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베는 달빛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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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08 16:32
최근연재일 :
2024.09.1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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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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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마크 찾습니다.

DUMMY

고즈넉한 밤의 장막이 하늘을 가린 저녁.

제국의 수도 칸다르.


"주점에서 한잔 할까? 페어리에 좋은 술이 들어왔대."

"하하! 거봐, 나는 그 놈이 수잔에게 대차게 까일 줄 알았다니까."

"어? 못 보던 과자점인데? 새로 생겼나봐."


아침의 찬란한 햇빛 대신 화려한 마법등이 밤거리 곳곳을 밝히는 가운데, 각자의 이유로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사이로 나는 마크와 함께 걸었다.


"그 와인이 그렇게 맛있어요?"

"왜? 궁금해? 나중에 한 모금 해볼래?"

"아니요. 괜찮아요."

"에이, 싱겁게."


마크가 한 손에 들고 있던 포장된 와인병을 가볍게 흔들었다.


"파티 주인공이 술을 안 마신다니.."

"아니, 삼촌. 저 미성년자에요."

"그러니까 말이야. 성인이 되기 전에 믿을 만한 보호자와 함께 술 마시는 예절을 배워야 하는데.."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마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가면 속 내 시선을 느낀 마크가 흔들던 와인병을 내렸다.


"뭐, 싫으면 말고."

".. 그럼 이제 바로 거기로 가는 거죠?"

"그래, 살 것도 샀으니 이제 출발하자."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밤거리의 소음이 우리를 감쌌지만, 그 속에서도 마크와 나는 조용히 이런 저런 대화를 이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말레아의 안식'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였다.


"확실히 뒷골목 보다는 광장을 가로지르는 게 빠르긴 하네요."

"그렇지? 그러고 보니까 이제 사람들 틈에서도 말을 꽤 잘하는 거 같다?"


나는 쓰고 있는 가면을 매만졌다.


"이제는 사람들이 룬베리로 보이는 게 꽤 익숙해졌나봐요."

"그래, 점점 이렇게 익숙해지다가 나중엔 가면 없이도 생활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거야."


가면 없이 생활하는 날이라..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네요."

"분명 그럴 수 있을거야. 지금도 봐, 처음을 생각하면 정말 큰 발전이잖아."

"전부 다 가면.. 아니, 삼촌 덕이죠."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감사해요."

".. 감사는 무슨."


마크가 뻘쭘한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어느새 눈앞에 놓인 여관 문을 향해 다가섰다.


"가자, 다들 기다리겠다."

"네."


* * *


아카데미 합격 기념 파티는 이전의 저녁 식사 자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탁에 둘러앉아 말레아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맛보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 으음."


오늘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마크가 가져온 와인을 마셨다는 것.


".. 언니,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

"어휴, 그러니까 맛있다고 그렇게 막 마시지 말라고 했잖아."


처음 마셔본 술에 어느새 취한 마리아를 보며 말레아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일단 올라가자. 마크 씨,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니."


마크가 테이블 중앙 바구니에 놓여 있던 무화과 하나를 집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사도 얼추 끝난 것 같으니 우리도 이만 가보는 게 좋겠어."


나 역시 식사를 마치고 세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들으며 언제쯤 갈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크의 말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좀 더 이야기하다 가시지 그래요? 마리아만 잠깐 방에 데려다 놓고 금방 내려올게요."

"괜찮아. 말레아, 너는 마리아부터 챙겨. 음식은 맛있게 잘 먹었어."


말레아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마크와 나는 현관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도착하자 마크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아, 케빈. 먼저 나가서 기다릴래? 말레아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깜빡했네."


나는 짧게 '네'라고 답한 뒤 밖으로 나왔다.

여관에 들어설 때보다 서늘해진 밤공기가 가면 속 내 얼굴을 스쳤다.


"후.."


숲을 떠난 지 이제 겨우 2주 조금 지났을 뿐인데, 왜인지 아주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때는 참..'


마리아가 합격 통지서를 들고 찾아온 날.

나는 시험에 불합격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당황하며 자리를 떠나자마자 내 합격 통지서가 도착했었다.


'만약 불합격이었다면..'


그랬다면 지금쯤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나는 저 멀리 부모님이 계신 숲이 있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분명 다시 숲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행복하고 평범한 일상을 맞이했겠지.


"어딜 그렇게 보는 거야?"

"헛."


갑작스러운 마크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어느새 여관에서 나와 내 옆에 서 있었다.


"아... 그냥 뭐..."


나는 말을 얼버무리다 물었다.


"그런데 언제 나오셨어요? 문 열리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언제 나오긴, 방금 나왔지."


마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더니 내 어깨를 툭 쳤다.

그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완전 딴 세상에 있었나 보네. 그럼 이제 갈까?"

"네."


우리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 없는 밤거리는 조용했고, 가로등 불빛이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리고 걸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레아 씨에게는 무슨 말을 하고 오신 거예요?"

"아, 그거?"


마크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깍지 낀 양손을 뒷통수에 가져다댔다.


"안 그래도 이제 그것에 대해 말하려고 했어."

"네?"


말하려고 했다고? 무슨 이야기지?

나에 관한 건가? 아니면 아카데미?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마크 입에서 나올 말을 유추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내일을 수도를 떠날 거야."


* * *


마크가 떠난지 5일 째 되는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일찍 일어난 나는 식탁에 홀로 앉아 벨이 차린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순식간에 아침을 해치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소파로 향했다.


"벨."


내 부름에 그릇을 치우던 벨이 곧바로 내 곁으로 다가왔다.


"홍차 한 잔 내려줘."


벨이 순식간에 홍차를 내려 내 앞에 놓았다.

나는 따뜻한 홍차 잔을 들어 천천히 홀짝였다.


"음.."


이제는 익숙해진 홍차 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 향기에 문득 마크가 떠오른다.


'삼촌은 지금쯤 어디에 계시려나..'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마크가 떠난 지 벌써 5일.

그는 밀린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고만 했을 뿐,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올지 말하지 않았다.


"밀린 일들이라.."


하긴, '떠돌이 보부상'인 만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할 일이 많을 테지.

아마도 하나뿐인 조카 입학 때문에 그 일들을 미뤄둔 것일 테고.

마크가 없는 집이 조금은 휑한 느낌은 들었지만 괜찮다.

과거 혼자 지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그래, 혼자 있는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다.


'아, 엄밀히 말하면 벨과 함께 있는 거니까 혼자는 아니려나?'


그런 생각과 함께 어느새 비운 찻잔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띵띵띵띵-


현관문의 호출종 소리가 들려왔다.

마크에게 미리 들은 바가 있었기에, 나는 가면을 쓴 뒤 현관문 앞에 섰다.


".. 누구세요?"

"케빈 씨! 저 마리아에요!"


역시, 예상대로 마리아였다.


".. 잠시만요."


나는 대답과 함께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양손에 커다란 바구니를 든 채 서있는 키 작은 룬베리가 눈에 들어왔다.


"반가워요!"

".. 네, 저도 반가워요."

"다름이 아니라, 이거 언니가 보낸 건데.. 일단 받으세요!"


마리아가 바구니를 내밀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바구니 틈새로 여러 식재료들과 반찬으로 보이는 음식들이 살짝 보였다.


"별 건 아니고, 식사하실 때 드실 몇 가지 반찬들과 식재료들이에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말레아가 신경써줄 거라고 하더니..

마크는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인 듯했다.


나는 받아든 바구니를 잠시 내려놓은 뒤, 꾸벅 고개를 숙였다.


".. 감사합니다."

"에이, 반찬은 언니가 한 거고 저는 그냥 오기 전에 장만 조금 본 거밖에 없는 걸요."

".. 그래도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그나저나 혼자 있기 심심하지 않아요?"


아, 불편하다.

파티 때야 마크와 말레아가 대화를 주도해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마치 입학 시험에서 기계적으로 대답했던 때가 떠오른다.


".. 네,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괜찮으면 같이 밖에 놀러가지 않을래요?"

".. 제안은 고맙지만 죄송합니다."

"아니, 그래도 학과는 다르지만 어떻게 보면 같이 입학하는 동기인데 동기끼리..."


아, 느껴진다.

이대로라면 이 대화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마리아 씨."


마리아의 말을 끊자, 손짓을 섞어가며 말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네?"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죄송합니다."


쾅-


예상보다 큰 소리에 나도 놀랐다.

이렇게 세게 닫을 의도는 아니었는데.


".. 케빈 씨?"


닫힌 문 너머로 마리아의 혼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나 챙겨주러 온 사람인데..

이건 좀 심했나?


* * *


시간이 흘러 어느새 입학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띵띵띵띵 -


호출종 소리에 나는 연공 중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누구지?'


마리아는 아닐 것이다.

얼마 전에 먹을 것을 들고 찾아왔었던 데다, 항상 오후가 아닌 아침에만 방문하니까.

하지만 마리아가 아니라면..


"케빈 씨, 저 마리아에요."


예상을 벗어난 목소리에 나는 현관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엥? 마리아? 무슨 일이지?'

한 번도이 시간에 온 적이 없었는데..


뭐 어쨌든, 방문객이 마리아라는 걸 안 이상 밖에 세워둘 순 없었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으로 향했다.


덜컥-


"무슨 일.. 엇?"


문을 여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리아가 빠르게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깜짝 놀란 나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쾅-


마리아가 등으로 문을 밀치며 닫더니 나를 올려다봤다.


"케빈 씨,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가득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현관문 너머에서 나를 부르던 마리아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가라앉아 있었던 것을.


"혹시 제가 케빈 씨에게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 그런 거 없는데요."

"그러면 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에요?"

"뭐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마리아가 한 발짝 나에게 다가섰다.


"신경 써서 음식 들고 왔는데, 문을 쾅 닫으면서 쫓아내다시피 하질 않나. 대화도 거의 안 하고 빨리 돌아가라는 듯이 눈치주질 않나."

"..."

"심지어 오늘은 제가 가져온 음식을 그냥 현관에 두고 가라고 하셨잖아요. 마치 저와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요."

"..."

"말로만 고맙다 하시면서, 행동은 싫어하는 사람한테나 할 법한 짓 아닌가요?"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저는.. 그저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리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니 울음을 참고 있는 듯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딱 하나였다.


".. 죄송합니다."

"또, 또 그러시네요. 죄송하다고 말로만 하잖아요. 저는 케빈 씨가 진심으로 미안해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


정말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부탁한 적은 없지만, 여태 좋은 마음으로 나를 챙겨준 마리아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집나간 삼촌이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마리아를 보며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뭘요."

".. 제가 했던 행동들로 마리아 씨가 상처받으셨다는 걸 알아요. 그리고 그 점에 대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어떻게 하면 제 진심을 믿어주실 수 있을까요?


내 말에 마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진짜예요?"

".. 네?"

"미안하다는 말 진짜냐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네."

"그럼 제 부탁 하나 들어주세요."

".. 어떤 부탁인데요?"

"미안하다는 거 진심이 아닌 게 분명하네요.. 들어준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아니, 무슨 부탁인지 물어볼 수는 있는 것 아닌가!

라고 하기엔 이미 내가 저지른 일들이 있었다.


".... 들어.. 드릴게요."

"정말이죠?"


조금 전까지 흐느끼던 마리아의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졌다.

그녀의 어깨가 펴지며 자세도 달라졌다.

아, 느낌이 안 좋은데..


"제 부탁은.."


마리아가 말을 꺼내기 시작했고, 그녀의 말이 끝나자 나는 저도 모르게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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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나간 마크 찾습니다. NEW 12시간 전 4 0 13쪽
13 노인과 문양 24.09.14 10 0 12쪽
12 강한 상대를 이기는 법. 24.09.11 18 0 13쪽
11 변상각 24.09.06 16 0 12쪽
10 주제 모르는 자의 말로 24.09.03 17 1 13쪽
9 시험 시작? 24.08.29 30 1 11쪽
8 수박 파티 24.08.26 24 1 12쪽
7 어머니, 우리 어머니 24.08.23 35 0 12쪽
6 제국으로 24.08.22 31 1 11쪽
5 이별 24.08.20 29 1 14쪽
4 네? 뭐라고요? 24.08.16 40 1 13쪽
3 괴물은 누구? 24.08.14 34 1 13쪽
2 케빈 24.08.13 48 1 13쪽
1 프롤로그 24.08.09 7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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