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호랑이가 농장에 막 들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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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티헹
작품등록일 :
2024.07.2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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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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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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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막 들어오는 호랑이

DUMMY

땅거미가 묽은 안개 퍼지듯 산에 내려앉았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집에 도착한 박효재는 어슴푸레한 대문 조명 아래 서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이장 아저씨!”


랑이가 천진난만하게 뛰어갔다.


큰 소리에 깜짝 놀란 닭이 랑이의 품 안에서 푸드덕거렸지만, 효재의 우려와 달리 닭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랑이구나. 또 산에서 놀았니?”


푸근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응! 오늘은 꼬꼬 찾으러 갔어.”

“고생했겠네.”

“아니야. 꼬꼬가 소리를 크게 질러서 괜찮았어.”

“얌전한 녀석이 오늘은 왜 그랬을까.”


효재가 속으로 뜨끔했다. 이장은 특유의 느긋한 표정으로 닭을 살피다가 곧 그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전 박효재라고 합니다. 이 집 손자예요.”

“반가워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장의 말을 들은 효재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서렸다. 기억을 되짚어도 떠오르는 게 없어 고민하고 있는데, 이장의 시선이 효재의 금 간 안경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길이 많이 험하죠?”

“아, 이게··· 산에서 넘어져서···.”

“아이고, 조심해야지. 안경 고치는 데도 알려줄 테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이장이 허리춤에서 열쇠를 불쑥 꺼냈다.


“집 열쇠예요. 시골이라 문 잠그는 일이 드물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꼭 챙겨 다니세요.”

“제가 올지 알고 계셨나요···?”

“고모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조카가 올 수도 있으니까 잘 챙겨주라고 하시더군요.”


그들이 대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평상이 놓인 마당을 지나면 마루로 들어가기 전, 반투명한 미닫이문이 하나 나왔다. 커다란 대문보다 그것이 이 집안의 ‘문’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효재가 열쇠를 구멍에 넣었다.


철컥철컥


“시내에 나가려면 26번을 버스를 타야 하고 택시는 거의 안 잡혀요. 급한 용건이 있으시면 차를 빌려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철컥철컥

열쇠가 구멍 안에서 헛돌며 쇳소리를 냈다.


“고모가 언제 연락하셨나요? 저는 처음 듣는 얘기라.”

“이번 설 끝나갈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열쇠 이리 줘 보세요.”

“죄송합니다.”


보다 못한 이장이 대신 열쇠를 돌리자 단번에 딱 맞아들어갔다.


“어라.”

“열쇠를 끝까지 밀어 넣어야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거 잘 모르죠.”


드르르륵, 문이 열렸다.

효재가 깊은숨을 들이쉬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오래된 장판이 발밑에서 부드럽게 끈적이며 익숙한 소리를 냈다. 벽에는 할머니가 직접 말리셨던 표주박과 부적처럼 사용되던 그림.

한쪽 구석에는 작고 정갈하게 정리된 주방이 보였다.


아직 남아있는 할머니의 냄새는 오랜 시간의 간격을 메우며 그를 포근하게 감쌌다.

눈만 감으면 어렸을 적이랑 똑같았다.


“······.”


눈만 감으면.


“고모가 어제 오시진 않으셨죠?”

“네. 그렇죠.”

“어째··· 사람 흔적이 가득한데.”


이장도 고개를 기울이고 집 안 상태를 살폈다.

방금까지 누가 있었던 것처럼 과자 부스러기와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음료수가 굴러다녔다.


“아이고. 랑아. 여기서 놀지 말랬지.”

“에헹. 들켰다!”

“죄송합니다. 동네 애들이 빈집을 놀이터처럼 쓰더라고요. 하지 말라고 말은 해뒀는데.”

“여긴 랑이 집이야! 내가 먼저 침 발랐어!”


랑이가 닭장 안에 닭을 넣으며 항의했다.

효재가 경운기를 탔을 때처럼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침···?”

“애들이 아무 말이나 따라 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장이 효재를 안심시켰지만, 아이가 하는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진짜로 침을 바르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어허, 랑! 마당까지만 괜찮다고 했잖아.”

“하지만 내가 꼬꼬 밥 주고 꽃들도 씻겨줬는데? 그래도 랑이 집이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주인은 따로 있는 거야.” 

 “그러면 랑이랑 차은우가 같이 집 주인 하면 되겠다!” 


이장이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은우?”

“야. 아니라니까.”


당황한 박효재가 이장의 눈치를 살피며 랑이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처럼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이 잘생기기는 해도 차은우는 아니지 않니?”

“차은우라고 생각해, 랑이는.”

“애당초 선생님은 아이돌이 아니잖아.”

“저기···.”


효재가 의의를 제기해보려 했으나 묵살당했다.


“아이돌은 웃음을 주는 사람들이잖아? 진주 언니가 그랬어.”

“그만···.”

“하긴. 외모 말고도 여러 재능이 필요하긴 하지.”

“그러니까 이 오빠는 차은우! 끄앙!”


듣다 못 한 박효재가 랑이를 들어 올려 대문 밖으로 부웅- 날렸다.


“으갸걍.”


공중제비하며 날아간 랑이.

바닥에 네 발로 착지하는 모습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 효재가 곧바로 대문을 닫았다.


“열어! 여어얼어! 랑이 집이란 말이야아!”

“죄송해요. 아이가 좀 짓궂죠?”


이장이 난처한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심성이 나쁜 애들은 아닙니다. 조금만 지내보시면 알 거예요.”


피규어를 망가뜨린 조카를 두고 네가 이해하라는 명절 단골썰이 떠올라 기분이 좋진 않았다.


아무리 시골에 내 집, 네 집이 없다지만.

시끄럽고 말 안 듣는 아이는 딱 질색이었다.


“제가 이제 집을 정리해야 해서요.”

“아, 네. 저도 그만 가보는 게 좋겠네요.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장의 따뜻한 마음씨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효재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런 게 바로 도시에서 느끼기 어려운 정겨운 인심인 걸까.


아아. 불필요할 정도로 따뜻한 고향의 향기-.


철컥!


대문을 굳게 잠갔다.

이제야 마음이 편안했다.


***


“망할. 쓰레기가 잔뜩이네.”


효재가 과자 부스러기를 치우며 불평을 토했다.


여기저기 방석이 흩어져 있고 여러 명이 오간 흔적이 역력했다.


‘담배꽁초나 술이 없는 게 다행인 건가.’


비행 청소년은 없는 모양이다.

시골 아이들은 순진하다고들 하는데, 편견인진 몰라도 어쨌든 박효재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이런 몸으로는 누구 하나랑 싸워서 이기기 힘들었으니.


‘올해는 시험 보기 전에 운동을 좀 해야 하나.’


방석을 집어 들자 허리가 뻐근했다.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근육도 꽤 있었던 것 같은데, 공부만 하다 보니 몸이 많이 망가졌다.


다행히 집에는 모든 생활 환경이 갖춰져 있었다.

수도, 화장실, 전기에는 큰 이상이 없었고 시간이 걸리긴 해도 따뜻한 물도 나왔다. 벌레나 먼지도 없었다.


‘랑이가 이 집을 관리했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야. 나중에 과자라도 줘야겠어.’


효재가 식탁으로 쓰는 탁상을 꺼내 펼쳤다.


아까만 해도 이삿짐이 오기 전까지는 쉬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시간이 남으니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노는 것도 놀아본 놈이 한다고.

한평생 공부, 공부하면서 살아온 녀석이 제대로 쉬는 방법을 알 턱이 없었다.


결국 교재를 펼쳐 첫 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집중이 잘 되는 건 아녔다.


“고모는 설에 눈치채셨나.”


효재가 탁상을 톡톡 두드렸다.

덕분에 옛날에 할머니에게 받은 것 말고도 여분의 열쇠를 갖게 됐지만, 그래도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연락을 따로 드려야 하는 걸까. 평소에 대화도 안 하는데 대체 어떻게 알았던 건지. 혹시 불합격한 게 티가 났나.

고모가 관심법을 쓰는 줄은 몰랐는데.


절로 한숨이 나온다.


“하아아.”

“왜 그래?”

“어려워서.”

“그러게 어렵당.”


턱을 괴고 혼잣말하던 효재는 문득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랑이가 옆에서 교재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넌 어디로 들어왔냐···?”

“랑이도 읽어볼래.”


효재의 이마 주름이 깊어졌다.

랑이의 뒷덜미를 쥐고 이번에는 대문 멀리, 확실히 던졌다.


“끄앙!”


이번에도 착지 하나는 대단하다.

대문이 꼭꼭 잠겼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다시 공부에 매진하는 박효재.

덕분에 주의를 환기해 초반부 집중력은 나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면접관의 말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 답안들이 하나같이 정석적이라고 해야 하나, 외워 온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망할.


“아아아. 왜 이렇게 집중이 안 되지? 바람을 쐬자. 바람을 쐬면 나을 거야.”


미닫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이번엔 평상 위에 이장님까지 앉아있다.


“초코파이는 초코랑 마시멜로랑 떼어내서 먹는 거야.”

“아저씨는 초코 먹을래.”

“이게 뭡니까···.”


효재를 발견한 이장 아저씨는 ‘그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로 성질을 돋웠다.


“아. 효재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시멜로 햄버거 먹을래?!”


탑처럼 쌓인 마시멜로를 좋다고 흔들어대는 랑이나 냉큼 인사하는 이장이나.


이번에 퇴출당한 사람은 랑이 뿐이 아니었다.

이장 아저씨도 함께 하늘을 날았다.


“꺄웅!”

“아구구구.”


효재가 대문을 닫고 마당에 있던 삽을 손잡이에 걸어 넣었다. 그걸로도 모자란 것 같았다.


“헉···. 헉···. 이 정도면 됐겠지?”


눈에 보이는 기다랗고 얇은 것을 닥치는 대로 걸었다. 흡사 적군을 막는 마지막 요새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리 ‘그들’ 이라도 대문을 부수지 않고서야 들어오지 못할 테다!


집중하자, 집중하자.


효재가 뒤돌아 미닫이문을 열었다.


“글자다! 글자가 엄청 많다!”

“저녁 식사 드린다는 걸 깜빡해서요. 안사람이 만든 된장 배춧국인데 아주 맛있습니다.”


집중 좀 하자!


두 사람은 거실과 부엌에 벌써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대체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효재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그제야 눈치를 보며 뒤편을 가리켰다.


“이거 원래부터 이랬어.”

“허허. 태풍 때문에 무너진 지 꽤 됐죠.”


알고 보니 담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거실에서 뒤쪽 바깥 화장실로 향하는 문을 잠그지 않았더니, 앞과 뒤만 바뀌었을 뿐이지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언제까지··· 고칠 수 있나요?”

“돈 생각하면 집을 다시 짓는 게 낫겠는데.”

“그럼 그냥 나가주세요.”

“화났수?”


***


찌익-

찌이이이익-


청테이프 뜯는 소리가 밤중에 울려 퍼졌다.

임시방편으로라도 무너진 담을 메꾸기 위해 효재가 애쓰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랑이가 옆에서 동화책을 들고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거 읽어주라, 랑이도 읽고 싶다!”

“가서 놀아. 뭔 책을 읽어.”

“튕기지 마라, 차은우.”

“차은우 아니라니까.”


랑이가 든 동화책의 구석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호 랑’ 이라고 적혀 있었다.


“네 이름이 ‘호 랑’ 이듯이 나한테도 이름이 있어. 그런데 호 씨야? 이름 되게 특이하네.”

“호, 호랑이가 어때서!”


랑이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얘도 어지간히 이름으로 놀림 받았구나, 싶었다.


“내 이름은 박효재야.”

“박여재?”

“박. 효. 재.”

“박재효?”

“나 놀리는 거냐? 아님 진짜 바보인 거야?”


랑이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머리 위에 전구를 띄웠다.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를래.”

“하아···. 맘대로 해라.”


효재가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사를 마친 담에는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끝!”

“와아아. 선생님, 잘했어. 이건 나도 못 넘겠다.”


랑이가 옆에서 열심히 손뼉을 마주쳤다.

뿌듯해하던 효재가 담 안쪽에 있는 아이를 바라보고 눈을 두 번 깜빡였다.


“근데 너 어떻게 집에 가냐?”

“응?”


이제 슬슬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박재효, 아니 박효재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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