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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림.
그림/삽화
백림
작품등록일 :
2024.07.24 12:14
최근연재일 :
2024.08.09 10:0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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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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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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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아마도

DUMMY


이후 몇 번의 모임을 가졌지만, 롤린 백작 부인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내심 마음에 걸렸던 유리아도 그 일을 잊어버릴 때 쯤,

롤린 백작 부인이 유리아를 저택으로 따로 초대했다.


준비된 차와 다과는 유리아가 좋아하던 것들이었다. 평소 모임에서 그녀를 유심히 지켜본 결과였다.



‘역시 만만치 않아.’



유리아가 한 잔의 차를 다 마실 때까지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그녀의 차는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유리아는 그저 기다렸다. 쉬이 말문을 떼지 못하는 걸 보니, 심상치 않아 보이긴 했다.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요.”


“······?”



그녀는 본론은 예상 밖이었다.


유리아는 백작 부인의 갑작스런 고백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태후께서 저에게 따로 말씀하시더군요. 사업 때문에 영지를 떠나기 전에요. 아마 아들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시길 바라셨겠지요.”



사람들은 그녀의 부분 기억상실증이 갑작스런 아들의 죽음 때문이라 여겼다.


한데 미리 알고 있었다니.



“제가 그리 강인해 보이셨나 봅니다.”



그녀의 목소리엔 회한과 함께 씁쓸함이 묻어났다.


롤린 백작부인은 아들이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반대했다.

죽음과 관계됐을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움이 잦았던 건가.’



아들이 죽기 전 둘의 사이가 급격히 틀어졌다 들었다.

다들 그 때문에 백작부인이 후회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아들이 곧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미래를 부정하고자 좋은 기억을



“그래서 태후 폐하를 미워했습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그랬다면 세상을 원망해도 저를 이토록 원망할 일은 없었을 텐데.”


“······.”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기회를 차버린 건 저였는데 말이지요.”


“닥쳐올 불운 앞에서 담담할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태후 폐하도 떠나보냈습니다. 그리 급작스럽게 가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롤린 백작부인은 찻잔을 들었다. 이미 식어버린 차였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입안에 차가움이 맴돌았다.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태후께서 그러시더군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을 거라고. 정말 그렇다고 보십니까?”



유리아는 운명론자는 아니었지만, 예언자 흉내를 내는 지금 그런 말을 할 순 없었다.



“제게 그런 혜안은 없습니다.”



“의외시네요. 모든 것은 어머님의 뜻이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아란국에서 섬기는 만물의 어머니. ‘어머니의 뜻대로.‘ 아란의 사신단이 종종 남기는 말이었다.



“다만,”



지금껏 그녀의 고백을 듣던 유리아는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



“운명이 어떻든지 간에 떠난 자는 떠나면 끝입니다. 그들에겐 후회도, 미련도, 원망도 없습니다.”


“······.”



이것은 위로가 아니었다. 단지 그녀의 경험으로 느낀 바였을 뿐. 백작부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유리아는 그저 전해주고 싶었다.



“그들은 오직 남겨진 자의 기억 속에서 존재할 뿐이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할어버지는 기일에 약소하게나마 제사상을 차렸다.

유리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엄마 아빠는 여기 없는데, 이미 곁에 없는 사람들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유리아의 불만에도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면서 떠난 이를 기억하는 자신만의 방식이라 했다.


할아버지마저 떠나고 나서야 유리아는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삶은 그들의 모든 것을, 하잘 것 없는 기억마저 앗아갔다.


나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도, 미안함도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이럴 줄 알았다면 마음껏 사랑할 걸. 결국은 모든 게 사라지는데, 행복했던 기억만 남겨두고 맘껏 사랑할 걸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이 어떤 모습일지도 남겨진 자의 몫이죠.”


“······.”


“백작부인께서는 두 분을 많이 사랑하셨나 봅니다.”



백작 부인은 찻잔을 들어 올려 한모금 마시고는 테이블로 내려놓았다. 그 모습은 마치 중요한 말을 하기 전 준비자세로 보였다.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유리아 님은 1황자 전하의 사람입니까?”



그녀의 눈빛은 마치 유리아를 꿰뚫을 것처럼 강렬했다.

지금까지의 탐색이 모두 끝나고, 백작부인이 내린 결론이었다.



“일부는요.”


“부정하진 않는군요.”



유리아는 부정한다한들 숨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솔직한 편이 낫다.


백작부인이라고 정보통이 없진 않을 터. 사교계에 영향력은, 즉 그만한 능력이 있음을 의미했다.


접근한 의도를 들킨 유리아는 되레 차분했다. 백작 부인이 개인적인 초대장을 보냈을 때부터 짐작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단지 확인 사살을 위하여 구태여 별도의 자리를 마련하진 않았으리라.

긍정이든 부정이든 자신의 노선을 확실히 정하겠지.



“에드몬드 그 자식의 속내야 뻔하죠. 뼛속까지 사업가인 놈.”



백작 부인은 마치 오랜 원수를 말하는 것처럼 에드몬드의 이름을 짓이겨 불렀다.


둘은 아카데미 동기이자 라이벌이었다.

작위를 이어받기도 전, 사회에 물들기 전에 만났던 그들은 꾸미지 않은 서로의 성격을 매우 잘 알았다.

서로의 재능도.


에드몬드의 사업기질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평범하던 도시 비슬리를 제국 최대의 상업도시로 만든 것도 그였으니까. 탁월한 안목과 추진력. 미래를 보는 흐름 전부 탁월했다. 그의 행동에 계산되지 않은 건 없었다.


그런 그가 독서 모임을 핑계로 유리아에 대한 정보를 흘리고, 만남을 종용했다? 의도야 뻔했다.

롤린은 그저 제 나름대로 확인을 했을 뿐이다.



“에드몬드한테 전해 주세요. 유리아 님의 후견인, 하겠다고요.”


“네?”



에드몬드의 목적은 유리아도 모르고 있었다. 단지 그녀와 친분을 쌓으시라 말한 것이 전부였다.


정식으로 사교계 활동을 하려면, 후견인이 필요했다. 백작의 도움엔 한계가 있었다.

매번 백작과 동행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았을 뿐더러 귀부인만의 모임엔 그가 참석할 수도 없었다.



“제가 부인께 괜한 부담을 안긴 건 아닌지 걱정이네요.”



그녀가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유리아는 자신 때문에 백작부인의 철칙을 깬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롤린 백작부인은 유리아를 안심시켰다. 지금껏 보지 못 했던 진심어린 웃음이었다.



“유리아 님은 걱정 마세요. 대가는 백작한테 톡톡히 받을 테니.”




* * *




땅에는 온통 널브러진 마물의 시체로 가득했다. 전투로 쓰러진 마물은 끝도 없이 쌓여있었다.

시체 더미의 한쪽에는 소규모의 기사단이 변변한 막사도 없이, 앉아 쉬고 있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다음 지역으로 이동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칼렌드리한과 그의 기사단이었다.


그들은 제국의 북부 산맥을 넘어 온 마물을 토벌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칼렌드리한은 어릴 적 기사단에 입단한 이래로 지금까지 마물 토벌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일선에서 지휘했다.

그것이 1황자의 정체성이었으므로.



“부인께서 생각보다 많은 걸 요구하시는군.”



기사단과 떨어져 앉은 칼렌드리한. 그는 통신석으로 아이젠과 대화 중이었다.



[사업가시니까요.]


“에드몬드의 속이 좀 쓰리겠어.”


[그만한 가치가 있으신 분입니다.]


“그러니 순순히 내놓았겠지.”



그녀를 움직이는데 대가가 없으리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었다.



[사실 백작부인께서 수락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건 칼렌드리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중립을 지키던 롤린 백작부인.

친분으로 움직일 자가 아니었다.


표면적으론 유리아의 후견인 자리를 수락한 것에 불과했지만, 유리아가 황자와 연관되어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일정 황자의 편에 서겠다는 의미였다.



“우리 파트너께선 꽤나 수완이 좋으신 모양이야.”



백작 부인에게 주눅 들지 않은 거라는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리 빨리 결과를 만들어 올 줄은. 자신도 아이젠과 마찬가지로 아니면 그만이라 여겼다.


그는 유리아를 떠올렸다. 비슬리에서 유물을 건넸을 때가 마지막이었다.


대체 누가 믿겠냐고 의문을 표하던 그녀는 제 할 일을 톡톡히 해냈다.


분발해야겠는걸.



“2황자 쪽 움직임은?”



[발리에르 후작이 신전을 통해 빈민 구휼소를 짓고 있습니다. 전국적 규모이구요.]



성년이 되기 전까지, 제국은 황자나 황녀의 정치적 움직임을 금했다. 어린 시절부터 황위 계승권 다툼이 치열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칼렌드리한은 정식 기사단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했기에 해당사항은 없었지만, 착실히 공을 쌓아가는 1황자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신전을 통한 움직임은 어디까지나 눈 가리고 아웅일 뿐. 구호 활동이 2황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임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그쪽도 다급했나보지.”


[성년식 때 신전이 모두의 앞에서 2황자의 공을 치하하길 바랄 테니까요.]



제국은 정식 종교가 없었다.

전쟁과 평화의 신, 크라테우스를 따르는 신도도 있었지만 대게 하늘이나 대지와 같은 자연을, 혹은 조상을 믿었다.

그렇기에 시황제뿐만 아니라 역대 황제의 보살핌을 바라는 제국민이 많았고, 이는 황권을 공고히 하는 기반이었다.

외부의 개입이 없는 제국민만의 믿음으로 다져진 황권.


제국이 정식으로 국교로 채택하기를 노리는 신전의 입장에선 2황자와 손을 잡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유물은?”


[조사 중입니다. 확실해지면 보고 드리겠습니다.]



건국 당시 어둠을 봉인할 때 사용됐던 고대 유물 중 하나.

그 중 알려진 건 황실에서 보관 중인 시황제의 검인 ‘광휘의 검’과 건국 영웅 서르하의 ‘그림자 검‘이었다.

확인해본 바, 서르하의 검은 현존했다.


어둠을 봉인한 나머지 유물은 개국 공신인 가문이 나누어 가지거나 어둠의 힘 때문에 파괴됐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확실한 정보는 아니다.


‘그림자 검’은 칼렌드리한의 최종 목표였다.


그들에게 신이나 다를 바 없는 시황제나 건국 영웅의 검이라면 칼렌드리한의 정통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황제마저도.


고대 유물을 가진 이가 시황제와 같이 위험에서 제국을 구하리라는 믿음.

이는 정당성을 의미했다.



“이번 토벌이 끝나면 바로 수도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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