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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림.
그림/삽화
백림
작품등록일 :
2024.07.24 12:14
최근연재일 :
2024.08.09 10:0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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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21

작성
24.08.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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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시선

DUMMY



한동안 마법진을 들여다보던 유리아는 책을 덮었다. 암기해야할 사항이 너무 많았다.



‘룬문자만 있었다면 마법진 개발도 가능했을 것 같은데.’



어디까지나 가정이었다. 유리아는 빠르게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남은 자유시간이라도 알차게 보내야지.

여태껏 틀어박혀 지냈기에 이번에 수도를 제대로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밖으로 나온 유리아의 시야에 담긴 수도의 메인 거리는 현대를 떠올리게 했다.

길가에 촘촘히 세워진 야광석 아래에서 마감 전 상품 떨이를 소리치는 상인들. 흥정을 하는 사람들까지.



“안 돼요. 안 돼.”



해가 저무는 시간에도 활기가 넘치던 거리, 그 중에서도 유독 식당 앞이 소란스러웠다.



“도망가는 게 아니래도.”


“상관없어요. 계산만 하시면 된다니까요?”


“정말로 금방 갔다 오겠네. 잔돈이 없어서 그렇다니까.”


“할어버지. 자꾸 이렇게 우기시면 경비대 부릅니다.”



백발의 노인과 식당 주인이 가게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주인은 손님의 변명이 어떻든 간에,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진상 손님들은 항상 사연이 구구절절했다.


소란에 모여들던 구경꾼도 시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에 흥미를 잃고 흩어지고 있었다.



“자네, 잠시만. 잠깐! 잠깐!”



식당 주인은 이상은 못 참겠는지 무전취식의 손님을 경비대에 넘기고자 팔은 잡아끌었다. 주인은 제법 등치가 있었는데도, 백발의 노인은 끌려가지 않으려 버티고 있었다.



‘기운도 좋으시네, 할아버지.’



그 광경을 잠자코 지켜보던 유리아는 둘에게 다가갔다.



“제가 대신 지불할게요.”


“······?”



주인은 갑자기 등장한 유리아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음식값을 지불하겠다는 그녀의 말 때문인지 말투는 꽤 부드러웠다.



“아는 사람이오?”


“네. 죄송해요. 저희 할아버지께서 제국 사정에 어두우셔서.”



유리아는 품 안에서 은화 두개를 꺼냈다.

식당의 모든 메뉴를 시키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흠. 자꾸 어딜 갔다 온다는 게 당신을 만나려는 거였나 보군.”


“할아버지, 이만 가요.”



유리아는 친한 척을 하며 노인을 이끌었다. 그는 그녀의 등장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군말 없이 유리아를 따랐다.


식당이 시야에서 벗어났을 때 유리아는 그를 놓아주었다.



“평민들이 다니는 식당에선 은화도 큰돈이에요. 금화를 거슬러 줄 수 있는 곳은 없어요, 처음 보는 손님에게 외상을 허락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구요.”


“흠, 제국 인심이 언제 그렇게 변했지?”


“처음부터 그랬어요. 손님이 가진 돈, 아니면 지위를 믿을 뿐이죠.”



당연한 이치였다. 단골에게도 외상값을 떼이는 처지에 처음 본 사람을 곧이곧대로 믿을 장사꾼은 아무도 없었다.


유리아 또한 마찬가지. 노인을 대신하여 음식값을 지불한 건 단순한 동정심 때문이 아니였다. 그녀는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선뜻 지갑을 열 정도로 자애로운 사람이 아니다.


유리아는 주인이 노인을 잡아끄는 와중, 그의 팔뚝에 새겨진 문양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유심히 살폈던 마법진을.


팔에 마법진을 새기고, 제국의 사정에 어두운, 고생한 티가 나지 않는 어르신. 정답은 하나였다.


마법사.

마법사는 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서 대우받았다. 각 국가에선 마법사에게 많은 혜택을 부여했는데 그 중 하나가 무전취식이었다.


마법사증 하나면 모든 것이 프리패스. 그들에게 청구된 금액은 국가가 대신 지불했다.

자신의 국가에 호의를 갖고 마도구를 제작해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여튼 고맙네. 내 이 일은 잊지 않지.”



‘마도구라도 만들어 주시게요?’



마법사는 단순히 돈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다. 마도구가 귀중한 이유였다.


그러나 유리아는 말은 삼켰다. 노인은 자신이 마법사임을 숨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경비대에 끌려가기 직전까지 마법사증을 꺼내지 않을 정도라면.


괜히 아는 척해서 반감을 사느니 추후를 기약하는 편이 나았다. 언젠가 그의 도움을 받을 날이 올지도.



“그럼 조심히 다니세요.”


“흠, 자네는 어딜 가는가? 수도를 둘러보고자 하는데 함께가는 게 어떨까 싶네만.”



인사하고 갈 길을 떠나려던 유리아는 그대로 자리에 멈추었다.


역시 뻔뻔함은 특권층의 기본 값인가.

지금 외상값도 갚아줬는데, 여기서 더 눌러붙겠다고?


잠시 당황하던 유리아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된 빚을 지우자.’



유리아 또한 바람 쐬는 것이 목적인지라 누군가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결론지었다.


유리아는 그렇게 갑자기 할아버지와 수도 구경을 나섰다.


마법으로 체력도 충전이 되는 건지, 그는 도통 지치질 않았다.

갖은 구경거리엔 하나도 빠짐없이 끼어들었고, 먹을 수 있는 모든 음식은 먹어본 것 같았다.


나쁘진 않았다. 제법 친할아버지 생각도 났다.


그렇게 거리를 헤집고 다니던 둘의 마지막 관광지는 수도의 고대 유적지였다.


유리아는 유적지의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살폈다. 혹시나 유물에 대한 단서를 찾을까 싶어서.



“자네는 고대 유적지에 관심이 많은가 보군.”


“그냥 신기해서요.”



정말로 그리 생각했다. 고대어를 할 줄 알게 된 후부터는 궁금한 것도 많아졌다.



“드웬 할아버지. 근데 고대 마법이 정말 그렇게 뛰어났을까요?”



고대 마법의 위대함은 질릴 정도로 들었고, 비슬리 유적지의 보존마법을 실제로 보기도 했지만, 정확히 설명해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1차원적인 질문에 드웬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마법사에게 고대 마법이 대단하냐고 묻는 꼴이라니.

그는 흥분하여 자신이 평범한 노인을 가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었다.



“지금의 마법은 고대 마법의 일부를 따라하는 것에 불과하다.”



외부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마법사 중에서도 고위 마법사만이 아는 정보였지만 오늘 동행의 대가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마법은 본래 용족의 것이었다. 그들은 마치 우리가 손을 움직이는 것처럼, 단지 의지만으로 마법을 부렸지.”



다리야에게 들은 내용과 비슷했다. 손짓만으로 불과 얼음이 만들어졌다는.


드웬은 설명은 이랬다.

용족의 마법은 신의 영역을 넘볼 정도였다고


제국이 어둠을 몰아내고 대륙을 되찾았지만 용족의 마법만은 되찾지 못했다. 고대 마법은 오로지 그들의 유물에서만 존재했다.


다만, 인간은 마법을 흉내낼 방법을 찾았다. 마석과 마법진을 매개로 한 제약된 마법을.



“그럼 마법사들은 마법을 쓸 때마다 마법진을 그리는 거예요?”



유리아는 뜻밖의 사실에 놀랐다. 주문을 외우면 되는 게 아니었어?




“그렇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드웬의 경우엔 팔에 새긴 마법진이 베이스가 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초기 도안일 뿐, 마법을 쓸 때마다 상황에 맞게 추가 설계해야 했다.


이는 마법사협회가 중립을 지키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국가에 버금가는 힘을 지녔다고 한들, 그들에게도 분명한 한계가 있었기에.



“근데 마법진이 더 단순해질 순 없어요?”


“그럼 위력이 떨어지지.”


“어차피 룬문자가 있잖아요? 룬문자로 자세히 설정하면 안 돼요?”



유리아의 말인즉, 만화에서 필살기를 쓰기 전 외우는 기나긴 주문처럼, 룬문자로 주문을 상세하게 외우면 되지 않느냐는 거였다.


이는 유리아가 룬문자에 통달했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룬문자는······”



드웬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박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정말 불가능한가?

적어도 새로운 발상임은 분명했다.


지금까지 마법진을 발전시킬 생각만 했지, 룬문자로 마법진을 대체할 생각은 누구도 못했다.


룬문자를 연구하는 이도 많지 않았다. 마법사에게 룬문자는 문자보단 색깔에 가까웠다. 화염, 빙결 등 마법 카테고리를 나누는 용도로 쓰이는.



“그렇다면······!”



드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란히 앉아있던 유리아는 갑작스런 움직임에 놀랐다. 드웬의 다급한 표정에선 심각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먼저 가보겠네. 내 나중에 다시 연락하지.”



자신이 누군지도 연락처도 모르면서 어떻게 연락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드웬은 그렇게 떠났다.


그의 머릿속엔 당장이라도 이 새로운 사고를 빨리 적용해봐야겠단 생각뿐이었다. 은퇴를 결심한 이래로 가장 심장이 뛰는 날이었다.



“······빨리도 가셨네.”



유리아는 뛰어가는 드웬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상적인 헤어짐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기회가 되면 또 보겠지.’



덩그러니 남은 그녀는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했다. 유적지를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시간이 꽤 흘렀다.


슬슬 어두워질 시간이었다.


유리아는 유적지 탐방은 다음으로 미루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유적지에서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리아의 더는 무엇도 보이지 않을 때쯤, 그녀가 앉아있던 뒤쪽 언덕 위에서 갑자기 회색 머리의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재밌는 얘기를 하네, 저 여자.”



유리아를 살피러 온 라키스였다.

노인네의 마법 감응력 때문에 가까이 있지는 못 한 채 멀리서 지켜봤다.


라키스는 마법으로 둘의 대화를 바람에 흘려보내 엿들었다.

시시콜콜한 잠담이나 하더니 마지막 유리아의 의문은 날카로웠다.


그녀가 제안한 방식, 룬문자를 이용한 마법은 용족의 고대마법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라키스의 손바닥에 작은 불꽃이 피어났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임에 따라 불꽃의 모양이 조금씩 변했다.

이내 주먹을 쥐자, 불꽃도 함께 사라졌다.



“당장 죽이라곤 안 했으니. 좀만 지켜보지 뭐.”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그는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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