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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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이끼
작품등록일 :
2024.08.0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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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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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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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DUMMY

1화. 귀환



삭풍이 불 때면 귀곡성이 울려 퍼진다 하여 이름 붙은 소백산 횡빙곡(鈜氷谷) 애하(崖下).


가파른 절벽을 타고 내려가면 먼 옛날부터 빙궁주와 그 직계들이 수련동으로 사용하던 동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동룡은 그곳에 잠들어 있었다. 


고드름에 절묘하게 가리어진 입구 너머, 만년한철로 만든 철판이 빼곡히 깔린 공동의 한 가운데,


높이만 무려 두 장에 달하는 거대한 빙정(氷晶) 속에. 


동굴 밖은 이미 천지가 뒤바뀔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얼어붙은 빙굴(氷窟)과 그 안에 잠든 동룡의 시간은 여전히 옛적에 머물러 있었다. 


멈춘 시간을 다시금 흐르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닌 한 방울의 물이었다. 


천장에서 비죽 솟은 고드름 끝에 매달려 있던 신묘한 빛깔의 물방울 하나가 빙정 위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또옥···.


우윳빛 액체가 청명한 소리와 함께 표면을 두드리자, 빛 한점 들지 않던 공동에 새하얀 빛무리가 가득 차올랐다.


이윽고 쩌억! 소리와 함께 거대한 빙정이 갈라지며 가부좌를 튼 동룡의 몸이 둥실 허공에 떠올랐다. 


멈추어 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으.’


상황을 파악할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눈사태처럼 덮쳐든 냉기가 오랜 잠에서 깬 그를 정신없이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추워.’


온갖 영약을 섭취한 동룡으로서도 처음 느껴보는 극음의 기운이 혈맥을 휩쓸었다.


조금 전 얼음 표면을 꿰뚫고 그의 몸에 흡수된 한 방울의 물에서 비롯된 기운이다.


만년설이 수북한 소백산의 정기가 수 세기 동안 응축되어 모인 원천음기(原泉陰氣)의 결정체.


미타성수(彌陀聖水)


백소천이 그토록 찾고자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던 전설 속의 영약이었다.


동룡은 반쯤 깬 정신으로 극양지기를 끌어올려 그를 맞이했다. 


상극의 두 기운은 눌어붙은 세맥을 일순간에 뚫고 지나갔다.


온몸의 혈도가 터져나가는 듯한 통증이 덮쳐들었으나 굳게 다물린 동룡의 입가는 호선을 그렸다. 


통각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말이니.’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세세히 몸을 관조했다. 


단번에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인지한다.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몰아치는 음기와 양기를 하나로 만드는 것. 


본능이 이끄는 대로 맥을 따라 극양지기를 움직였다. 미타성수로부터 비롯된 원천음기가 꼬리처럼 그 뒤를 바싹 뒤쫓았다.


동룡이 타고난 유일한 재능이 빛을 발한 것이다.


그는 아이가 자라며 말을 하고, 기고, 걷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대기 중에 떠도는 기운을 토납할 줄 알았다. 


심지어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만약 이런 재능이 없었다면 그 역시 다른 절맥증을 타고 난 뭇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채 다섯 해를 지내지 못하고 단명했을 것이다.


아비인 백소천도, 심지어 본인조차 자각하지 못한 무재(武才)였다. 


그때!


꼬리까지 바싹 따라붙은 원천음기와 극양지기가 충돌했다. 


‘큭···!’


내부를 진탕으로 만드는 충격에 동룡의 입가에서 주륵, 선혈이 흘렀다.


의식적인 운용이 바싹 따라붙는 원천음기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동룡은 완전히 의식을 놓고 스스로 무아지경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감각에 모든 것을 내맡긴 채 심상 속에서 혈맥을 휘젓는 강대한 두 기운을 마주했다.


그것은 한 마리의 거대한 빙룡이었고, 한 마리의 타오르는 화룡이었다.


깎아낼 필요가 있다.


동룡은 냅다 두 용의 모가지를 틀어쥐었다.동시에 쥔 것은 목숨줄과 다름없었다. 


놓치는 순간 주화입마에 드는 목숨줄.


감각이 이끄는 대로 맥을 내달렸다. 막힌 곳이 있으면 어거지로 욱여 넣어 길을 넓혔다.


그러다 문득 더 이상 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헉!’


무언가 터져나가는 듯한 감각이 등줄기를 휩쓸었다.


고비를 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강대한 두 기운은 언제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굴었냐는 듯 소용돌이치며 서로를 옭아맸다.


소백산 천지의 정수가 응축된 원천음기와 극양지기가 비로소 하나가 된 것이다.


기운은 이제 애써 몰아붙이지 않아도 의지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갔다.


회음(會陰)부터 시작해 승장(承漿)에 이르는 임맥을 지나, 장강(長强)에서 시작되어 은교(銀交)에 이르는 독맥을 일주천했다.


그러한 과정이 몇번이고 반복되었다.


하나 된 기운은 임독양맥을 비롯한 기경팔맥을 거칠 때마다 깎여나가며 더욱 정순한 기운으로 탈바꿈되었다. 


불순물이 완벽히 걸러진 원천음양공(原天陰陽功)이 동룡의 단전에 자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휘오오···.


허공에 떠올랐던 몸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이윽고 미동 없이 감겨 있던 눈꺼풀이 올라가며 짙푸른 청안이 드러났다. 


“······.”


눈을 뜬 동룡의 모습은 얼어붙기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눈처럼 새하얗던 백발이 조금 전 짙은 잿빛으로 변했다는 것뿐.


초점 없이 허공을 주시하던 눈동자에 서서히 생기가 차올랐다.


“불쾌하군.”


무림 역사상 유례없는 내공을 지닌 거룡의 귀환이었다. 


***


아닌 게 아니라 몸에서 나는 악취가 아주 고약했다. 


애저녁에 그 쓰임을 다하고 걸레짝이 된 의복 조각으로 몸을 닦아내곤 색이 바랜 백의를 주워들었다. 


‘내가 여벌을 준비했던가.’


고개를 기울이다 옷을 걸쳤다.


어느 날부터인가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된 시비 녀석이 놓고 간 모양. 


북해를 떠나 중원으로 진출하는 영광을 뒤로 하고 자신을 보필할 것을 택한 충심 갸륵한 녀석이었다. 


‘일언반구도 없이 떠날 녀석이 아니었는데.’


생각하던 동룡이 절레 고개를 저었다. 


‘나가 보면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있겠지. 나가 보면.’


···그나저나 난장판이군.


기경팔맥이 완전히 타통하며 외부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만년한철로 만든 철판이 우그러지고 뜯겨 폐허를 방불케 했다.


난장이 된 공동을 둘러보던 동룡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벽곡단?’


한두 개가 아니라 꽤 많은 양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분명 남은 게 없었는데.’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발치에 나뒹구는 벽곡단 두어알을 집어 단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그가 잠든 동안 음기를 품었는지, 넣자마자 청량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입에 가득 퍼졌다.


아무래도 그가 먹을 것이니 곡물이며 영약이며 또 죄다 때려 넣어 만들기야 했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벽곡단은 벽곡단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맛대가리 없는 건 똑같군.’


동룡은 연신 입을 우물거리며 동굴 구석구석 너질러진 벽곡단을 챙겼다.


그의 시비가 목숨을 걸고 오가며 두고 간 것이기에.


이곳 횡빙곡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는 위치를 알아도 감히 찾을 수 없을 만큼 험준한 지형과 혹독한 날씨를 자랑하는 곳이다. 


무공의 무자도 모르던 한낱 시비 녀석이, 오로지 동룡을 살피겠답시고 빙궁의 무공까지 배웠더랬다.


“음.”


거기까지 떠올린 동룡이 난처한 신음을 흘리며 빙굴의 입구로 향했다.


휘오오오···!


시기 좋게 바람이 불자 횡빙곡이 스산한 울음을 내질렀다. 


소름끼치는 소리를 뒤로 하고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으음···.”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였다.


단전에 품은 내공이 아무리 심후하고 방대하면 무엇할까, 무공의 무자도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인 것을.


“이걸 어쩐다.”


난감한 중얼거림이 협곡 사이를 떠돌았다. 


***


귀곡성을 질러대는 절벽 앞에 일단의 무리가 멈추어 섰다.


한쪽은 검은 무복을 입은 흑의인 무리였고, 한쪽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흑의인 무리 중 대장격으로 보이는 덩치 큰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제 그만 포기하시오.”


수시진동안 지속된 추격전에도 호흡 한자락 흐트러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꽤 높은 수준의 무공을 갖춘 무인인 듯했다.


“기어이, 기어이 여기까지 쫓아왔구나.”


쫓기던 노인이 황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가슴팍이며 소맷자락 할 것없이 베어든 핏물로 보아, 앞서 한차례 전투가 있었던 듯 했다.


“네 놈들은 북해빙궁의 무사라는 자긍심조차 잊었다는 말이냐.”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몰린 노인이 씹어뱉듯 말했다. 흉흉한 기세만큼은 젊은 흑의인을 압도했다.


“애시당초 이곳에는 너희들이 찾는 비급이니, 선대 궁주의 유산이니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 말이다!”

“···그건, 우리가 찾아보고 판단하겠소. 비동 위치를 말하시오.”

“비동은 오직 백씨 성을 이은 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

“후우, 이보시오. 소우 선생.” 


벌써 몇 번째 반복 중인 대화였다. 


“시대가 바뀌었소, 것도 벌써 수십년 전에.”


흑의인이 답답한 듯 복면을 끌어 내렸다. 


선이 굵고 눈썹이 진한 전형적인 북부 이민족의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빙궁의 주인은 백씨가 아니고, 우리도 이제는 빙궁도가 아니오.”

“웃기는 소리! 백씨 가문의 대가 끊기지 않았는데 어찌 빙궁의 주인이 바뀔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그렇게 됐다는 걸 선생께서도 아시지 않소. 살아남는 것이 미덕이고, 살아남는 것이 전부인 세상 아니오, 부디 이해해주시오.” 


북해인들에게 있어 삶은 곧 투쟁이다.


태어나서는 살인적인 추위에 맞서 싸워야 했고, 자라면서는 늘 부족한 자원과 싸워야 했으며, 사납고 덩치 큰 짐승들과 싸워야 했던 그들에게 있어서 방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짐승의 분변으로 온기를 얻고, 그 피로 목을 축이고, 썩은 살점으로 배를 채우는 한이 있어도 살아남는다. 


오직 그것만이 북해인들이 믿는 진리였다. 


“우린 대세를 따를 뿐이오, 살아남으려면 마땅히 그래야만 했어.”


마지막 말은 노인에게 건네는 말이 아닌 그 자신에게 하는 세뇌에 가까워 보였다.


대대로 소백산을 지켜온 산지기 노인도 그를 아는 듯 더이상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저 한걸음 뒤로 물러설 뿐. 


챙!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듯 흑의인이 칼을 뽑아들었다.


사내는 자신을 따라 칼을 뽑는 수하들을 손짓으로 제지한 뒤 말했다.


“마지막으로 묻겠소. 비동의 위치를 말하시오.”

“이놈···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북마대(北魔隊) 대주랬던가, 네 놈 아비가 황가놈이더냐?”


잠시 노인을 바라보던 흑의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께서 부친께 베푼 은혜는 잊지 않았소.”

“허! 호부견자(虎父犬子)가 따로 없구나.”

“···손녀의 안전은 나 황철산의 이름을 걸고 보증하리다. 그러니 이제 그만···.”

“애써 사람 흉내 내지 말거라, 이 개놈아.”

“소우 선생!”


입꼬리를 비튼 산지기 노인이 조금 더 뒤로 물러섰다. 그에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기세를 끌어올리던 황철산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노인의 하나뿐인 핏줄은 가업을 잇지 않았다. 그가 죽으면 비동의 위치는 영영 알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빙궁의 새로운 주인은 수하의 실수를 보아넘길 정도로 아량이 넓은 자가 아니었다.


마른침을 삼킨 황철산이 으름장을 놓았다.


“···당신이 그렇게 가면 당신 손녀가 무사할 것 같소? 선생도 듣는 귀가 있으면 알 거 아니오!”


이도 저도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협박뿐이었다. 


“궁주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동의 위치를 알아내려 할거요. 당신 손녀의 혀를 뽑고, 눈알을 터뜨리고 팔다리를 뽑아낼 거요.” 


황철산의 협박이 효과가 있었는지, 금방이라도 몸을 던질 듯 자포자기하며 꺼져가던 안광이 시퍼렇게 번뜩였다. 


“···개잡놈이, 개같은 소리만 늘어놓는구나.”

“궁주는···! 그는, 그런 자요! 죽은 시체를 저며 절벽 아래에 뿌려 당신의 원혼을 불러들여서라도 알아내고자 할 거라고!”

“상종 못할 개새끼로군.”

“그래, 그는 개새···!”


낯선 음성에 황철산이 눈을 부릅 뜨고 주변을 살폈다. 


방금 누가···?


그의 주변에 포진한 다른 북마대원들도 어리둥절한 듯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곳은 사시사철 매서운 눈발이 몰아치는 소백산의 정상, 북마대와 노인 외에 짐승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


절벽 끝에 선 노인도 자신의 뒤편에서 들려온 음성에 놀라 굳긴 마찬가지였다. 


‘분명 뒤에서 목소리가···?’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흘긋, 내려본 절벽 아래엔 새까만 공허가···.


터억! 


별안간에 튀어나온 손이 벼랑의 선단을 붙잡았다.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를 본 노인의 눈이 화등잔만해졌다.


손가락이 박힌 눈더미가 치이익, 소리를 내며 허연 수증기를 뿜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살아생전 처음 보는 기예였다.


그러나 산지기 노인이 놀란 것은 그때문이 아니다.


저 아래는 저들이 그토록 알고 싶어하던 비동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분명 오래전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고 알려진 북해 백가의···.


“...!”


벼랑끝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청년이 길게 숨을 뱉었다. 


툭툭.


달라붙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상스레 옷가지를 정돈한다.


북마대 무인들과 황철산, 그리고 진소우는 그때까지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수 없었다.


청년의 움직임에 따라 흘러나오는 내력의 심후함이 상식을 깨는 종류의 것이기에 그랬다.


툭.


여상한 손짓 하나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숨통이 조여 들었다. 


“해서.”


짙푸른 청안이 침묵에 빠진 좌중을 훑었다. 


“궁주께서 노망 드셨다고 말하던 개새끼가 누구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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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내가 원하는 건 24.08.11 47 1 14쪽
7 중원인은······. 24.08.10 52 2 14쪽
6 넘쳐나는 것 24.08.10 54 2 12쪽
5 교차검증 24.08.09 58 2 15쪽
4 위천 세가 24.08.09 66 1 15쪽
3 개새끼가 누구냐? 24.08.09 75 2 12쪽
» 귀환 24.08.08 72 1 13쪽
1 서장 +1 24.08.08 10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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