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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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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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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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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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

DUMMY

9화. 흑도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술을 그리 마셨을까.’


머리를 붙잡고 끙끙거리던 설화운이 한숨과 함께 자세를 바로 했다.


아픈 건 아픈 거고 처리할 건 처리해야지.


그 앞에 수북이 쌓인 종이 뭉치는 북해를 주름잡는 상인 연합의 실세들에게 보내야 할 서신이었다.


소궁주의 등장으로 판세가 달라질 테니, 지금까지의 계획을 전면 수정할 필요가 있던 것이다. 


‘다른 상단주들에게는 회담의 일정을 조금 앞당기겠다는 내용만 전달하면 되겠고.’


착잡한 시선이 유일하게 봉하지 못한 서신에 머물렀다. 어쩌면 두통의 원인은 술이 아닌 이것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건 어찌한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장사치는 없다고 했다. 


궁에서 있는 죄는 부풀리고, 없는 죄는 만들어 가면서까지 흉을 잡아 상행을 방해하니, 북상련 내에서도 불안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났다.


성공 여부도 확실치 않은 모의에 가담하여 굶어 죽느니, 대세를 따라 목숨만은 연명하고 싶다며 세 곳이나 가입 철회 의사를 밝혀 온 것이다.


속이 쓰렸지만 설화운에게는 그들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이것도 골머리가 아프지만.’


설화운이 가장 걱정하는 바는 따로 있었다.


북상련의 련주, 구대성.


새외에서 손에 꼽는 거대 상단의 주인인 구대성의 대성 상단은 그가 온 세월을 바쳐 불린 덩치만큼이나 먼지를 켜켜이 쌓아두고 있을 것이 자명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자인 만큼 대비는 철저히 해두었겠으나, 내심으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었다. 


설화운은 혹여라도 그가 다른 생각을 품을 만한 여지를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연합의 주체이자 구심점인 그만큼은 굳건해야 한다. 


‘해서 쓰기는 했는데.’


문제는 서신을 전할 마땅한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믿고 일을 맡길 실력 있는 무인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들려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음 같아서는 직접 만나 소식을 전하고 싶었으나, 설화운은 백하촌을 떠날 수가 없었다. 


백하촌에 터를 잡은 흑도들이 하루아침에 태도를 달리하며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뒷배를 얻었기에 저리 신이 났을까,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뒷배가 빙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빙궁이 이 평화롭고 한적한 백하촌에까지 감시의 눈을 붙여둔 것이다.


‘뭔가 눈치를 챈 것인지는 몰라도···.’

 


이 뒤숭숭한 시기에 백하촌을 벗어나 궁도(宮都)로 향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후우···.”


긴 고민 끝에 결국 설화운은 서신을 고이 접어 품에 갈무리했다.


‘방법을 찾아봐야겠지, 어떻게든. ···답답하군. 음?’


무심코 내다본 창밖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그가 눈가를 찌푸렸다.


흑수방의 흑도들이 대문을 지나 들어오고 있었다.


‘저놈들이 이 이른 시간에 왜? 아직 상납 기한에는 여유가 있을 텐데.’


설화운이 불쾌한 듯 혀를 찼다.


‘명색이 정도를 걷는다는 놈들이···.’


아무리 여력이 없다고 한들 흑도를 부릴 생각을 하다니. 


분명 위천진무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 늙은 호랑이는 자존심과 자긍심을 빼면 시체인 양반이다.


‘맹 총군사의 아들이라는 제갈웅인지 뭔지 하는 놈의 꾀겠지.’ 


부족한 궁의 인력을 외부로 돌리느니, 어느 마을에나 한 자리씩 꿰고 있는 흑도놈들을 적당히 이용하면 손대지 않고 뒤를 닦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돈이야 넘칠 것이고, 유사시에는 꼬리 자르기도 용이하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신기제갈(神機諸葛)로 일컬어지는 이유를 알 듯했다.


생각하던 설화운이 불현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 뭐하는 거야?”


적당히 신경전을 벌이다 돌려보낼 줄 알았던 경비 조장 방혁이 실랑이 끝에 흑도의 코밑에 솥뚜껑 같은 주먹을 박아넣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양 두 무리가 뒤섞여 난투전이 벌어졌다.


한층 더 심해지는 두통. 

설화운은 이마 춤에 손을 얹고 급히 외쳤다.


“밖에 김총관 있나!”


그가 흑수방의 횡포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어슬렁거리는 모기가 귀찮다고 죽였다간 더 크고 거치적거리는 놈이 들러붙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성질머리 좀 죽이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한 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쿵쿵, 벌컥!


설화운은 바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얹어서 보내게. 흑수방주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모자람이 없어야 할 걸세.”


그런데 어찌 응당 들려야 할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김총관 내 말, ···소궁주님?”

“이야, 누가 저런 병신들한테 돈을 갖다 바치나 했는데 그게 너였구나.”


“······.”


동룡이 서릿발 같은 눈으로 설화운을 쏘아 보며 서 있었다.


***



동룡은 뒷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진한 분노를 느꼈다. 


“어째서 흑도 나부랭이 놈한테 돈을 쳐 바치고 있는 거냐?”


빙궁의 상징을 가슴팍에 새겨넣고 노략질을 하고 다니는 작금의 세태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그 꼴을 목도하고도 설화운을 찾는 것 말고는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분노였다.


살기를 폴폴 풍겨대는 동룡에 놀란 마음도 잠시. 


설화운은 애써 차분하게 말했다.


“사정이 있습니다, 진정하시고 잠깐 앉으시죠, 소궁주님.”

“무슨 사정?”

“차는, 필요 없으시겠군요.”


모습을 보니 지금 차를 내왔다간 찻물을 뒤집어쓸 듯했다. 설화운은 한숨과 함께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궁에서 눈에 불을 켜고 상인 연합과 관련 있는 자들을 색출 중이라는 것과 저 흑수방 놈들이 바로 궁의 끄나풀이라는 것, 그리고 연합의 중심점인 설화루가 노출되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것, 등.


“저라고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더 높은 도약을 위해 웅크린 것이지요.”


동룡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는데 왜 돈을 쳐 바치고 있냐고?”

“···?”


왜, 말을 못 알아들을 정도로 화가 났지?


말문이 막힌 설화운이 눈을 껌뻑였다. 


“저놈들은 감히 빙궁도를 사칭한 흑도놈들이다.”


아.


설화운은 이제야 동룡이 왜 이렇게 정도 이상으로 화를 내는지 알 것 같았다.


자긍심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리 감정적이어서야.’


내심 혀를 차면서도 차분한 음성으로 현실을 말했다.


“따지고 보면 사칭은 아닙니다, 현 빙궁을 뒷배로 둔 건 사실이니까요.”


그 말에 동룡이 차갑게 웃었다.


“핵심을 잘 못 짚는군.”

“예?”

“빙궁이 뒤에 있으면 흑도가 백도가 되나?”

“아.”

“위천진무는 무림맹에 속해 있고, 제갈웅인지 뭔지도 무림맹 총군사 아들이라며? 저깟 놈들 잡아 족치면 그 고상한 체하는 작자들이 발 벗고 나서 복수라도 하겠다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다. 하지만 설화운이라고 좋아서 매달 상납금을 바치는 게 아니었다.


“궁에서 대놓고 나서지는 않더라도 저들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더한 놈을 보낼 겁니다.”

“그럼 걔도 족치면 되지.”

“그럼 더 강하고 악한 자들이 자리를 꿰차겠지요.”


설화운이 물러섬 없이 맞받아치자 동룡이 쾅, 탁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걔도 족치고, 오는 족족 다 족치면 되지.”


동룡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는 족족 다 없애버리면 그들이 뭘 할 수 있지? 인의예지를 숭상하고 파사현정을 중시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놈들이 대체 뭘 할 수 있냐고?”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라고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설화운은 설산파의 차기 장문인이 될 사람이다.

정도를 걷는 무인이 악행을 일삼는 흑도를 처단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 과정에서 설화루와 북상련이 한몸이라는 것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그가 잃는 것은 치명적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명분은 설화운에게 있었으니.


그가 우려했던 것은 북상련과 설화루의 관계가 드러나며 빙궁의 시선을 끌어, 태생이 밝혀질까 했던 것인데. 


‘···내가 설가 태생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는 얼마 없지.’


그가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이상 밝혀질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생각하던 설화운이 씁쓸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문제는···.’


······그에게 그 모든 흑도를 처단할 힘이 없다는 것뿐.


“흑수방을 치면 그보다 악한 놈이 올 겁니다. 그자를 처단하면 그보다 더한 놈이 오겠지요. 중원에서 범죄를 저지른 악인들이 이 북해로 흘러 들어온다는 것은 아십니까? 저한테, 이 설화루에 그들을 모두 쳐 죽일 힘이 있다고 보십니까?”

“······.”

“밖을 좀 보십시오, 저 조무래기 흑도놈들 손에 나자빠지는 무인들의 꼴을 좀 보십시오, 방 조장 말고는 죄다 삼류 무공을 흉내나 내는 자들 뿐입니다. 저들이 나름대로 엄선한 저희 쪽 정예고요.”


집무실에 어설픈 적막이 찾아왔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설화운의 거칠어진 숨소리뿐이었다. 


···쩝, 약한 건 얘 잘못이 아니긴 하지.


동룡은 설화운이 진정하길 잠시 기다렸다가, 어조를 달리하며 말했다.


“저들이 약한 건 자네 잘못이 아니지만, 발전하지 못하는 건 자네 잘못이야. 가만히 맞고만 있으면 어떻게 발전을 하나.”



정론이었다. 


또다시 허를 찔린 설화운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한편 동룡은 생각했다.


‘괜한 화풀이를 한 것 같군.’


대의를 위해 숨을 죽이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렴 어제 막 깨어난 자신보다야 사태를 꿰고 있을 녀석이다. 이것저것 재고 따져본 뒤에야 부딪히면 손해라는 결론에 도달한 거겠지.


그로서는 최선이었을 거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왔으니까.’



흑수방주를 죽인다. 


‘수급을 치면 몸뚱이는 자연스레 힘을 잃을 테니.’


설화운의 말마따나 엄한 놈이 자리 꿰차지 않게 무슨 수를 쓰긴 해야 할 것이다.


대충 생각해 둔 바는 있었다.


동룡이 눈에 띄게 침울해하는 설화운에게 말했다. 



“언성을 높인 건 사과하지.”

“아닙니다.”


표정 보니 뭘 아닌 게 아닌데. 


역시 중원에서 자라서 그런가 졸렬하군.


“미안하게 됐네.”


누차 말하자, 설화운이 슬그머니 본심을 드러냈다.


“그래도 예로써 대해주셨으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이것도 웃기는 놈이네. 동룡이 피식 웃었다.


“그럼 충으로 나를 모실 텐가?”

“······물론이죠.”

“그 망설임으로 검이 돌아갈 확률이 조금 많이 줄었네.”

“윽···.”

“아무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으니 내가 한 번 해결해보지. 자네는 구경이나 하게.”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설화운은 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물었다.


“제가 도울 일은 없습니까?”

“자네가 도울 건 없고, 거기 밖에 있는 자네!”


동룡이 외치자 누군가 잽싸게 문가에서 튀어나와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호출을 듣고 달려왔다가 이도 저도 못하고 두 사람의 실랑이를 구경하던 김총관이었다.


“밖에 있는 놈들에게 줄 돈 가져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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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교차검증 24.08.09 5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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