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 천재가 가문 역사로 다 줘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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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단골
작품등록일 :
2024.08.05 23:30
최근연재일 :
2024.08.1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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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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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는 멸문

DUMMY

“싫어요.”


단칼에 거절하자 젊은 남자와 노인이 당황한 낯에 물음표를 띄웠다.


이런 반응은 처음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마와루 학당이 뭔데.


마와루 학당이 뭘 가르치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학당에 다니면 농사를 짓지도 마을을 지키지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지키라 당부하신 사령패를 집에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너, 사술사가 뭔지 아느냐.”


“당연하죠. 제가 사술사인데요.”


“그런데 마와루 학당을 몰라? 찹쌀떡은 아는데 팥을 모른다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네.”


젊은 남자는 도포를 털고 노인한테 가더니 저놈이 천하제일의 사술사인데 마와루 학당을 모르는 멍청이라는 둥, 마와루 학당의 명성이 이 정도냐는 둥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불렀다.


“이리 와 보거라.”


어르신이 부르는데 가만히 밭일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지라 터덜터덜 노인 앞에 섰다.


마와루 학당이 뭐든 갈 이유는 없어 보였다.


신리 가문은 대단한 가문이 분명하지만,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고 나는 농사가 천성에 맞았으니까.


“마와루 학당은 사술사들의 배움터라 생각하면 쉽다. 요즘은 학당보다 싸움판이라고 하는 게 옳겠지만.”


“사술사의 서당이란 말씀이시죠.”


보아하니 마와루 학당의 교장과 교사가 나를 찾아 먼 길을 온 것 같았다.


마와루 학당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그 고생이 아까워 고개를 주억거리고 고민하는 척이라도 했다.


마와루 학당.


어린 시절 아버지께 어렴풋이 들은 것 같기도.


“아무튼 안 갈래요. 마을에는 사술사가 저뿐이라 악귀가 오면 손쓸 방법이 없거든요.”


“마을에는 사술사를 보내 주겠다.”


“그리고 저는 농사꾼이에요.”


“녀석아, 네가 농사지은 무 먹어 봤냐? 맛대가리 없어.”


분명 노인과 대화하고 있었는데 젊은 남자가 끼어들었다. 괜한 시비는 깔끔히 무시했다.


“... 신리 가문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


교장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깃들었다. 저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옛 명문세가의 후손이자 사령패 하나로 악귀를 퇴마하는 인재가 탐나겠지.


하지만 신리는 정계에서 발을 뺀 지 오래.

명문세가는 신리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곡괭이를 챙기고 집에 돌아갈 채비를 했다. 밭이라면 다음날 일구면 되었다.


“얘야.”


“어서 돌아가세요. 여긴 해가 빨리 져서.”


“여기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왜 너를 찾았는지.”


***


모두가 잠든 새벽, 우타요 선생과 교장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걸터앉아 산골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과 우타요 님의 말씀은, 마와루 학당과 세상이 위험에 처했다. 그것이 끝인가요.’


부패한 칠대세가 탓에 마와루 학당은 물론이요 백성들의 삶까지 위태롭다고 하였으나 간곡한 부탁에도 신리의 아이는 끝까지 고개를 저었다.


‘그들과 싸우면 저도 사령패를 걸어야 하잖아요. 아버지께선 사령패를 지키라 하셨어요.’


소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교장과 우타요 선생은 더 이상 강요할 처지가 아니었다.


아이에겐 교장과 우타요 모두 불청객이었지만, 고맙게도 초가집에서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집이 좁으니 전 헛간에서 잘게요.’


무심히 말하는 뒷모습에서 선한 심성이 드러났다.


교장은 꾸벅꾸벅 조는 우타요의 등을 세게 두드렸다.


“나는 가야겠다. 어쩔 수 없구나.”


“벌써 가시게요.”


“넌 남아 있어야지. 여기서 가까운 시내에 볼일이 있지 않느냐.”


“예.”


교장은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신리의 마지막 후손이 시골 마을 악귀 사냥꾼이 아닌 마와루 학당의 학생으로 뜻을 함께한다면···.


칠대세가의 악행쯤이야 막을 수 있을 텐데.


신리 가문의 사령패가 모두 안전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교장은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칠대세가의 자제들에게 사령패를 빼앗기지 않으리라.


“잘하고 오너라.”


교장은 다음 날 과업이 예정된 우타요의 안녕을 빌었다.


***


“다 샀냐?”


“예, 곡괭이만 사면 되어서요.”


읍내에 내려와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산골에만 칩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장통 모든 것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교장은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떠났고, 우타요 선생은 아침이 밝자마자 떠날 준비를 마쳤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그는 시내에 일이 있어 잠시 들르고 바로 돌아간다며 안심시켰다.


참 다행인 일이다.


“눈빛을 보아하니 시내에 나온 지는 꽤 오랜만인 것 같은데, 다과라도 사주리?”


“괜찮아요.”


나는 우타요 선생을 힐끔 바라보았다.


짓궂은 것이 첫인상과 다를 바 없었지만 뭔가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왜 그리 쳐다봐. 너 때문에 맘 상한 건 아니니 걱정 말아라.”


“참 내. 누가 저 때문에 마음 상했대요?”


괜히 걱정했나 보다.


나는 한 손에는 곡괭이를 쥐고 다른 팔에는 작은 보따리 함을 안았다.


“이건 뭐냐.”


“아, 촌장님께서 읍내에 나간 김에 사야가 영주님께 전달해드리라고 하셨어요. 이번 가뭄 때 줄여주신 소작료 덕분에 배곯지 않았거든요.”


다시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고도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결국 슬쩍 우타요 선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소란스러운 사람이 조용해지면 계속 신경 쓰이는 법이다.


학생이 마와루 학당 입학을 거절했다고 저리 삐질 일인가.


“신리 말고도 명문세가는 많으니···.”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우타요 님?”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픈 듯 창백해지는 표정엔 근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건 내게 주거라.”


“안 돼요.”


“사야가 댁에 들르려던 참이다.”


***


집에 돌아가 해치울 밭일이 남았으니 우타요 선생이 스스로 선물 보따리를 가져다주겠다고 한 건 감사한 일이었다.


새 곡괭이를 들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거리를 지나갈 때,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훔쳐 가지는 않겠지?’


눈 흰자에 그려진 문양을 보아 우타요 선생도 고위 귀족이었다.

평민과 영주는 눈에 문양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귀족인 우타요 선생이 설마 훔쳐 갈까 싶더라도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직감을 무시하고 그대로 갈 길을 가기에는 걸리는 점이 있었다.


촌장님이 간곡히 부탁했는데 사야가 영주가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전한다면.


그것만큼 신뢰를 망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사야가 가문은 충서를 몸소 지키는 성인군자였다.


높으신 분들이 농민들 피와 살을 갉아 먹는 추태가 일상인 말세에 쉽지 않은 일이다.


아버지께선 사야가 가문이 신리 가문의 은인이라며, 사야가 가문이 없었다면 신리는 산골짜기에서 살지도 못했을 것이라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런 가문께 마을이 바치는 귀한 선물을 재수 없는 선생이 먹어 치워선 안 되는 법.


나는 뒤돌아 사야가 가옥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총각! 그쪽으로 가지 마쇼!”


달리던 중에 몇몇 사람들이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전속력으로 달렸는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새 시장터를 벗어나 사야가 가옥의 기와가 어렴풋이 보이는 곳까지 달리고 있었다.


큰 벚나무 뒤에 분명히 사야가 가문의 문장이 그려진 기와가 있었··· 는데.


‘지붕이 안 보여.’


거리에는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읍내까지 밝았던 하늘은 어둠이 드리웠다.


주변 밭은 처음 모습을 알아볼 수도 없이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마치 가뭄이라도 쓸고 간 듯한 풍경.


잿빛으로 변한 흙과 불탄 기와집이 심상치 않았다.


가뭄이라고 하기에는 의심쩍다.


산불이 옮겨갔다고 하더라도 영지가 이 정도까지 황폐해지진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귀신?


나는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벚나무에 두른 각양각색의 천이 거센 바람에 펄럭였다.


자세히 보면 사야가 댁 기와집은 불타고 있지 않았다.


검은 잿가루와 기운이 폭삭 내려앉은 가옥 사이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어제 물리친 악귀의 기운처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신리 타메오. 사령패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아버지는 어린 내게 물었다. 정답은 항상 똑같았다.


사령패를 다른 가문에게 빼앗기거나 파괴된 가문은 떼로 꼬이는 악귀 속에서 멸문당한다.


‘그렇다면 신리 타메오. 귀족 가문이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가문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무시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가문의 사령패는 서서히 썩는다.


썩은 사령패는 세상에 더 많은 악귀를 불러온다.


‘사야가 가문은 왜.’


저들이 무얼 잘못했지?


썩은 사령패를 가진 악한 가문의 사령패는 빨리 파괴되어야 하기에 사술사의 공격 대상이 된다.


하지만 사야가는 악행을 일삼지 않았다.


신리 가문이 마을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운 가문.


검소를 몸에 익히고 농민을 위해 헌신했던 가문.


나는 지옥의 구덩이로 변해가는 사야가 가옥 부지에 서 있었다.


악귀의 소리가 들린다.


수많은 짐승과 요괴의 곡소리가 뒤얽힌 저승의 소리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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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작가가 그린 신리 타메오 24.08.11 11 0 -
10 벤카와 가문의 계략 24.08.13 4 0 11쪽
9 소가주 자리를 두고서 24.08.11 9 0 12쪽
8 퇴마 실습을 위한 준비 24.08.10 9 0 10쪽
7 귀한 분 24.08.09 13 0 11쪽
6 사령패의 군담 속 숨겨진 뜻 24.08.08 27 0 9쪽
5 강한 자를 위한 용기 24.08.07 22 0 9쪽
4 멸문을 막는 입학 24.08.06 22 0 10쪽
3 사령신의 구원 24.08.05 22 0 9쪽
» 이유 없는 멸문 24.08.05 25 0 9쪽
1 명문가의 마지막 후손 24.08.05 4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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