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호랑이가 농장에 막 들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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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티헹
작품등록일 :
2024.07.29 17:23
최근연재일 :
2024.08.09 23:34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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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8,471

작성
24.08.08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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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농사 아르바이트 (5)

DUMMY

“··· 나보고 요리하라고?”

“응! 그로테스크한 감자만 아니면 돼.”


랑이가 버너를 가리키며 외쳤다.


미닫이문에 엉거주춤 몸을 기대고 있던 태수네 어머니는 어느 틈에 진주의 말을 듣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쌤이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그럼 저희는 잠시 안에서 준비하고 있을게요.”


랑이가 평상 위에 고인 물을 걷어내며 그 위로 마른 돗자리를 깔았다.


부엌 도구와 식자재가 점점 늘어나는 동안 효재는 상추 잎사귀 끝을 만지고 뜯는 실없는 행동을 되풀이하며 불편함을 달랬다.


맛난 것만 가려서 먹고 폭신하게 자고 자라,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다.


라면과 계란후라이쯤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튼 자취방 인덕션은 켜진 적이 없지만, 그 두 개로 막연하게나마 자존심을 지켜보려 했다.


“기본적인 건 할 수 있는데···. 저녁 식사는 못 만들어. 요리 배워본 적도 없는걸.”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랑이가 작은 칼을 쥐었다.


“됐어. 요리 따윈. 내 손가락을 봐. 이래서야 제대로 된 음식이 나올 수 있겠어?”

“그거야 해봐야 아는 일이지.”


랑이가 엉성하게나마 칼질하며 감자를 잘랐다. 칼을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작은 손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하려고 하지 않으면 못 하는 거니까.”


낑낑거리며 모양을 맞춰보려 애쓰는 랑이.

그 순간, 물기가 가득한 탓인지 감자가 미끄러졌다.


“꺄우웅.”

“위험해!”


효재가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주저했던 몸은 완전히 펴져서 랑이를 향해 달려들 준비가 되어 보였다.


“······.”

“······.”


하지만 랑이는 감자도, 칼도 놓치지 않았다. 똑같이 숨을 죽이던 마당에서 랑이가 에헤헤,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잠시 당황한 것뿐.”


효재가 아직 걱정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랑이를 주시했다.


“됐다.”


손끝을 세워 마지막 조각을 가르는 데 성공했다.

랑이의 입가에 처음으로 긴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선생님도 빨리해봐.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어. 랑이처럼.”


저 작은 손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효재는 별안간 피가 머리로 모이는 듯한 기분으로 눈을 크게 뜨며 칼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무작정 해보기 시작했다.


“힘세다!”


두꺼운 김치도 척척 자르는 모습을 보며 랑이가 감탄했다.


어디서 보고 들은 걸 떠올리며 김치를 반죽하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휴대폰을 꺼내 레시피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문득 솟아올랐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하고 싶었다.


효재가 김치 반죽을 조심스럽게 떠서 팬에 올렸다.


기름에 닿자마자 반죽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퍼졌다.


‘눌러야 바삭해진다고 했던 것 같아.’


언젠가 TV에서 봤던 장면을 떠올리며 효재가 주걱으로 반죽을 살짝씩 눌렀다. 고소한 기름 냄새와 함께 매콤한 김치 향이 마당을 가득 채웠다.


“랑이가 썬 감자도! 감자!”


랑이가 효재의 어깨에 매달려 폴짝폴짝 뛴다.


“어이. 흔들면 안 돼.” 


핀잔을 주면서도 효재가 그다음으로 랑이의 감자 조각들을 집어 들었다.


싹은 없어도 씨감자와 생김새가 똑같다.

아마 할아버지가 먹을 용으로 남겨둔 것이겠지.


효재가 감자 조각들을 보며 문득 고민에 잠겼다.


이 감자로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


김치는 비교적 선택지가 적어 부침개를 만들어야겠다고 쉽게 생각했지만, 감자는 달랐다.

알감자, 감자전, 감자튀김···.


기름과 감자. 요리 방식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맛이 달라진다는 게 참 신기했다.


이왕이면 랑이의 감자 모양을 살려주고 싶었다.


효재가 썰어놓은 감자 조각들을 하나씩 팬에 올려 나무 주걱으로 저어가며 볶았다.


언제까지? 3분? 5분?

속으로 숫자를 세다가 이내 고개를 젓는다.


덜 익거나 태우지만 않으면 되겠지.

때로는 세상살이가 그 정도로 간단하다.


“휴우. 랑아. 이거 안에 가져다 놔. 나는 뒷정리하고 갈게.”

“맛있겠다아아아.”

“가는 길에 먹지 말고.”


랑이가 눈을 간절하게 반짝였다.

효재는 하는 수 없이 따끈따끈한 감자볶음 한 조각을 입에 물려주고 등을 톡톡 밀었다.


“으으음!! 감자가 입에서 녹아!”

“어서 가.”


김치전과 감자볶음이 주방에 대령 되는 사이 효재는 평상 옆에 있던 마당 수도꼭지를 틀어 기름진 손을 씻었다.


미끄러운 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랑이 할아버지 대단하네.”


한편 안에서 진주가 가져온 음식 재료로 간단한 국거리를 준비하던 태수네 어머니가 감탄했다.


“어떤 게요?”

“쌤 말이야. 주는 밥만 먹었을 것 같이 생겼는데, 어떻게 요리시킬 생각을 다 했대. 아들래미가 비실거려 보여서 일부러 그랬나.”

“사실 할아버지한테 전화가 와서···.”


진주가 머리를 긁적였다.


“알바비 거저먹으면 안 된다고 땡땡이친 만큼 일 시키라고 하신 거예요. 요리라도 하라고.”

“와하하. 랑이 할아버지가 그랬어?”

“네에···.”

“그 양반도 아주 대단하다니까!”


태수네 어머니의 호쾌한 웃음이 밤하늘 높게 솟았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할아버지만 귀를 후비적후비적 팠다.


“아빠, 왜요?”

“아니. 방금 누가 내 얘기 한 것 같아서.”


***


“김치전!! 아싸!”


재혁이 두 팔을 높게 들었다.


“자, 따뜻할 때 먹자.”

“배고프다.”


태수네 어머니가 밥을 푸고 국을 뜨는 사이 사람들이 하나둘씩 식탁 주위로 몰려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드디어 효재의 김치전, 첫 작품이 상에 올랐다.


“맛있어요?”

“응. 조금 싱겁기는 한데.”


진주의 물음에 태수 어머니가 우물우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첫 작품치고는 잘했어.”


저녁이 늦어진 모두에게 살짝 부담스러운 메뉴였지만, 태수는 피자처럼 접어 한입에 먹었다.


“맛있다.”

“거 봐. 맛있지?”


랑이가 입을 오물거리며 호응했다.


“선생님 장가가도 되겠다.”

“부침개 하나로 장가가니?”

“일 년 내내 부침개만 먹는 거야!”


어디서 들은 것인지, 할아버지가 할 법한 칭찬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랑이의 모습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짭짤한 감자볶음은 갓 지은 밥반찬으로 딱이었다.


“이건 랑이가 썬 거야.”

“음···. 더 짭짤한 것 같은데?”


오늘의 요리사 효재는 가운데서 사람들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기 바빴다. 그러자 어머니가 감자볶음을 숟가락으로 떠서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박 솊.”


얼떨결에 음식을 받아먹은 셰프님.

스스로 먹기에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성공작인데···?”


감자가 딱 알맞게 익어 식감이 서걱거리지도 않고 너무 물컹하지도 않았다.


신기했다.

요리를 배워본 적 없어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만으로 그럴싸하게 만들어내다니.


어느덧 밤이 깊어가고 효재와 진주, 랑이는 트럭을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랑이는 많이 피곤했는지, 효재의 무릎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고롱고롱 코를 골았다.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좁은 길을 비추며 나아가는 동안 차 안은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효재와 진주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정말 긴 하루였다.”


이따금 트럭이 움푹 들어간 곳을 넘을 때마다 차체가 흔들렸다. 불편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리듬이었다.


“난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의 목표만 보고 달려왔어서 솔직히 공부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거든.”


효재가 만신창이가 된 열 손가락을 내려다봤다.


“오늘도 농사일에 보탬이 되지 못했으니··· 아. 내가 또 망쳤구나 싶었는데. 다들 이상하게 걱정하고 응원해주더라고.”

“오빠 당연하지! 비 오면 산이 얼마나 위험한데.”


운전대를 잡은 진주가 머쓱하게 웃었다.


“할아버지는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긴 했어. 나쁜 의미는 아냐.”

“괜찮아. 익숙한 평가야.”


효재가 하하하, 소리 내 웃었다.


“그래도 태수네 집 비닐하우스도 고치고 난생처음으로 요리까지 했으니 역시 아예 쓸모없진 않은 건가?”


어색한 농담을 던지자, 진주는 잠시 눈을 깜빡이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대답할까 말까, 조금 주저하는 듯 보였다.


“태수 오빠네 아버지는 농사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하루 종일 일하시던 분이었어.”


진주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폭염 주의보가 울린 날에도 무리하셨는지, 걱정되어 따라간 오빠가 밭에 쓰러진 아버지를 발견한 거야.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머니도 너무 일만 하시니까 태수 오빠도 마음이 복잡할 거야.”

“··· 그렇구나.”


효재의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것도 모르고 얼마 버니, 마니. 진짜 생각 없이 말했구나.


“젠장. 나 말실수한 것 같은데.”

“아니야. 비료 전달해달라고 한 건 난데. 오빠가 걱정할 필요는 없지. 근데 요리 아예 처음이었어?”

“응. 맨날 사 먹었거든.”


진주가 눈꼬리를 부드럽게 접으며 웃었다.


“대단한데!”

“··· 고마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트럭에서 내린 효재는 랑이를 엎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 온 후 구름이 갠 밤하늘은 반짝이는 별로 가득했다.


“와. 멋있다.”

“예쁘지? 한바탕 비가 오면 더 많이 보이더라.”


진주를 떠나보내고 칭얼거리는 랑이를 침대에 눕힌 후. 효재가 혼자 마당으로 다시 나와 벤치에 앉았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살아왔던 시간도 나름대로 중요한 게 아닐까.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혀끝에 맴도는 감자의 여운을 들이마셨다.


별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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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후원금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1 24.08.01 40 0 -
10 제비와 씨앗 (1) 24.08.09 15 2 10쪽
» 농사 아르바이트 (5) 24.08.08 27 2 10쪽
8 농사 아르바이트 (4) 24.08.07 24 2 10쪽
7 농사 아르바이트 (3) 24.08.06 33 3 12쪽
6 농사 아르바이트 (2) 24.08.05 38 3 12쪽
5 농사 아르바이트 (1) 24.08.02 42 4 9쪽
4 우당탕탕 이사 (2) 24.08.01 56 4 11쪽
3 우당탕탕 이사 (1) 24.07.31 84 5 9쪽
2 집에 막 들어오는 호랑이 24.07.30 126 8 12쪽
1 실패한 고시생의 귀촌길 24.07.29 140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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