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막타빌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신비록
작품등록일 :
2024.07.19 18:28
최근연재일 :
2024.07.28 11:50
연재수 :
9 회
조회수 :
153
추천수 :
9
글자수 :
46,264

작성
24.07.26 20:50
조회
8
추천
1
글자
11쪽

아카데미 막타빌런 7

DUMMY

얼마 뒤, 요리사의 은쟁반에 접시들이 들려왔고,

접시 위의 요리들은 선도부원 마르크의 목에 걸린 아티팩트를 통하여 독유무를 판별한 뒤 샤를로트의 가슴 앞에 놓여졌다.

내 접시는 따로 독 판정을 해주진 않았지만, 어쨌건 똑같은 요리가 올려졌다.


“나쁘진 않지?”


흰 장갑을 벗고 포크와 나이프를 쥔 샤를로트가 물어왔다.


“네 맛있습니다.”


넓은 접시에 특이한 음식이 호두알만큼씩 나오는 황금시대식 귀족요리는 영 내 취향에 맞진 않았다.


“교장이 우리할아버진데 어중간한 요리사가 주방을 차지했겠어? 비위생적이라 그렇지 맛은 나쁘지 않은 편이네.”


레온아카데미는 재능만 있다면 평민이라도 입학할 수 있지만, 반대로 백작위급 귀족까지 입학한다.

이렇듯 천차만별의 학생들이 넘쳐나다보니,

교수진도 뚜렷하게 권위가 있어야 했다,

사자왕 탈리만에게 왕좌를 선위하고 은퇴한 레온하르트 선왕이 레온아카데미의 교장인 것처럼.


샤를로트는 반 움큼도 안되는 스테이크를 실밥 뜯듯이 살짝 잘라먹고는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놨다.


“그래, 우리 뻐꾸기는 어떤 재능이 있길래 그 대단한 대도왕께서 아직도 내팽개치지않고 사랑으로 키워주셨나? 외관으로 보면 마법 쪽인데 마나는 전혀 안 느껴지고. 그치?”


경호원처럼 서있던 마르크가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중하게 쥐고 다니는 지팡이는 사실 막 엄청난 암살도구고 실은 무시무시한 자객같은거려나? 그러기에는 오러도 안느껴지는데.. 안그래 마르크?”

“그렇긴 합니다만 조심하셔야합니다. 쉐도우워커가는 기운을 숨기는데도 능통합니다.”


이 대화를 오리지널 이안이 들었다면 얼마나 복장 터졌을까.

나야 다 알고있는 입장이니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으로 이 상황을 볼 수 있지만,

이안은 원래부터 오러도 마나도 하나도 제대로 개화하지 못한 둔재였다.


“그렇지않습니다. 지팡이는 어릴 적부터 양다리의 균형이 맞지않아 쥐고 살았습니다. 마나도 오러도 개인교습을 통해 배우려해봤지만 아무것도 익히지 못했습니다. 이론만 늘었죠.”


샤를로트는 코를 찡그리면서 못 볼 것이라도 본 듯이 쳐다봤다.

전혀 믿지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나와 오러를 동시에 터득하는 천재가 대륙에서 드물게 한 둘 피어나듯이, 마나와 오러 둘 중 한 쪽도 지니지 못한 인간도 그만큼 드물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평민집안이면 몰라도, 아무리 다른 핏줄로 의심된다지만 쉐도우워커라는 걸출한 가문에서 그런 인간이 나올 리가..

확률상으로도 말이 안되긴 했다.


“아, 뭐 그런 설정? 그러고 싶으면 그래, 그렇게 해, 왕족의 권위로 굳이 파헤치자면 파헤칠 수 있는데.. 레온하르트에서 둘 씩이나 너한테 그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건 정도가 지나친 거 같으니까 넘어가줄게.”


그런 확률을 뚫은 게 이안 쉐도우워커였다.


“공주님을 속이거나 힘을 숨기는 게 아닙니다.”


나는 대각선 방향에 서있는 선도부원 마르크에게 손목을 내밀었다.

오러방출을 억제하여 체내에 숨길 수 있더라도, 혈맥을 따라 흐르는 오러까지 통제할 수 없었다.

샤를로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마르크를 보며 끄덕였다.


내가 나머지 손으로 스테이크를 포크로 찍어 모두 씹어먹는 동안, 마르크는 내 손목에서 단 한 줄의 오러도 감지해내지 못했다. 심장을 벗어난 피가 다시 심장까지 돌아가길 수 차례 반복했으니, 마르크는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공주 샤를로트는 흥미롭다는 듯이 미소를 띄었다.


“쉐도우워커에서 무능력자라..”


승리의 미소였다.

유전이 전부라곤 할 수 없지만, 이전세대의 여신투사원정대원이었던 사자왕과 대도왕이라면 궤가 다르다.

그 정도의 피를 물려받은 자식이 오러도 마나도 깨우치지 못했다는 건, 당연하게도 그 핏줄이 아니란 증거나 진배없었다.


“어쩜..”


미소가 가라앉자 샤를로트에게서는 옅은 연민이 감돌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약해보이면 안된다.

약함을 드러낸다는 건, 무리에서 쫓겨날 빌미이고 피식자에게 쉬운 먹잇감이 되는 꼬투리.


그럼에도 인간사회에는 약함을 드러내야하는 존재가 둘이 있다.

하나는 의사고,

나머지 하나는 쓸데없이 여유롭고 한가한 권력자다.

후자는 원하든 원하지 않았건, 자비와 동점을 학습을 통해 배워낸 제왕학의 학생이다.


제 핏줄도 아니고 아무런 가치없는 자식을, 동맹에게 볼모로 보냈다.

지나치게 해석하자면 어떤 분란을 야기할 예고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허나 레온하르트의 고명딸에게는 그 해석이 기이하게 뒤틀린다.


‘어떻게 버티고 살아왔니..’


암흑시대에 레온성주 샤를로트는 도시를 붕괴시킨 주범이었다.

사치와 방만으로 내외부의 적들에 무방비했고,

교활한 이안에게 놀아난 꼭두각시 성주였다.


그렇다한들 악인은 아니었다.

도리어 연민하는 심성이 도드라져,

감정적으로 동맹국에 무리한 파병을 보냈고,

국고를 탕진해가며 백성들을 구휼했다.

결과적으로는 다같이 공멸하는 엔딩을 맞이한 게 문제.


대전쟁시기가 아니라 평시의 군주가 되었다면 그럭저럭 나쁘지않은 평가를 받았을 인물이었다.


‘만난지 반나절도 안되어 내가 확신할 정도면, 미궁도시에서는 얼마나 천덕꾸러기신세였을까.’


그녀가 어울리지도 않게 선부위원장이라는 귀찮은 직책을 떠맡은 것도,

녹록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심성을 뜯어고치라는 왕비의 전언 때문이었다.


‘아버님의 당부도 있었으니 이안을 어떤 식으로든 보호해야할텐데..’


샤를로트는 식어가는 스테이크에 무의미하게 나이프를 찔러대며 고민하더니,


“뻐꾸기, 선도부에 들어올래? 어차피 동아리활동은 해야하잖아. 안 그래?”


제 나름대로 그럴싸한 결론을 냈다.


“네가 쉐도우워커 출신인만큼 우리입장에서도 너를 소홀히 할 수 없는데다가 매번 선도부원들을 네 전용 하녀처럼 붙여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치? 너한테만 따로 특혜를 주겠단 건 아니야, 딱히 재능이 없으니 서류업무나 선도부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처리는 네가 맡으면.. 딱이잖아, 안 그래?”


아버지 사자왕의 경고, 효율과 동맹 귀족에 대한 호의로 꾸며댔지만,

선도부 입부 제안 저변에는 나에 대한 연민이 일조한다는 사실을, 샤를로트 스스로는 인정하지 못할테다.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나는 어렵사리 나온 그녀의 결정에 반박했다.


“..다만 제가 미궁도시에서부터 배운 것이 있다면, 제 주제에 알맞게 분수를 지키며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분수?”

“그렇습니다. 까막눈은 아닌 터라 5년 전 제 유일한 피붙이형제이신 아슬란 형님이 아카데미에서 저지른 참극을 알고 있습니다. 제국이 통치한 이래로 반란죄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형벌도 연좌의 죄를 묻지않고있습니다만, 대륙 서부에는 누군가 죄를 저지르면 그 죄의 무게를 혈육과 함께 떠받드는 풍습이 아직 민간에 파다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렇지않습니까?”


샤를로트는 손가락 사이에 끼운 포크를 흔들며 “그렇지.”라고 대답했다.


“어머니께서 먼저 여신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후, 아슬란 형님께 남은 유일한 핏줄은 저뿐입니다. 아버님은 황제께 왕의 명예와 함께 절대적인 면죄부를 하사받으셨으니 정말로 저뿐이지요. 그런 제가 감히 규율을 확립하고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선도부에 입부하는 건 이치에 맞지않는 배려이십니다.”


어찌되었건 거절이었으니..

잠잖고 듣고있던 샤를로트는 불쑥 솟아오르는 분심으로 반발하려했지만, 내가 반 박자 빠르게 말을 이었다.


“당연히! 그리고 마땅히.. 공주님께서 지니신 권위로 행하시려한다면 하늘 아래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줄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공주님께 고하고자 하는 바는 존귀하지도 않은 저 때문에 선도부의 위신이 떨어지고 아카데미의 질서가 무너진다면, 선도부 완장이 제 안위를 지켜줄지언정 저 스스로가 완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질 것임이 명백하기에 미리 말씀드리고 있음입니다. 한 번만 더 재고해주시어 명을 거두어주시길 청합니다.”


같이 듣고 있던 마르크와 선도부원들은 샤를로트 등 뒤 사각에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들끼리 시선을 마주쳤다.

선도부에 쉐도우워커가 인간이 침범할 바에야,

선도위원장 의견이 한 번 묵살당하는 편이 더 나아서였다.


샤를로트는 볼 안쪽살에 혀를 힘껏 밀어붙이며 불만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내 말대로 한다면 왕족인 자신이 방금 내뱉은 의견을 다시금 주워담는 꼴사나운 광경이 펼쳐질테고...

그보다 앞서 누가 감히 본인이 수장으로 있는 선도부 입부제안을 거절한단 말인가.

샤를로트 베다인 레온하르트는 거절당하는 경험에 면역력이 없는 여자였다.


“뻐꾸기, 너 지상에 친구 한 명 없지?”

“그렇습니다.”

“놀랄거 없어, 네 희멀건 피부색만 봐도 알아. 잘 들어, 너 같은 초식동물일수록 떼거지로 모여다녀야 해, 그래야 쉽사리 먹잇감이 되지않는다고. 그런데 봐봐 넌 친구가 없네? 그러니 길 잃은 초식동물을 선도부라는 울타리 안에 넣어두려는거야. 이해가 어려워? 여기 근처에서 샐러드를 포크로 쪼아먹고있는 작고 귀여운 영애들? 며칠만 지나봐, 아카데미 생활에 적응하자마자 금방 하이에나무리로 변해서 널 못 잡아먹어 안달일걸? 내기라도 할래?”


그녀의 목소리에 동정심은 온데간데 없고 나에 대한 일말의 분노도 끓어오르고 있었다.


“주제를 알고 있는 제게는 감당할 수 없는 제안이기에 스스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아~ 그래서 싫다?”

“감히 공주님의 명을 거스르는 모양새로 보일까 걱정입니다. 내려주신 따듯한 조언은 절실히 통감하고 있습니다. 외려 가르침을 주신대로 동아리 입부는 필히 할 수 있도록 제게 작은 도움을 주실 수 없으실런지요.”

“도움이라?”

“예 그러합니다. 주제넘게 함부로 선도부에는 입부 할 수 없는 몸이고 쉐도우워커라는 무거운 망토를 걸치고 있지만, 공주님의 추천서가 있다면 작은 집단에라도 끼어들 수 있을 듯 합니다.”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내 명을 거스르더니, 그럴 생각이었구나. 이안.’


“알겠다. 미궁탐사부에 자원하여 입지라도 넓힐 생각인게지?”


샤를로트의 추리가 나쁘다곤 할 수 없었다.

쉐도우워커가 출신이니 아카데미 미궁탐사부의 일원이 되는 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다.

쉐도우워커가의 자제가 미궁탐사부?

끗발 날리는 신입이될테니까.

빌마 되르브와 함께 만든 상단의 주무대가 미궁이 될 것임을 생각하면 이 선택지도 괜찮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공주님, 불가사의부에 입부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내게 그런 안식처는 필요치않았다.

목적은 하나.

지금 현재 나의 빙의현상을 설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는 곳으로.


“아.. 그런델..?”


만나고나서 처음으로, 샤를로트는 당황한 낯빛을 내비쳤다.




***




“입부하려는 지원동기를 알 수 있을까?”


불가사의부의 부장은 아카데미에 와서 처음으로,

내 이름을 듣고도, “쉐도우워커?”라며 반문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카데미 막타빌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 아카데미 막타빌런 9 24.07.28 10 1 11쪽
8 아카데미 막타빌런 8 24.07.27 9 1 11쪽
» 아카데미 막타빌런 7 24.07.26 8 1 11쪽
6 아카데미 막타빌런 6 24.07.25 12 1 10쪽
5 아카데미 막타빌런 5 24.07.24 14 2 11쪽
4 아카데미 막타빌런 4 24.07.23 14 2 11쪽
3 아카데미 막타빌런 3 +1 24.07.22 19 1 13쪽
2 아카데미 막타빌런 2 24.07.21 22 0 12쪽
1 아카데미 막타빌런 1 24.07.20 45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