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궁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붓이끼
작품등록일 :
2024.08.08 09:58
최근연재일 :
2024.08.14 12:15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668
추천수 :
22
글자수 :
76,725

작성
24.08.10 09:05
조회
53
추천
2
글자
12쪽

넘쳐나는 것

DUMMY

5화. 넘쳐나는 것



“밀린 외상값 갚기 전에는 얼씬도 하지 말랬더니, 대리인을 보내?”


일그러진 문지기의 얼굴 위로 의뭉스레 웃던 노인의 얼굴이 겹쳤다.


···산에 틀어박혀 눈이나 퍼먹을 것처럼 생겨서는 의외로 흥취를 아는 분이셨군 그래.


‘어쩐지 산지기치고 소식이 밝다 싶었지.’


동룡이 하릴없이 생각하던 그때.


“─내 말을 우습게 아는 것은 나아가 루주님을 우습게 아는 것!”


혼자 무어라무어라 떠들며 목청을 드높이던 문지기가 분기를 참지 못하고 움직였다.​


문지기의 손이 허리춤으로 가는 모습이 느릿하게 보였다.


‘엇.’


 그 순간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갔다.


─···텁.


뻗어나간 손길이 한치가량 뽑힌 검의 머리를 내리눌렀다.


“뽑지 말게.”


동룡은 문지기의 검수에 지긋이 손을 올리고 그의 눈을 바라봤다.


─스릉, 텁!


“어허 자꾸 그러지 말게. 큰일 나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문지기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왜, 뽑질 못하지?’


​한겨울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문지기를 본 동룡 또한 그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시선을 내리자, 손잡이를 움켜 쥔 문지기의 손이 보였다. 


손등의 색이 검붉고 힘줄이 툭 불거진데다 손가락 마디는 희끗희끗하다.


‘힘을, 주고 있네? 한데 왜 뿌리치질 못하지?’


문지기의 덩치는 본분에 얼맞게도 무척이나 건장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 그의 팔뚝이 동룡의 머리통만 했다.


반면 동룡은···.


“······.”


검수에 얹어진 얄상한 제 손에서 서둘러 시선을 뗀 동룡이 생각을 전환했다.


돌이켜 보면 이상한 점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조금 전 움직임도.’


태어나 그렇게 빠르게 반응해본 적이 있던가?


‘아버지 술을 훔치려다 걸렸을 때 말고는 없지.’


한 장(丈)은 가뿐히 넘을 거리를 발 구름 한 번에 도약한 것은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 시진을 쉬지 않고 절벽을 기어오르고, 소백산을 내려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전혀 피로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막대한 양의 내공을 소화 시키면서 동룡의 신체에도 무언가 변화가 생긴 듯했다.


‘이걸 이제야 깨달은 나도 나군.’


숨을 쉬고 걸음을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서 의식하지 못했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의선의 부재가 새삼 사무쳤다. 


제 신체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는 것은 주로 그의 몫이었던 탓이다.


급작스레 가라앉은 공기에 문지기가 자신도 모르는 새 숨을 죽이던 그때. 


동룡이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착각을 한 모양인데. 소우 선생의 소개로 찾아온 것은 맞지만, 외상···후우, 그런 생각은 없었네.”


어딘지 모르게 권태로워 보이는 동룡을 물끄러미 보던 문지기가 물었다.


“···밀린 외상값은?”


누가 봐도 기가 죽은 모습인데도 문지기는 끝끝내 물었다. 


이왕지사 내공을 써서 협박을 해볼까 생각하던 동룡이 고개를 내저었다. 


범인치고는 풍채가 좋고, 기세가 자못 사납긴 하지만 정식으로 수련한 무인의 몸놀림이 아니었다.


반면 소백산을 무단으로 출입하려 하는 이들을 막아야 하는 본분을 지닌 진소우는 빙궁의 무공을 익힌 진짜배기 무인.


그런데도 진소우의 이름을 듣기 무섭게 냅다 윽박부터 질러대었다.


목숨 아까운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북해인이다. 겁과 생각이 동시에 없어.’


협박이 통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한 동룡은 품속 전낭의 무게를 헤아리며 쓰게 웃었다.


“내가 갚도록 하지.”


동룡은 그렇게 주루의 총관을 불러 값을 치른 뒤에야 겨우 대문을 넘을 수 있었다. 


내원은 동룡의 기억 속 모습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색색이 불을 밝힌 등과 어우러진 화려한 외관이 낯설었다. 북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 아니었다. 


전각은 증축을 한 건지, 새로 지은 것인지 배는 크고 층이 늘어 있었고, 바닥을 가득히 메운 것은 언 흙바닥이 아니라 멀끔한 청석이었다. 


“화려하군.”


내원을 거닐며 소소한 감상을 내놓자, 앞서 걷던 총관이 허허롭게 웃었다. 


“설화루는 처음이십니까.”

“아주 어릴 적 한 번 아버지 손을 붙잡고 온 적이 있지.”


그때에도 곤궁한 마을의 다른 건물들과는 동떨어진 느낌이 있긴 했으나, 이 정도로 체감이 크진 않았다. 


“아아 공사가 있기 전에 들르셨나 보군요. 십년 전쯤 루주님께서 새로 오시면서 대대적인 공사가 있었지요.”

“그랬나.”


그 루주의 장사 수완이 꽤 좋은 모양. 


이 벽지까지 찾아와서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이 언뜻 보아도 한둘이 아닌 것을 보면 말이다. 


‘설씨 가문이 옛날부터 이런 방면에 특출나긴 했지.’


자초지종을 알게 된 동룡이 가장 먼저 이곳을 찾은 이유기도 했다. 


진소우와 황철산, 두 사람은 궁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재정 상태는 물론이고, 민심도.


위천진무의 정통성을 들먹이며 가장 크게 갈등하는 세력 중 하나가 북해 상인 연합이라고.


의아한 일이다. 


그 옛날에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며 사사건건 교역을 훼방을 놓던 무림맹이 이제 위천 놈의 뒤에 있다.


그런 무림맹의 원조를 받아 안전한 교역로까지 뚫어놓았다는 마당에, 황금을 쓸어 담고 있을 그들이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이유를 묻자 돌아온 답이 가관이었다. 


중원에서 들여오는 교역품은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데 반해 정작 북해에서 밖에 구할 수 없는 특산물의 값은 과거보다도 낮아졌다. 


그리고 그 불공정한 거래를 궁이 강제하는 실정이란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동룡의 심정은 복잡 미묘했다. 


‘맹의 꼭두각시로군. 위천 놈을 쫓아내는 일이 생각보다는 수월할지도 모르겠어.’


그와 비례하여 지키기란 더욱 어려워졌다는 의미가 되기도 했다.


‘자금줄을 빼앗기는 것을 맹이 가만두고 볼 리 없으니.’


동룡이 착잡한 숨을 내쉬었다.


위천세가를 비롯하여 무림맹에 속한 구대 문파와 오대 세가 중 협력한 세력은 몇이나 될까. 그에 더해 아버지의 뒤통수를 거하게 친 엄씨 가문 놈들도 있다. 


당장 수면 위로 떠 오른 적이 이 정도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군.’ 


그러나 한숨짓는 동룡의 입꼬리는 들썩이고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중원행은 그의 오랜 꿈이었으니.


그때 동룡을 전각의 이층으로 안내한 총관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쯤이면 루주께도 소식이 들어갔을 테니, 안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술상을 봐 드릴까요?” 

“그러지. 적당히 내어주게.”

“설화루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외상값을 갚느라 내 사정에 여유가 없네만.”


동룡이 말하자 총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과의 뜻이니 개의치 말고 받아주십시오.”


동룡이 의아해하자 그가 멋쩍게 웃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이라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릅니다.” 


문지기를 말하는 듯했다. 


“제가 단단히 타일러 둘 터이니 부디 노여워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면서도 동룡이 치른 값을 되돌려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돌아가는 사정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렇다면 기분 좋게 받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윤기가 줄줄 흐르는 오리 구이와 닭찜을 비롯한 음식들이 줄줄이 방으로 날라졌다.


동룡은 거나하게 차려진 상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아홍(女兒紅) 한 병과 잔을 챙겨 창가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마셔보는 술이군.’


술은 부모로부터 배우는 거라 했거늘.


홀로 잔을 채워 든 동룡의 얼굴에 씁쓸함이 번졌다. 


─너는 분명 날 닮았을 테니 술은 가까이하지 말거라. 정 마셔야겠거든 믿을 만한 이를 꼭 곁에 두어야 한다. 이를테면 이 아비라던가.


어느새 바깥에는 만월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흐린 날이 잦은 지역 특성상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은은한 달빛이 고취를 불러일으킨 듯 동룡 뿐만 아니라 다른 객들도 즐거운 미소를 입에 걸치고 서서 달구경을 하고 있었다. 


“불초 소자 술 한잔 올리겠습니다.”


동룡은 그들과는 사뭇 다른 씁쓸한 웃음을 입가에 걸치고, 술을 허공에 뿌렸다. 


“장례는 위천놈의 목을 딴 뒤 궁에서 제대로 치뤄 드릴 테니 너무 서운타 마십시오.”


그리고 잔을 채워 입가로 가져갔다.


처음으로 마셔본 술은 생각만큼 쓰지 않았다. 


소흥 지방에서 나는 술 중에서도 가장 비싸고 좋은 술이니 어쩌니 떠들어대던 직원의 말이 사실인 듯했다.


‘아니면 아버지와 달리 내가 술을 좀 하거나.’


창틀에 걸터앉은 동룡이 싱숭생숭한 마음을 술로 달랜지 얼마쯤 흘렀을까. 


─푸흡.


애써 참는 듯도 하고 부러 들으라는 듯 과장스럽기도 한 웃음소리가 상념을 흩트렸다.


“······.”


동룡의 시선이 창 아래를 향한다.


“아 미안합니다, 공자. 북해인의 청승을 보는 것이 처음이라 그만.”


나무 등치에 재수 없게 생긴 놈팡이가 웃음을 머금고 서 있다.


“우리가 면이 있던가?”


동룡이 미간을 좁히자, 놈팡이가 말했다.


“글쎄요. 제 얼굴이 한 번 보면 웬만해선 기억에서 잊히질 않는다고들 하는데 어찌 눈에 익으신지요?”


능글맞은 새끼구만.


면상을 보아하니 북해인은 아니고 입은 무복의 복식도 낯선 것을 보면 중원에서 온 것 같은데. 


‘몸놀림을 보아하니 무림인이고.’


옛날부터 궁금했다.


저 내륙의 샌님들은 어떤 고상한 무공을 사용하는지.


먼 과거 백씨 가문이 먼 북해땅까지 흘러들어온 것은 가전 무공인 빙천수라공(氷天修羅功) 때문이었다. 


극한의 음한기공을 바탕으로 한 빙천수라공이 공격을 받은 상대뿐만 아니라 시전자 본인의 원기까지 상하게 하는 사이(邪異)한 무공이었기 때문에.


의와 협을 추구하며 정도의 길을 걷던 백가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사마외도 취급을 받았다.


그때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중원놈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초면이 맞을 겁니다. 저도 저지만 공자님께서도 한 번 보면 쉬이 잊힐 만 한 외양은 아니시니까요.”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새벽녘에야 폐관을 마치고 나왔는데 아는 얼굴이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 


이어진 말에도 동룡이 반응 없이 바라만 보자 놈팡이가 장난기를 지웠다.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거듭 사과한다.


그런데도 그다지 받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앞서 연거푸 들이킨 좋은 술의 영향일까. 


“별로.”


동룡은 벌컥, 잔을 비우고 이어 말했다. 


“받아주고 싶진 않군. 풍광 자꾸 조지지 말고, 적당히 가던 길이나 가지 그러시오?”

“흐음, 북해인은 기질이 대담하고, 호탕하여 예삿일에 심력을 쏟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공자님을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입니다. 


눈빛 봐라.


이 새끼 아주 대놓고 시비를 털고 있잖아. 


루주와 대면을 앞두고 굳이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는데. 얼큰하니 취기도 올라오고 실실 쪼개는 면상을 보고 있자니 자꾸 다른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제 소개가 늦었군요. 설화운이라고 합니다. 조촐하지만 이곳 주루─”

“그건 별로 안 궁금하고. 나와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는 듯한데 어찌 안으로 드시겠소?”


동룡은 빈 잔을 손안에서 굴리다 권했다.


초승달처럼 접힌 눈이 일순 반짝였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내가 넘쳐나는 게 시간뿐이라서.”


아 내공도 있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절대궁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 목줄 24.08.14 18 2 13쪽
12 무재 24.08.13 27 3 13쪽
11 근본 24.08.12 30 2 12쪽
10 흑도 24.08.12 29 2 11쪽
9 새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다. 24.08.11 38 2 14쪽
8 내가 원하는 건 24.08.11 46 1 14쪽
7 중원인은······. 24.08.10 51 2 14쪽
» 넘쳐나는 것 24.08.10 54 2 12쪽
5 교차검증 24.08.09 57 2 15쪽
4 위천 세가 24.08.09 66 1 15쪽
3 개새끼가 누구냐? 24.08.09 75 2 12쪽
2 귀환 24.08.08 71 1 13쪽
1 서장 +1 24.08.08 107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