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산삼을 주웠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랑몰아
작품등록일 :
2024.08.06 22:35
최근연재일 :
2024.09.18 22:2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22,915
추천수 :
647
글자수 :
183,953

작성
24.08.31 22:20
조회
740
추천
23
글자
12쪽

싸고 좋은 물건

DUMMY

“부장님, 퇴근 시간에 죄송해요.”

“아냐. 아냐.”

“카톡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진짜 안 돼요?”

“심대리, 알만한 사람이 그래. 옵셋으로 이런 색감을 어떻게 내라고. 뭐 비슷하게라도 괜찮으면 진행하고. 근데 내 생각에는 말이야. 감리 와서 마음에 안 드는 표정 또 지을걸?”


기본적으로 나는 디자인 전공도 아니고 색감이 뛰어나지도 않다.

다만, 회사 디자이너 두 명이 동시에 퇴사하는 바람에 디자인팀 업무도 한동안 진행했었다.

그래봤자 발주 넣은 후에 샘플이 나오면 기존 인쇄물과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인쇄 감리 보러 가는 정도였지만.


“차이가 많이 날까요?”

“아니면 코딩 방식을 좀 다르게 해서 질감을 살리는 방법도 있긴 한데, 단가 오르면 또 싫어할 거잖아.”


단가 오르는 건 안 되지.


“방법 없을까요?”

“기존 단가로는 방법 없지.”

“샘플은 받아볼 수 있고요?”

“무슨 천개 가지고 샘플 제작이야. 초도 발주 만개는 돼야지. 어쨌든 동판비부터 선지급해주면 내가 어떻게든 해보긴 할게.”


인쇄 공장에 한 번이라도 가보면 우리가 집이나 회사에서 클릭 한 번에 되는 인쇄가 얼마나 최첨단인 줄 알 수 있다.

집에서는 여러 색 뭔가를 출력하려면 컬러프린터를 사서 컬러 토너를 넣으 후 인쇄하면 끝이지만, 인쇄 공장에서는 기본적으로 동판이라는 걸 맞춰야 한다.

이것도 들어가는 색상의 가지 수에 따라 동판의 숫자도 늘어난다.

보통 CMYK 네 가지 색 모두를 쓰면 4도고, 여기에 별색이라 해서 CMYK 배색으로 구현할 수 없는 색을 쓰려하면 동판이 또 추가된다.

즉, 동판만 해도 돈백은 그냥 깨진다.


“저. 그럼 조금만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으이구. 연락처 하나 줄 테니까. 거기 연락해봐. 아는 후밴데. 잘해 줄 거야.”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그래도 영 미운털만 박힌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아성산업 김정규 사장님이시죠? 와우프레스 김부장님께 소개받고 연락드렸어요.”

“예. 안녕하세요.”

“저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카톡으로 시안 하나 보내드릴게요. 작업 가능하신지 봐주실 수 있으실까요?”

“예. 보내주세요.”

“잠시만요. 방금 보냈습니다.”

“아.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네요.”

“네. 김부장님께서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하셔서요.”

“그림 가지고 방문해주세요. 자세한 건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크게 힘 있는 목소리가 아니라서 하실 수 있다는 말인지 확신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못한다는 말은 안 했기에 살짝 기대를 걸며 전화를 끊었다.


“뭐래? 된대?”

“일단 내일 그림 들고 와보라네.”

“잘 되면 좋겠다.”

“안되면 그냥 공용 박스에다가 라벨 붙일 때 아예 크게 만들어서 상호랑 같이 박아서 붙이자. 감열지 제일 큰 사이즈가 몇이지?”

“내 기억에 가로 폭 800mm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아. 새로 길이야 원하는 만큼 가능하고.”

“감열지도 사야겠네.”

“그러게. 근데 감열지도 우리 사이즈에 맞추려면 시간 좀 걸릴 거야. 이건 내가 내일 전화 한 번 해볼게. 공용 감열지 사이즈 어떤 거 있는지.”

“후-. 왜 이렇게 쉽게 쉽게 되는 게 없는 거 같냐.”

“사업이 쉬우면 세상 사람 모두가 사장하지 월급쟁이 하겠어?”


맞는 말이다.

월급쟁이 생활을 할 때는 사장이 그렇게 부럽더니, 벌써부터 월급쟁이 시절이 살짝 그리워지려 하고 있었다.


“아빠! 밥 안먹어요오? 밥 안 먹으면 키도 안 크고. 또. 세균이 때문에 병원 가야 해요.”


그러고 보니 갑자기 닥친 일 때문에 우리 둘 다 저녁 먹는 것도 잊어먹고 있었다.

삶으려고 냄비에 넣어둔 냉면은 이미 물에 퉁퉁 불어 있었다.


“···. 닭발?”

“김경옥으로?”

“콜-.”


시간이 이렇게 되다 보니 이제 와서 뭘 만들어 먹는 것도 귀찮고 해서 배달을 시켰다.

오늘 하루도 고생이 많았는데, 맛있는 음식에 막걸리라도 한잔 하고 싶기도 하고.


“시켰어.”

“어후. 그럼 난 좀 씻고 올게.”


어차피 배달 음식이 올 때까지 시간이 좀 비니까 그사이에 씻고 나와서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자 샤워실로 들어가는데-.

와이프의 얼굴에 걸려있는 묘한 미소가 슬쩍 마음에 걸렸다.


***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


미리 받아 둔 주소로 아침 일찍 출발해서 도착하니,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공장이었다.

정확히는 2층짜리 주택을 개조해서 1층에서는 기계를 돌리고 2층은 사무실로 쓰는 듯했다.

따로 직원도 없어 보이고.


“어후. 엄청 잘 해놓으셨네요. 이렇게 깔끔한 인쇄소는 처음이에요.”

“깔끔한 걸 좋아해서요.”

“대단하셔요. 저는 식품 회사 다녔는데 거기도 이렇게 깨끗하게 관리는 못 했어요. 하하. 근데 박스 제작하려면 원단이 있어야 될 텐데. 원단실은 따로 있는 건가요?”

“여기서는 제본 작업만 해요. 박스 작업은 저기 옆에서 하고요.”


사장님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조립식으로 만든 창고건물이 보였다.

건물만 보자면 이곳과는 절대로 거래하지 않는 게 맞다.


“그러시구나. 아. 여기 이번에 저희가 외박스에 인쇄하려는 그림이에요.”

“아이가 몇 살이세요?”

“다섯살이요. 다섯살치고는 잘 그렸죠?”

“예. 좋네요. 그림이.”


하지만 내 딸의 그림을 칭찬하는 걸 보니 좋은 사람일지도.


“근데 기존의 옵셋방식으로 인쇄하시는 게 아니신 건가요?”

“예. 제가 원래 미술관 전속 인쇄소에서 오랫동안 일했거든요. 일전에 한중옥 작가님 팜플렛 제작할 때 크레파스 질감 그대로 살려서 제작했던 적도 있어요.”

“오우. 미술관 전속이면 엄청 힘드셨겠어요.”

“재미있었어요. 인쇄 기술이 새롭게 개발되면 가장 먼저 도입되는 곳이었으니까요.”


사실 인쇄업에 대해서는 주워들은 상식들만 있을 뿐인지 잘 모른다.

그런데 아직도 인쇄 기술이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모양이다.


“근데 이게 팜플렛이랑 박스는 다르지 않나요? 기본적으로 팜플렛은 종이 원단 선택 폭도 굉장히 넓지만 박스는 그렇지 않잖아요.”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적당한 원단으로 인쇄해서 싸바리로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싸바리라.

두꺼운 하드보드지를 속지로 두고 그 위에 원하는 원단으로 싸서 붙이면 안 될 건 없을 것도 같다.

다만-.


“김부장님께 말씀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싸바리까지 하면 단가가 너무 높아지지 않을까요?”

“사이즈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당 2,500원은 잡으셔야죠.”


개당 5만원짜리라 해도 기본 포장 상자가 2,500원이면 너무 비싸다.

비교하긴 그렇지만 회사 기본 정보를 인쇄한 택배 박스 중에 아이도 들어갈 만큼 큰 박스가 900원 정도다.

그리고 추석이나 설날에 사용하는 선물용 포장 박스가 1,500원 정도고.


“그. 다른 방법은 없는 거죠?”

“아무래도 퀄리티를 챙기시려면요.”


이게 참,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이 싸고 좋은 건 없다.

그럼에도 그런 제품을 찾아 헤매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럼 혹시 샘플은 받아볼 수 있을까요? 싸바리까지는 아니고 어떻게 인쇄되나 해서요.”

“예. 잠시만요.”


사장님은 그 자리에서 다인이 그림을 스캔한 후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으로 잠시 작업을 하더니 어디론가 인쇄를 날렸다.


“여기 계세요. 기계가 밑에 있어서요.”

“아! 저도 같이 가봐도 될까요?”

“아뇨. 저 혼자 갔다 올게요.”


그렇게 혼자서 잠깐 기다리자 출력물 하나를 가지고 올라왔다.


“오. 진짜 똑같네요?”


그나저나 어느 게 원본인지 헷갈릴 정도로 똑같은 출력물이 나왔다.

솔직한 말로는 새로 인쇄해온 게 좀 더 보기 좋았다.

하지만 이 단가를 주고 하기에는 아무래도..


“생각해보시고 결정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아직 원가에 대한 계산이 없어서 저 정도를 소화할 수 있을지 감이 잘 안 왔다.

하지만 박스 천개만 만들어도 돈이 250만원이다.

공용박스로 하면 개당 5백원꼴이니까. 무려 다섯배다.


“어. 여보. 이거 아무래도 좀 힘들 것 같네.”

“많이 비싸?”

“개당 2,500원.”

“안 되겠네.”

“그치?”


나중에 사업이 번창해서 이것저것 다 할 수 있게 되면 몰라도 당장에 저렇게 비싸고 좋은 박스를 쓰는 건 무리다.


‘감열지로 해결할까.’


감열지를 쓰면 흑백으로 밖에 인쇄가 안 돼서 박스 자체에 퀄리티가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금액으로 생각하면 이게 맞다.


―부우웅


운전을 하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데, 와우프레스 부장님께 전화가 왔다.


“네. 부장님.”

“어때? 괜찮지?”

“부장님 혹시 일부러 이렇게 비싼 거 보여주신 거 아니에요? 저한테 현실을 알려주시려고.”

“아니라고는 말 못 하는데, 그래도 같은 단가면 거기가 나을 거야.”

“개당 2,500원짜리 외박스를 어떻게 써요.”

“그럼 비슷하게 해서 우리가 2,300원에 해줄까? 대신 감리는 없는 걸로 해서.”

“지금 저희가 쓰는 박스가 부가세 포함 500원이 안 돼요. 2,300원이나 2,500원이나 단가가 너무 뛰어요.”

“그럼? 그냥 계속 범용박스 쓰려고? 심대리, 잘 생각해야 해. 당장에는 돈이 적게 들지만 그게 다 마케팅 비용이라 생각하면 크게 비싼 거 아니다?”


마케팅 비용.

좋은 말이다.

다만, 허수가 잔뜩 들어가기 제일 좋은 말이기도 하고.


“당장에는 감열지로 해서 붙일까 싶어요.”

“그건 누가 다 붙이고? 기계 없잖아. 혼자서 스티커만 붙이다가 장사 끝낼 거야?”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죠.”

“으휴. 내가 진짜 심대리 뭐 이쁘다고. 쯔. 그 하양에 경성인쇄소 알지? 문 닫은 지가 한 3년 됐나?”

“네. 오며 가며 보기는 봤어요.”

“거기 사장님 연락처 줄 테니까. 전화 한번 드려봐.”

“비싼데 아니에요?”

“아니야. 거기 사장님이 나이가 많으신데 밑에 자식도 없고, 하여튼. 직접 통화해 봐. 끊는다.”


왠지 부동산 통해서 집 보러 다닐 때가 생각났다.

처음에 적당한 물건 보여주고 그다음에는 엄청 좋으면서 비싼 거, 마지막으로는 엄청나게 싸면서 안 좋은 물건을 보여줘서 처음에 보여준 물건을 선택하게 한다던가.

어쨌든 연락처는 받았으니 전화를 드렸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와우프레스 김부장님 소개받고 연락드렸어요.”

“예.”

“저 혹시 외박스 제작도 하시나요?”

“안 합니다.”

“아. 김부장님께서 전화 드려보라 하셔서요.”

“내가 나이가 80이요. 이제 몸도 성치않고. 못 해.”


역시 김부장님은 부동산 전략으로 나를 꼬드기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성향상 직접 눈으로 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시구나. 저 혹시 괜찮으시면 한 번 찾아봬도 될까요?”

“예.”

“감사합니다. 한 20분쯤 후에 도착합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경성 인쇄소로 향했다.


***


‘잘하려나.’


와우프레스 김부장은 어릴 때부터 인쇄업으로 잔뼈가 굵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한심하기만 하다.

지금 자기 앞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도 어떻게 하면 일을 좀 편하게 해볼지만 궁리하지, 열정도 없고 근성도 없다.

하지만 심대리는 달랐다.

요즘 젊은이 같지 않게 에너지가 좋았다.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하는 모습도 보기 좋고.


“강대리야. 그 장애인 취업 지원처 연락처 좀 보내줘 봐.”

“저는 모르는데요?”


저 봐라 저.

나는 모른다고 하면 끝이다.


“성 과장!”

“저도 모릅니다.”

“아니 그럼 누가 알아?”

“퇴사한 조과장 담당이었어요.”

“인수·인계받은 사람 없어?”


그렇게 아무의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슬쩍 가볼까.’


이런 놈들과 일하다 보니 심대리가 더 생각났다.

자기 밑에 심대리 같은 사람 한 명만 있었어도 일할 맛 제대로 날 텐데.


‘보자. 그 성격에 경성인쇄소는 노다지로 보일 테니까. 사람만 좀 구해주면 되겠지.’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 아무래도 인건비 부담이 크다.

이걸 잘 아는 김부장이기에 나라에서 고용지원금이 나오는 장애인 취업 지원처를 연결해주면 아무래도 심대리의 부담도 적어질테다.

원단 구매처야 자기 이름으로 대신 발주 넣어주면 단가도 괜찮게 받을 테고.


“외근 간다.”


그렇게 김부장도 경성인쇄소로 출발했다.

부장이 나간다는데 아무런 대답도 없는 부서원들을 뒤로하고.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 딸이 산삼을 주웠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나쁜 짓. NEW +2 16시간 전 160 8 13쪽
31 봄. +2 24.09.17 258 10 12쪽
30 기레기. +3 24.09.16 298 12 13쪽
29 새로운 시작. +1 24.09.15 325 14 13쪽
28 사고 수습 +2 24.09.14 366 9 13쪽
27 전문가 위에 전문가. 24.09.13 398 15 13쪽
26 선수는 선수를 알아 본다. +1 24.09.12 433 15 13쪽
25 다다익선. +1 24.09.11 460 14 13쪽
24 부자 +1 24.09.10 506 17 13쪽
23 이게 맞나? +1 24.09.09 515 18 12쪽
22 전화위복. +2 24.09.08 538 20 13쪽
21 말이 씨가 된다. +1 24.09.07 527 22 13쪽
20 내 사랑. +1 24.09.06 523 20 13쪽
19 불시 점검 +3 24.09.05 518 20 13쪽
18 할 수 있다. +1 24.09.04 524 18 13쪽
17 이심전심. 24.09.03 567 19 13쪽
16 소매 넣기. +2 24.09.02 649 17 13쪽
15 좋은 인연. +1 24.09.01 675 20 13쪽
» 싸고 좋은 물건 24.08.31 741 23 12쪽
13 나 삐졌어. 24.08.30 763 22 13쪽
12 카운트 다운 24.08.29 788 24 13쪽
11 은호 미워. 24.08.28 830 23 12쪽
10 구지황 +1 24.08.27 851 20 13쪽
9 남남으로 만나서 +1 24.08.26 900 24 13쪽
8 성투 +1 24.08.25 928 28 13쪽
7 다이어트 약 +3 24.08.24 967 26 13쪽
6 그런 거 없다. +3 24.08.23 1,021 26 13쪽
5 난 괜찮아. +3 24.08.22 1,069 25 13쪽
4 땡 잡았다. +3 24.08.21 1,147 26 12쪽
3 나도 사장. +2 24.08.20 1,301 3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