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렙 숨기고 꿀 빠는 9급 공무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익세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26 09:46
최근연재일 :
2024.08.17 21:2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7,146
추천수 :
296
글자수 :
125,560

작성
24.08.01 07:40
조회
360
추천
13
글자
12쪽

복 받은 삶

DUMMY

내가 어렸을 때는 길거리에 노숙인들이 많았다.


지금은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엄마 손을 잡고 걷던 그때는 그랬다.


육교나 지하철 계단 사이 틈에 엎드린 사람들.


그들을 마주칠 때마다 엄마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꼭 내 손에 천 원짜리 한 장을 쥐여주시고는 했다.


‘민혁이 네가 드리고 올래?’


조심조심 걸어가서 바구니에 천 원을 넣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가까이 가기도 겁이 나서, 보라색 지폐를 슬쩍 던지듯 넣었다. 그러면 죽은 듯 수그리고 있던 할아버지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감사, 합니다······.’


어눌한 발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손자뻘인 내게 한 푼 적선해줘서 감사하다며, 누런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날 이후로는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았다. 노숙인들의 바구니에 돈을 넣는 것을 말이다. 도리어 그들을 발견하면 먼저 엄마에게 알리기도 했다.


‘엄마. 저기······.’


그럴 때면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내심 뿌듯하기도, 스스로 착한 아이가 된 양 우쭐하기도 했었다.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소중한 기억 중 하나였다.


아마 사회복지 직렬을 희망한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그냥 성적 커트 라인이 낮아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해도 딱히 할 말은 없다만.


어쨌든, 그런 유년기의 기억은 내게 하나의 명제를 남겼다.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이라도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사람은 선하다’, 라는 선입견이었다.


때르르릉ㅡ!


센터를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광락동 행정복지센터······.”


[이 씨발놈아.]


대뜸 들려온 욕설이 인사말을 끊었다. 뒷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나는 왜 안 주냐?]


앞뒤 맥락이라고는 없는 말.


언뜻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여기까지만 들어도 감이 왔다.


‘기초생활수급자구나.’


생계가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저소득층을 일컫는 용어다.


방금 말했던 ‘가난한 사람’의 범주에 든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뭔진 몰라도 일단 물었다.


“뭘 말씀이세요?”


[그거 있잖아, 그거!]


“그러니까 어떤 거요?”


[그······ 김치!]


기초수급 대상 중, 생계급여 수급자에게는 김치가 지원된다. 가계구성원 1인당 5kg. 당연히 아무에게나 다 주는 건 아니었다.


“혹시 어디서 전화 주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나 ⏺⏺동 사는 사람인데. 아, 그것보다 우리 옆집은 김치 받았는데 왜 나는 안 줘? 사람 차별해? 수급자라고 무시해?]


“선생님. 그런 게 아니라, 김치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자체적으로 심사를 거쳐서······.”


[그건 씨팔 모르겠고!]


“······.”


[내 옆집은 받았고! 나도 받아야겠으니까! 당장 가져다 놔. 알았어?]


뚝. 뚜뚜뚜ㅡ


예전에는 이런 통화를 하면 마음의 상처를 받곤 했다. 어려서부터 품어온 명제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져버린 지금.


고작 이 정도로는 내 멘탈에 미세한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유년기에 가졌던 믿음? 그 역시 변화를 거친지 오래였다.


‘가난한 사람은 선하다’에서 ‘그렇지 않다’로.


그럼 가난하면 악하다는 소린가?


아니.


그냥 가난과 선악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신입 사회복지공무원으로서, 또 이세계를 겪은 용사로서의 결론도 그랬다.


다만······.


‘굳이 이런 일을 겪으며 공무원 생활을 계속하는 이유가 뭐야?’


누군가 그리 묻는다면, 일단 지금은 여러모로 불안정한 시기였다.


회귀한 지도 얼마 안 됐고, 용사의 능력이라는 것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시스템이라는 놈이 워낙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내게는 해결해야 될 커다란 숙제가 있지 않나.


바로 개연성과 인과율 말이다.


‘그 두 가지에 관해서 파헤치려면 실험이 필요해. 여러 각도에서의 실험이.’


그러려면 사람을 만날 기회가 필요했다. 물론 백수로 지내면서도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이쪽이 편할 것이다.


이를테면······.


“으응? 뭐라고오?”

“어르신. 신분증이요! 신.분.증!”


이선정 주무관의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짜증이 묻어났다.


오늘 오전 중에 할 일이 많은 그녀였다. 근데 하필 민원인이 그녀 쪽으로 오다니. 그것도 말귀가 상당히 어두운 할아버지였다.


“뭔 쩡?”

“하······.”


이선정 주무관이 주위를 둘러봤으나 아무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때 나한테 진상이 왔을 때랑 비슷한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가 다시 할아버지를 대면했다.


“아니, 주민등록··· 어휴, 어르신! 보청기는요? 또 놔두고 오셨어!?”

“뭐어? 뭔 천?”

“그게 아니라······.”


속이 터지기 직전의 이선정 주무관이 내 쪽을 힐끗 살폈다. 아마 머릿속에서 고민이 오가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쌩을 깔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대신 손을 들었다.


“어르신!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으응?”


손을 흔들자 그제야 할아버지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선정 주무관의 안도하는 한숨. 나를 향한 짧은 눈길에는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그러더니 얼른 본래의 업무로 복귀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뭐어? 뭐라는지 통 안 들려. 내 귀가 안 좋아서······.”


이런 경우 차라리 글자를 써 주는 편이 낫겠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이 정도 연세가 되면 눈도 침침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면자가 누구든 고생깨나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마음의 메아리(mind echo).”


작게 중얼거려 마법을 전개했다.


마인드 에코는 일종의 텔레파시 계열 마법으로, 상대방의 정신에 직접 의사를 전달하는 주문이었다.


수준은 3위계로 높지는 않은 편이었는데, 정확한 언어가 아닌 간단한 감정표명만 가능해서 그랬다. 물론 내 경우에는 아니었다.


[어르신.]


마력을 담아 속삭이자 할아버지의 표정이 변했다. 아마 머릿속이 은은히 울리는 느낌이실 거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답이 나왔다.


“응.”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아, 여기 이것 좀 봐 줘. 우리 아들내미가 뭘 부탁을 했는데······.”


작은 메모를 건네받아 보니 ‘인감증명서 발급’이라고 적혀 있었다.


‘귀가 불편한 할아버지를 왜 직접 보냈나 했더니.’


인감이라면 이해가 가긴 했다. 본인이 직접 와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리인이 발급 받으려면 위임장이 필요한데, 그 서류 자체를 또 본인이 직접 작성해야 했다.


아들 입장에서는 나름 최선이었을 거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연로한 아버지께 덜컥 맡긴 게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많이 바쁜가 보지, 뭐.’


애써 넘어간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이선정 주무관이 막혔던 부분이었다.


[아, 그러시구나. 혹시 신분증 가져오셨을까요?]


이번에도 할아버지는 단번에 알아들으셨다.


“어이쿠, 내 정신 좀 보게. 신분증 줘야 하지, 참?”


이내 주섬주섬 꺼낸 건 주민등록증이었다.


손때 묻은 카드 속에는 비교적 젊을 때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머리도 지금처럼 완전히 새하얗지 않았고, 눈빛도 정정했다.


‘이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안 들리지는 않으셨을 텐데.’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말했다.


[네. 확인 되셨고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으응.”


이렇게 의사소통만 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뚝딱 서류를 떼고, 드리기 전에 한 가지만 다시 확인했다.


[어르신.]


“응?”


[이거 아드님이 부탁한 거 맞으신 거죠.]


“그럼! 우리 아들내미가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지.”


혹시나 해서 다시 할아버지를 살폈으나 치매의 전조는 없었다. 귀가 좀 안 들리실 뿐, 정신적으로는 멀쩡한 분이었다.


[네, 여기 있어요. 잘 챙겨 가세요, 어르신. 또 걸음 하시지 않게요.]


“으응. 고마워. 젊은이.”


할아버지는 증명서를 받아 고이 접어 품속에 넣었다.


그제야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이선정 주무관 못지않게 할아버지도 답답하셨나 보다.


“근데 젊은이는 어찌 그리 목소리가 좋누? 참 잘 들리네.”


[그러셨어요? 다행이네요.]


“새로 온 젊은이인 것 같은데, 내 죽기 전까지는 그만두지 말어. 응? 내 또 오면 젊은이한테 오게.”


[하하. 그럼 오래오래 일해야겠네요. 아주 오래요.]


마지막 말은 좀 더 마력을 실어 말했다. 할아버지는 기특하다는 듯 허허 웃으시더니 센터를 떠났다.


그렇게 또 하나의 민원 처리가 끝났다.


아까 말했듯 내게는 마법의 사용범위를 실험하는 것이기도 했다. ‘실험’이라는 말의 뉘앙스가 좀 별로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건 괜찮겠지. 할아버지한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고.’


할아버지는 물론 내게도 좋은 일이었다.


원래라면 들리니, 안 들리니 한참을 씨름해야 했을 거다. 그러는 사이 다른 일이 들어왔을 테고, 민원 전화도 걸려 왔을 테고.


‘그렇게 야근을 해야 했겠지······.’


그 모든 과정을 생략해버린 내게 묘한 눈길들이 몰렸다.


특히 이선정 주무관은 굉장히 궁금해하는 눈치였는데, 방금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그녀에게는 내 목소리가 평범한 데시벨로 들렸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급한 업무를 쳐내자마자 내 자리로 다가왔다.


“민혁씨.”

“네?”

“아까 어떻게 한 거야?”

“뭘 말입니까?”


시치미를 떼자 그녀가 재차 물었다.


“아까 그 할아버지 있잖아. 귀 잘 안 들리시는. 민혁씨랑은 엄청 자연스럽게 얘기하던데?”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 대답은 한결같을 뿐이었다.


“그런가요? 하하······.”

“뭐야. 비밀이야? 나도 좀 가르쳐 줘.”

“비밀이랄 게 딱히 있나요. 그냥······.”

“그냥?”

“진심을 담아서 말했는데, 그게 좀 통했나 봐요.”

“뭐어?”


황당하다는 표정의 그녀를 향해 웃었다.


“농담이에요. 사실 제가 예전부터 어르신들이랑 얘기가 잘 통했거든요.”


이 역시 전혀 근거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이선정 주무관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 진짜? 민혁씨 이제 보니 사복직에 특화된 인재였네.”

“에이, 뭘 그렇게까지요.”

“아냐. 잘 들어왔어, 진짜.”

“하하. 감사합니다.”

“아무튼 아까는 고마웠어. 땡큐.”


그것으로 끝이었으나 충분했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곧 내 평판이 되는 법이다. 언젠가 결정적일 때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대단한 출세를 할 생각도 없다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출세도, 승진도 딱히 필요 없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언젠가 인과율의 비밀도 파헤치고 안정을 이뤄낸다면 말이다. 그때는 정말 공무원을 면직하게 될까?


‘···그러고 싶으면 그러지, 뭐.’


재밌는 일이었다.


과거에는 그렇게 그만두고 싶었으면서도 실현하지 못했다. ‘면직’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처럼 느껴졌다.


한데 지금은?


일단 출근하는 것부터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재밌어지려고까지 했다. 마법으로 업무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말이다.


그러니 오히려 면직에 대해서도 편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원하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으로. 그런 마음으로 근무하니 어째 일이 더 잘 풀리는 것만 같다.


‘예전에는 품속에 사직서를 넣고 다닌 적도 있었는데······.’


여느 회사원들이 그렇듯 나도 그랬지만, 이제 내게는 필요 없는 일이었다.


진정으로 떠날 수 있는 이는 사직서조차 필요하지 않다. 직접 그런 사람이 되어 보니 알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참 복 받은 삶이라고.


혼자서 되뇌며 오전의 업무를 마무리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999렙 숨기고 꿀 빠는 9급 공무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공지 24.08.18 36 0 -
23 장수 사진 (2) 24.08.17 65 5 13쪽
22 장수 사진 (1) +1 24.08.16 87 7 12쪽
21 나부터 바로 서지 않으면 +1 24.08.15 118 9 12쪽
20 넌센스 퀴즈 대결 24.08.15 135 9 13쪽
19 사랑의 유통기한 24.08.14 156 11 12쪽
18 근육 성장의 비밀 +1 24.08.13 180 12 11쪽
17 엘프? +1 24.08.12 196 12 13쪽
16 차완무시(茶碗蒸し) +1 24.08.11 216 10 13쪽
15 레드 썬 +1 24.08.09 265 13 12쪽
14 살아갈 결심 +2 24.08.08 264 14 12쪽
13 사람을 살리는 데 필요한 것 +1 24.08.07 290 13 11쪽
12 찾아가는 복지 +1 24.08.06 314 15 13쪽
11 다이어트 복싱 +1 24.08.05 328 15 13쪽
10 진정한 칼퇴란? +2 24.08.04 330 13 13쪽
9 마침 내 전직이 +1 24.08.02 340 10 13쪽
» 복 받은 삶 +1 24.08.01 361 13 12쪽
7 이런 눈물이라면 +1 24.07.31 372 14 13쪽
6 최소한의 호의 +1 24.07.30 405 13 13쪽
5 달라진 신입 +2 24.07.29 452 16 12쪽
4 마법으로 로또당첨? +2 24.07.28 496 16 13쪽
3 귀가 +1 24.07.27 517 16 13쪽
2 봉인 +3 24.07.26 608 19 12쪽
1 프롤로그 +1 24.07.26 645 21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