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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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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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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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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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건

DUMMY

7화. 내가 원하는 건



처음부터 내기를 목적으로 설화운을 방으로 불러들인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기다림에 붕 뜬 시간을 조금 죽일까 하는 마음이 삼 할,


다분히 의도적인 접근에 대한 궁금증이 또 삼 할, 


마지막으로, 이 장유유서라고는 모르는 건방진 놈의 콧대를 어찌 눌러볼까 하는 기대감이 나머지 사 할이었다.


‘겨루어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하니.’


어려서부터 실력 좋은 호위들을 곁에 두고 자란 동룡은 알 수 있었다.


놈팡이의 경지는 그저 그런 삼류 무인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도 단순히 기를 죽이는 것쯤이야 적당히 내공을 드러내는 것과 입을 놀리는 것으로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살살 약을 올리며 성질을 돋우는 일에 재미가 붙을 때쯤 그게 눈에 들어왔다. 


놈팡이의 허리춤에 걸린 북해 백가의 전가지보(傳家之寶)와 똑 닮은 형태의 검이. 


‘···백천검(白天劍)?’


순간적으로 착각까지 할 정도로 비슷했다.


‘아니, 아니군.’


색과 형태는 엇비슷하나 새겨진 문양이 조금 달랐다.


‘이렇게까지 닮은 것도 신기한데. 재료도 같은 것이 쓰인 듯하고.’


묵빛 검집 위로 드러난 나뭇결이 불그스름한 것은 천축(天竺)에서 귀히 쓰인다는 자단을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귀한 것도 귀한 것이지만, 워낙에 단단하여 제대로 가공할 줄 아는 야장을 찾는 것이 더 힘든 목재다.


호수(護手)를 비롯한 금속이 들어가는 부분도 마찬가지로 짙은 묵빛을 띄었는데, 달빛이 반사될 때마다 은은한 청광(靑光)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 한철을 사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멋모르는 범인이 보아도 단번에 예삿 물건이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필시 백천검만큼이나 귀한 보검이다. 한낱 장식에 불과한 초올(稍兀)에 까지 한철을 사용할 정도면 뽑아 보지 않아도 빤하지.’


동룡의 눈이 반짝였다. 


백소천의 비호 아래 어려서부터 부족함 없이 자란 동룡은 뭐든 갖고 싶은 것은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별 건 아니고, 내기 하나 하지.”


동룡이 뜬금없이 제안한 까닭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서서히 약을 올리며 던진 떡밥은 꽤나 효과가 좋았다. 


“설 공자 혹시 겁먹었소?”


은근히 묻자, 울컥한 고기가 단번에 바늘을 낚아채었다. 


“하시죠, 내기!”


동룡은 슬그머니 웃었다. 


.

.

.


“북해인은 보통 대화를 즐기지 않소.”

“······.”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일단 들이받고 보지.”


‘나는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갖고 보고.’


동룡은 내심을 숨기며 빙그레 웃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상당히 중원인스러운 편이지. 보시오, 그 예삿일 하나를 그냥 못 넘어가서 애들처럼 이리 장난질이나 하고 있지 않소?”


설화운은 대꾸할 여력이 없었다.


그저 눈을 부릅뜨고 마주 보는 것이 최선이었다. 


진소우에게 미리 언질을 받았을 때만 해도 설화운은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것이라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적당히 긁어 성질을 돋운 뒤 속내를 떠볼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그때 동룡이 짐짓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괜찮소? 안색이 심히 좋지 않은데.”


전혀 괜찮지 않았다. 나아가 죽을 맛이었다.


내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미심쩍은 기색을 느꼈을 때 단칼에 거절했어야 했다. 


‘설마하니 빙궁의 소궁주라는 작자가 열공을 익혔을 줄은···!’


붙잡은 손 너머로 보이는 벽이 신기루처럼 일렁거렸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열기가 거세다는 말이다.


애초부터 내력의 양과 정순함이 비할 바가 아니었는데, 하필이면 상성 또한 최악이라 지금도 공력이 썰물처럼 동나고 있는 중이었다.


‘아주 작정을 했군···! 별안간 무슨 대단한 요청을 하려고 이리 무도하게 구는 것인지!’


분개하는 한편으로 재차 후회를 곱씹는다. 


역시 내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서신 내용만 믿고 너무 안일하게 굴었다.’


조금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아 성찰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것일까.


설화운이 전서구를 통해 받은 서신의 내용은 이러했다.


──백동룡 소궁주가 설화루를 찾을 걸세. 북해의 소룡이 하늘을 거슬러 돌아왔으니, 루주는 동심협력(同心協力)을 숙고하게.


수십년 전 돌연 모습을 감추었다는 소궁주가 별안간 어찌 나타났는지,

설화루는 또 어떤 연유로 찾아오는 것인지,


주요한 내용은 일절 언급되지 않았으나 전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동심협력, 즉 소궁주와 설화운의 적이 서로 다르지 않다. 그리고 진소우 자신은 이미 소궁주의 뒤에 서고자 마음을 먹었다.


숙고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궁의 횡포가 극에 달해 하나둘 백기를 드는 상인들이 늘고 있는 마당에 설화운의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소궁주도 내 도움이 필요하다, 이 말이지.’


하여 협상에 앞서 약간의 우위를 점하고자 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모름지기 사내란 강자를 마주하면 피가 끓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니던가?


그렇다.


까마득히 어린 시절 설산파에 입문하여 중원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내었다고는 하나 설화운 역시 엄연한 설가(雪家) 태생, 북해인이었던 것이다. 


‘···젠장할.’


설화운이 때늦은 후회를 욕으로 치환하던 순간이었다.


내력의 흐름이 일순 흐트러진 것은.


공력의 장막 위로 뭉근하게 전해지던 열기가 순식간 지독한 화마로 돌변하여 손을 덮쳤다.


“크읏!”

“어이쿠!”


화들짝 놀란 설화운이 팽개치듯 손을 놓자, 동룡이 과장스러운 탄성을 내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공자 조금 전에 손병신이 될 뻔하셨소! 예삿일에 무어라고 창창한 앞날까지 내걸고 그러시오!”

“···허.”


그놈의 예삿일은 도대체 언제까지 우려먹을 작정인지.


설화운은 일이 이쯤 되니 화가 난다기보다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리 속이 좁은 자가 북해빙궁의 소궁주라니.’


물론 그러한 감정을 표하는 누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가 좋든 싫든 위천진무를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할 과업을 진 이상 유일한 빙궁의 후계자인 동룡과 한배를 타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


설화운은 은근히 올라오는 짜증과 패배자의 울분을 삼키며 여유로운 척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주루를 운영하면서 온갖 인간군상들을 상대하며 갈고닦은 기술이 도움이 되었다.


“공자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에 다행히 손은 무사하군요, 아주 십년감수했지 뭡니까.”


동룡이 그에 화답하듯 히죽, 하고 웃었다.


“완전한 제 패배입니다. 세상은 넓고 기인이사는 모래알처럼 많다더니, 식견을 한층 넓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면 원하는 것을 말씀해주시지요.”


그러자 동룡이 기다렸다는 듯 요구했다.


“그 검.”


─흠칫


“그 검 무척 좋아 보이는군.”


그에 기술이고 뭐고 단번에 설화운의 평정심이 깨어졌다. 


이런, 이런 무도한 작자를 보았나!


설화운의 사고로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간악무도한 발상이었다.


‘어찌 무인이라는 자가 다른 무인의 검을 탐해!’


무엇보다 그의 검, 설운검(雪雲劍)은 내기 따위에 내걸 만한 사사로운 물건이 아니었다. 


대설산파의 상징이 되는 귀물(貴物)인 동시에 그가 장문인의 뒤를 이을 후계자라는 증명이었으며, 그 자체로 세상에 둘도 없는 보검이기도 했다.


이것이 내기에 걸렸다는 사실이 장문인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파문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보아하니 난처한 모양이군.”


얼핏 양보할 용의가 있는 듯한 말에 설화운이 냅다 가면을 벗어던졌다. 최대한으로 눈썹을 꺾고 음성에 처량함을 실었다.


“이, 이 검은 저희 문파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보검으로 잃었다가는 저는 문파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단전이 폐해져 객지를 떠돌다가 생을 마칠 것인즉 대협께서는 이를 불쌍히 여겨─”

“저런, 그거 안타깝겠군. 하나 인생을 그리 속단해서는 아니 되네. 사연 없는 무인보다야 사연 있는 거지가 조금 더 사내답기도 하고.”

“이 검은 정말, 정말 안 됩니다. 검을 빼곤 무엇이든 드리겠습니다. 부디 사정을 헤아려 주십시오, 대협.”


어느 새부터인가 설화운의 호칭은 격상되어 있었고, 동룡의 말은 한층 낮아져 있었다.


“쩝.”


동룡은 못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다가 인심을 쓰듯 툭,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지, 그럼 검은 되었으니, 이 주루를 내게 주게.”


한참 만에 상황을 파악한 설화운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제가 루주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표정 관리도 잊고 기가 찬다는 감정을 가감 없이 내보이는 설화운에 동룡이 여상스레 귀를 후볐다.


“자네가 아까 죄다 떠벌리지 않았는가.”

“아니, 정확히는 말을 하려다가 못했지요!”

“그 정도면 다 말한 거지. 그만치 듣고도 못 알아챌 만한 놈은 내가 아는 한 나무꾼 황씨 밖에 없네.”


동룡 더는 양보할 생각 없다는 듯 단호히 눈알에 힘을 주었다.


“검과 주루. 둘 중 하나를 고르게.”

“······.”

“자네가 진정 설가의 사람이라면 말이 갖는 무게를 쉬이여기진 않겠지.”


아아 젠장 외통수였다.


설화운은 결국 검의 매듭을 풀 수밖에 없었다.


─달달달달···.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홱 꺾고 검을 풀어 넘기는 손길이 사정없이 떨렸다. 


‘두고, 두고 봅시다, 소궁주.’



이역만리 떨어진 대설산에 머무를 장문인의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갈 방도는 없다. 과업을 완수하고 복귀하기 이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찾으면 된다. 


‘그래, 그러면 된다.’


기꺼이 검을 넘겨받은 동룡이 음험하게 웃었다. 


“오오···. 영롱하구만. 천하제일 명장의 솜씨가 틀림없다.”


귀한 보검을 거침없이 뽑아 들고 감탄하는 모습이 그리 가증스러워 보일 수가 없다.


‘지키는 것이 녹록지는 않을 것입니다. 소궁주···!’


독기 어린 눈으로 연신 제 손에 들린 검을 힐끗거리는 시선을 느낀 동룡이 드러나지 않게 웃었다. 


‘뭐, 장난은 이쯤 해둘까.’


검의 초식 한 줄 펼치지 못하는 제 손에 있어 봐야 개 발에 편자를 다는 꼴임을 안다.


게다가 그에게는 행방이 묘연하기는 하다고는 하나 언제고 되찾아야 할 가문의 신물이 있었다. 


“그리 적대하지 말게. 작은 유흥이라지 않았는가, 자네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네.”


처음부터 동룡이 욕심낸 것은 검이 아닌 사람이었다.


검은 일종의 인질이고. 


“때가 되면 반드시 돌려주도록 하지.”


설화운은 순간 창가에 선 동룡의 등 뒤로 내리쬐는 후광을 보았다.


물론 그냥 달빛이었다. 


“자네 하는 거 봐서.”


‘···아아, 그럼 그렇지.’ 


생각하는 설화운이었으나 조금 전과 달리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그나저나 둘 중 누구지?”


주어 없이 물어오는 말에 짙은 자괴감과 후회, 어렴풋한 희망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눈이 동룡을 향했다.


“자네에게 나에 관한 언질을 준 자 말이야. 소우 선생과 황철산 둘 중 누구냐고.”

“······.”


역시 그것까지 눈치채고 있던 건가. 


설화운은 그저 정황만으로 두 사람을 콕 짚어 추려낸 동룡의 안목에 감탄하면서도,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언질이라니요?”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깜빡 속아 넘어갈 만큼 천연덕스러운 태도였다. 


“방금 자네에게 검이 돌아갈 가능성이 조금 줄어들었네. 대단히 줄면 이 검은 내 것일세.”

“진소우 선생입니다.”


‘미안합니다. 소우 선생.’


속으로 심심한 사과를 전한 설화운이 내막을 털어 놓았다. 


일의 전말을 알게 된 동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있지도 않구만. 왜 스스로 점수를 깎아 먹나?”


황철산은 설화루를 주축으로 한 상인연합과 척을 진 상태이고, 애초에 친분이 없었다면 제 이름을 대라고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크흠, 혹여 선생께 누가 될까 하여···.”

“친분이 아주 두터운 모양이군.”

“제가 설화루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신 분이시거든요.”

“그랬나?”


두 사람은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동룡이 내심 가장 우려했던 진소우와 황철산, 두사람의 어긋난 주장은 다행히 서로 가진 정보의 격차로 인한 오해였다. 


설씨 가문이 멸문한 것은 사실이었다.


정확히는 북해에 머물던 설가의 인물들은 지금으로부터 이십여년 전쯤 모두 죽었다.


‘누구도 내게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당시 가주의 선견지명으로 일찍이 중원의 옥룡산으로 몸을 피한 설화운만이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동룡은 동병상련의 분노를 품은 눈동자를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자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듯 하군.”

“저 또한 소궁주께서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오 그거 잘 됐군. 그럼 바로 준비해줄 수 있겠는가?”

“예?”

“얼큰하니 취기도 올랐고, 이제 슬슬 잠자리에 들고 싶다고 생각하던 참이거든. 못다 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은 방을 좀 준비해주겠나?”

“아···.”


그 쯤 되는 고수라면 삼매진화로 주독을 몰아내는 것쯤은 간단한 일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굳이 표하지 않았다.


사실 누구보다 이 자리를 파하고 싶은 것은 설화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설화운은 곧장 총관을 불러 별관에 침실을 준비하라 이른 뒤 동룡에게 말했다. 


“부디 내 집이라 생각하시고 편히 머물다 가시길.”

“안그래도 그러려고 했네. 그럼 내일 보세.”

“···살펴 가십시오.”


그날 밤 설화운은 몇 병이나 되는 술을 홀로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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