냐?”

“얌마 대륙에 엘프가 어딨냐, 마르웬 가문잖아. 저 집안 영애들은 다 저렇게 생겼다더라.”

“마르웬이면 엘프핏줄도 섞인거 아냐?”

“난들아냐, 언제적 전설인데, 지금쯤이면 섞였던 피도 다 희석됐겠다.”


가끔 얼굴을 드러내는 귀족자제도 있었는데,

그렇게 표정이 좋아보이진않았다.


“쟤네들은 마탑에서 온거지?”

“저 두건 쓴 애들? 어어, 쳐다보지마,”


타지역 대학이나 아카데미와는 다르게,

초대황제에 의해 지어진 레온아카데미는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목적에 맞게 전쟁장교나 전투마법사를 키워내기 위한 군사양성소.

오래된 전통을 잊지않으려 마법학 인재들도 다수 입학했다.


게다가 시대가 달라지며,

레온아카데미의 쓰임또한 뚜렷해졌는데,

레온하르트 왕가가 제 영지에 발을 붙인 각지의 귀족가 자제들을 언제라도 정치적 볼모로 사용하지 말란 법도 없었다.


그러니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새학기 설레임따위는,

레온아카데미생도들에게는 해당되지않는 감상이다.


“올해는 쉐도우워커에서도 한 명 온다지?”

“어휴 살 떨려, 걔 졸업할 때까지는 이 근처로는 다니지도 말아야겠어. 그 집안은 언제 귀신이 잡아가나몰라.”

“그래도 쉐도우워커가문이나 되니까 미궁도시를 통제하는거지, 지하것들이 다 지상으로 올라오면 우리가 편히 발 뻗고 잠이나 잘 수 있겠어?”

“필요악인거야?”

“필수악이지. 하수도처럼 말이야.”


구경꾼들에게 가장 나쁜 소리를 듣는 건, 안타깝게도 이안의 몸을 차지한 나였다.

워낙 쉐도우워커스럽지않은 외모기에 들킬 일은 없었지만,

혹시모르니 재빨리 레온아카데미로 발걸음을 옮겼다.


레온시티에는 거대 건축물이 많았는데,

인류가 번성할 때는 얼마나 큰 축조공사를 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대회장같았다.


그중에도 레온아카데미는 유별났다.

유사시에는 아카데미 건물이 초거대골렘으로 변해 전쟁에 동원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긴 했지만,

암흑시대에서 살펴본 역사기록상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고 그저 방어능력이 뛰어나서 성내 요새로서 쓰였다는 기록은 있었다.


“실례합니다. 출입허가증을 볼 수 있을까요?”


천사조각상으로 장식된 아카데미 교문 앞.


친절한 웃음으로 무장한 정장복식의 여인이 길을 막아섰다.

내 품에서 나온 아카데미 입학서 받아든 여인은, 황급히 내부로 뛰어갔다.


스치듯 그녀의 생각을 읽어보니,

입학서 이름과 내 외모를 보고는 ‘대리인’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암흑시대에도 그랬듯이

황금시대에도 편법이라는 건 버젓이 존재했다.


볼모로 보내기 싫어서,

위험해서,

정치문제로,

여러 이유로 귀족들 중 레온아카데미에 가짜를 보내는 일이 종종 있다.


멀리서 덩치 큰 사내가 날 노려다봤다.

달려간 여인이 데려온 남자였다.


“쉐도우워커가 맞다. 들여보내.”


덩치만큼이나 큰 목소리였다.

그 한 마디가 교문 근처에서 화기애애하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배웅하거나 입학하던 사람들의 이목이 움직였다.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멀리서온 귀족도,

눈물 자국을 아직 지우지 못한 어린 영애도,

마탑의 긴 수련을 이겨낸 견습마법사도,

호흡을 한 번 미루고 발언자의 시선을 따라와 내게로 꽂혔다.


알고 있는 것과 경험하는 것의 차이.


황금시대에 쉐도우워커가문이 지닌 악명이야 모르진 않았지만,

미궁도시에서는 겪어본 적 없는 맹렬한 살기가 쏟아졌다.


‘쉐도우워커..’

‘저 놈이..’

‘쓰레기가문.’


어떤 이들에게는 윗대 선조의 원수였고,

누군가는 불명확하게 죽음을 맞이한 친척이 쉐도우워커에게 암살당했다고 무조건적으로 믿었다.


‘피의 졸업식.’

‘아슬란 동생이라고?’

‘쉐도우워커처럼 안 생겼는데.’


일부는 사실일 것이다.

애당초 5년 전,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살육사건의 범인이 명백하게 첫째형 아슬란 쉐도우워커였으니..

그 때 휘말린 귀족의 혈육도 여기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짐짓 모른 체하며 지팡이를 부지런히 찧으며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섰다.


교문 근처의 인파를 피해 건물과 건물 사이로 쏘다니는데,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섰다.


“야 다리병신.”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자애였다.


“너... 정말 쉐도우워커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말고 진실을 말해.”


감정적으로 과하게 요동치는지

내가 의도치 않았는데도, 통찰의 1단계, 2단계를 단숨에 넘어 3단계에 진입했다.

여자애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어린 이안의 모습, 즉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맞아.”


‘거짓말, 은발도 아니잖아. 바보같은 선글라스는 왜 쓰고 있는거야.’


붉은머리소녀는 구둣발로 내 지팡이를 걷어찼다.

피하거나 그냥 서있을 수도 있었지만,

애처롭게 넘어지는 척 해줬다.

조금 추하게 악 소리도 내면서.


‘이런 병신이 쉐도우워커일 리 없어,’


“병신, 거짓말은.”


‘꼴에 목숨 귀한 줄은 알아서 거지같은 대리인을 보내다니.’


소녀는 그대로 쭈그려앉아 나를 내려다봤다.


“다리병신, 얼마나 받았냐? 얼마나 받았기에 그 더러운 집안 욕받이를 자처한거야?”

내가 쉐도우워커가 아니라고 확신이 들었는지,

3단계였던 통찰력이 서서히 가라앉더니, 그녀의 시야도 사그라들었다.


“거기 너희, 뭐하는거야.”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길 끝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팔뚝에 두른 띠를 보아 선도부원들이었다.


칫, 붉은머리 소녀는 혀를 차고는 내 코 끝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너 나중에 이야기해, 알겠어?”


야! 거기 안 서!

선도부의 외침에도 붉은 머리는 그대로 반대방향으로 내달렸다.


“에이씨 빠르네..”

“괜찮아? 신입이지?”


내게 손을 내미는 선도부원을, 다른 선도부원이 막아섰다.


“얜 거 같은데? 지팡이봐.”

“아..”


손을 내밀던 선도부의 웃는 얼굴이 싸늘하게 식으며 손을 거두어갔다.


“너 이안 쉐도우워커야?”


나는 맞다고 대답했다.


둘의 머릿 속에는 적의가 가득 담겼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않고 주어진 명령을 수행했다.


“선도위원장께서 찾더라. 따라와.”

“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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