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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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이끼
작품등록일 :
2024.08.0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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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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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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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가 누구냐?

DUMMY

 2화. 개새끼가 누구냐?



─사아아아···.


눈송이가 바람에 휩쓸려가는 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황철산은 긴장이 역력한 눈으로 청년을 살폈다.


‘이제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는데 어찌 저런···?’


숨길 생각도 없이 드러내는 기세는 망망대해와 같이 방대하면서도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심후했다.


평생을 무공을 갈고 닦아온 황철산이었으나 그가 마흔이 되도록 모아온 내공은 청년이 가진 것에 비하면 한 줌에 불과할 듯싶었다.


그러나 상반되게도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청년의 모습은 무공의 무자도 알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처럼 빈틈투성이였다.


가장 경지가 얕은 막내 대원이 당장에 칼을 뽑아 들고 덤벼들어도 대응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황철산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수하들에게 눈빛으로 명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수하들에게 하는 경고인 동시에 그 자신의 경각심을 깨우기 위한 말이었다.​


‘말로만 듣던 반박귀진의 고수일지도.’


황철산은 적대할 의사가 없다는 듯 조심스럽게 납도 했다. 그 와중에도 눈동자는 청년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제야 다소 이질적인 청년의 생김새가 눈에 들어왔다. 


짙푸른 눈동자와 비 내리기 직전의 구름 빛을 띄는 잿빛 머리칼.


‘색목인?’


그러나 이목구비 자체는 한족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혼혈인가. 아니, 아무렴 상관없는 일이지.’ 


특별히 눈에 띄는 무기는 보이지 않는다.


‘암기를 숨겨두었나? 아니면 권법을 사용하는 건가?’


걸친 의복은 오래전 유행하던 양식을 띠고 있었다. 북해빙궁의 무사였던 그의 부친이 즐겨 입던 무복과 흡사했다. 


적잖은 세월을 거친 듯 색이 약간 바래긴 했으나 해지지 않았고, 재질은 흔히 보기 힘든 고급.


‘잠깐, 뭔가─’


잠자코 있던 청년이 짜증스레 물어온 것은 그때였다. 


“물었는데. 조금 전 궁주를 욕보인 자가 누구냐고.”


대원들을 하나하나 쓸어보던 눈동자가 이윽고 황철산에게 닿았다. 시선을 받은 황철산이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소협은 누구시오···? 어찌하여 궁의 행사를 방해하시는 거요···?”


얼결에 나온 목소리는 그 자신이 듣기에도 꽤나 볼품없이 의기소침했다.


크흠, 황철산이 민망함을 헛기침으로 무마하려던 그때.


“목소리를 보아하니 네놈이구나.”


청년이 선수를 쳤다.


“한데, 방해? 네놈이 하던 짓거리가 궁의 행사라고?”


자신이 잘못 들었냐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청년, 명백한 비아냥을 담고 있다. 감히 어느 누가 궁의 이름 앞에서 저딴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황철산은 상황도 잊고 표정을 굳혔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청년이 절벽에 우두망찰 선 진소우를 바라봤다.


“그쪽, 진소우 선생이라 하셨소?”


귀신이라도 본 듯 놀란 진소우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 씨라···. 내 생각이 맞다면 소백산 초입에 머무는 산지기로 보이는데 내가 바로 보았소?”

“마, 맞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청년의 시선이 다시금 황철산을 향했다. 


“궁의 법도를 어겨가며 한다는 짓거리가 고작 산지기를 겁박하는 것이고, 그것이 궁의 행사라?”

“···궁주의 명령보다 우선시 되는 법은 없소.”

“호오, 이다지도 충직한 개놈이 뒤에서 주인을 헐뜯었군그래. 내가 동굴에 틀어박혀 지낸 새에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많이 변한 모양이야.”

“······.”

“아, 설마 그사이 공자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셔서 군위신강(君爲臣綱)의 벼리가 갈빗대라고 가다듬어주시던가?”


그렇게 말하는 청년은 진소우가 보기에도 퍽 얄미웠다. 감정에 충실하고 직선적인 대부분의 북해인들은 저런 식의 도발에 익숙하지 못했다.


“씹고 뜯는 모양새가 야무진 것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던데, 용케 그 나이까지 살아있군그래.”

“듣자 하니 초면에 말씀이 지나치시오.”

“지나친 것은 자네 면상이겠지. 초면인 것도 자네에게는 다행인 일이고. 구면이었다면 당장에 목이 떨어져도 할 말이 없었을 테니.”

“······.”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것이 당연한 북해에서는 다소 보기 드문 구경거리였기에 진소우와 대원들은 숨까지 죽인 채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달리 볼 것이 없었다.


“크게 아쉬워는 말게, 언제고 나는 자네의 수급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이목구비만큼이나 전형적인 북해인의 성질머리를 타고 난 황철산이 발끈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울컥!


“정체부터 밝히시오! 나는 북마대 대주 황철산이오!” 


그래도 칼을 뽑지 않은 것은 무의식적인 두려움 때문이었다. 


처음과 같이 날카로운 기도는 거의 사그라들었으나 청년의 손짓부터 가볍기 그지없는 언행에서까지도 강자 특유의 여유가 느껴졌기 때문에.


특유의 생존 본능이 제동을 건 것이다.


그리고 그들 앞에 선 청년, 백동룡 역시 하극상을 그냥 보아 넘길만큼 너그러운 성정을 갖춘 인격자는 되지 못했다.


‘뭐? 누가 뭐를 터뜨리고 뭐를 저며?’


터무니없는 헛소리!


중원 무림 출신의 외지인인 백씨 가문이 이 북녘땅에 흘러 들어와 이 땅의 이름을 성씨 앞에 붙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민심을 헤아릴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대 궁주 중에서도 가장 성군이라 평가받는 아버지께서 중원인도 아닌 북해인을 그리 대할 리 없었다.


···만에 하나,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가 폐관에 든 새에 진실로 아버지께서 노망에 드셨다고 하더라도!


신하 된 자로서 군주의 허물을 덮지 못할망정 헐뜯는 것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후우···.’


동룡은 자그맣게 숨을 내쉬며 화를 다스렸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이 열불인지 양강기공인지 가늠이 어렵다.


하지만 열받는 것은 열받는 거고. 자신의 처지를 잊지는 않았다. 


동굴에서의 기연으로 막대한 내공을 얻었다고는 하나, 그는 여전히 저잣거리에서 떠도는 하급 무공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누구냐 물었느냐.”


차가운 분노가 깃든 시선이 황철산을 위시한 북마대원들을 향했다.


언뜻 긴장한 듯 보이는 표정 너머로, 무인 특유의 잘 벼린 칼과 같은 예리한 기도가 느껴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진짜배기 무인들이었다. 


제대로 맞붙어서 이길 자신이.


“그것을 듣고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동룡은 개 눈곱만치도 없었다. 


***


동룡은 어려서부터 감정에 곧잘 휩쓸리곤 했다.


사방을 에워싼 것이 무를 숭배하다시피 하는 무인들이고, 갖가지 선택을 이성이 아닌 주먹과 감정으로 하는 북해인들이었기에 그랬다.


─군자는 항시 호수처럼 침착하고,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백소천은 항상 이런 동룡의 성격을 염려했다.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예?

─네가 백가의 미래고, 나아가 북해의 미래 그 자체다. 네가 없으면 이 땅의 미래도 없다. 명심하거라. 너는 오롯이 너의 몸과 마음만 보신하거라.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이 아비와 수하들이 모조리 치워줄 것이다. 

─아뇨, 그건 좀···.


되려 부추기기도 했다.


─아 그렇지, 역시 이건 좀 선을 넘었지? 

─···예, 제가 적당히 알아서 잘 처신해보겠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아버지.

─그래, 그래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백소천의 양가적인 가르침과 철저한 보신주의를 주입받은 결과 동룡의 성격은 아주 요상하게 꼬여버렸다. 


“그게, 무슨···.”

“내가 누군지 알고도 그렇게 대가리 꼿꼿이 들고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느냐 물었다.”


감정에 곧잘 휩쓸리는 것이 흠이 되기는 하나, 천성이 악한 것은 아니었으니.


본래라면 커 가면서 자연스레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고 체득하여 아비와 같은 성군으로 거듭났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동룡은 인격을 가다듬을 중요한 그 시기를 홀로 동굴에 남아 병마와 싸우며 보내었다.


동룡에게는 다행히도.


부은 간에서 비롯된 자신감은 단전에 자리 잡은 정순하고 방대하기만 한 내공과 꽤, 아니 아주 상성이 좋았다.


그 자신도 그 사실을 은연중에 알고 있었고.


“어디 한 번 들어보겠느냐?”


말을 맺는 것과 동시에 단전의 공력을 끌어올렸다.


처음 등장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내공의 폭풍이 눈과 뒤섞여 일대를 뒤덮었다. 


─사아아아아아!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원천음양공의 폭풍에 휩쓸린 북마대원 둘이 순식간에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풀썩!


그제야 황철산은 무언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큭, 이런 말도 안 되는···!’


몰아치는 설풍에 정신없는 와중, 그의 뇌리에 번뜩이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하나는 청년이 입은 오래된 의복을 본 순간 느낀 괴리감이었고, 다른 하나는 무심코 흘려들었던 의미심장한 청년의 말이었다.


─내가 동굴에 틀어박혀 지낸 새에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많이 변한 모양이야.

─내가 동굴에 틀어박혀 지내는 사이에···.

─내가 동굴에 틀어박혀···.


‘반로환동의 고수!’


판단과 동시에 입이 움직였다.


“소협, 아니 대협! 잠시 진정하십시오! 내, 내가,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후배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절규처럼 외치자, 거짓말처럼 기세가 거두어졌다. 공교롭게도 흩날리던 눈까지 그쳤다.


“······흠, 그래?”


여상한 눈빛이 황철산을 향한다.


왜인지 약간의 당황이 느껴지는 것 같았으나 황철산에게는 지금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끝장이다!


그는 체면을 차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눈밭에 넙죽 엎드렸다.


“예! 제가 실언했습니다. 식견이 짧아 기인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경거망동하였습니다.”


뒷짐을 지고 서서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보던 동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이제라도 알아보았으니 되었다.”


황철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때 그가 턱짓으로 어깨너머를 가리켰다.


“수하들을 물려라.”

“예?”

“수하들은 전부 돌려보내도록. 남은 이야기는 자네와 나 단둘이 나눈다.”


황철산의 얼굴 위로 낭패감이 어렸다.


북마대는 추적과 추격에 능통한 무인들로 꾸려진 무력 부대였다.


그 반대의 경우, 즉 도주에도 마찬가지.


만에 하나라도 전면전을 피하지 못할 상황이 다시 닥친다면 한 명의 수하라도 곁에 있는 편이 그가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젠장···!’


저 희멀건 영계 가죽을 뒤집어쓴 노괴는 그마저도 원천 차단할 생각인 듯싶었다.


‘···어쩔 수 없나.’


반쯤 자포자기한 그가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무리한 명령에도 반발하는 일 없이 곧잘 따라준 놈들이다. 


내상을 입고 혼절한 대원까지 있었다. 


이 이상은 녀석들에게도, 자신에게도 못 할 짓이었다. 


황철산이 부하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모두 산 아랫마을에서 대기하도록. 만일 사흘이 지나도 내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본궁으로 복귀해도 좋다.

─대주!

─근처에서 은신하고 있겠습니다, 대주. 신호를 주십시오.

─시끄러워! 저만한 고수가 너희 수준의 은신을 간파하지 못할 성싶냐? 잔말 말고 내려가!


황철산은 그렇게 북마대원을 모두 하산시켰다.


이제 자리에 남은 것은 동룡과 황철산 그리고···.


언제인지 모르게 혼절한 진소우뿐.


“······.”

“아무튼 보아하니 너, 내 정체를 짐작하고 있는 것 같던데.”

“예,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내가 동굴에만 틀어박혀 있다 보니 시간 감각이 없다.”


동룡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께서는 무탈하신가?”

“예?”

“백소천 궁주님께서는 강녕하시냐 물었다.”


···폐관 그렇지, 폐관. 수십 년이나 두문불출했다면 모를 수 있지. 


덜떨어진 표정을 지어 보이던 황철산이 억지로 납득한 뒤 말했다. 


“···이십일대 북해빙궁주 백소천님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수십 년 전에 귀천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동룡의 얼굴에 파문이 일었다. 


“······그럼 자네가 말하던 궁주는 누구지?”

“아···! 위천진무님이십니다.”

“······누구라고?”

“위, 위천 세가의 진무···.”


놀람, 당황, 의심, 혼란, 분노 순으로 시시각각 변하던 동룡이 한탄처럼 욕지기를 내뱉었다.


“이런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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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새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다. 24.08.11 38 2 14쪽
8 내가 원하는 건 24.08.11 46 1 14쪽
7 중원인은······. 24.08.10 51 2 14쪽
6 넘쳐나는 것 24.08.10 53 2 12쪽
5 교차검증 24.08.09 57 2 15쪽
4 위천 세가 24.08.09 66 1 15쪽
» 개새끼가 누구냐? 24.08.09 75 2 12쪽
2 귀환 24.08.08 71 1 13쪽
1 서장 +1 24.08.08 10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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