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호랑이가 농장에 막 들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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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티헹
작품등록일 :
2024.07.29 17:23
최근연재일 :
2024.08.0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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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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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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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아르바이트 (4)

DUMMY

“대접할 게 없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입에 맞을지 몰라도 저녁 드시고 가세요.”


그때 밖에서 강한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심상치 않음을 파악한 태수가 덩굴을 내려놓았고, 비닐하우스 지붕은 흔들리며 끼익- 소리를 냈다.


“아- 또!!”


태수네 어머니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고쳐도 매번 그러네.”


돌풍을 뚫고 달려가는 어머니를 보며 효재가 태수에게 물었다.


“이 커다란 곳을 어머니 혼자 관리하셔?”

“그렇죠. 사람 부릴 돈도 없고. 4000평이니까 우리 가족이 간신히 관리할 정돕니다.”

“··· 비닐하우스는 연중무휴잖아?”

“네. 그게 왜?”


재혁이까지 동원되어 비닐을 붙잡는 모습을 보고 효재가 말이 없어졌다.


오늘 밤에 한파가 온다는데, 이대로 두면 작물들이 다 말라 죽을 게 분명했다.


“박태수. 나도 거들게.”

“어··· 예. 고맙지만 알바비는 못 드립니다.”

“나도 염치는 있어.”


수리 준비를 하던 태수가 효재에게 남는 장화를 건넸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아본 적이 언제던가. 좋은 옷 젖을라 비 오는 날에는 지하철만 탔었는데, 효재가 잠시 지붕 아래서 멈칫했다.

자진해서 빗속으로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다.


비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고 있었고, 바람은 여전히 거셌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효재가 거친 세상으로 발을 내디뎠다.


진흙이 장화에 들러붙어 걷기 힘들었지만, 비를 헤치며 앞으로 꿋꿋하게 나아갔다.


“여길 잡으면 돼?”

“오-. 선생님도 돕는 거야? 살았다!”


재혁은 흘러내리는 빗방울 때문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래, 얘라고 하는데 나라고 못 하겠나.

효재가 이를 악물고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지붕 비닐을 끌어 내렸다.


“흐읍!”


비닐은 바람에 날리며 손에서 자꾸 미끄러졌지만,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매달렸다.


빗물이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속옷까지 온통 젖는 게 느껴졌다.


“더 꽉 잡으세요! 놓치면 안 돼!”

“여기서 더 잡으라고?”

“형님은 그 몸을 하고 어딜 날아가는 겁니까!!”


땅바닥에서 발이 뜬 건 사실이 아니다.

아무튼 그렇다.


악착같이 붙들었으면 됐지, 뭐.


몇 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비닐이 단단히 고정되었다.


내부는 망가진 토마토 덩굴과 흙이 뒤섞여 엉망이었지만, 비닐하우스는 다행히 안정감을 되찾았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효재가 젖은 손을 털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끝났다···.”


어머니도 마침내 미소를 지으며 흠뻑 젖은 모자를 벗었다.


“효재씨 도와줘서 고마워요. 진주는 아직 안 왔지? 저녁 먹고 가세요.”

“아뇨. 괜찮습니다!”


벌써 시간은 저녁 8시.


도시처럼 배달을 시켜 먹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저녁을 얻어먹는 건 도무지 예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것쯤은 상관없다는 듯, 재혁을 불렀다.


“씻고 얼른 와. 저녁 준비하자.”

“아 엄마!!”

“쓰읍. 얼른.”


재혁이 툴툴거리면서도 엄마 뒤를 쫒아갔다.

뒷정리는 태수의 몫이었다.


“아까도 저 자리가 부러지지 않았어? 차라리 새로 짓는 게 낫지 않아?”

“아뇨. 고치면 더 쓸 수 있어요.”


효재가 옷을 걸레처럼 쥐어짜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많은 것들이 농가의 경제 상황을 짐작게 했다.


마당에 늘어선 낡은 농기구와 몇 번 수리를 거친 흔적이 역력한 비닐하우스. 태수가 항상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연장.


그뿐만이 아니었다. 


허리디스크를 얻으면서도 ‘부업으로’ 300평 감자밭을 운영하는 할아버지나, 그 정도는 작다는 듯 구는 진주.

그리고 태수네는 6000평짜리 농사를 지으면서도 넉넉해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농사를 지으면 어느 정도 남아?”


효재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365일 몸을 혹사하면서 쉬지도 않고 일하고, 온 가족까지 동원해야 하니까···. 아니 그··· 질문이 실례라는 건 알지만 너무 힘들게 일하는 것 같아서.”


태수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안 그래도 무뚝뚝한 표정이 한층 더 딱딱해져 위기감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는 설명하는 대신 대뜸 언성을 높였다.


“형님!”

“미안하다. 내가 생각해도 선 넘었어.”


태수가 한숨을 깊게 쉬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빛은 여전히 굳어 있었지만,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따라오세요.”


***


“어? 여기는 뭐야?”

“연습실. 녹음 스튜디오.”


밖에서 볼 때는 평범한 트레일러였지만,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잘 정돈되어 있었다.


태수가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줄을 튕겼다.

장비도 없이 튜닝하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기타 치면서 작곡하는 곳입니다. 제가 없을 땐 어머니가 비료 창고로 쓰기도 하고요. 악기에 냄새 배니까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도···.”


아니나 다를까 효재가 바닥에 떨어진 비료 한 무더기를 밟았다. 꼬리꼬리한 냄새가 났다.


“농가에 왜 이런 게 있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만들어주셨어요. 형님 악보 읽을 줄 알죠?”


태수가 악보 파일을 휙 던졌다.


“여기?”


한 손으로 받은 효재가 파일을 열었다.

가장 오래 머물렀던 페이지여서 그런지, 파일은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여기저기 표시된 메모들과 연습 때마다 생긴 자국이 많았다.


“예. 불러보세요.”


세션을 하는 것처럼 태수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효재 뿐이었다.


“노래를 부르라고? 지금?”


하지만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기타 선율이 치고 들어왔다.


굉장히 서정적인 멜로디였다.


“아, 가수가 있으니까 칠 맛이 나는데요.”


태수가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췄다.

생전 가야 춤도 안 출 것 같은 자식이 자연스럽게 노래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들은 김에 불러보세요.”

“못해! 나 노래방도 잘 안 가!”

“한글은 읽을 줄 아시잖아요.”


태수가 전주를 무한히 반복하며 재촉했다.


“대충 불러 보시라니까요.”

“너, 넓은 들판에··· 새벽이 오며어언. 으윽!”

“괜찮네요.”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는 본인조차 음정이 엉망인 걸 명확히 느꼈다.


효재가 괜스레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아니 너는 하루 종일 일하고서도 기타 연습까지 하고 싶냐!”

“당연합니다! 이 정도도 안 하면 오디션에 못 붙으니까!”


태수가 기타를 미친 듯이 내려쳤다.

줄이 저음의 웅웅거리는 진동을 내며 계속 흔들렸고 그의 손가락은 쉬지 않고 연주를 이어갔다.


“오디션?”


효재는 벽에 걸린 사진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사진 속에는 어린 태수가 밀짚모자를 쓰고 기타 치고 있었다.


[시골 극장]. 한때 유행했던 TV 프로그램명이 상단에 적혀 중학생 시절 활약하던 태수의 앳된 순간을 기록했다.


“기타 치는 농부라고 띄워주면 뭐 합니까! 그게 끝인데!”


화가 난 듯 음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마치 헛된 꿈을 불어넣은 외지인을 원망의 감정을 쏟아내는 듯했다.


“오디션에 가서! 주목받고! 잘되면 1등을 해서!”

“야. 너 가업을 이은 청년 농부라며.”

“이을 겁니다!”


꿈을 한때 선전하고 허상으로 남겨버린 것은 남은 사람에게 고통만 안겨줄 뿐이었다.

징징징- 기타가 큰 소리로 울었다.


“상금으로 우리 농가를 새로 짓고, 땅도 넓히고, 사람을 고용해서 엄마 편하게 쉴 수 있게 운영하다가···.”


태수의 손끝이 빨개졌다.


“무대에서 은퇴하면 제가 이어받아서 스마트팜도 크게 할 겁니다!”


효재가 악보를 손에 꽉 쥐며 중얼거렸다.


“야이씨···.”

“예? 뭐라고요?”


태수가 잠시 연주를 머뭇거렸지만, 기타 통 안에서의 울림은 멈추지 않았다.


“넌 뭐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냐?!”

“왜 저한테 성질입니까!!”

“음악도 하고 농사도 하고! 꿈이 두 개라니 욕심도 많다, 새끼야!”


악기와 대화가 맞물려 음악이 말과 싸우듯 요동쳤다. 태수는 기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욕심 많은 게 뭐가 나쁩니까! 우리 집은 제가 일으킬 겁니다!”


그가 온 힘을 다해 기타를 내려쳤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고요!”


틱- 가장 얇은 기타 줄이 끊어졌다.

뱀의 꼬리처럼 허공을 휘젓는 줄을 보며 효재와 태수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끊어진 줄이 기타의 몸통에 닿자, 나머지 줄들의 장력이 조금 풀리며 공명판의 소리가 더 깨끗해졌다.


일반적인 연주보다 더 풍부하고 울림이 컸다.


연습실을 가득 채운 그 독특한 소리에 효재와 태수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줄 비용은 따로 청구하겠습니다.”

“네가 쳤잖아!”

“형님이 노래를 불렀으면 됐잖아요.”

“어이없는 자식!”


***


“안녕하세요. 효재 오빠 데리러 왔어요.”

“으윽. 마귀할멈이다.”


인상을 찌푸리던 재혁은 진주와 함께 트럭에서 내린 랑이를 발견하고 뻣뻣하게 굳었다.


“재혁! 안녕!”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랑이를 무시하고 문 뒤로 사라지는 척하더니 결국 혀를 내밀며 도망갔다.


“메-롱.”


랑이도 지지 않고 눈을 아래로 뒤집었다.


“에베베.”

“어라? 태수 오빠?”

“여어.”


태수가 입에서 피를 흘리는 효재를 질질 끌고 왔다.


“노래 상대를 좀 부탁했어.”

“오빠 크게 부른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내 목···.”


효재가 침도 못 삼키고 부들부들 떨었다.


줄값 쳐준다 해서 대신 노래를 불렀는데.

고음 부분을 반복하는 바람에 목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진주 안녕. 랑이도 왔니?”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랑이가 태수네 어머니를 향해 우렁차게 인사했다.


“선생님 어디 아파?”


“어휴. 우리 일 도와주느라 쌤이 고생 많았지.”


말 못하는 효재를 대신해 어머니가 답했다.


그게 이유는 아니었으나 당신 아드님 덕분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으니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그래? 그럼 선물 가져왔는데 보여줄게! 할아버지가 주래!”


랑이가 갑자기 눈을 빛내며 트럭으로 콩콩 뛰어갔다.


무엇일까 기대했는데, 아이가 가져온 건 김치통과 여분의 재료들이 들어있는 상자였다.


“저녁. 선생님이 만들어볼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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