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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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이끼
작품등록일 :
2024.08.08 09:58
최근연재일 :
2024.08.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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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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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줄

DUMMY

12화. 목줄



동룡은 김총관이 챙겨준 혁낭을 둘러메고 저잣거리로 향했다.


‘보자, 풍운 객잔이라고 했는데.’


어디 객잔이 한두 개여야지.


난감한 빛을 띤 청안이 익숙한 듯 낯선 거리를 향했다. 


‘정말 몰라보겠군.’


그가 기억하는 백하촌은 이렇게 번성한 마을이 아니었다. 총가구가 쉰이 채 되지 않는 자그마한 촌락에 불과했다.


‘저자는커녕 무언가를 사고파는 모습을 찾아보기도 힘들었는데.’


뒤로는 만년설이 수북한 소백산을 두고 있어서 풍광만큼은 나쁘지 않았으나, 그게 전부인 별 볼 일 없는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설씨 가문의 가주가 이 좋은 경치를 썩힐 수는 없다며 주루를 짓겠다 말해왔다.


─중원 진출에 성공하면 교역을 위한 가도가 뚫릴 테니 통행에는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마침 근방에 큰 도시도 있으니 주민들의 살림살이도 한결 나아질 것이고요. 


길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개간되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산간벽지에 객잔도 아닌 주루를 열겠다 하는지 영 탐탁지 않아 하시면서도 결국 인가를 내주셨다. 


‘돈 쓸 구석이 없으니 쓸데없는 일을 키운다고. 먹고살기 바쁜 북해인들이 경치 구경이나 하고 놀러 다닐 리가 있냐고. 이번에야말로 분명 말아먹을 거라고 호언장담하셨었지.’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동룡이었다.


당시의 동룡도 백소천과 같은 생각이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겹게 보아온 설경(雪景)이 대단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설 가주가 선견지명을 발휘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일이 이리될 지 미리 알아보셨던 걸까.’


여하간에 그 옛날 동룡이 처음으로 설화루를 찾았던 날이 바로 개업식이 있던 날이었다.


쓰러질 듯 위태로운 건물이 대부분인 마을에 홀로 번듯한 건물이 그렇게 이질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와 비슷한 이질감을 동룡은 지금도 느끼고 있었다.


‘이거 원, 여기가 북해인지, 중원인지.’


관광차 이곳을 찾은 중원인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던 것이다. 처음 저자에 발을 들였을 때까지만 해도 한산했는데, 해가 나고 추위가 한풀 꺾이자 궁도(宮都) 못지않게 북적거렸다. 


한편에선 그런 중원인들의 발길을 잡기 위한 상인들의 호객 행위가 한창이었다.



구경을 겸해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동룡이 적당히 보이는 호객꾼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시오, 말 좀 물읍시다.”

“뭐요?”


호객꾼이 동룡의 차림새를 훑었다. 그 눈에 미약하게 깃들었던 짜증은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음? 설화루의 무인인가?”


편하게 되묻는 음성에서 느껴지는 것은 호감이었다. 


‘일반적인 반응은 아니군.’


돈도 무엇도 없는 보통의 양민들이 칼을 찬 무인을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은 대개 비슷하기 마련이다.


두려움과 배척. 


물론 그것을 곧이곧대로 내보였다가는 심기 상한 칼에 맞기 십상이라. 


능숙한 자는 감정을 감추고, 어리숙한 자는 조아린다. 


그리고 눈앞의 호객꾼은 둘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설화루 무인의 의복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도 부정적인 내색을 비추지 않는 것은 지금껏 그들이 속되이 손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아가 호감을 비추는 것은 그들의 성정이 모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수하들 통제를 썩 잘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 사람 보는 안목이 있다는 거겠지.’


동룡의 안에서 설화운에 대한 평가가 조금 상승했다.


“설화루에 내가 모르는 얼굴이 없는데, 새로 오신 모양이요?”


굳이 정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동룡이 고개를 끄덕이자, 중년의 호객꾼이 사람 좋게 웃었다. 


“으하하, 역시 그랬구만! 앓는 소리를 그리하더니만, 방 조장이 설 루주를 기어이 이겨 먹었군! 그래 뭣이 궁금하쇼?”

“초행길이라 길을 찾지 못하고 있소, 풍운 객잔이라고 들어보셨소?”

“아아 우리 마을이 넓지 않은데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많아서 좀 복잡하긴 하지. 저쪽 골목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돌면─”


호객꾼은 손발 짓을 섞어가며 정성스레 위치를 일러주었다.


다행히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알려줘서 고맙소.”

“마침 우리 가게가 풍운 객잔 건널목에 있으니, 시간 나면 한번 들르시오, 계사면 한 그릇 시원하게 말아줄 테니.”


호객꾼과 헤어진 동룡은 곧장 풍운 객잔으로 향했다.


‘이리 구석진 곳에 있으니 못 찾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생각 외로 객이 많았다. 


빈자리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


내부를 둘러보며 면면들을 살피는데 열두어살쯤 되어 보이는 점소이가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소협. 지금이 한창 중반 때라 남는 자리가 없습니다···.”


허리에 찬 검 때문인지,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였다.


“괜찮다. 일행이 있으니.”


동룡은 걱정할 것 없다는 듯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구석 한자리를 가리켰다.


“저 덩치가 먹는 거랑 같은 걸로 내오거라.”

“예, 옙, 알겠습니다!”


동룡은 동전을 건네고 구석자리에서 식사 중인 덩치가 있는 탁자 옆으로 가 섰다. 


“음?”


갑작스레 드리운 그림자에 황철산이 눈을 치떴다. 입에는 흡입하던 면발이 고스란히 걸린 채였다. 


“···커흡, 컥!”

“눈 좀 예쁘게 떠라.”


동룡은 사레가 들려 컥컥대는 황철산을 개의치 않고 맞은 편에 앉았다.


“음식은 좀 씹어서 삼키고.”


식탁 한편에 빈 그릇 두어개가 겹쳐 있는 것을 본 동룡이 혀를 쯧쯧 찼다.


“새 주인이 굶기느냐?”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던 황철산이 소심하게 반박했다. 


“···궁도까지 가려면 든든히 먹어둬야 해서 그렇습니다.”

“지금 양껏 먹어둔다고 저녁때 밥을 안 먹지는 않을 텐데.”

“거, 별안간 어디서 튀어나오셨는지는 몰라도, 얼굴 보자마자 잔소리부터 늘어놓으십니까?”

“내가 이런 걸 좀 못 견딘다. 방계라고는 하나 네 놈도 어엿한 세가 출신 아니더냐? 마땅히 지켜야 할 품위라는 게 있는 것을···.”


황철산이 입맛이 뚝 떨어졌다는 듯 젓가락을 놓았다. 


“다 처먹어라. 어디 음식을 남겨.”

“제가 제 돈 주고 산 음식 남기지도 못합니까!”

“그 돈이 왜 네 돈이냐. 귀천하신 궁주님 돈이지.”


저기다 더 말을 더해보아야 제 심신만 고달프리라.


황철산은 놓았던 젓가락을 슬그머니 다시 들며 물었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닌 척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는 있으나 내심은 달랐다. 


‘설화루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하루도 안 돼서 날 찾았지?’


헤어지기 직전 내달 그믐에 진소우의 오두막에서 보자는 약조를 했었으니, 분명 설화루에서 심경의 변화가 있을 만한 일을 겪었다는 뜻인데. 


그렇지 않아도 그의 직속상관이자 궁의 총관인 제갈웅이 주루를 눈여겨보고 있던 터라 궁금증이 컸다.


“너 나한테 구라친 거 있지.”


동룡은 점소이가 내온 계사면 그릇을 받아들며 여상스레 물었다.


“그야 당연히, 후루룩···.”


어투가 평이하여 안부라도 묻는 줄 알았던 황철산이 뒤늦게 제 입을 면발로 틀어막았다. 


“당연히, 없죠, 주루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으셨길래 이러십니까?”

“흑살귀.”


동룡은 그 한마디만을 내뱉고는 별다른 내색도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


황철산도 그릇을 들고 육수를 들이켰다. 다만 그는 동룡처럼 편치 못했다.


큼지막한 그릇에 가려진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까맣게 잊어버렸다!’


일부러 숨기고자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굳이 말할 계제라 생각지 못한 것뿐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거짓을 말한 게 되어버렸다.



‘아니지, 굳이 따지면 거짓말은 아니지, 누락이지.’


어찌 사람의 기억력이 완벽할 수 있겠는가?


그 찰나에 궁색한 핑계를 마련한 그가 그릇을 내려놓던 순간이었다. 


“그놈 죽이려고, 내가.”

“푸흡!”


가까스로 동룡의 얼굴에 국물을 뿜는 화를 면한 황철산이 버럭 외쳤다.


“안 됩니다!”


굳이 자신을 찾아와 흑살귀의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은 그가 흑도와 빙궁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말이다. 



어쩌다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됐는지는 황철산으로선 알 길이 없었으나 그들이 이곳에서 변을 당하면 제갈웅이 어떻게 나올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다 빙궁에 공자님의 존재가 들키기라도 하면 어찌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자중하셔야 할 때입니다.”


물론 지금 황철산이 걱정하는 것은 동룡의 정체가 들키는 것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그 자신의 신변이었다. 


그가 뻔히 이곳 백하촌에 있다는 것을 아는데, 흑수방에 변고가 생기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겠는가?


“······.”


그런데 어찌 이쯤이면 응당 돌아와야 할 이죽거림이 없다.


표정을 살폈다. 동룡이 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다는 듯 한심한 눈빛.


기분이 더러웠다.


그리고 황철산은 최근 언제 이런 기분이 들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누군데?


“······물론! 공자님이 어디의 어떤 분인 줄은 저조차도 모르지만! 그래도 눈에 띄는 짓은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서둘러 덧붙였는데 분위기가 묘하다.


동룡의 눈길이 거두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빛이 꺼지면서 가라앉는 것이···.


“너 이 새끼, 내가 누군지 아는구나?”

“······.”


황철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시냐고, 이름 석 자도 말씀해주지 않지 않으셨냐고, 


되묻기에는 동룡의 허리춤에 걸린 휘황찬란한 검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컸다. 


뚫어져라 황철산을 노려보던 그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생각만큼 멍청한 놈은 아니라서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연기한 낯짝을 뭉개버려야 할지.”


중얼거리다 손을 내젓는다.


“되었다. 계속 그렇게 시치미 떼거라. 너는 나를 모르는 것이다. 어느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물어도.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어간다. 


“나는 설산파 백동룡이다.”

“······.”

“내가 누구라고?”

“서, 설산파 백동룡···?”


***



한 사람만 불편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이 객잔을 빠져나왔다. 


“한데 정말 흑살귀를 죽이실 겁니까.”

“응.”

“제갈웅이라는 총관이 제 직속상관이라 일전에 말씀드렸지요? 그가 이 산골 마을에 흑도를 데려다 앉혀 둔 것은 이곳에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그것을 높은 확률로 설화루라고 보고 있고 말입니다. 흑수방에 변이 생기면 본격적으로 파고들고자 할 것입니다.”


어디의 누구랑 똑같은 소리를 하네.


“내가 언제 흑수방을 친다고 그랬냐? 흑살귀를 죽인댔지.”

“···그 말이 그 말 아닙니까?”

“흑수방은 피낙수라는 놈이 계속 운영할 거다.”


곰곰이 생각하던 황철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요. 묘안입니다. 하극상이야 흔한 일이니 제갈웅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피낙수는 분수를 아는 놈이니, 적절하게 눌러주고 숨길을 터 주면 욕심을 부리지도 않을 것이고요.”

“그놈을 아는 모양이지?”


황철산이 멋쩍게 웃었다.


“아무래도 엮일 일이 좀 있다 보니···.”


사실 동룡에게 전낭을 몽땅 빼앗긴 그가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찾은 곳이 흑수방이었다.


피낙수는 아마 빈 곳간을 다시 채우고자 설화루를 찾아갔다가 동룡을 마주친 것이리라.

 

황철산이 돌아가는 전말을 깨달은 그때 동룡이 말했다.


“안면이 있다니 다행이군.”

“뭐가 다행입니까?”

“흑수방으로 가서 열흘만 묵었다가 가라.”

“애들 먼저 보내놔서 말미가 있긴 한데, 제가 거길 왜요?”


황철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으나 언제나 그랬듯 동룡은 그의 궁금증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애들 정신 교육 좀 시켜두고 가.”


멀리 있는 궁주보다야 옆에 있는 설화운이 무서울 것이고, 옆에 있는 설화운보다야 앞에 있는 미친개가 더 무서울 것 아닌가.


저래 봬도 궁에서 온 놈이니 명분도 설 것이고. 


“설렁설렁하면 안 돼. 걔네 업보가 네 업보가 될 테니까. 연대책임 뭐 그런 거.”


동룡은 황철산의 답을 듣지도 않고 등을 돌렸다.


‘정신교육···? 연대책임···?’


챙긴 봇짐과 함께 덩그러니 서 있던 그가 비로소 뜻을 이해한 것은 동룡의 신형이 인파에 뒤섞여 보이지 않게 된 뒤였다. 


“이걸 이렇게 떠넘긴다고···.”


중얼거림만이 황망히 맴돌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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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무재 24.08.13 27 3 13쪽
11 근본 24.08.12 30 2 12쪽
10 흑도 24.08.12 29 2 11쪽
9 새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다. 24.08.11 38 2 14쪽
8 내가 원하는 건 24.08.11 46 1 14쪽
7 중원인은······. 24.08.10 51 2 14쪽
6 넘쳐나는 것 24.08.10 53 2 12쪽
5 교차검증 24.08.09 57 2 15쪽
4 위천 세가 24.08.09 66 1 15쪽
3 개새끼가 누구냐? 24.08.09 74 2 12쪽
2 귀환 24.08.08 71 1 13쪽
1 서장 +1 24.08.08 10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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