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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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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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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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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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재

DUMMY

11화. 무재



설화운은 물론이고 경비조와 흑수방의 흑도들도 그의 경지를 짐작할 수도 없다는 듯 침을 꼴깍, 거렸다. 


하지만 그러한 시선을 받는 동룡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곤란하게 되었군.’


오랜 기억이 떠오른 것은 단전의 내공을 끌어올려 드러냈을 때였다. 


정확히는 내공을 드러냈음에도 아무도 쓰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직후였다. 


아버지께서 어느 날엔가 어렵게 꺼낸 말이 있었다.


─···너는 재능이 없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절맥증이 있다는 걸 앓기 전이었다는 것만은 기억이 난다.


신공을 익히기에 앞서 먼저 체력 단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에 단련을 시작한 무렵이었으니.


그 침통한 눈빛과 축 처진 눈썹, 망설임 가득한 입 모양도 생생했다. 


─제 의견도 궁주님과 같습니다, 소궁주···.


당시 빙궁도들의 무공 지도를 맡던 빙무각주가 옆에서 거들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셨고, 빙무각주는 면목 없다는 듯 땅만 보았다.


둘 중 누구도 정확한 주어를 입에 담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만큼 아둔하지 않았다. 


연무장 한 바퀴를 돈 직후 핑핑 도는 시야를 간신히 붙잡고 속이 빈 목검을 막 쥐어든 참이었기에모를 수가 없었다.


내로라하는 경지에 이른 두 고수가 입을 모아 그에게 선고를 내린 것이다. 


네겐 무에 대한 재능이 없노라고. 


바르르 떨리는 팔다리로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워 대꾸 없이 말을 듣고 있으니,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서둘러 덧붙였다.


─하지만 재능은 끈기로 대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궁주님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 그렇고말고. 장차 궁의 주인이 될 네가 아니더냐. 무공은 네가 갖춰야 할 수많은 덕목 중 하나일 뿐이지, 전부가 아니다. 너는 오성이 뛰어나고, 심성 또한 북해인 치고는 무척 곧은 편이니, 다른 것을 더 열심히 갈고 닦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그러니 너무 괘념치 말거라.


이 기억이 이제야 떠오른 것은 왜일까. 


아 그렇지.


‘내가 그랬지, 내력을 끌어올리면서 놈을 잡아 족치겠다고.’


그러자 피낙수는 자신을 완전히 믿으라는 듯 제가 아는 흑수방주 흑살귀에 대한 정보 보따리를 아낌없이 풀어놓았다.


놈이 좌수를 사용한다는 것.

가볍고 속도를 중시하는 쾌검을 주로 쓰지만 결정적인 한 방은 그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묵직한 중격이라는 것.


습관부터 자주 쓰는 무기와 경지까지도 말이다.


동룡이 숱한 정보 중 하나를 되새김질했다. 


“검기상인···?”


‘동네 무관에서 무공 배웠다는 흑도 나부랭이가 어떻게 검기를?’


라는 의문을 담아 설화운을 보았더니.


─말씀드렸잖습니까, 종남의 속가 문파인 남하문주를 죽이고 무공서를 빼앗아 이곳으로 왔다고. 그렇다고는 해도 벌써 일류에 이르렀을 거라고는 저도 생각은 못 했습니다.


라는 전음이 되돌아왔다.


“예 맞습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이니 틀림없습니다. 물론 소협의 그 심후하고 청아한 도기에 비할 바는 아닙죠···.”


언제 보았다고 피낙수가 벌써부터 신뢰 가득한 눈길을 보내왔다. 


동룡은 그 눈길을 외면하며 생각했다. 


어쩌면 아버지의 경고가 아닐까. 


어쩌다 한 번 선보인 기사에 들떠 스스로 눈을 가리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아들을 위한.


‘그래, 현실.’


동룡이 손에 쥔 무기는 두 가지였다.


북마대 무인에게 내상을 입혔던 기세, 그리고 검기.


‘─인지 다른 무엇인지 불확실한 무언가.’


지난 새벽 소백산 정상에서 단전의 공력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 외부로 발출하던 순간, 분명 북마대 대원 중 하나가 각혈하며 쓰러졌다.


흑살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궁의 정예 무력대인 북마대보다 강하진 않을 터. 


즉 같은 수는 흑살귀에게도 통한다.


하여 동룡은 같은 방법으로 흑살귀의 움직임을 제압하여 묶어둔 뒤, 놈을 처리할 생각을 품었었다.


‘기껏해야 성도도 아닌 자그마한 고을에서 이름을 날린 악적놈이 아닌가.’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한데,


‘······쓰러지지 않았다.’


그때와 똑같은 감각으로 기를 운용하여 공력을 펼쳤음에도 조금 전엔 그 누구도 쓰러지지 않았다.


쓰러지기는커녕 눈만 땡그랗게 뜨고 놀라기 바빴지. 


둘 중 무엇도 동룡의 의지대로 발현되지 않는다는 곡절이 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이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고양감이 눈을 가려 깨닫지 못한 것 뿐.


무릇 검기라는 것도 내공이 좀 있다고 그렇게 쉽게 뚝딱 만들어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심기체를 고루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야만 발휘할 수 있는 숙련된 무인의 전유물이다.


‘그리 간단할 리 없는 것을.’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자신이 쥔 무기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 


‘둘 중 하나라도 완전히 숙달해 내 것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빈손이라고 보는 것이 옳았다. 


불확실한 가능성만 믿고 덜컥 목숨을 걸 수는 없는 일이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흑살귀가 자리를 비운 덕에 다소간에 시간적 여유는 있다는 것일까. 


‘열흘, 그 안에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검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내상을 입혀 발만 묶어둘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놈이 호신강기를 발휘할 수 있는 고수가 아닌 이상에야 목을 치는 데는 그저 잘 드는 검 한 자루면 충분할 테니.


동룡이 상념에 잠긴 지 얼마쯤 지났을 때 슬슬 눈치를 보던 피낙수가 작별을 고해왔다.


“크흠, 그, 그럼 방주, 아니 흑살귀가 돌아오는 대로 기별을 넣겠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동룡의 시선이 휑한 입구에 머물자, 떨어져 나간 대문을 주섬주섬 챙겨 들고는 수리를 약속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모두가 떠나간 장원엔 나자빠진 설화루 무인들의 신음만이 가득했다.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내동 분위기를 살피며 서 있던 방혁이었다. 


“루주···.”


스물여덟이라는 설화운보다 다섯살은 더 먹은 듯 보이지만 사실은 스물다섯인 그가 똥 마려운 개처럼 쭈뼛거렸다. 


동룡에게서 시선을 돌린 설화운이 그를 바라보았다.


“혁아.”


방혁은 눈을 맞추지 못했다. 빙빙 굴리던 시선을 대각선으로 내리고 서릿발 같은 음성만 귀에 담았다.


“···면목 없습니다, 루주.”


지난번과 지지난번, 그보다 앞선 두 차례의 난동으로 이미 봉급의 구 할이 삭감된 바 있다.


이제 깎일 것은 조금 남은 자존심뿐이었다.


그의 고용주이자 의형제와 다름없는 설화운은 교양있는 면상과 달리 입이 조금 매서운 편이었다. 


방혁은 시선을 내리 깐 그대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뭔 말을 하려고 이리 뜸을 들이지, 말이 아니라 발인가?’


냅다 걷어차일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기에 슬쩍 발치를 보았는데 움직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던데 그냥 들어가서 아침이나 먹을걸.’ 하는 아무리 일러도 늦은 후회를 곱씹고 있자니 예의 미성이 틀어박혔다 


“애들 챙겨서 들어가라.”


방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이 작자가 이렇게 고분고분 넘어갈 위인이 아닌데? 


슬쩍 고개를 들어 본 설화운의 시선은 더 이상 방혁에게 머물러 있지 않았다. 멀찍이 대문을 바라보고 서 있는 정체 모를 고수에게 머물러 있었다.


‘진짜 사형제였구나!’


장문인의 의발을 이은 그가 눈치를 볼 정도면 대사형쯤 되는 사람인 듯했다. 


‘어찌 됐든 살았구나!’


방혁의 안에서 이름 모를 그에 대한 평판이 대폭 올랐다. 방혁은 아직 말 한마디 섞어보지 않은 그에게 벌써 두 번이나 도움을 받은 것이다.


방혁은 지체하지 않았다.


일어나지도 자빠져 있지도 못하고 하체만 바닥에 둔 채 분위기를 살피는 수하들에게 대뜸 소리쳤다.


“뭘 비비적거리고 있어 얼른 일어나지 못해 이 자식들아! 내가 그렇게 경거망동해선 안 된다고 일렀는데도 기어이 사고를 치더니!”


졸지에 똥 씹은 얼굴이 된 수하들이었으나 말은 잘 들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척을 느꼈는지 동룡이 그제야 뒤를 돌았다. 


방혁이 두어걸음에 한 번씩 뒤를 돌아 고개를 숙였다. 멀어지는 설화루 무사들을 보던 동룡이 나직이 입을 뗐다. 


“저놈이 아까부터 나를 굉장히 아니꼽게 쳐다본다.”

“누구, 아 혁이 말씀이십니까?”


설화운과 눈이 마주친 방혁이 어깨를 움찔거리더니 앞서 걷는 수하의 뒤통수를 쳤다. 


“원래 저 녀석 눈빛이 좀 불량합니다. 이해해주십쇼.”

“뭐 엄한 소리한 건 아니고?”

“그럴 시간이나 있었습니까.”


하긴. 납득한 동룡이 물었다. 


“한데 흑살귀인지 뭔지 하는 놈이 자리를 비우는 게 흔한 일이던가?”


피낙수가 뱉고 간 수많은 정보 중 하나였다. 


흑수방주는 부방주인 그에게 어떤 언질도 없이 주기적으로 자리를 비우곤 하는데 이번에도 전언만 남기고 떠났다는 것. 


돌아오려면 적어도 열흘은 걸릴 거라는 것. 


피낙수의 말이 이어지는 내내 별다른 기색이 없던 것이 의아하여 물었는데 설화운이 으레 있는 일이라는 양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두어 달에 한 번씩 보름 정도 자리를 비우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궁과 소통을 위한 것인가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 보였고요.”

“어찌 확신하지?”

“사람을 붙여 뒤를 밟은 적이 있었는데 궁도가 있는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사순 쪽이었는데, 최종 목적지는 확인을 못 했죠. 미행이 나흘 만에 들통나는 바람에···.”


사순은 백하촌 서쪽으로 뻗은 가도로 말을 타고 꼬박 사흘을 달리면 나오는 자그마한 섬마을이다.


북해 빙호 중턱에 위치해 있어서 오가는 이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확실히 궁도와는 정반대 방향이군. 


“허면 이제 어찌하실 겁니까? 저도 모르게 본문에 적을 올리셨는지 몰라뵈었습니다. 사형.”


뼈가 있는 너스레에 동룡이 어깨를 으쓱였다. 


“정체를 밝히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달리 방도가 없었으니, 사제가 이해해주게.”


가볍게 말했지만 사실 가벼이 넘길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당장 동룡만 해도 빙궁도의 상징을 떡하니 가슴팍에 새기고 다닌 흑도를 보고 화를 참지 못하지 않았던가.


‘뭐, 이건 좀 경우가 다른가?’


여하간에 자신의 사문을 사칭하는 모습이 달가울 리 없는 것이다.


“설산파가 비록 구대문파에 들지는 못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나름 명망과 전통이 있는 문파입니다. 이 일을 사문의 어른들께서 아시면···.”

“뭐, 자네만 입 다물고 있으면 별일이야 있을까.”

“그래도 제가 차기 장문인인데 좌시할 수는···.“


동룡은 그의 말을 흘리며 허리춤의 검을 슬쩍 내보였다. 


“피차 떳떳지 못한 이들끼리 말을 맞추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인데.”


그리해도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설화운의 망설임을 지워준 것은 이어진 말이었다.


“어제 깎아 먹은 점수도 다시 올려주지.”

“하기야 저 먼 운남땅에 있는 분들이 이 새외의 일을 아실 수야 없는 노릇이지요. 사형께서 저희 사문의 이름을 내걸고 악한 행동을 하실 것도 아닌 것을. 사문의 이름을 높여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그래, 내 노력하마.”

“해서 정말 이제 어찌하실 예정이십니까?”


그제야 표정을 푼 설화운이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왔다. 


“흑살귀가 돌아올 때까지 당분간 자리를 비워야겠다.”


검기보다 시급한 것은 발을 묶어둘 방법을 찾는 것이다.


우선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했으니, 다시 소백산으로 간다.


‘그때와 다른 것이라곤 주변 환경뿐이니.’


“때가 되면 알아서 돌아올 테니 굳이 찾진 말고. 급한 일이 생기면 소우 선생에게 전하도록.”


동룡의 통보에 설화운은 더 캐묻지 않았다. 다만 염려 하나를 보태었다.


“사형께서 안 계시는 사이에 만일 흑수방 놈들이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제 선에서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설화운의 눈빛이 꽤 살벌했다. 그러라 했다간 아주 형태도 안 남기고 뿌리 뽑을 기세다.


“도가의 무인이라는 자가 그리 살생을 가벼이 여겨서야 쓰나.”

“···죽인다고는 안 했습니다만.”

“그쪽에는 내가 따로 조치를 해둘 테니 따로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채비나 해주게, 당분간 야영을 좀 해야 할 듯싶으니.”

“알겠습니다, 한데 조치라니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묻는 설화운에 동룡은 흑수방 무리가 빠져나간 대문을 넌지시 보며 일렀다.


“뭘 믿고 들개 놈들을 풀어놓을까, 목줄을 채워놓아야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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