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호랑이가 농장에 막 들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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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티헹
작품등록일 :
2024.07.29 17:23
최근연재일 :
2024.08.0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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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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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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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실패한 고시생의 귀촌길

DUMMY

“할머니 집이 여기 근처였던 것 같은데.”


박효재가 김이 서린 안경을 문질렀다.

젊은이를 떨군 낡은 버스는 뒤뚱거리며 멀어져 갔다.


“7번···. 으로 갈아타지 않았었나?”


박효재가 기억하는 7번 버스 노선도 위에는 검은 줄이 거칠게 그어져 있었다.


분명히 이 버스였는데.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맞은편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가서 물었다.


“저기···. 7번 버스는 언제 오나요?”

“그거 이제 안 와요. 노선 폐지된 지 오래됐어요.” 


***


털, 털, 털, 털


“총각, 참말로 운이 좋구먼! 내가 안 지나갔으면 반나절 걸렸을 텐데, 그려.”

“네?”

“반나절은 걸어야 도착한다고.”

“네?”

“반나절은 걸어야!”


경운기 뒤에 탄 효재가 몸까지 돌렸지만, 엔진 소리가 너무 커서 들리지 않았다.


털, 털, 터, 털!


“반나절은. 반나절.”


할아버지가 자꾸 중얼거렸으나 가까이서 듣겠다고 일어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대화를 포기하고 건초 더미에 몸을 기댔다.


‘때마침 마을 사람이 지나갈 줄이야.’


무작정 도로변을 따라 걷는 와중 ‘어이, 총각! 어딜 가나?’ 라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니 어느샌가 경운기를 얻어타고 있었다.


20년 전 농촌 영화의 도입부 같은 시작이라니.


경운기 뒤에서 바라본 풍경은 마치 그린 듯한 시골 정취를 자아냈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논밭, 드문드문 있는 집이 그림처럼 완벽했다. 


“길에 돌이 왜 이리 많은고?”

덜컹!

“아이고. 저 괴양이 새끼.”

끼익-. 덜컹!


멀미는 덤.

효재의 얼굴에 점점 초록빛이 돌았다.


“총각. 타고 가는 기분이 어떤가?”

“뭐지. 속이 안 좋은데···.”

“으이? 안 들린다!”


엇갈리는 대화 속에서 분명한 건 할아버지의 호쾌한 웃음뿐이었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효재가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낯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엄마] [왜 답이 없니? 떨어졌어?]


“하아. 이걸 어떻게 말해.”


그래. 떨어졌다.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듯 아주 똑 떨어졌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시험 망친 게 울 일인가 싶지만, 행정고시 3차 면접에서 떨어진 건 30살 먹은 성인도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다.


- 박효재 씨는 이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공부만 하면 다 잘 될 줄 알았다.


몸치여도 머리 하나는 나쁘지 않아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조기 교육, 특목고를 거쳐 명문대에 현역으로 입학. 잡음 없이 공군 복무도 마쳤다.


고시도 공부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같이 시작한 문과 동기들이 살인적인 범위에 혀를 내두르며 CPA와 로스쿨로 방향을 돌릴 때, 박효재는 끝까지 붙들었다.


투자한 시간이 아까웠고.

부모님의 은근한 기대도 있었다.


졸업도 차일피일 미루면서 휴학만 벌써 7년째.


병든 닭처럼 골골대며 공부해 간신히 2차까지 붙었는데, 면접관의 질문 하나에 무너졌다.


- 답안들이 하나같이 정석적이라고 해야 하나, 외워 온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정말 하고 싶은 거 맞아요?


PT도 완벽했고 답안도 괜찮았다.

순번이 늦어서 면접관들이 살짝 피곤해 보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그 인간이 나서기 전까지는.


- 학생 같은 지원자 너무 많이 봤거든. 집안 좋고 학력 좋고 그럭저럭 공부도 하는 애들. 그런데 애써 뽑아놨더니 5년도 안 돼서 기업간다, 유튜버 한다면서 퇴사하잖아. 우리 입장에서도 아주 골치야.

- 이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있어요?


박효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잠까지 줄여가면서 공부했으면 없던 진지도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하려고 했지만, 몇 번 말을 더듬자 면접 시간이 끝나버렸다.


- 저런 애들을 뽑는 것도 쟤네들한테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면접장을 나오며 뒤에서 저 말을 들었을 때 얼굴에 주먹이라도 꽂았어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3차는 떨어졌다.


부자도 깡패도 못 됐다.

젠장, 이거야말로 인간 실격이다.


‘짜증나.’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려고 하는 것을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어 지워버렸다.


‘역시 한 방 먹이고 왔어야 했어. 그랬으면 기분이라도 나았을 텐데.’


머리로는 2차 점수가 부족해서 탈락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건 달랐다.


부모님한텐 어떻게 말해야 하나.

점점 느려지는 엔진 소리를 방패 삼아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터, 터, 털, 털!


“총각! 저것 좀 봐. 큰 산이야 큰 산!”


할아버지가 주름진 손으로 우뚝 솟은 산을 가리켰다.


“도시 사람은 큰 산 처음 봤지? 산이 멋지지?” 

“서울에도 산은 많아요. 맨날 보는 게 산인데···.”


효재는 할아버지의 말을 흘려보내려 했지만, 할아버지는 신난 아이처럼 자꾸 소리쳤다.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산을 바라보았다.


그 큰 산은 푸른 빛이었다.


동쪽 하늘 아래 높다랗고 웅장하게 퍼져있는 산. 햇볕을 받은 산머리가 눈이 부시도록 반짝였고 봄을 준비하는 골짜기는 한껏 여물어 있었다.


산이 넉넉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반겼다.


“어때? 호랑이 기운이 느껴지지 않냐?”

“멋있긴 하네요.”


큰 산은 분명 아름다웠다.

어렸을 때처럼 우와- 우와- 감탄이 터져 나오지 않는 건 답답한 마음 때문이겠지.


효재의 눈빛이 공허하게 닫혀 있었다.


“옛날엔 더 멋있었는데···. 작아진 건 기분 탓인가.”

“총각은 여 와봤나 봐.”

“할머니 댁이 여기거든요. 커서는 많이 못 왔어도 어렸을 땐 여름방학에 종종 놀러 와서 기억해요.”

“으이?” 


끼익-


경운기가 급정거하자 일어서 있던 효재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아악!”


하지만 할아버지에겐 승객의 아픔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경운기에서 내린 할아버지는 일그러진 효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손바닥에 주먹을 내리쳤다.


“알겠다! 춘화 손주구먼!”

“갑자기 멈추시면 어떡해요. 제 갈비뼈가···.”

“그 할머니에 그 손자네. 아주 똑같이 못생겼어.”


할머니가 생전에 이 할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무튼 내가 바래다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우리 손주 찾을 겸 밭에 가봐야 해서. 김 씨 집은 걸어갈 수 있을 거여.”

“아, 정말 감사했습니다.”


내리기 전 박효재가 뚱뚱한 배낭 가방을 서둘러 뒤적였다.


“약소하지만, 음료수라도 드릴게요. 이게 밑에 있어서 잠시만요.”

“총각. 산이 작아 보이는 건 말이지.”


할아버지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기분 탓이 아니야. 개발한다고 깎아 놨거든.”

“그런··· 거였어요?”

“나무가 다시 자라면 장관일 것이여. 두고 보면 알아.”


할아버지의 커다란 미소에는 인자함이 넉넉히 담겨있었다. 큰 산의 존재가 동네 사람의 표정 속에 형태 없이 자리해 있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무르는 박효재의 시선.


“할아버지······.”

“빨리 내리라니까.”


할아버지가 뻗은 손을 흔들었다. 

효재가 기꺼이 손을 잡았다.


“아니, 마실 거 준다더니!”

“드릴게요, 드릴게!”


***


동네는 예전과 같으면서도 많은 부분이 달랐다.


기억 속 허름한 집들은 번듯한 주택으로 바뀌어 있었고 못 보던 자동차도 많았다.


유독 허름한 할머니 집이 눈에 띄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오래된 집 앞에는 말라붙은 덩굴이 낀 나무 대문이 우뚝 서 있었다. 박효재가 숨을 고르고 대문의 차가운 쇠고리를 잡아당겼다.


쉽게 열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힘을 주었는데, 예상외로 대문은 부드럽게 움직였다.


드르르륵- 소리와 함께 나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미리 문을 정비해둔 것처럼, 큰 저항 없이 열리는 것이었다.


‘고모가 요즘도 관리하시나 보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부터 돌아가신 이후에도 고모가 종종 들러서 청소한다 들었다.


시골집에 집착한다고 욕하던 아버지 말씀에 동조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덕분에 도망칠 공간이 생겼다니.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니까.’


박효재가 평상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큰 짐은 모레 온다고 했다.

책상이 없으니까 그때까진 공부도 쉴 수 있겠지.


오래된 집의 고요한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박효재는 평상에 몸을 맡기고, 복잡한 생각들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뇌리를 스치는 수많은 생각들이 점차 잔잔해지면서, 서서히 눈을 감았다.


잠시 동안 세상은 고요했다.


“꼭- 꼬꼬.” 


옆에 있는 닭장에서 닭이 조용히 울어대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뭔가 허전하고 배고픈 느낌이 들어 슬쩍 몸을 일으키는 박효재.


“고모가 닭도 키우시나?”


닭장을 바라보니 달걀이 떠올랐다.

배도 고프겠다. 신선한 달걀을 프라이로 해 먹으면 딱 맞을 것 같았다. 


닭장 안으로 손을 뻗어 달걀 하나를 꺼내려던 순간, 닭 한 마리가 갑자기 날개를 퍼덕이며 밖으로 튀어 나갔다.


“우왓! 뭐야!”


마당으로 나온 암탉은 도망가지 않고 멀뚱멀뚱 효재를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냥 놔둬도 되는 건가? 안 도망가나···?”


고모가 키운 닭인데 잡아 놓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효재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양팔을 크게 휘저었다.


휙, 닭이 손쉽게 피했다.

반대쪽에서도 비틀거리며 크게 휘저었지만, 닭은 이번에도 쏙! 빠져나갔다.


잡힐 듯, 안 잡힐 듯.

순진무구한 검은색 눈동자가 슬슬 열 받는다.


결국 효재가 인내심을 잃고 땅을 박차며 닭을 쫓아갔다. 힘껏 달렸지만, 닭의 빠른 움직임을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거기 서! 멈춰!”


닭은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날개를 펄럭이며 잽싸게 방향을 틀었다.


암탉을 쫓아 대문을 넘고 비탈길을 오르다 보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할머니 집 뒤 큰 산에서 길을 잃은 상태였다.


“망할. 휴대폰도 놓고 왔는데.”


옆에서 닭은 손만 쪼아댔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 이놈아! 이제 해도 지는데 멧돼지라도 나타나면 어떡할래!” 

“꼬꼬댁!”


효재가 닭과 씨름하는 한편. 

숲의 어둠 속에서 그를 응시하는 두 개의 형형한 눈이 있었다.


가히 짐승의 것이라 할 수 있는 노란색 눈은 나무 사이에서 어둠을 갈랐다.


“그르르릉.”


짐승의 저음이 공기를 흔들었다.

형태는 어둠에 가려 명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보통 존재의 기운은 아니었다.


서늘함을 느낀 박효재가 얼어붙었다.


꼬꼬댁- 도망치는 닭을 놔두고 고개를 돌리자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짐승이 콧김을 내뿜었다.


“찾았다!”


***


“아하하. 죽었어?”


아이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효재의 볼을 콕콕 찔렀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반쯤 기절해있던 박효재의 눈꺼풀이 살짝 떠졌다. 안경은 어디 갔는지, 어린아이의 형체만 어렴풋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이가 씨익 웃었다.


“살았네!”


효재가 손에 땅을 짚고 겨우 몸을 반쯤 일으켰다.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는 와중에 머리에서 찌릿한 통증이 일었다.


“으윽. 여기가 어디야···.”

“여긴 산이야!”


아이가 우렁차게 답했다.


박효재는 멍한 표정으로 개구지게 생긴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효재 옆에 쪼그려 앉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너는 누구···.”

“나는 랑이야!”

“나는 누구···.”

“몰라. 웃긴 사람?”


산짐승인 줄 알고 도망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던 일이 효재의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알겠다! 오빠 차은우야?!”

“뭐?”


랑이가 양팔을 펼쳤다. 


“진주 언니가 그랬어. 차은우는 웃긴 사람이라고. 오빠 웃기잖아. 차은우야.”


당황한 박효재가 큰일 날 소리를 거부했다.


“아니야.”

“그러면 뭐 하는 사람인데?”

“그냥 공부하는···.”

“그렇구나! 공부하는 차은우구나?”

“아니라니까.”


효재가 좌절했다.


“인마. 너 그런 얘기 하면 살인 미수야···.”

“살인 미수가 뭔데?”

“됐다. 안경은 어디 있는 거냐.”


그는 바닥에 엎드려 시야가 흐릿한 가운데 안경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한참을 헤매던 끝에 렌즈가 닿았다.


“겨우 찾았네.”


랑이는 온순해진 닭을 품에 안고서 효재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어? 왼쪽에 금 갔잖아?”

“아하하! 차은우다!”

“···너 이번엔 살인죄야.”


효재가 투덜거리며 렌즈를 닦아보려 했지만, 랑이는 꺄륵- 꺄륵- 웃음을 연발했다.


“안경 만드는 선생님 알아. 랑이가 알려줄게.”

“너 이 동네 살아?”

“응!”


대답 하나는 우렁차다.

점점 어둑어둑해지는 숲속, 아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방향을 지시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자! 차은우!”


동네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저 녀석의 입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첫날부터 이렇게 꼬여버릴 줄이야.


조용히 쉬려던 시골 라이프가 이렇게 시작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망가진 안경을 쓴 채로 효재가 랑이와 함께 털레털레 산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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