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호랑이가 농장에 막 들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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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티헹
작품등록일 :
2024.07.2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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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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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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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아르바이트 (1)

DUMMY

저녁 식사를 하기 조금 전 뒷산 풍경이 아름다운 랑이네 집에 도착했다.


효재는 등산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큰 산은 견산리 사람 누구나 그렇듯이 이제 생활의 일부로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남기려고 할 때 등 뒤에서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총각! 어서 오게.”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복대를 메고 기우뚱거리며 다가왔다.


“나오지 않으셔도 돼요. 괜찮으세요?”

“고마워서 어떻게 누워있겠어. 내가 내일부터 입원해야 하는데 일손을 못 구해서 어쩌나 싶던 참이었거든.”


할아버지가 현관 돌계단을 올라가며 손을 내저었다.


 “어-이. 나비 저리 가.”


효재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내려다보았다.

검정고양이가 다리에 몸을 비비며 친근함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를 감쪽같이 속였던 고양이.


“야-옹.”

“허허 참. 살다가 나비가 애교부리는 모습도 다 보네.”


효재가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었다.


“원래 사나운 녀석이에요?”

“말도 마라. 내가 쟤랑 친해지는 데만 꼬박 사계절을 보냈어. 듣자 하니 자네, 얘를 랑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효재가 머쓱하게 웃었다.


“잠깐이요, 잠깐···.”

“아하하. 보기와 다르게 은근히 순진한 구석이 있다니까.”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효재가 하는 생각이란 항상 엉뚱한 공상들이었고 뒤죽박죽이었다.


도시에서는 절대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효재는 견산리에서 아무 부끄럼 없이, 거침없이 해내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이 아니라 큰 산을 둘러싼 커다란 기운이 머릿속을 밀고 들어오는 듯했다.


지금 이곳에 와 있는 것도 그랬다.

평소라면 알바비 받자고 공부 시간을 빼진 않았을 텐데, 지금이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 덕분이죠, 뭐.”

“자네가 좋은 사람이어서 그려. 산은 좋은 사람을 환대해 주거든.”


효재가 이상한 감동으로 가슴이 더워졌다.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애를 쓰며 할아버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얘들아. 서울 총각 왔다!”

“선생님 안녕! 환영해!”


안에는 랑이 말고도 청년이 한 명 더 있었다.


머리를 짧게 친 무뚝뚝한 인상의 남자.

랑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 얼굴에 색연필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가 뺨을 훔치며 다가오자, 효재는 본능적으로 긴장을 느꼈다.


“······.”

“안녕하세요. 박효재라고 합니다.”


효재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남자는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악수에 응하면서도 힘을 꽉 주었다.


“랑이한테 허튼짓 하면 내가 가만 안 둔다.”


효재는 순간적으로 이 상황이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는 것을 감지했다.


지금 물러나면 끝이다.


시선을 맞추며, 그 강한 압력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더 이상 인사가 아니라 결투와도 같은 긴장이 흘렀다.


“댁은 누구신데.”

“박태수다. 왜.”

“초면부터 반말이실까, 너 몇 살이야?”

“어차피 떠날 놈이 알아서 뭐 하려고?”


태수가 힘을 더 주었지만, 효재가 그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맞섰다.


약골처럼 생긴 샌님이 이렇게 버티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듯, 태수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두 남자의 강한 의지가 부딪치고 있었다.


그때 랑이가 총총총 다가왔다.


그들은 옹색한 자세 그대로 눈을 굴리며 랑이의 움직임을 좇았다.


랑이는 단단하게 맞붙은 두 손을 끈으로 감고 한쪽 끝에는 음료수병 뚜껑을 묶더니,


“하압-!”


궁둥이가 거침없이 날아올랐다.

뻥-! 병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캬아! 이게 인생이지!”

“사람을 병따개로 쓰지 말라고!”


심각한 얼굴이던 태수가 갑자기 태도를 누그러뜨리며 먼저 손을 놓았다. 그 짧은 대화를 계기로 기분을 돌이킨 듯했다.


“좋아. 그래도 얘한테 잘해줘라.”


뒤돌아선 태수의 뒷주머니에는 쇠붙이로 된 삐죽삐죽한 연장이 대여섯 종류나 꽂혀 있었다.


할아버지가 후후후, 웃었다.


“미안하구나. 태수가 외지인을 경계하는 편이라.”

“네에···.”


28살. 박태수. 

랑이의 친오빠는 아니지만, 마을 토박이인데다 장남이어서 모두의 형, 오빠, 아들 같은 느낌이라고 할아버지가 설명했다.


농가를 물려받은 청년 농부.

한때는 TV 프로그램에 나온 적도 있단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든든한 기둥인 모양인데, 영 재수가 없다.


이웃집 청년 농부는 태수 말고 한 명이 더 있었다.


“우리 진주도 왔어?”

“할아버지. 일어나지 마시라니까요.”


문을 열고 들어온 한 여자가 상자를 내려놓다가 할아버지를 보더니 아서라, 손짓했다.


‘진주?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진주가 잠깐 대화하기를 멈추더니 효재를 발견하고 먼저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이번에 새로 오셨다는 선생님이신가 봐요. 전 옆 농가에서 온 이진주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박효재입니다.”


예의 바르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악수는 그녀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미친놈은 하루에 한 명이면 충분하지.’


효재는 괜찮은 알바 생활이 되리란 희망을 끌어올렸다.


그간의 경험으로 동네 사람들은 착하고···. 또 따뜻하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효재씨는 혹시 농가 출신이신가요?”

“아뇨. 공무원 집안 둘째입니다.”


진주가 눈을 번뜩였다.

분명히 ‘공짜 노동력.’ 이라는 중얼거림을 들은 것 같았지만, 하루에 미친놈을 연달아 마주할 리가 없으니 효재는 일단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외지인···.’

‘노동력···.’


그러나 본능은 머리보다 빠른 법이었다.


‘뭘까···. 이 맹수 사이에 낀 기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잠재우며 이글거리는 눈빛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우리 할멈.”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가 안방을 소개했다.


안방 안쪽에는 액자를 위한 특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향과 꽃 그리고 할머니. 사진 속에서는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인자하게 웃었고, 특이하게도 앞에 복숭아 한 접시가 놓여있었다.


“할멈. 얘 박 재 효.”

“할아버지 저 박효재.”

“어어. 총각이 나 도와주러 왔대! 기특하지?”


할아버지가 씨익 웃으며 효재를 바라보았다.


“올해로 일흔아홉이여.”

“아···.”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효재가 향을 조심스럽게 꽂고, 깊게 숙이며 인사를 드렸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음속의 긴장감이 목소리를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고개를 들자 웃고 있는 할아버지와 시선이 마주쳤다. 평소 이를 환하게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짓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 의미를 모르고 제대로 한 게 맞나 싶어서 눈치 보는데, 할아버지가 효재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서 저녁 먹자.” 


***


“효재씨, 사양 말고 많이 드세요!”


진주가 음식을 소쿠리째 내왔다.


2월 특유의 으슬으슬한 첫 비에 동네는 초저녁인데도 어두웠다. 하지만 토독토독,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만큼은 시야의 공백을 메꿔주고 있었다.


그마저도 왁자지껄한 랑이네 집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자, 이것도 먹고! 요것도!”


음식이 커다란 그릇에 그득그득 담겨 나왔다.


상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많아 막상 밥과 앞접시를 둘 공간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 중에 절반을 진주씨가 했다고?’


나머지 절반은 태수가 집에서 싸 온 음식이라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양은 상당히 많았다.


“아뇨, 이렇게 많이는 못 먹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은 한창 자랄 나이잖아요!”


진주의 눈웃음에는 분명 음험한 계획이 담겨 있었다.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한술 더 떴다.


“그래, 효재야. 덩치를 키워야 농사도 열심히 짓지!”

“맞아요. 농가 출신도 아닌데 농사지을 생각을 어떻게 하셨어요?”


진주가 효재의 밥공기에 흰 쌀밥을 꾹꾹 눌러 담으며 물었다. 아무래도 태수보다 더한 녀석에게 걸린 것 같았다.


“아니. 선생님은 아직 농사짓는다고 안 했어. 선생님 공부 엄청 열심히 해.”


랑이가 계란말이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효재가 속으로 나이스! 를 외치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이쪽으로는 진로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요.”

“아··· 그렇군요.”


효재가 찬물로 타들어 가는 목을 식혔다.


차라리 입에 음식을 넣으면 더 묻진 않겠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을 크게 한 숟갈 뜨고 그 위에 김치를 올려 와앙- 먹었다.


씹을수록 효재의 눈이 커다래졌다.


“시골이라 반찬이 변변찮죠?”

“아뇨! 정말 맛있는데요!”


김치의 짭짤함과 어우러지는 쌀밥의 고소함.


“특히 밥이 너무 맛있어요.”

“랑이 할아버지가 벼농사 지으시잖아요. 대한민국 최고로 좋은 쌀!”


실로 먹어본 밥 중에서 최고로 맛있었다.

효재가 쌀알을 음미하며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쌀은 다 비슷한 줄 알았는데 맛이 완전히 다르네요. 이유가 뭘까요?”

“사랑이 담겼으니까!”


할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나이 든 할배 손이라 관록이 있는 게지.”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그럴듯한 대답이었다. 쌀의 품종이나 그런 것들은 이런 자리에선 전혀 중요한 대답이 아니었다.


효재는 왜인지 이 식사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 효재씨 부모님은 여기 계시는 거 압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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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농사 아르바이트 (3) 24.08.06 33 3 12쪽
6 농사 아르바이트 (2) 24.08.05 38 3 12쪽
» 농사 아르바이트 (1) 24.08.02 43 4 9쪽
4 우당탕탕 이사 (2) 24.08.01 56 4 11쪽
3 우당탕탕 이사 (1) 24.07.31 85 5 9쪽
2 집에 막 들어오는 호랑이 24.07.30 126 8 12쪽
1 실패한 고시생의 귀촌길 24.07.29 140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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