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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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이끼
작품등록일 :
2024.08.0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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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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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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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DUMMY

10화. 근본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설화운은 호기심과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동룡을 따라나섰다.


“그냥 구경이나 하래도. 정 심심하면 옆에서 적당히 추임새나 넣던가.”


동룡이 귀찮다는 듯 일축하자, 설화운도 더 캐묻지 않았다. 궁금증은 곧 풀릴 테니.


두 사람이 본관을 빠져나오자 머리 위로 손톱만 한 눈꽃이 내려앉았다. 


“눈이군요.”

“그렇군, 제법 쏟아질 듯한데.”


두 사람의 시선이 홀씨처럼 천천히 흩날리는 눈송이에 잠시 머무르던 순간이었다.


“하하하! 기세 좋게 달려들기에 그간 진전이 좀 있던가 했더니, 천하의 방혁이 어쩌다 이리 추락했나.”

“말은 바로 해, 이 새끼야. 나는 추락하지 않았다. 우리 애들만 바닥에 있는 거지."

“크흑···. 미안합니다, 방형···.”


설화운을 만나러 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방혁의 으름장으로 조금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던 난투전은 두 번째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 보였다.


방혁을 제외한 설화루의 무인들이 처참하게 바닥을 구르고 있던 것이다.


뚜렷한 승패의 양상을 확인한 설화운이 겸연쩍은 듯 말했다,


“······방 조장이 단련을 과하게 시킨다는 이야기를 제가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피로가 남아 있던 거지요.”

“귀가 빨간데.”

“아직 이곳의 추위에 적응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십년쯤 머물렀다고 하지 않았나?”

“세상엔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있는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설산파가 도가 계열이었던가? 


말하는 게 딱 그쪽인데. 궁색한데, 있어 보인다.


“그런 걸로 하지.”


동룡은 적당히 답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설화루의 무인들을 때려눕히고 합류한 수하들 덕에 방혁과의 일대일 싸움에서 밀리던 부방주에게로 흐름이 넘어간 듯 보였다.


“명색이 무인이라는 자들의 실력이 이렇게 형편없을 수가 있나? 검을 뽑았으면 이거 모양새가 우스워질 뻔했군”


수하들을 등에 업고 한껏 방만해진 부방주가 아니꼬웠는지 방혁이 비꼬았다.


“너는 원래 우스웠고, 지금도 우습다. 수하들을 뒤에 두니 든든하더냐? 중원물을 먹어서 그런가, 배짱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군.”


동룡은 옆에 선 설화운의 어깨가 순간적으로 움츠러드는 것을 보았다. 


“······.”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툭, 말했다.


“중원물?”


─움찔


“중원─”

“···그만하십시오.”


동룡이 악동처럼 낄낄, 웃었다. 놀리는 맛이 있는 놈이다.


“그나저나···.”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흑수방 패거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설화운은 경비조의 실력이 삼류 무사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겸양을 떨었지만 동룡이 보기에 그들은 딱 그린 듯한 삼류 무사였다. 


그들이 지나치게 약한 것이 아니라-


“흑도놈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군.”


설화운이 왜 그들을 처리하지 않고 굳이 두었는지 알 것 같은 대목이었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방주가 바뀐 뒤로 실력이 월장하더군요. 흑수방주가 몇 년 전 섬서에서 악명을 떨치던 흑살귀(黑殺鬼)라는 놈입니다.”


설화운은 그리 말하고는 동룡의 반응을 기대하듯 은근슬쩍 눈을 흘겼다.


동룡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걔가 누군데.”


이놈은 자신이 어느 시대 사람인지 종종 잊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아니?! 흑살귀를 모르십니까?!”


과장스레 되묻고는 그의 출신부터 시작해 벌인 악행을 줄줄이 읊는데, 어딘지 신이 나 보였다.


“종남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바로 파문하고 뿌린 씨 거두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들어보니 대충 몹시 나쁜 놈이라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무공이 좀 근본이 있는.


“그런데 얘가 또 눈치가 보통이 아니라서요. 이제 슬슬 좋지 않게 되었다, 딱 눈치를 채고는 부리나케 새외로 도망을 친 거죠, 그리고 여기 백하촌에 눌러앉은 기존 흑수방주를 단칼에 죽이고는─”


그런데 어째 이야기가 길어진다. 듣다 못한 동룡이 나직이 한마디 했다.


“그놈을 치켜세운다고 너희 애들 수준이 높아지진 않는다.”

“······.”


쟤는 꼭 지 불리하면 입을 다물더라.


착잡한 눈으로 설화운을 보던 동룡이 말했다. 


“되었으니 옆에서 추임새나 잘 넣어라.”


통보하곤 앞장서 걸으며 전황을 살폈다.


설화루 무인 중 거동이 가능한 자는 방학뿐인 듯 했고 흑수방 쪽은 얼굴이 처참한 부방주를 제외하곤 모두 멀쩡했다.


그리고 방혁은 결사항전에 나서는 장군이라도 된 듯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얼굴이 부방주처럼 되고 싶은 놈들은 모두 덤벼라.”


쪽수에 장사 없다고 흑수방의 무인들은 언뜻 보아도 십여명이 넘어가는데 그에게서 곤궁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편 부방주, 피낙수는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쯤에서 적당히 암묵적인 타협을 마치고 물러섰을 텐데, 뭘 잘못 처먹었는지 방혁놈이 오늘따라 유난하다. 뒤늦게 혈기라도 끓는 것인지 거침이 없다.


“너 뒷감당할 수 있겠냐?”


루주의 뜻을 거스르고, 일을 이렇게 크게 벌여도 되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이미 일은 그르쳤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네놈이라도 저승길 동무 삼아야겠다.”


결연하게 말은 하는데 딱히 그에게 승산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방혁의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설화운이 넌지시 말했다.


“제가 뭐 말 좀 안 듣는다고 목숨을 갖고 협박하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당연히 죽이지도 않고요.”

“그렇지만 월봉은 깎겠지?”

“···예, 뭐, 그냥 좀 으름장을 놓은 것뿐이죠.”

“가장에겐 그게 목숨 갖고 협박하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다.”

“방 조장은 아직 혼인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저 나이 먹도록 혼인도 안 하고 뭐 했대?”

“저 녀석이 저렇게 생기긴 했는데 스물다섯 밖에 안 됐습니다.”

“나 때는 열다섯만 되면 다 혼인했는데.”

“그러는 소궁주께선 하셨습니까?”


나? 그야 당연히···.


피식 웃으며 입을 열려던 동룡이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되었다. 옛날 옛적 이야기는 해서 뭐해.”


건수를 잡았다는 듯 눈을 빛내는 설화운을 무시하고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이노오오옴!”


내력이 깃들지 않아 생각했던 것만큼의 웅혼함은 없었으나, 이목을 끌기엔 충분했다. 


“···서, 설루주?”


당황한 방혁이 움찔거렸고, 부방주의 면상에서 의기양양함이 사라졌다.


설화운은 방혁을 잠시 노려보다, 이제 어떻게 할 작정이냐는 듯 동룡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길이 동룡에게 향하자 자연스레 방혁의 시선 역시 옆에선 그에게로 옮겨갔다.


“···!”


삐딱하게 선 동룡을 발견하곤 눈을 반짝인다. 깃든 감정은 외경심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동룡은 기분이 나빠졌다. 


‘왜 저렇게 부담스럽게 봐.’


그때 눈썹을 추욱, 늘어뜨린 부방주가 동룡에게 말을 붙여왔다.


“···소협은 누구시오?”


루주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가 나서지 않자, 단번에 동룡이 주도권을 쥐고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계산을 한 것인지, 본능에 따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읽을 줄 아는 놈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은 대체로 엉덩이가 가볍다는 것을 동룡은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 흑도 나부랭이가 이리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냐?” 



시선은 부방주를 향하고 있었으나, 물음은 그에게 향한 것이 아니었다. 


“화운아, 이놈아. 내가 묻지 않느냐.”


당황한 설화운이 어물거리자 동룡이 못마땅하다는 듯 쯧, 혀를 찼다. 


“객지에서 고생하는 사제 놈 얼굴이나 볼까 해서 걸음 했는데 이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군.”


중원 운남과 북해 백하촌이 산책이라도 나온 듯이 이야기할 만 한 거리감은 아닐 텐데, 그보다도.


─사제라니요? 대체 언제 본문에 적을 올리셨습니까?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설화운의 전음을 무시한 동룡이 부방주를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일대에서 악행을 일삼는 놈들이 있다고.”

“뭔가 오해가 있으신 듯 한데, 저희는 주루를 보호해주고 그에 맞는 재물을 넘겨받는 것뿐이외다, 소협.”

“허, 흑도 나부랭이가 무인 흉내도 다 내고?”


부방주는 동룡의 도발에 말려들지 않았다. 


루주 한 명을 상대하는 것도 여의찮은 마당에 그의 사형제로 추정되는 인물이 개입했다. 



‘저 루주가 꼼짝도 못 하는 걸 봐서는 필시 수준 높은 고수일 것이다.’


방주가 자리하지 않은 이상 그들에게 승산은 없다.


그들이 오늘 설화루를 찾은 것은 방주가 전하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왕 온 김에 용돈이나 벌어갈까 했더니만. 텄군, 텄어.’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것까지 욕심을 부렸다간 화를 피하지 못할 성싶었다.


“행패를 부린 건 사과드리겠소. 문지기가 영 말이 통하지 않는 자라 부득이하게 손을 쓸 수밖에 없었소.”


동룡이 십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부방주는 생각 외로 말이 통하는 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본론을 꺼내 들었다. 


“내달부터 수금일을 보름으로 앞당기고, 기존 상납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방주의 전언이오.”


“···허어?”


삐뚜름한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 순간 부방주, 피낙수는 직감했다. 


‘말이 통하기는 개뿔이···.’


지난 십 년간 흑수방의 방주는 세 번 바뀌었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날에서 항상 부방주였다. 일찍이 실세를 알아보고 줄을 갈아타는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흠.”


···아아. 


피낙수는 저 콧소리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전대 흑수방주가 즐겨했다. 그가 저런 소리를 낼 때면 으레 곁에 있던 수하들의 머리통이 깨져나가곤 했다.


저건 무언가 아주 못마땅할 때 나오는 소리다.


“너 이름이 뭐냐.”

“피낙수라고 합니다.”


자연스레 말투가 지극해졌다.


“부방주라고?”

“예, 그렇습니다.”

“흠. 수금일은 지금까지와 같이. 보호세는 지금의 반. 우리는 정파니까 그 정도면 적당하겠지.”

“설화루의 의견이 그렇다고 방주께 전달하면 될는지요?”

“앞으로 너희가 설화루에 바쳐야 할 돈이다.”


예상하지 못한 말에 피낙수의 사고가 잠시 멈추었다. 



“명맥을 이어가고 싶거든 정직하게 돈을 벌어서 되갚도록 해라.”


─기어이 방주를 잡아 족치려 그러십니까, 소궁주님!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설화운의 다급한 전음이 동룡의 귓전에 울렸다.


“흑살귀인지 뭔지 하는 놈한테 굳이 전할 필요는 없다. 이제부터 네가 방주다.”


동룡의 말이 있고서야 피낙수는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흑수방주를, 흑살귀를 죽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 작자가. 


피낙수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그 말씀은 그러니까 소협께서 저희 방주를 처단하시겠다는···?”

“어찌, 못할 성싶으냐?”


피낙수가 운을 떼자, 동룡이 기다렸다는 듯 공력을 끌어올렸다.


‘이게 무슨···!’


더욱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은 직후였다. 


푸설푸설 떨어지던 눈송이가 허공에서 증발했다.

그저 녹아 없어져 보이지 않게 된 것이 아니었다.


─슷···! 스슷···!


눈송이가 알알이 얇디얇은 증기로 변하여 허공에서 스러졌다.


동룡의 근방에서만 벌어진 기사(奇事)였다.


마치 그의 반경 두 장 내에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열(熱)의 장막이 둘린 듯했다. 


눈을 끔뻑이던 부방주가 길게 읍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열과 성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소협.”


흑수방의 무인들을 하나하나 돌아본 동룡이 별안간 피낙수의 멱살을 잡아챘다. 


“헉!”


잠시 후 치이익, 소리와 함께 은색 수실로 수놓아진 한자가 불타올랐다.


“뒤지기 싫으면 옷은 네 격에 맞는 걸로 입고 다니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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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내가 원하는 건 24.08.11 46 1 14쪽
7 중원인은······. 24.08.10 51 2 14쪽
6 넘쳐나는 것 24.08.10 54 2 12쪽
5 교차검증 24.08.09 57 2 15쪽
4 위천 세가 24.08.09 66 1 15쪽
3 개새끼가 누구냐? 24.08.09 75 2 12쪽
2 귀환 24.08.08 7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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