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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림.
그림/삽화
백림
작품등록일 :
2024.07.24 12:14
최근연재일 :
2024.08.09 10:0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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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6,321

작성
24.08.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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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마법진

DUMMY

어느 한 신전. 거대한 크기에 비해 텅 빈 신전에선 황량함이 느껴졌다. 오직 양 옆을 밝히는 촛불만이 이글대며 타오르고 있었다.

신을 향한 의식을 행하는, 석재로 재단에는 연한 에메랄드빛 머리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그곳이 마치 의자라도 되는 양. 무심하게 자리 잡았다.

남자의 유난히 하얀 피부는 창백해 보일 지경이었다.



“놓쳤어?”



창백한 남자의 옆에 서있던 남자, 아니 소년이 물었다.

탁한 회색머리를 가진 소년은 이제 갓 성년을 넘긴 듯 앳된 얼굴이었다.


분명 질책의 의미로 꺼낸 말이었건만,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였다.



“죄···죄송합니다.”



재단의 밑에 무릎을 꿇은 사내는 머리를 조아렸다.



“나한테 죄송할 건 없는데.”



괜찮다는 말과는 다르게 사죄하는 사내의 등 뒤로 순식간에 화염구가 떠올랐다.

사내 근처를 빙글빙글 맴돌며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화염구는 위협적이었다.


그는 화염구를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어떤 마법사보다 능숙하게.

그는 다른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소모되는 마석이 아까워 굳이 하지 않은 행동들을 서슴지 않았다.



“그 쯤 해둬. 라키스.”



라키스는 흐음, 작게 신음성을 내뱉더니 이내 마법을 거두었다.


이전까지 느껴지던 화염구의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긴장 때문인지 사내의 얼굴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었지만, 보고를 이어갔다.



“흔적은 직접 지웠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1황자가 찾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가장 은밀하게 움직이는 추격대. 조직을 숨기는 건 추격대의 조장, 4기수의 임무였다.



“꼬리를 내빼고 도망쳐놓고 자랑스럽게 보고할 만한 사항은 아니지.”



창백한 모습만큼이나 음산한 목소리가 신전에 울려퍼졌다.


1황자, 칼렌드리한. 퍼즐의 한 조각.

그림의 일부는 정해진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면 그만이거늘.

언젠가부터 자꾸 다른 영역을 침범했다. 알본디 일을 기점으로.


때문에 방벽도 놓쳐야했다. 파편은 무사히 회수했기에 당초 목적은 달성했지만.

부분적으론 일그러졌더라도 그림이 전부 완성이 되면 그깟 한두 조각 정도야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 그 때 마차에 숨어있는 이가 있었습니다. 얼굴은 확인하지 못 했지만 짐작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계속해.”


“에드몬드 백작의 손님으로 아란국 출신의 여자입니다.”


“아란국?”


“네. 그 날 황자와 헤이든 에드몬드가 함께였고 여자는 당일에 에드몬드 백작 저택으로 왔다고 합니다. 연회에서 황자와 친분도 확인 됐습니다.”


“아란은 타국 일에 간섭을 안 할 텐데?”



문명과의 교류를 차단하는 만큼 아란국은 타국의 일에 나서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연유를 조사 중입니다만, 아란국 출신이라 그런지 흔적을 찾기 힘듭니다.”


“그렇겠지.”



아무리 그라고 한들, 아란국만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재단 위의 남자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리고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가졌다고 합니다.”



4기수의 추가 정보에 남자는 하, 하고 비웃었다.

아란국이 튀어나올 때부터 짐작했지만······.

이번에도 어김 없었다. 방해꾼의 등장.



“라키스.”


“알았어. 확인해볼게.”



라키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어떤 주문도 없었다.

뒤이어 보고를 마친 4기수도 물러났다.


어두운 신전에 홀로 남은 남자는 그대로 생각에 잠겼다.


아란국이라.

정황상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참으로 끈질겨. 어머니도.”



그녀의 방해엔 진절머리가 났다. 이쪽도 그쪽도 포기할 줄을 몰랐으니 매번 부딪히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쉽지 않을 걸.”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진전 속도도 예상보다 빨랐다.


과정의 승패는 전혀 중요치 않다. 최후의 승자가 중요할 뿐.

오랜 기간 준비한 이번만큼은 마지막으로 웃는 건 자신일 것이다.





* * *




수도로 떠나기 전.


스파르타식 교육은 여전했다. 아니, 점점 심해졌다. 곧 수도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미젤린은 매일 찾아왔고, 수업 내용을 외웠는지 꼼꼼하게 점검했다. 학생 때도 이렇게 공부한 적 없었건만.


한 번, 질릴 정도의 몰아치는 수업에 정말 단 한 번, 불만을 표시해봤지만 그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미젤린이 알려 준 아주 작은 정보가 그대를 구하는 날이 올 거야.]



아무 것도 없는데 있는 척을 하고, 보이지 않는 데 보이는 척을 하려면, 결국 정보전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업무 강도에 유리아는 지금 겨우 숨만 붙어있는 지경이다.

돈을 많이 주는 덴 다 이유가 있었다. 자본주의의 논리를 절감하며 유리아는 말의 고삐를 더 깊게 쥐었다.


승마 때문에 허벅지와 허리를 중점적으로 느껴지는 근육통도 이젠 익숙했다.



“오늘은 더 멀리 나가보시겠습니까?”


“네.”



헤이든은 제안했지만 결국 그는 원하는 대로 하리라.

몇 번의 수업 끝에 유리아는 이 다정한 선생님의 지도방식을 이해했다.



헤이든은 평소 드나들던 정문의 반대방향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울창한 나무들이 가득한 곳은 상대적으로 덜 정돈된 느낌이었다. 자연적으로 놔둔 느낌.

하지만 마차 두 대가 지나갈 정도로 넓게 난 흙길은 꾸준히 관리했는지, 가는 길 내내 치이는 돌멩이도 없었다.



“다 왔습니다.”



헤이든이 멈춘 곳은 공터처럼 텅 빈 곳이었다.

오는 길 내내 울창했던 나무도, 바닥에 깔렸던 풀도 없었다. 커다란 4개의 기둥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유리아는 말에서 내렸다. 아직 서툴렀지만 도움이 필요하진 않았다.



“둘러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석재 바닥엔 바닥을 다 채울 만큼 커다란 원이 새겨져 있었다. 원의 가장자리엔 문자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또 작은 원과 삼각형, 기하학적 문양들이 가득했다.

복잡했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잘 배열된 모양이었다.


형태를 유심히 살피는 유리아의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의미를 파악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마법진?”


“맞습니다. 공간 이동진이지요.”



헤이든이 유리아의 혼잣말에 대답했다.



“귀족의 저택엔 공간 이동진이 있습니다. 비상 시에 이용하죠.”



주로 긴급히 움직일 필요가 있을 때 이동진을 찾았다.


이동진으로 움직일 수 인원엔 한계가 있었고, 귀족은 대게 수행원과 함께 움직였기에 이동진을 평소에 이용하진 않았다.

이동 때마다 기둥에 박혀있는 마석이 소모되기도 했고.


“이걸 받아주십시오.”


“이게 뭐죠?”


“귀환석으로 좌표는 여기로 설정되어있습니다. 목걸이를 잡고 ‘귀환’을 외치면 이곳으로 오게 됩니다.”



헤이든은 유리아에게 귀환석을 가공한 목걸이를 건넸다.



“어째서 제게 이걸 주시나요?”



아무리 다량의 마석을 보유한 제국일지라도, 마도구는 흔치 않았다. 일반 물품처럼 편히 사용할 수 없었다.


유리아는 제 손에 들린 목걸이가 보석만큼이나 귀중함을 알고 있다. 심지어 공간을 이동할 정도의 마법이라면, 그 값어치는 상당하리라.



“위급 시 사용하십시오. 하지만 최후의 수단이여야 합니다. 유리아 님께서 귀환석을 가진 사실이 드러나면, 비장의 수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니까요.”



유리아에게 위해를 가할 누군가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귀환석으로 도망쳐야 할 정도로 강력한 수를 쓰는 사람이 쉽게 포기할리 없었다.

한 번의 위기는 귀환석으로 넘겨도, 이후에는 소용없으리. 상대는 귀환석으로 유리아가 도망칠 것까지 대비할 것이다.



“근데 목숨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위험한가요?”



전쟁 준비를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한 교육에 불만을 가진 적은 있었지만, 실제 목숨을 위협받는 경우까지 대비한 모습을 보니 얼떨떨했다.



“어디까지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입니다.”



전부 가정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유리아에겐 항상 호위기사가 대동할 예정이었고, 그녀의 안전엔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 일은 모르는 법.

곧 그녀가 발을 디딜 세계는 그랬다.




* * *



유리아는 며칠을 정신없이 보냈다.


수도에 있는 백작의 타운 하우스로 거처를 옮겼다. 개인 짐은 많이 없었지만 다리야는 새로운 방이 낯설지 않게 익숙한 물건을 곳곳에 배치했다.


수도에서의 이튿날엔 시종장과 시녀들이 들이닥쳐 그녀의 신체 사이즈를 꼼꼼하게 쟀다.

온갖 장신구도 유리아의 얼굴에 대보며 그녀와 가장 어울리는 모양을 추렸다.


원래는 재봉사가 직접 할 일이었지만 상단을 통해 몰래 들여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백작이 유리아에게 고급 의류와 잡화를 선물하는 모습이 드러나선 안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매한 물품을 모두 시착하고 난 뒤에는, 또 한 번의 엄격한 심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급스럽지만 비싸 보여선 안 됐고, 심플하지만 우아했으며, 노멀하면서도 유니크해야 했다.


유리아의 분위기와 어울리며, 머리색을 돋보이게 하고, 이국적이고, 소박하지만 가볍지 않은, 신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시녀들의 심혈을 기울인 작업이 계속됐다.

덕분에 모든 옷과 장신구를 입어보는 유리아도 같이 진이 빠졌다.


그렇게 매일 밤 침대에 쓰러지듯 잠들기를 반복하길 며칠 째.


그녀들은 불가능한 요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평상복, 외출복, 장신구 등 모든 라인업이 갖춰지자 유리아는 비로소 개인 시간이 생겼다.


‘드디어 꺼내보는군.’



헤이든에게 귀환석을 받은 이후, 미젤린에게서 부탁한 마법서였다.



<마법진만 알면 내가 바로 마법사?!>



유치한 제목이었지만, 가장 유명한 마법서라고 했다.

책 표지를 넘기자 맨 앞장엔 작가의 말이 적혀있었다.


[마나를 느끼지 못 하여 마법사가 될 수 없다고? 걱정하지 마라. 마법진만 알면 당신도 마법사가 될 수 있다.]


다음 페이지부터는 기본 마법진의 형태와 구조 등을 설명하고 있었다.




마법진의 구성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마법이 건축이라면 마법진은 설계도와 같았다.


마법진으로 구현할 마법의 사이즈, 위력 등을 설계하는 방식이었다. 마법진이 정교할수록 마법의 위력은 거대해졌다.

즉, 마법진의 발전이 곧 마법의 발전이었다.


마법사들의 전유물인 마법서가 시중에 공개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진의 정보를 일정 부분 공개하고, 우수한 인재가 협회에서 마법진을 연구하길 원한 것이다.


그들은 연구직 마법사로 분류되고 마법적 재능이 없더라도 마법사와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작가의 말처럼 마법사가 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역시 마법진은 무리였네.’



유리아의 예상은 정확했다.

마법진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는 룬문자였다. 그리고 유리아는 룬문자를 이해했다.


룬문자를 안다고 곧바로 마법진을 이해하게 된 건 아니었다.

숫자를 안다고 수학을 잘 하게 되는 건 아니듯이.


마법사가 이 사실을 알면 거짓을 고한다며 대노하거나,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원할 정도의 사건이었지만 유리아는 별 감흥이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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