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산삼을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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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몰아
작품등록일 :
2024.08.0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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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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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구지황

DUMMY

이왕 이렇게 된 거 와이프를 발견했지만, 부르던 노래를 마저 불렀다.


“감사합니다. 그럼 모두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나 또한 반쯤 취한 상태로 와이프를 맞이했다.


“여보! 인사드려. 여기는 보민 사장님, 그리고 여기는 풀꾼 사장님이시고 신영사장님이셔.”

“안녕하세요.”

“그래요. 장사 번창하시고. 이렇게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나랑 있을 상남자 그 자체이셨던 사장님들이 와이프 앞이라고 체면을 차리셨다.


“네. 맛있게 드세요. 오빠. 나 잠깐만.”


와이프가 나만 살짝 불러내는 게 상당히 불안해서 나를 구제해줄 사장님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 누구도 내 눈을 맞춰주지 않았다.


“..이게 다 뭐야?”

“사장님들이 개업 고사 지내주셨어. 감사하지? 우리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잖아!”

“나한테 말도 없이?”

“오늘 갑자기 이렇게 된 거야. 다 좋은 마음으로 해주신 거.”

“하. 그래. 있어 봐. 나 잠깐 나갔다 오께. 나 올 때까지 아무도 못 가시게 하고 있어.”


전운이 감돌았다.

그나저나 지은이는 어디간 걸까.

이대로 여기 계신 사장님들의 사모님들을 모두 모시고 오는 건 아닐까.


“흠. 심대리야. 우리 이제 가보께. 아쉬울 때 그만하는 미덕이 있어야지.”

“에이. 아니에요. 더 계셔요. 남자가 하는 일에 어디 여자가 말이에요! 괜찮습니다.”

“진짜제? 니 쫒겨나도 우리는 모른데이?”

“당연하죠! 제가 쫒아내면 쫒아냈지 쫒겨나진 않으니까 걱정 마세요!”


이런저런 걱정이 들었지만 맛있는 술과 안주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 없는 법.

걱정거리는 저 멀리 던져 버리고 눈앞에 있는 자리를 즐겼다.


―부우웅.


와이프한테 전화가 오기 전까지.


“오빠. 나와 봐.”

“지금?”

“나와.”


어디 하늘과 같은 남편을 오라 가라 하는 걸까.

하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행하기 위해 일단 나가보지 뭐.


“이거 들어. 무거워.”


와이프는 포터를 몰고 가서 뭔가를 한가득 싣고 왔다.


“뭐야?”

“뭐긴. 개업 선물이지. 들어. 무거워.”


와이프는 발가락 양말 선물 세트와 커피 선물 세트를 사 왔다.


“가실 때 하나씩 챙겨드려. 끝나면 전화하고. 데리러 올 테니까.”

“어? 어.”


그렇게 지은이는 개업 선물만 두고 돌아갔고.


“심대리야. 왜? 우리 가까?”

“아니에요. 와이프가 개업선물이라고. 사장님들께 나눠드리래요.”

 “크-. 역시 우리 심대리 제수씨네!. 나는 걱정 없었지!”

“사장님들. 키 주세요. 제가 차에 넣어둘게요.”


크게 혼날 줄 알았는데, 선물을 받았다.

뭔가 더 크게 불안해졌다.


***


“재밌었어?”

“어? 어! 이야 역시 우리 지은이. 개업 선물 생각은 어떻게 한 거야? 덕분에 사장님들이 엄청 좋아하셨어!”

“잘했네.”

“그리고 이거는 돼지머리에 있던 돈. 음식 같은 거도 다른 사장님들이 찬조해주셔서 돈 많이 안 들었어!”

“응.”

“···. 혼낼 거야?”

“혼은 무슨. 해야 할 거 한 건데.”

“근데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안 좋지 않아.”


뭐랄까 평소보다 기분이 가라앉아 보이지만, 여기서 더 물어보면 시비 거는 게 될 테니. 그만했다.


“다인이는 자?”

“응. 아빠 어디 있냐고 좀 찾다가 금방 잠들었어.”

“그래. 우와 근데 사장님들 진짜 대단하시지 않아? 오늘 모인 사람 분들이 서른명이 넘어. 웬만한 약재상 사장님들하고 주변 상가 분들 모두랑 안면 텄다니까.”

“잘했어. 즐거워 보이더라. 나 먼저 들어간다. 오늘 좀 피곤하네.”

“어? 어.”

“정신 좀 들면 이거나 좀 보든가.”


그렇게 와이프는 링제본이 된 서류 뭉치 하나를 내게 건네고 방으로 들어갔다.


―――

<건강식품 회사 성공 사례 모음>

―――


책자 안에는 천호식품과 양지 홍삼, 청년 방앗간 등 나름의 자리에서 입지를 튼튼하게 하고 있는 곳들의 사례를 디테일하게 정리해져 있었다.

작성 스타일을 보니, 분명 우리 와이프 작품이었다.


‘웬일로 힘 좀 썼네.’


사람은 왜 게을러지는 걸까.

분명 태생적으로 게으르지는 않을 텐데.

이런저런 이유로 현실에서 도피하다 보면 자연스레 게을러지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우리 와이프도 다인이를 낳고 출산 휴가를 한 다음 퇴직하기 전까지는 참 열심히 살았었다.

그래서 그때는 이렇게 자체 휴직 상태가 길어질 거라 생각하지도 못했었고.


‘이거 때문이가.’


왜. 한 팀으로 움직일 때 나 혼자만 열심히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힘이 빠지잖아.

그동안 내가 느끼던 기분을 오늘 지은이가 느낌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잘 안다.

풀어주는 방법을.


―나와 봐. 닭발 왔어.

―어디꺼?

―신불.


조용히 와이프가 제일 좋아하는 닭발을 시키고 도착과 동시에 카톡을 보내자, 문이 스르륵 열렸다.


“이야. 이건 언제 다 정리한 거야? 대단한데?”

“···. 훈제 치킨은?”

“조금만 기다려봐 내가 뼈 발라서 가져다줄게. 소주? 맥주?”

“효민사와.”


오늘 하루 좋은 사장님들께 좋은 기운을 많이 받고 온 탓인지 나의 마음에는 여유가 넘쳤다.

이 정도 투정을 받아주는 건 일도 아니다.


“자. 여기.”

“고마워.”

“근데, 그래서 결론이 뭐야? 네 성격에 사례 수집으로 끝내지는 않았을 거잖아.”

“그걸 오빠랑 같이 이야기하려고 했지.”

“오-. 웬일? 내 의견을 다 물어보고?”

“원래 물어봤거든!”

“왜 이러십니까 에이스 이과장님. 안 그러셨잖아요.”

“에혀. 언제적 이과장이야. 나도 이제 늙나 봐. 자신감이 떨어져.”


오늘의 모든 상황이 이해됐다.

간만에 힘 좀 써볼까 해서 자료 수집해서 정리도 하고 열심히 했는데, 결론 부분에서 막힌 거다.

예전 같았으면 아리까리한 부분에서 자기 감을 믿고 밀어붙였겠지만, 휴직이 길어지면서 자신감이 떨어졌겠지.

그러던 차에 나하고 상의하러 왔는데, 나는 술판의 중심에 있었고.


“보자. 천호식품은 남자한테 참 좋다는 카피 하나로 자리를 굳혔잖아. 물론 그 전부터 액상 쪽으로는 이미 탄탄하긴 했었고.”

“맞아. TV 광고로 처음 본 사람이 더 많겠지만, 사실 TV 광고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성장한 단계였긴 하지.”

“어쨌든 산수유 하나로 크게 성공한 건 맞고. 양지 홍삼은 6년근에 꿇리지 않는 4년근 홍삼으로 자리 잡았고.”

“저 두 사례는 사실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는 효능으로 성공한 거고. 청년 방앗간은 맛으로 승부한 케이스.”

“천호랑 양지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으로 자리 잡았고, 청년은 온라인 100%고.”

“그렇지.”

“그럼? 우리는?”

“어쨌거나 온라인을 안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근데 좀 천천히 가자. 온라인 시장은 양날의 칼이니까.”


보통 친한 친구 남자들끼리 술을 마시면 아무런 영양가 없는 말들만 거의 오간다.

하지만 동종 업계 남자들이 모인 술자리는 다르다.

영양가 없는 말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근데, 지은아. 이번에 전국에 있는 지황 싹 긁어갔다는 데 있잖아. 거기가 정원이라는 곳이더라고?”

“그래?”

“아무래도 숙지황으로 된 제품 개발해서 그걸로 홈쇼핑에도 내보내고 건강식품 방송에도 협찬할 모양이래.”

“근데?”

“우리 회사가 연 매출 100억을 만든 비결이 바로 이 낙수 효과잖아. 우리도 노려보자. 낙수 효과.”

“생각은 맞는데, 어떻게 하자는 거?”

“일단 200만원짜리 다이어트 한약을 내가 3만원, 10만원, 50만원, 100만원, 200만원짜리로 나눠서 만들어볼게. 이게 막걸리도 보면 모주가 제일 비싸고 물을 많이 탈수록 싸지잖아? 그런 식으로 해서 만들면 될 것 같아.”

“흠. 좋네. 제품 이름은?”

“일단 우리는 무조건 구증구포 숙지황을 쓸 거거든? 어쨌든 여기에 대해서 분명히 누군가 나중에 시비 걸고 들어올 거니까. 공정 정리는 확실히 해두면 되고. 제품명은 ‘구증구포 숙지황 D' 로 해서 싼 거는 베이직. 비싼 거는 프리미엄 뭐 이런 식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좋다. 그럼 온라인 몰은 cafe24 기반으로 해서 내가 준비해볼게.”

“오케이! 짠!”


대낮부터 하루종일 술을 마시다 왔지만, 안주도 많이 먹고 말도 많이 한 탓에 술에 많이 안 취한 덕에 오늘 밤을 넘기지 않고 와이프의 마음을 어느 정도 풀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대략적인 계획도 함께 세울 수 있었고.


‘말은 저렇게 하긴 했는데.’


구증구포 숙지황은 국내에도 없고 중국에도 없다.

물론 보민 사장님처럼 본인이 먹기 위해 구지황을 만드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시장에 유통한들 팔리지가 않는단다.

그래서 일단, 시세가 없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구지황으로 액상차를 만든다는 말은 산삼으로 액상차를 만드는 것과 똑같은 말이라더라.

과일 음료 시장도 비슷하지만, 자고로 액상으로 가공하는 원물들은 원물 그대로 판매하기 어려운 것들을 싸게 구매해서 만드는 게 관례니까.


‘지황 단가를 20,000으로 잡고 감량이 80%니까. 차·포 다 떼도 120g에 20,000원.’


무슨 한우 좋은 부위랑 단가가 비슷하다.

시장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어느 한 품목이 시장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면, 그 또한 이유가 있고 개인의 노력으로 시장 현상을 거스를 수는 없다.

물론 이번에는 개인이 아닌 기업이 붙은 상황이긴 하지만.


‘입문, 초급, 중급, 고급, 특급으로 나누면 되겠네.’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에 맞게 품질을 나누는 것이지만 시험공부가 하기 싫으면 책상 청소부터 하듯이, 자기 위해 누워서 가격대별 이름부터 정리했다.


“오빠. 자?”

“아니-.”

“제품 수준 별 이름 있잖아. 입문, 초급, 중급, 고급, 특급 어때?”

“엥?”

“별로야?”

“우와! 나도! 나도 딱 그거 생각하고 있었어!”

“풉. 거짓말.”

“진-짜. 진-짜로.”

“그래. 부부는 일심동체네.”

“아. 진짜라고.”

“다인이 자잖아. 쉿.”

“진짠데···.”

“그럼. 일심은 했으니까. 동체도 하자.”


아. 이게 아닌데.


***


“영민아. 잘 돼 가니?”

“회장님. 오셨습니까.”

“지황 매입은 끝났고?”

“예. 국내산 지황은 햇 원물이 나올 때까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희만 독점으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그래. 기사 작업은?”

“가공포제기술로 구지황보다 저희 삼지황이 더 좋다고 언론사에 뿌려놨습니다.”

“잘했네. 중국산도 적당히 섞었제?”

“예. 손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정했습니다.”

“잘했네. 고생하고.”

“들어가십시오.”


주식회사 정원은 제품별로 팀을 꾸려 개발부터 판매까지 모든 일은 해당 팀 안에서 처리하게 한다.

‘왕비의 맥문동’과 ‘한경제 흑염소’도 이런 운영 구조로 만들어낸 정원의 히트 상품.

물론, 저렇게 자리를 잡아서 ‘본부’의 위치까지 올라 유지 보수만 하며 여유로운 회사 생활을 누리는 이들은 극소수다.

이번에 만들어진 ‘숙지황’팀 또한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고 패잔병들로 꾸려졌다.


“팀장님, 언론사별 보도자료 리서치 마쳤습니다.”

“반응은?”

“미비합니다. 키워드 자체가 애초에 검색량이 없어서요.”

“고생했다.”


영민은 이번에 이 숙지황 팀을 총괄하게 됐다.

이번에도 실패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짐을 싸야겠지.


“하-.”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물론 회사는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조직이지만, 제대로 된 약을 만들고 싶었다.

이렇게 돈만 되면 되는 음료수가 아니고.


‘퇴근하자.’


망하기가 더 어렵다는 한의원을 말아먹고 이렇게 건강 식품회사에서 월급쟁이로 일하고 있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으니 결과가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고 혼자 지내는 원룸에 돌아오니 택배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

아빠. 사랑해요.

-은호가

―――


빼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짧은 편지와 함께 한약 박스가 들어있었다.


“으휴. 한의사한테 남의 집 한약이나 보내고.”


형편상 지방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는 와이프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컸다.


“무슨 약이지.”


동의보감 문구가 그려진 흔한 한약 박스에 산삼이 그려진 흔한 투명 파우치가 들어있는 약이었다.

몸에 좋은 거라고 보낸 거겠지만.

대체 무슨 약인지 겉만 봐서는 알 수가 있나.


―찌익.


그래서 일단 한 포를 뜯어 먹었다.

본과 시절에도 한약 소믈리에로 불리던 그였다.


“···. 구지. 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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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나쁜 짓. NEW +2 15시간 전 160 8 13쪽
31 봄. +2 24.09.17 258 10 12쪽
30 기레기. +3 24.09.16 297 12 13쪽
29 새로운 시작. +1 24.09.15 324 14 13쪽
28 사고 수습 +2 24.09.14 365 9 13쪽
27 전문가 위에 전문가. 24.09.13 397 15 13쪽
26 선수는 선수를 알아 본다. +1 24.09.12 432 15 13쪽
25 다다익선. +1 24.09.11 459 14 13쪽
24 부자 +1 24.09.10 505 17 13쪽
23 이게 맞나? +1 24.09.09 514 18 12쪽
22 전화위복. +2 24.09.08 537 20 13쪽
21 말이 씨가 된다. +1 24.09.07 526 22 13쪽
20 내 사랑. +1 24.09.06 522 20 13쪽
19 불시 점검 +3 24.09.05 517 20 13쪽
18 할 수 있다. +1 24.09.04 523 18 13쪽
17 이심전심. 24.09.03 567 19 13쪽
16 소매 넣기. +2 24.09.02 648 17 13쪽
15 좋은 인연. +1 24.09.01 674 20 13쪽
14 싸고 좋은 물건 24.08.31 740 23 12쪽
13 나 삐졌어. 24.08.30 762 22 13쪽
12 카운트 다운 24.08.29 787 24 13쪽
11 은호 미워. 24.08.28 829 23 12쪽
» 구지황 +1 24.08.27 851 20 13쪽
9 남남으로 만나서 +1 24.08.26 899 24 13쪽
8 성투 +1 24.08.25 927 28 13쪽
7 다이어트 약 +3 24.08.24 966 26 13쪽
6 그런 거 없다. +3 24.08.23 1,021 2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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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도 사장. +2 24.08.20 1,300 3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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