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막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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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록
작품등록일 :
2024.07.19 18:28
최근연재일 :
2024.07.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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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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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막타빌런 6

DUMMY

“이안 쉐도우워커?”


예상은 했지만, 오늘 하루 이안 쉐도우워커라는 이름을 너무도 많이 되물음 당했다.

물론 이 몸은 이안 쉐도우워커가 맞지만,

알맹이인 나는 이안이 아니기에 몇 번이고 대답의 타이밍을 미묘하게 맞추지 못할 뻔 했다.


“예, 맞습니다.”

“그렇구나.. 휴.”


내가 아무리 암흑시대를 살았었고,

오늘 아침까지도 미궁도시의 어둠 속에 있었다지만,

분명 여기 ‘선도위원장실’이라는 곳은 과한 공간이었다.


문헌상으로나 남아있던 화려한 왕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금과 은으로 장식되어있고, 상아와 보석으로 만든 온갖 기물들이 내뿜는 빛은 무채색 삶을 살아왔던 내게는 눈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그 가운데,

마치 본인이 이 사치스러운 공간에서도 가장 값어치 있는 존재라는 걸 자랑하는 듯.

금발을 찰랑거리는 여자애는,

사무책상 앞에 자랑스레 걸려있는 명패

[샤를로트 베다인 레온하르트]라는 이름의,

레온하르트 왕가 공주였다.


샤를로트는 본인 명패를 긴 손톱으로 툭치고 말했다.


“따로 소개는 필요없겠지? 편하게 샬롯이라고 불러도 돼.”


누군지 잘 알지.

알다마다.

이안 쉐도우워커와 함께, 거대 군사도시 레온을 처참한 폐허로 만든 망군 중의 망군이신데.


[여인이 황금을 뒤집어쓰면 패망한다]는 오래된 격언을,

수 세기동안 훌륭한 여제와 여왕들이 업적으로 정면반박해왔는데,

샤를로트의 만행이 격언을 진리로 만들어버렸다.


손톱정리를 끝낸 샤를로트가 긴 속눈썹을 들추어올리며 날 노려다봤다.


“대답안해?”

“그러겠습니다 샤를로트님.”

“우리 어르신께서 웬만하면 지상일에는 관여하지않으시는 분인데 말이야, 그런 분이 콕 집어서, 그것도 너를, 뭐 물론 쉐도우워커가문과의 우호를 돈독하게 하고싶으신거겠지만 말이야. 잘 돌봐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더란말이지. 웃기지도 않아, 제 딸 이름은 몇 번이고 헷갈리시는 양반이 그 놈의 이안 쉐도우워커 이안 쉐도우워커는 뭐가 그렇게.. 어찌됐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편하게 언니 한 명 생겼다고 생각해 이안. 얘들아.. 그만 잡고 있어줄래? 머리 셋 달린 괴물이랑 이야기하는 기분이거든?”


샤를로트의 손가락질에 내 양팔을 붙잡고 있던 선도부원들이 팔포박을 풀렸다.


“그러니까 네가 그 쉐도우워커의 돌연변이.. 맞지?”

“더러 그렇게 부르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음, 아냐 아냐. 세이건 또 누구지.. 레인? 걔들이랑은 완전 딴판이구만. 어쩌다 미궁도시 주인이란 양반이 뻐꾸기자식이나 키우고 있고.. 참 재밌어. 그치?”

“그런 농담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부정도 긍정도 없이 맞받아치자,

샤를로트는 울 듯 웃는 듯한 표정이 되더니 이내 실소했다.


“하! 하여간 마음이 조금 놓이네. 혹시라도 네가 금발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오면 어쩌나 걱정했단말이야. 알지? 우리어르신네랑 너네 미궁주인이랑 옛날에 이렇고 저런 관계였던 건?”


현 레온의 성주이자 레온하르트 대공국의 대공왕이자 사자왕 탈리만 레온하르트.

사자왕 탈리만과 대도왕 카이곤은 과거 전설적인 여신투사원정대 일원이자 친우였다. 그리고 동료였던 시실리아를 사이에 둔 연적이기도 했다.


샤를로트의 걱정은 제 아비이자 사자왕인 탈리만이, 혹시 이안의 생부이진않을까하는 망상에서 시작된 듯 했다.


“그럴만하잖아? 안 그래? 네가 흑발인 건 우리 서로에게 참 감사한 일이라구. 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뻔 했는데 이렇게 서로 마주보고 농담을 할 수 있는 사이로 한 번에 진척시켜줬잖아, 오는 동안 별 일 없었지? 마르크? 할 말 있으면 손이라도 들어, 그렇게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인상쓰지말고.”


내 왼쪽팔을 붙들고 있던 선도부원 마르크가 입을 열었다.

대충 아까 골목길에서 내가 당했던 폭력사태에 대한 일.


“도망친 게 붉은머리면 뻔하잖아, 브리짓 포아너스겠지. 안잡아오고 뭐하고 있는거야?”

“그게.. 위원장님 명령대로 신입을 데려오느라.”

“멍청아, 지금 당장 튀어나가서 잡아오란 말이잖아, 넌 꼭 말을 두 번씩 하게 하더라?”


역시 레온아카데미는 레온아카데미인가.

역사서에나 나올 법한 인물들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옆에 선 마르크가 내가 아는 마르코라면, 레온시티가 무너지고 나서도 끝까지 항전하다가 죽은 장군일거고.

날 협박했던 여자애 브리짓 포아너스는 적색탑에서 최연소로 붉은 망토를 두르지만 꽃을 피우기도 전에 대전쟁에 휘말려 죽는 비운의 마법사.


“그러지않으셔도 됩니다. 그 분과는 길을 마주오다가 부딪혔을 뿐입니다. 제 걸음걸이가 이상한 탓입니다.”

“왜 이래 이안, 포아너스가문이 쉐도우워커에 원한을 품은 건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야. 이번이야 대충 넘어가더라도 언젠가 분명 학칙에 어긋나는 사적인 복수를 하겠지. 본보기가 필요했는데 잘됐어.”


특히나 브리짓은 아깝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브리짓이 당시 레온시티의 적색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수학하여 조금만 더 오래 살아남았다면 인류에 큰 힘이 되었을거란 예시 정도는 역사학자 중에서 이견을 다는 이가 없었으니까.


샤를로트와 브리짓 사이에 내가 모르는 갈등이 있는지,

샤를로트는 마음 속으로 이 건으로 브리짓을 정학시킬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계산중이었다.


브리짓은 내가 고안해둔 명단에서도 상단부의 인재.

그녀와의 관계가 틀어져선 안된다.


“정말 괜찮습니다. 단순히 저와 부딪혔단 이유만으로 그 분을 처벌하신다면, 앞으로 제가 걷는 길에 발 붙이려는 사람이 없을겁니다. 왕세녀께서 제게 바라시는 바가 그런 곤란은 아닐거라도 믿어의심치않습니다.”


‘... 잘못들었나? 왕세녀?’


원래 역사에서도 지금 시기에는 이안 쉐도우워커로 인한 레온하르트 궁성의 암투가 시작되지도 않았기에, 샤를로트는 왕위계승 하위권이고 꿈도 꾸지않겠지만,

나는 그녀의 숨겨진 야심을 살짝 긁어 주제를 바꾸었다.


“무슨 그런 역치에 맞지 않는 망언을 입에 올리느냐! 레온하르트 공국의 적법한 후계는 시세릭 오라버니시다!”


쿵! 나는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찧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궁도시에서만 자라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저희 가문은 출생순서와 무관하게 같은 항열에서 가장 능력있는 자가 가문의 후계를 잇기에 공주님도 왕세를 이을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참... 누가 미궁도시의 귀족 아니랄까봐 야만하고도 격식이 부재하구나.”


샤를로트는 떨떠름하게 입술을 비집으면서도 아까 들었던 호칭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샤를로트 왕세녀.. 왕세녀라..’


“지상의 법도에 이리도 무지합니다. 저는 아직 가르침이 부족합니다. 그런 제가 생각하여도 아까의 일도 길을 휘청거리며 걸은 제 잘못이 먼저라고 사료됩니다. 그러니 저같은 무지렁이를 위한 노여움 푸시고 레온하르트 왕가의 자비로 이번 일만은 묻어가 주시길 바랍니다.”


샤를로트는 흥,하며 콧소리를 내고는 불편해보이는 황금장식 의자에 몸을 길게 기댔다.


“그래 뭐 오늘만 날이 아니지, 어차피 배울만큼 배워먹은 녀석들만 교문을 넘을 수 있으니 굳이 매와 칼로 다스리지않아도 어련히들 알아먹을거야. 브리짓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가볍지만 엄중한 경고를 해줄 필요가 있겠어. 마르코.”

“네, 위원장님.”

“브리짓은 언제 만나면 까불지말라고 분명히 전해놔, 그리고..”


샤를로트는 제 팔목에 걸린 얇은 백금손목시계를 살폈다.


“오늘은 학생식당에 갈거니까, 자리정리해놔.”

“...진심이십니까?”




***




샤를로트는 시종일관 찌푸린 표정이었다.

내가 보기에 학생식당은 천재적인 건축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완공시킨 종교건물 예배당처럼 보이는 수려하고 넓은 공간이었음에도,

그녀는 곁눈질 한 번 없이 금수가 수놓인 손수건으로 코를 가리고 식탁과 의자에 보이지도 않는 먼지를 하나씩 지적해댈 뿐이었다.

마르코 외에도 여러 선도부원들이 열심히 주변을 흰 천으로 닦아내고, 하물며 가까운 통창유리도 혀로 핥을 듯이 가까이 들러붙어 입김을 불어가며 작은 티끌조차 긁어내고 있었다.


한껏 상기된 표정의 수염달린 요리사가 뛰쳐나와 높고 하얀 요리사모자를 벗고 고개숙였다.


“공주마마, 어쩐 일로 방문을..”

“나도 여기 학생인데, 먹으면 안돼?”

“아닙니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런 말이 아니오라..”

“여기선 쉐프가 직접 주문을 받나?”


내 눈에는 저쪽 방향에 자율배식으로 다채로운 요리를 제 접시에 담아가는 학생들이 보였지만, 샤를로트의 눈에는 보이지않는 듯 했다.


“빠르게.. 빠르게! 금방! 대령하겠습니다!”

“뭘 대령한다는거야, 메뉴도 안 골랐는데... 아, 그런 컨셉?”

“예?”

“그래 한 번 쉐프가 가진 실력대로 내 기대치를 충족시켜봐.”


샤를로트는 흰 천이 덧씌워진 의자에 앉아 아예 등을 돌려버렸다.


“예.. 예! 최선을 다해 준비해보겠습니다!”


요리사가 황급히 떠나고,

그녀는 잘 닦인 창문 밖으로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걸 바라보며 혼자 속삭였다.


“역겨워, 서민들.. 마법사들.. 급낮은 말단귀족들이 먹고 떠들면서 여기 온사방에 침방울이 튀었을거 아니야.. 나도 참 비위가 좋지 이런데서 음식을 먹을 생각을 하다니..”


통찰로 생각을 읽을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마음먹은 그대로 말하는 인간이었다.


“뻐꾸기, 두리번거리지말고 피부로 느껴봐, 여기 바글바글대는 준귀족, 서민, 기사, 탑찌꺼기들 할거없이 모조리 널 쳐다보고있어. 느껴져?”


그 말 그대로,

샤를로트의 등장과 동시에 소란스럽던 학생식당이 조용해졌었고,

대부분은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샤를로트를 훔쳐봤다. 겸상하고 있는 나에 대한 궁금증은 숨기지않고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너는 오늘 나랑 식사 한 끼를 같이 한 덕분에 쉐도우워커가가 가진 악명보다 더 높은 권력을 잠깐 빌려쓰는거야. 잘 배워둬, 이게 권력이라는거니까. 네 가문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건, 그 업보가 레온하르트와 합석했다는 사실 하나로 무마되는 진짜 마법을 경험하게 될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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