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산삼을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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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몰아
작품등록일 :
2024.08.0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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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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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품목 보고 신고는 하셨어요?”

“하긴 해야 하는데, 어차피 걸릴 부분이 없어서요. 제품부터 만들어 놓고 하려고요.”

“액상이라 생각보다 까다로울 수도 있을 텐데.”

“손이 많이 가서 그렇지 괜찮을 거예요. 근데 실례가 안 되면 무슨 일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한의사 좀 하다가 원외탕전 회사에서 근무했었어요. 지금은 건강 식품회사 연구소에 있고요.”


한의사란다.

나 같은 무자격 제조자와 달리 자격이 있는 분이셨다.


“죄송해요. 제가 한의사이신 줄도 모르고.”

“아닙니다. 저보다 훨씬 멋있게 사시는걸요. 저도 사장님처럼 진짜 약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에이-. 저 같은 사람이 만드는 게 어떻게 진짜 약이겠어요. 은호 아버님 같은 분이 만드시는 게 진짜 약이죠.”

“하하. 아시잖아요. 똑같은 약 가지고 한의사가 만들었다며 값도 뻥튀기해서 받는 거.”


모든 한약이 그렇다는 건 절대로 아니지만,

그런 한약도 분명히 있다.


“근데 절 찾아오신 이유도 여쭤봐도 될까요?”

“궁금해서요. 아. 저희 회사에서도 지금 숙지황으로 된 제품을 개발하고 있거든요.”


보자 보자. 숙지황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는 회사면.


“정원?”

“역시. 알고계시네요.”

“이 업계 밥 먹으면서 정원을 모르면 안 되죠. 어후. 몰라뵀습니다.”


정원은 명실상부 한약 베이스 건강식품 회사 중 원 탑이다.

연봉도 어마어마하다던데.


“아닙니다. 저희가 만드는 건 그냥 음료예요. 숙지황도 국내산이랑 중국산 적당히 섞은 걸 사용하고요. 아. 이건 비밀입니다.”


비밀이고 자시고 할 게 있나.

어차피 액상으로 다 우려내면 원료가 뭐였는지 누가 알려고.

어쨌든 은호 아빠는 내가 만드는 제품이 좋아서 날 찾아온 듯했다.

좋은 음식점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고 요리사를 불러 감사의 마음을 전하듯이.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우리 건강원에 도착했고.


“시설이 이렇게 되어있군요. 흠. 혹시 나중에 HACCP도 하실 거죠?”

“네.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해썹은 아직은 좀 먼 이야기 같아요.”

“이게 참, 한 번 따놓으면 유지보수만 하면 되는데 처음에 준비해서 따는 게 번거롭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아직 시설이 많이 없으니까 시작부터 해썹 생각하면서 하시면 좋으실 거예요.”


해썹이라.

회사에 다닐 때도 그놈의 해썹 때문에 골머리를 많이 앓았었다.

요즘 식품들 보면 해썹이 안 붙어 있는 걸 찾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어서 개나 소나 다 해썹을 단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개나 소나가 되는 게 절대 쉽지 않다.


일단 생산 시설 자체가 청결구역과 준청결구역으로 확실히 구분되어 있어야 되며, 작업 동선 또한 명확해야 한다.

이뿐이랴. 해썹 기준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자가 품질 성적서도 제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단 생산시설 내에 쇳가루 검출기라던가 각종 이물질 검사기가 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 회사에는 이런 제반 시설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서 사장이 해썹에 욕심을 부린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고.


“예. 그럼 좀 둘러보고 계세요. 저는 약 좀 담그고 올게요.”


일이라는 게 참, 하자고 하면 할 게 천지고, 안 하려고만 해도 한정이 없다.

그러고 보니 너무 계획 없이 상태창만 믿고 육아휴직을 써버린 걸까.


“가시죠. 다 끝났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약을 탱크에 담그고 오니, 은호 아빠가 근처에 있던 신문지에다가 매직으로 그리고 있던 무언가를 내게 건넸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대략 맞을 거예요. 여기가 청결구역이고 여기가 준청결구역. 여기와 여기에는 에어커튼이 있어야 하고요. 가까이에 야산이 있어서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한데, 일단 소규모 해썹은 괜찮을 거예요.”


똑똑한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달랐다.

고작 신문지에 매직으로 이렇게 정밀한 도면을 그려냈다.


“어후. 감사합니다. 아! 잠시만요. 냉장고에 있는 막걸리 좀 챙겨올게요.”


아무래도 이런 것까지 받아버려 놓고 아무런 대접을 안 하기도 미안스러워 하양 막걸리를 챙겼다.


“막걸리 좋아하시나 봐요?”

“별로세요?”

“아뇨. 저도 좋아합니다. 근데 참 정말 오랜만이구나 싶어서요.”


은호 아버지는 뭐랄까 말하는 족족 사연이 묻어나오는 듯했지만, 사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그렇게까지 과거사가 궁금하지는 않았다.


“뭐야? 빨리 왔네? 막걸리도 가져왔어?”

“저희 왔습니다.”

“앉으세요. 혹시 하양 막걸리인가요?”

“예. 냉장고에 있는 거 몇 병 꺼내왔어요. 하하.”

“오빠. 하양 막걸리래.”


아니 그냥 시원하게 한 잔 마시면 될 걸 가지고 이 집은 무슨 하양 막걸리에 얼마나 큰 사연이 있길래.


“왜요 언니? 하양 막걸리랑 뭐 있어요?”


물어볼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에 와이프가 시원하게 물었다.


“그냥요-. 저희 아버지가 참 좋아하셨거든요.”

“그렇구나. 자. 그럼 막걸리로 다시 시작해볼까요?”


드디어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막걸리 한 잔이 내 앞에 놓였다.


―짠.


“크으-. 좋네요. 근데 은호 아버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87년생이에요.”

“아. 저는 81이에요.”

“그럼 형님이시네요. 형님으로 불러도 괜찮으시죠?”

“하하. 편하게 하세요.”

“여보. 알고 있었어? 형님 한의사시래.”

“진짜요? 우와. 그래서 은호가 저렇게 똑똑하구나. 은호보다가 우리 딸 보면 진짜. 으휴.”

“아 왜. 우리 다인이도 얼마나 똑똑한데!”

“오빠. 봐봐. 은호야!”

“네. 이모.”

“일 더 하기 일은 뭐야?”

“이!”

“삼 더하기 육은?”

“구!”


뭐야.

다섯살 짜리가 벌써 산수를 할 줄 안다고?

우리 다인이는 아직 숫자도 모를 텐데.


“봤지? 이거는 은호 학습지 문제인데 오빠도 한 번 풀어봐. 자. 철수는 반에서 키가 앞에서 세 번째, 뒤에서 네 번째다. 그렇다면 철수네 반 친구는 총 몇 명?”

“일곱?”

“땡! 여섯.”

“아.”

“풉-. 자 다음 문제. 이 숫자는 십단위 묶음의 개수와 일 단위 묶음의 개수가 같으며 삼십과 사십 사이에 있습니다. 이 숫자는 뭘까요?”


아니 무슨 수학 문제라 해놓고서는 언어영역 듣기평가를 하면 어쩌자는 걸까.


“···. 음.”

“은호야! 정답이 뭐야?”

“삼십삼이요.”


말도 안 된다.

다섯살짜리가 두 자릿수를 안다고?

저런 어려운 문제를 이해해서 문제도 풀고?


“봤지? 대단하지?”

“아니 근데 그건 은호가 특별한 거잖아. 다인이가 모자란 게 아니고.”

“쨋든. 그래서 나도 다인이 구몬시킬거야. 은호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한테.” 


딱히 우리 딸한테 벌써부터 공부 스트스레스를 주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일단 시켜보는 건 나쁘지 않을 듯했다.

혹시 모르잖아.

안 가르쳐서 그렇지 막상 가르치면 은호보다 더 똑똑해질지.


“다인이도 잘 할 거예요. 저 똘망똘망한 눈 좀 보세요. 너무 예뻐요.”

“감사합니다. 저희 딸이 좀 예쁘긴 하죠.”


은호 엄마는 첫인상은 좀 별로였는데 볼수록 사람이 좀 참한 느낌이셨다.

좋은 엄마의 표본 같다랄까.


“야! 심다온! 엄마가 뒤로 가서 봐라 그랬지!”


그에 반해 우리 와이프는 남의 집에서도 애한테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구나.


“형님, 한잔하시죠. 휴가 내고 오신 거예요?”

“네. 어떤 분이 이런 약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잠이 와야죠. 내일 올라가려고요.”

“멀리 가시려면 피곤하실 텐데요.”

“그래도 이렇게 내려와서 사장님 같은 좋은 분과 인연을 맺었잖아요.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근데 만드시는 약은 언제부터 판매하시는 거예요?”

“일단 준비는 다 됐으니까 아마 다음 달부터는 시작할 거예요.”

“그럼 홈쇼핑도 하고 방송으로도 홍보하고 하시는 거죠?”

“그렇죠. 아무래도 그게 저희 기본 전략이니까요. 키워드 작업은 벌써 시작했어요.”

“형님, 실례가 안 된다면 형님네 제품 방송 스케줄 잡히면 저한테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이죠. 일단 내달 18일 저녁 8시에 채널A 건강백세에서 첫 방송 잡혀 있어요. 그 뒤로 꾸준히 잡을 것 같긴 한데. 추후 일정은 아직이고요.”

“감사합니다! 하양 내려오실 때마다 연락 주세요. 제가 막걸리는 술독에 빠지실 때까지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어찌 보면 형님과 나는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경쟁자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코끼리가 개미를 경쟁자로 보지 않듯이.

형님은 오히려 나를 많이 도와주시려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너무 늦지 않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놀다 지쳐 잠이 든 다인이를 품에 꼭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


“너도 들었지? 9월 16일 저녁 8시야.”

“근데 꼭 이렇게 바쁘게 해야 해?”

“너 우리 회사가 뭐로 100억까지 컸는지 알잖아. 낙수효과야 낙수효과. 재주는 큰 회사에서 부려주고 콩고물은 우리가 주워 먹는 거지.”

“암만 그래도 어느 세월에 다하냐고. 박스는 그냥 공용 쓰면 안돼?”

“네임 벨류를 키워나가야지. 그 시작은 포장이고. 잘 아는 사람이 그래.”

“알지. 알긴 아는데. 하-. 그래. 해보자.”

“사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일단 충진된 파우치 소독부터 하고 좀 식혀놓고 올게.”


세상에 공짜는 없고, 노력 하는 만큼 기회가 커진다.

그래서 바지사장이나 하며 집에서 놀려는 와이프를 잡아다가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혔다.


‘소독도 했고, 이대로 식혀두면 되겠네.’


말이 1톤이지, 파우치로 치면 12,600개다.

이걸 혼자서 작업하자니 땀이 줄줄 흘렀지만, 그렇다고 와이프에게 도움을 요청하진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자기도 느껴지는 바가 있을 테니까.


“좀 했어?”

“어. 외박스 1안 2안 3안. 골라봐. 와우프레스 사장님하고 통화는 했는데, 천개가 기본이래. 우리처럼 소량으로 하려면 업체 다시 찾아봐야 되고.”

“흠-. 일단 2안으로 갈까? 근데 단가 생각하면 천개 만들어도 되는 거 아냐? 오백개나 천개나 결제 금액 차이는 얼마 안 날 것 같은데?”

“난 3안. 하긴, 여기다가 라벨 작업해서 사용할 거니까 천개도 괜찮겠다.”


지은이가 만든 1안은 익숙한 한약 박스에 ‘하양 건강원’이라는 이름만 넣은 디자인이었고, 그나마 2안은 검은 배경에 흰색 띄가 중간에 굷게 들어가고 그 주위로 우리나라 전통 문양을 넣어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 흰 띠 안에 궁서체로 ‘하양 건강원’이라 적혀 있었고.

3안은 무슨 수묵담채화 배경에 ‘하양 건강원’이라 적혀 있는데, 나는 사실 이게 제일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럼 디자인은 어떤 거로 할까? 너는 계속 3안으로 갈 거지?”

“그렇지. 오빠도 2안으로 우길 거고.”

“이럴 때는.”

“다인이한테로.”


우리 둘이서 가끔 하나의 의제를 가지고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보통 다인이게 결정을 맡긴다.

처음에는 애한테 너무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조금 들긴 했지만, 아이의 눈은 어른의 것보다 정확하고 언제나 다인이의 선택은 옳았다.


“그럼 난 지금부터 품목 보고 신청 넣을게. 자기는 자사몰 오픈이랑 상세페이지 제작 및 업로드를 부탁해!”

“이보세요. 제가 사장입니다만.”

“사장님,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직원보다 사장의 일이 더 많은 것 같네요. 조정하세요.”

“원래 직원보다 사장이 일을 더 많이 해야 좋은 회사라 하시지 않았나요?”

“그럴 거면 왜 사장을 합니까? 자고로 사장이란 직원들을 믿고 직원들 눈에 안 띄는 곳에서 놀고먹으면 그게 제일 좋은 사장입니다.”

“그래 놓고 돈은 제일 많이 가져가고?”

“당연하죠. 그게 사장이니까요.”

“풉-. 일단 하는 데까지 해봐. 나 이거 하고 위생계 들러서 혹시 더 챙겨야 할게 있는지 알아보고 와야 해.”

“출장계부터 올리세요! 어디 사장 결제도 없이!”

“자. 여기 출장계입니다. 보시고 결제해주시죠 사장님.”


사장 놀이에 심취한 와이프에게 배민 어플을 켜서 내밀었다.

뭘 했다고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자. 결제했습니다.”


―띠링.


결제했다는 와이프의 말과 함께 휴대폰에 카드 결제 문자가 날아왔다.


―――

[Web 발신]

KB국민카드 승인

51,800원 일시불

(주)우아한형제

―――


아니 이 여자가 도대체 뭘 얼마나 시켰기에 한 끼에 5만원을 태워?

당장에라도 배달 내역을 취소하려 하는데-.


“저. 안녕하세요.?”


카리나가 우리 건강원 문을 열고 들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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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젊음. NEW +1 4시간 전 90 7 13쪽
32 나쁜 짓. +3 24.09.18 225 9 13쪽
31 봄. +2 24.09.17 279 10 12쪽
30 기레기. +3 24.09.16 311 12 13쪽
29 새로운 시작. +1 24.09.15 337 14 13쪽
28 사고 수습 +2 24.09.14 376 9 13쪽
27 전문가 위에 전문가. 24.09.13 408 15 13쪽
26 선수는 선수를 알아 본다. +1 24.09.12 442 15 13쪽
25 다다익선. +1 24.09.11 468 14 13쪽
24 부자 +1 24.09.10 513 17 13쪽
23 이게 맞나? +1 24.09.09 522 18 12쪽
22 전화위복. +2 24.09.08 545 20 13쪽
21 말이 씨가 된다. +1 24.09.07 535 22 13쪽
20 내 사랑. +1 24.09.06 530 20 13쪽
19 불시 점검 +3 24.09.05 525 20 13쪽
18 할 수 있다. +1 24.09.04 533 18 13쪽
17 이심전심. 24.09.03 578 19 13쪽
16 소매 넣기. +2 24.09.02 661 17 13쪽
15 좋은 인연. +1 24.09.01 687 20 13쪽
14 싸고 좋은 물건 24.08.31 752 23 12쪽
13 나 삐졌어. 24.08.30 774 22 13쪽
» 카운트 다운 24.08.29 802 24 13쪽
11 은호 미워. 24.08.28 844 23 12쪽
10 구지황 +1 24.08.27 871 20 13쪽
9 남남으로 만나서 +1 24.08.26 918 24 13쪽
8 성투 +1 24.08.25 948 28 13쪽
7 다이어트 약 +3 24.08.24 991 2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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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난 괜찮아. +3 24.08.22 1,096 25 13쪽
4 땡 잡았다. +3 24.08.21 1,175 2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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