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산삼을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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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몰아
작품등록일 :
2024.08.0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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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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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없다.

DUMMY

숙지황은 지황을 찌고 말려서 만든 가공품이다.

진짜 약성이 있는 숙지황은 아홉번 찌고 아홉번 말린 구증구포(九蒸九曝) 숙지황이지만, 자고로 진짜는 귀한 법.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숙지황 중에는 진짜 구증구포가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어차피 건조기 쓰면서 삼증삼포 정도만 해도 겉으로 봐서는 티가 안 나기도 하고, 그저 구전되어오는 말들로만 따졌을 때 구증구포가 좋다는 것이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저렇게 구전되어 온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장님! 잘 지내셨죠?”

“여어- 심대리, 퇴사했다며?”

“아니에요. 퇴사는 아니고 육아휴직이에요.”

“육아휴직 좋-지. 그래서? 이제 뭐 니꺼 차린다며?”

“에이. 제가 무슨요.”

“하양 건강원 인수했다던데? 무슨 다이어트 약 만든다더만.”


진짜 업계 마당발 보민 사장님답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계신 걸까.


“···. 저희 사장님도 아세요?”

“모르겠지. 금마 그거 지 혼자 잘난 놈이라서 우리랑 연 끊은 지 오래됐잖아.”


하긴, 우리 회사 사장님이 안다 해도 뭐 어쩌라고?

내가 다니던 회사의 대표는 주변 약재상 사장님들을 하도 무시하고 가르치려 들어서 친하게 지내는 업계 사장님이 단 한 분도 남아 있지 않다.

대표 딸이 결혼할 때 축의금 보내신 분조차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나마 본부장님이 중간에서 열심히 하니까 우리 회사에 약재를 팔아주는 거지 아니면 택도 없다.


“그래서? 내한테는 뭐가 필요해서 왔는데?”

“숙지황이요. 구증구포로요.”

“니 도대체 얼마짜리를 만들어서 팔라고 그라노? 구증구포짜리 들어가면 그거 사람들이 비싸서 못 사 먹는다.”

“적게 남겨도 좋은 약으로 만들어야죠.”

“크-. 좋지. 니도 참 대단하다. 금마 밑에서 약 같지도 않은 거 만드는 것만 보고 컸을 건데 그런 생각도 다 하고.”

“아시잖아요. 저희 사장님 때문에 저희가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는지요. 그거 싫어서라도 그렇게는 못 만들어요.”

“맞지. 아니 진짜 무슨 약장사 한다는 놈이 군신좌사는 싸그리 무시하고 고마 무슨 녹용에 환장했다나? 혈을 보하는 약을 썼으면 당연히 보해진 혈을 순환시키는 약을 같이 써야지 이거고 저거고 죄다 녹용 때려 넣어서 만들고 있더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 회사는 약을 파는 곳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 회사 대표의 마인드가 꼭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철저하게 마케팅적인 관점에서 보면 ‘녹용’이라는 키워드가 먹히기도 하니까.

다만, 약재상을 하시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약’을 판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 대표는 돈 몇 푼 더 벌자고 그 자부심을 내다 버린 케이스고.


“사장님, 제가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요. 얼마 전에 만든 제품에는 녹용이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왜?”

“원래 고형분 0.1%짜리 녹용 추출액이 들어가야 되는데 추출액보다 녹용 몇 조각 넣는 게 더 싸서 그렇게 하기로 했거든요. 근데, 작업자가 까먹고 안 넣었어요.”

“에이. 성남이 그런 거는 잘 챙기잖아.”

“사장님, 물 1톤에 녹용 210g 들어가요. 성남이 행님 성격 아시잖아요. 좀 찾아보다가 안 보여서 자잘한 거는 그냥 안 넣고 달였대요.”

“심대리야. 근데 그냥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그 정도면 녹용 들어갔다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니가?”

“군대 소고깃국도 소고깃국이잖아요.”


어쨌든 이제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다.


“에혀. 참. 느그 대표 금마 그거도 어릴 때는 안 그랬는데. 쨌든 머. 그래서? 구증구포?”

“아! 예. 많이는 아니고 조금도 괜찮아요.”

“어차피 많이도 없다. 일로 와봐라.”


그렇게 보민 사장님을 따라간 곳은 창고 뒤쪽에 있는 사장님 집이었다.


“저 밥 먹고 왔어요.”

“머라노. 밥 차려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아나. 요 정도면 반근은 될기다.”


그렇게 사장님은 마당 한 구석 햇볕 좋은 곳에서 마르고 있던 숙지황을 한 웅큼 쥐어서 옆에 있던 검은 비닐봉지에 대충 담아서 내게 건넸다.


“이거 사장님 드시려고 만드신 거 아니에요?”

“맞다. 그리고 시장에서 구증구포 찾을 생각하지 마라. 없으니까.”

“그럼 나중에도 사장님께 부탁드릴게요!.”

“함부레이. 니 이거 막걸리에 넣고 찌는데 드는 돈만 해도 얼만 줄 아나? 술값에 가스값에 내 품삯까지 하모 얼마 줄라고? 고마 니가 직접 말리서 써라.”

“지황에서 숙지황 되면 감량은 얼마나 돼요?”

“10kg 찌면 2kg 나온다 생각해라.”

“···. 감량이 80%라고요?”

“그거보다 마이 나오면 덜 마른 거라 생각하고.”


진짜 구증구포 숙지황은 부르는 게 값이라더니.


“아니 근데 꼭 이렇게 자연 건조 해야되요? 건조기에 넣고 돌려도 되잖아요. 마르기도 훨씬 잘 마르고 위생적으로도 깔끔할 거잖아요.”

“자. 니 눈에는 이게 니가 지금까지 봐온 숙지황이랑 같나?”

“좀 덜 검어 보이긴 해요.”

“그렇제? 근데 니 생각해봐라. 니가 아는 숙지황은 겉부터 속까지 시꺼멓잖아. 그게 좋은 거라 광고하기도 하고.”

“네. 아무래도 생지황을 제대로 건조해야 약성이 바뀌니까요.”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근데 그거 그냥 숯덩어리라 생각해라. 무슨 과학 실험하는 장비 가지고 검사하면 성분 같은 거야 나오겠지. 근데 나는 절대 안 먹지.”


그러고 보니 진짜 숙지황을 보는 건 처음이긴 하다.

늘 인터넷에서만 봐왔기에 상세페이지를 제작하는 디자이너에게 조금 더 숯같이 보이게끔 해달라 요청한 적도 있고.


“숯 같으면, 안 돼요?”

“안되지! 아홉번 쪄서 아홉번 말린 거지 아홉번 태운 게 아니잖아. 니 왜 고춧가루도 보면 건조기에서 한 삼일 돌린 고추는 시꺼머죽죽해지는거 알제? 그거랑 비슷한기다. 자고로 자연물은 태양 빛에 말려야 양기도 머금게 되고 그런 거라.”


일리가 있다.

생각하면 인삼을 구증구포한 흑삼도 완전히 숯 같은 비주얼은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지황이랑 구할 때 또 올게요.”

“그래. 열심히 하고. 또 필요한 거 있으면 편하게 말하고. 이번까지만 서비스니까 알고 있고.”

“예!”


그렇게 구증구포 숙지황까지 구해서 재료를 한곳에 모으니-.


[숙지황 / 특 / 시세 : 싯가]

[최상품입니다.]

[사용시 기존 제품 대비 효과가 300% 상승합니다.]


역시 보민 사장님.

무려 최상품이란다.

덕분에 효과가 3배나 좋아졌고.


‘생각보다 양이 많겠는데.’


1포에 80mL니까 30일 치를 만든다 해도 2.4L밖에 안 된다.

지금 하양 건강원에 있는 약탕기 제일 작은 게 25L짜리고 제일 큰 건 1톤 짜리다.

고작 2.4L를 끓이자고 25L짜리를 사용해봤자 약재가 물에 담기지도 않거니와 그렇다고 가정용 약탕기에 쓰자니 압력을 맞추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약재가 아까울 것 같았다.

이럴 때는 고객님에 직접 물어보는 게 수요 조사의 첫 번째이므로 와이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여보. 여보가 준 약, 진짜 효과 좋대? 어디 탈 난 사람은 없고?”

“에이. 탈 났으면 진작에 문 닫았지.”

“그래서? 누구누구 줄 건데?”

“일단 진서 엄마랑 하린이 엄마 주고 나도 먹고.”


아무래도 25L짜리를 사용하는 게 맞지 싶은데, 그렇게 하면 30포짜리 10박스가 나온다.

한 명한테 3박스씩 주는 것도 괜찮긴 하지만-.


‘아깝단 말이지.’


지은이가 샘플로 구매해온 한약이 30포에 100만원이 넘어간다.

물론 나 또한 사장님들께 거저 얻은 원물로 만드는 시제품이긴 하지만 지은이가 지어온 한약 원물을 생각하면 3배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즉 최소 100만원어치 이상의 가치는 있다는 말이다.


“알겠어. 일정 맞춰볼게.”

“근데 진짜 괜찮을까? 어디 막 탈 나고 하는 거 아냐?”

“괜찮아. 오빠만 믿어.”

“오케이.”


전화를 끊고 바로 다이어트 한약 제조에 들어갔다.

먼저 정제수라 쓰고 수돗물이라 읽는 물 25L를 넣고 각각의 원료를 상태창이 추천해준 비율에 따라 칭량해서 물에 담그고 바로 불을 올리자-.


[약성이 감소합니다.]

[3시간 후 가열을 추천합니다.]


약재는 물에 넣어두면 상한다.

다만, 나 또한 약을 달이기 전에 물에 충분히 불려두면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긴 하다.


‘바로 끓이면 왜 안 돼?’

[약재가 가진 성분을 제대로 우려내기 위해서는 약재 안까지 물이 들어가야 합니다. 불리지 않고 뜨거운 물에 약재를 넣으면 겉이 빠르게 익어서 속에 있는 성분이 제대로 우러나질 못합니다.]


상태창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괜히 입을 대봤지만, 결과적으로 3시간을 기다린 후 불을 올렸다.

장비 상태가 어찌나 좋은지 타이머를 설정하는 기판도 사소한 오작동도 없이 잘 눌러졌다


‘100℃로 10시간 정도 우리면 되니까.’


그래서 아주 편하게 목표 온도도 끓이는 시간을 설정했는데-.


[약성이 감소합니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물이 100℃에 도달한 후부터 10시간 동안 우려내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니 무슨 시간 차이가 얼마나 난다고 상태창은 저렇게 까다롭게 구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꾹 눌러 참고 물이 100℃까지 도달하는 것을 확인하고 타이머를 작동시켰다.


‘교반은 얼마나 해야 돼?’

[80℃ 10시간을 추천합니다.]


건초들은 지금 죄다 탕약기에 넣어서 끓이고 있지만, 가르시니아 가루를 같이 넣고 끓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래도 화학 첨가물이다 보니 끓였을 때 어떻게 될지 예상이 안 되는 것도 있고 이 방법이 조금은 번거로워도 순리대로 가는 것이다.

내가 상태창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수준에서는 확실히 순리대로 약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혹시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나한테 따로 알림도 해주나?’

[···.]


왠지 상태창과 소통 비슷한걸 하다 보니 스마트 공장처럼 상태창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정도 컨디션이면 10시간 동안 별문제 없이 약탕기의 온도를 100℃로 유지할 것 같긴 하지만, 처음 써보는 기계이기도 하고 무엇이든 너무 많이 믿으면 탈이 난다.

그래서 약을 끓이는 도중에 문제가 생기는 걸 알려주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거까지는 상태창이 서비스해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10시간 동안 뭐하지.’


나 혼자서 처음하는 작업이다 보니 시간 계산 없이 시작한 탓에 대충 10시간이 끝나는 시간이 새벽 3시쯤 됐다.

그리고 10시간이 끝나면 바로 교반 탱크로 이동시켜서 8시간 동안 교반을 해줘야 한다.

물론 느낌상 기분상 추출 탱크에서 몇시간 더 놔둔다고 크게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긴 하지만, 혼자서 하는 첫 작품이니만큼 제대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났기에 와이프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응. 여보. 나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점심 때쯤? 들어갈 것 같아.”

“왜?”

“이거 10시간 동안 끓이고 바로 교반 탱크로 옮겨서 교반해야 하거든. 교반도 8시간이야.”

“헐. 그럼? 그동안 다인이는 나 혼자 보고?”

“부탁할게.”

“알겠어. 대신 제대로 만들어야 해?”

“먹고 나서 놀라지나 마. 이게 진짜 찐이니까.”


와이프의 허락도 받았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콘센트가 가까운 벽면에 라꾸라꾸를 펼치고 휴대폰 충전선을 꼽은 후 그 위에 누웠다.

어차피 10시간 동안 보일러 온도가 100℃로 유지되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물론 새벽 3시에는 추출 탱크와 교반 탱크 사이에 있는 밸브를 열어서 액상을 옮겨줘야 하지만, 그 또한 기계를 작동시켜 주기만 하면 된다.

중간중간 신경을 써야 해서 그렇지 오래간만에 합법적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아으-. 좋네.”


그나저나 누워서 좋기는 한데, 막상 누워있자니 할 게 없었다.

그렇다고 인스타나 유투브 숏츠를 보자 하니 분명히 다 보고 나서 시간을 아무렇게나 허비했다는 생각 때문에 짜증 날 게 뻔해서 설치하지는 않았다.

대신 쿠팡 와우회원이면 공짜로 볼 수 있는 쿠팡 플레이에 들어가서 영화 목록을 살폈다.

내가 보고 싶었던 요즘 영화들은 모두 다 별도 구매라서 그냥 두고, 예전에 봤던 것 중에서 재미있었던 작품을 다시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옛날 영화 몇 개를 보며 비몽사몽 하다 보니 교반까지 마무리가 되었다.


“오빠!”

“왔어? 애들은?”

“엄마한테. 다 만든 거야?”

“이제 막. 마셔봐. 아직 따뜻해.”


그렇게 딱 다이어트 한약이 완성될 시간에 맞춰서 와이프가 건강원에 도착해서 갓 나온 한약을 먹였는데-.


"아야!"


와이프는 내가 만든 한약 한 포를 다 마시자 마자 순식간에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화장실로 뛰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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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나쁜 짓. +3 24.09.18 225 9 13쪽
31 봄. +2 24.09.17 279 10 12쪽
30 기레기. +3 24.09.16 311 12 13쪽
29 새로운 시작. +1 24.09.15 338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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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전문가 위에 전문가. 24.09.13 409 15 13쪽
26 선수는 선수를 알아 본다. +1 24.09.12 442 15 13쪽
25 다다익선. +1 24.09.11 468 14 13쪽
24 부자 +1 24.09.10 513 17 13쪽
23 이게 맞나? +1 24.09.09 523 18 12쪽
22 전화위복. +2 24.09.08 545 20 13쪽
21 말이 씨가 된다. +1 24.09.07 536 22 13쪽
20 내 사랑. +1 24.09.06 531 20 13쪽
19 불시 점검 +3 24.09.05 525 20 13쪽
18 할 수 있다. +1 24.09.04 533 18 13쪽
17 이심전심. 24.09.03 578 19 13쪽
16 소매 넣기. +2 24.09.02 661 17 13쪽
15 좋은 인연. +1 24.09.01 688 20 13쪽
14 싸고 좋은 물건 24.08.31 752 23 12쪽
13 나 삐졌어. 24.08.30 776 22 13쪽
12 카운트 다운 24.08.29 802 24 13쪽
11 은호 미워. 24.08.28 846 23 12쪽
10 구지황 +1 24.08.27 872 20 13쪽
9 남남으로 만나서 +1 24.08.26 918 24 13쪽
8 성투 +1 24.08.25 949 28 13쪽
7 다이어트 약 +3 24.08.24 991 26 13쪽
» 그런 거 없다. +3 24.08.23 1,046 26 13쪽
5 난 괜찮아. +3 24.08.22 1,096 25 13쪽
4 땡 잡았다. +3 24.08.21 1,175 2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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