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흑마법사의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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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농부
작품등록일 :
2024.08.1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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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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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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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거미산의 여왕(1)

DUMMY

#4화. 거미산의 여왕(1)


암반 지대는 미끄러웠다.

습하고 축축했으며 이끼류가 잔디처럼 자랐다.

둘러보다 얇고 비스듬히 세워진 암반 지형 아래에 틈새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겨우 비집고 들어갈 만한 작고 좁은 틈.

내부는 깜깜해서 겁 많은 사람이라면 선뜻 들어가기 주저할만한 공간이었다.

물론 나는 겁이 없는 편.

두려움은 실천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불과하다는 걸 어려서 깨달은 덕이었다.

게다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저 안에서 나네.’


바닐라 향이었다.

진하고 달콤한 향기.

아이스크림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바위 틈새 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틈은 통로였는데 한참을 가다 보니 빛이 들어오는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 공간 안에 시체가 있었다.

그것도 천장의 거미줄에 돌돌 감겨 매달린 채로.

바닐라 향은, 저 시체가 풍기고 있었다.

보자니 착잡하더라.


‘시체에서 바닐라 향을 맡다니.’


다행히도 맛은 없어 보였다.

후각은 이미 정상을 떠났으나 입맛은 변치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일단 거미줄을 제거해야겠다.

브리드를 일으켜 천장을 가리켰다.

이심전심.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인 브리드가 벽을 타고 천장의 거미줄을 끊었다.

힘없이 떨어지는 시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다 정체를 파악했다.


‘흑마법사군.’


부패된 시체였다.

가느다란 힘줄에 겨우 붙은 눈알이 두개골에서 튀어나와 덜렁거렸고 검게 썩은 피부는 밀가루 반죽처럼 흘러내렸다.

벌레들의 좋은 먹잇감인데 한 마리도 없었다.

미물조차 흑마력을 피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여기서 죽은 걸까?

궁금증이 이는 가운데 브리드가 꾸준히 거미줄을 갉아 먹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전신.


“거미?”


인간의 사지가 아니라 거미의 몸체가 달렸다.

머리만 사람인 사실상 거미형 인간.

이런 부류를 알았다.

대악마 수르네아의 하수인.

쾌락 군주의 수족이자 거미 여왕이며 지배와 통솔. 그리고 여러 전투 능력을 겸비한 무장의 악마였다.

설마 여기서 그 하수인을 볼 줄이야.

그렇다면 성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여자 흑마법사였네.’


악마 수르네아의 권능은 여성만이 부여받을 수 있었다.

남자는 그저 번식용 도구에 불과한 노예.

차별적이었으나 알을 낳아야 하는 의무를 받느니 안 하는 게 낫다.

살펴보니 배 주머니가 뚫렸다.

구멍 난 양말처럼 뜯겼는데 아마도 결정적 사인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수르네아의 권속을 얻다니 횡재했군.’


이젠 내 차지.

죽은 흑마법사를 가리키자 브리드가 포식을 시작했다.


사각! 사각!


다리부터 시작하여 배 주머니, 몸통, 머리까지.

식사를 마치자 바룬어가 나타났다.


[고치 창자]

[주인의 각인]


그것도 두 개나.

절로 주먹을 쥐었다.


‘역시 수르네아의 권능이야. 하나같이 뛰어나다.’


고치 창자.

사냥한 대상을 고치로 감싼 뒤, 생체를 녹여 마력 정수로 변환하는 흑마법.

그리고 주인의 각인은 정신 조작.

마력. 그리고 사냥개를 필요로 하는 내게 있어 더할나위 없이 안성맞춤인 구성이었다.

절로 호감이 올랐다.

그러니까 악마 수르네아.


‘권속이라도 만나면 잘해줘야겠다.’


물론 흑마법사끼리 마주쳐봤자 서로 잡아먹겠답시고 싸우겠지만.

보상은 끝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브리드가 내 몸으로 스며들자 낯선 기운이 전신을 휘감았다.

나는 이 기운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마력이구나.’


앞서 맡았던 바닐라 향이 체내에 감돌았다.

가늠해 보니 최소 열 번의 흑마법을 쓸 수 있는 양.

횡재였다.

이곳을 보물 창고라 불러도 될 정도로.

흑마법사의 무덤을 털었다.

이제는 떠날 시간.

나는 좁은 통로로 이동하다 죽은 흑마법사가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수르네아의 권속이라....’


시체의 기원이 궁금했다.

할 수 있으면 알아보자.

물론 당분간은 바빠질 예정이다.

곧 패밀리의 조직원들이 온다.

사냥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칼슨 고아원의 아이들은 나를 포함해 총 서른.

성별은 남자 스물셋에 여자는 일곱 명이다.

연령대는 대략 일곱 살에서 아홉 살.

대개 어린 나이에 입소했고, 여기에 온 이상 일 년을 넘길 수 없으니 아홉 살 이상의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내 나이가 열 살이다.

원장의 권위를 유지하려면 연장자가 유리한 법.

아이들은 한 살이라도 많으면 꿈뻑 죽었다.

물론 의혹이 없지는 않았다.


“원장님은 열 살인데 왜 작아요?”

“못 먹어서 그래.”

“저도 그랬어요. 세 살 때부터 하루에 한 끼 먹으면 다행이었고 그나마도 나눠 먹거나 빼앗겼어요. 하루는 막내가 사라졌는데 그 날 마을 어른들은 고기를 먹었어요. 며칠 후에 엄마가 저를 데리고 달아났는데 사람들에게 잡혀서 돌아가셨어요. 저는 계곡 아래로 떨어진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요즘 귀가 시끄럽다.

틈만 나면 내 옆에서 쫑알거리는 에이린 때문인데, 아이들 가운데 유독 나를 쫓아다녔다.

어제는 밤중에 내 침대에 들어오더라.

악몽을 꿨다나 어쨌다나.

무서워하는 것 치곤 코까지 골았다.

몹시 귀찮은 아이였다.


“그런데도 저는 원장님보다 큰걸요?”

“아이마다 크는 속도가 달라.”

“그럼 원장님이 제일 느려요? 우리 중에 가장 작잖아요.”

“루벤보다는 커.”

“루벤은 여섯 살이에요.”

“........”


귓등으로 흘리고 식사에 집중했다.

오늘은 토끼 수프.

창고의 식량이 다 떨어져서 곤란하던 차에 운 좋게 토끼가 잡혔다.

토끼를 잡은 장본인 빈센트의 어깨도 올라갔고.

갈색 머리를 쓸어 넘기며 위풍당당하게 돌아다니더라.

아이들에게 맛있냐며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니면서.

뿌듯할만하지.

오늘만큼은 빈센트가 고아원의 영웅이었다.

토끼 수프는 맛이 있었다.

조미료의 왕은 누가 뭐래도 소금.

적당히 먹다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나를 빤히 보던 에이린이 재잘거렸다.


“왜 고기는 안 먹어요? 일부러 많이 넣었는데.”

“배불러.”

“그러면 안 돼요. 고기를 먹어야 키가 커요.”

“나 대신 크렴.”


그릇을 에이린에게 건네며 일어났다.

멀리서 정찰을 나간 한슨이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다급한 표정을 보건대 뭔가를 발견한 모양.

내게 다가온 한슨이 보고했다.


“사람들이 오고 있어요.”

“어디쯤이지?”

“제가 처음 발견했을 때는 산 초입이었어요.”

“그래.”


거미 무덤을 발견한 후. 이틀이 지났다.

오늘은 패밀리의 조직원이 오는 날.

예상대로 나타났고 이제 내가 나설 차례였다.

사람들이 등장했다는 보고가 아이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화기애애하던 식사 자리가 순식간에 얼어붙더라.

긴장의 시선들이 화살처럼 내게 꽃혔다.

나는 그저 자루를 챙겼다.

환각초의 가루가 담긴 자루를.

에이린이 떨리는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할 거예요?”

“맞이해야지.”

“네? 맞이한다고요?”

“그래. 식량을 가져올 거거든.”

“.....싸우지 않아요?”

“안 싸워.”


싸울 수가 없었다.

이틀 동안 곰 한 마리를 또 잡았다.

그래서 싸우면 승산이 없었다.

내가 아닌 저쪽이.


“내가 부르기 전까지 아무도 목책에서 나오지 마.”

“네.”


한슨에게 지시를 내린 뒤, 발걸음을 옮겼다.

걱정스러운 시선이 쏟아졌으나 쓸데없는지라 무시했다.

목책의 입구를 나오면 오솔길이 굽이굽이 이어졌다.

수레가 다니는 길목.

이 길을 내려가다 보면 패밀리 조직원들의 보급 수레와 마주칠 터.

그 전에 할 게 있다.

나는 마법을 일으켰다.


‘검은 향.’


흔적을 찾아야 한다.

내가 심어놓은 안배를.

가다 보니 바닐라 향이 스쳤다.

진원지로 향하니 지형이 떠올랐다.

덤불 안에 있었다.

그러니까 나의 새로운 무기.

접근하며 말했다.


“나와.”


부스럭!


말이 끝나기 무섭게 커다란 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몸 곳곳이 부패되어 녹은 채로.


크르르르!


낮은 울음을 흘린 역병곰이 납작 엎드린다.

사역한 곰이었다.

일전에 얻은 주인의 각인으로.


“가자.”


명령에 역병곰이 움직인다.

이제 서두르자.

내가 습득한 주인의 각인은 한계가 명확했다.

마법의 수준이 높지 않아 영구적이지 않았고 마력이 고갈되면 사역도 풀렸다.

무엇보다도 부릴 수 있는 명령 체계가 부족했다.

그저 이동과 공격.


‘물론 지금은 충분해.’


하나 후일을 생각하면 부족했다.

내가 보유한 마법들을 진화해야 한다.

흑마법은 단점이 많았으나 장점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마법의 진화 및 강화.

기초적인 흑마법조차 개량하면 절세의 마법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오늘은 그 대가를 치르는 날.

때마침 희생양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푸르륵!


가다 보니 투레질 소리가 들려온다.

왔구나.

다가가는 중에 낯선 목소리들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빌어먹을 더워 죽겠네. 그나저나 아무리 식인곰의 서식지라지만 사람이 너무 없는데? 하다못해 사냥꾼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곰 가죽이 제법 비싸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솔락 형님은 뭐 아시는 거 있습니까?”

“민담이 무서운 법이지. 예전에 사악한 마녀가 여기에 살았다며 얼씬도 안 한다더라. 사냥꾼들이 마녀에게 잡아먹혔다는 소문도 제법 있고.”

“예에? 마녀요?”

“아니, 그럼 단순히 우스갯소리가 아니잖아? 왜 하필 마녀 있는 데다 헬피를 재배하는 거야?”

“이 멍청한 놈들아, 카작에 교단이 몇 개나 있는 줄 아냐? 마녀는 얼어죽을. 그저 촌부렁이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지. 게다가 이만한 곳도 없어. 도시와 가까운 노른자 땅은 방귀 좀 뀌는 놈들이 벌써 먹은 지 오래란 말이다.”

“하긴, 이만하면 썩 괜찮은 곳이긴 하죠.”

“그럼 마녀는 헛소문이라는 거지?”

“이 새끼가 당연한 소릴.....누구냐!”


제이미의 말대로 세 명이었다.

문신 대머리, 밤톨. 그리고 텁석부리.

쉬고 있었고 나귀 두 마리와 식량이 담긴 수레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가 흥미로웠다.

마녀라니.

앞서 본 수르네아의 권속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

반면, 저들은 나를 보자마자 혼비백산한 얼굴로 무기를 챙겼다.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며.


“미친! 저 흉측한 건 뭐야!”

“너, 너 누구야! 저건 뭐냐고!”

“씨, 씨발! 가까이 오지마!”


역병곰을 보자마자 경악하는 세 사람.

반쯤 녹은 얼굴 가죽 아래로 송곳니가 훤히 드러난 역병곰이 으르렁대니 여간 섬찟해 보이는 게 아니다.

나는 역병곰에게 명령했다.


“죽여.”


크아아아앙!


기다렸다는 듯이 역병곰이 자리를 박찼다.

동시에 비명이 터졌고 순식간에 혼전이 일었다.

결과는 뻔했다.

장한들은 한 체격 했으나 그렇다고 잘 훈련된 전사는 아니었다.

본능과 감각에 의지하며 싸우는 길거리 싸움꾼.


“아아아악!”

“내 팔! 내 파아아알!”

“살려줘!”


본능만 믿고 싸우는 하루살이들이 곰을 상대할 수 없다.

사지가 날아가고 비명이 터졌다.

순식간에 전투 종료.

에이린에게 말한 대로였다.

싸우지 않았다.

단지, 사냥했을 뿐.


“그만.”


대머리 장한의 배를 물어뜯는 역병곰을 제지했다.

본능을 가로막자 으르렁거렸으나 쳐다보자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물러난 자리로 드러난 세 사람의 상세는 심각했다.

대머리는 복부가 찢겨 내장이 드러났고 밤톨은 사지가 날아갔다.

텁석부리는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상태고.

이래서 곰이 위험하다.

그간 고아원이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천운이었다.


“쿠, 쿨럭! 사....살려......살려줘.”


밤톨은 살아있었다.

피를 게워내며 애원하길래 다가가 들고 있던 자루를 열었다.

창고에 있던 환각초였다.

곱게 빻아 가루 상태였고.


“약 줄게. 입 벌려.”


그러니까 마약.

밤톨이 입을 벌린다.

그 안으로 가루를 한가득 넣었다.

다 삼키면 또 가루를 넣었다.

약에 취해 죽을 때까지.


“끄르르륵!”


눈을 까뒤집은 밤톨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

이내 입에서 붉은 거품이 보글보글 일더니 곧 경직된 채 숨을 거뒀다.

나는 브리드를 불렀다.

포식이 이어졌고 바룬어가 나타났다.


[욕망의 환영]


전과 같은 마법.

잘못 나타난 게 아니었다.

일부러 유도했다.


‘고작 한 명으로 진화하긴 어렵지.’


흑마법이 진보하려면 많은 희생양이 필요했다.

이번 작업이 그 일환.

그래도 습득한 정보에서 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촤아아악!


브리드가 돌연 보자기처럼 제 몸을 넓게 펼치더니 나를 감쌌다.


퍽!


뭉툭한 소리.

보자니 화살이었다.

누군가 하니 수레의 식량 더미 위에서 얼굴을 내민 남자가 쇠뇌로 겨누고 있었다.


“으으으!”


막혀버리자 질린 얼굴.

한 명이 더 있었네.

나는 주저 없이 마법을 날렸다.


‘욕망의 환영.’


방금의 작업으로 원거리가 가능해졌고 환영을 구현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날아간 검은 마력이 남자를 휘감자 그가 얼굴을 쥐어뜯었다.


“아아아악!”


얼굴에 바퀴벌레가 들끓는다.

물론 환영이었다.

이전에는 상대가 원하는 사물을 비췄으나 지금은 공포도 구현할 수 있었다.

손톱으로 제 얼굴을 긁느라 피투성이가 된 남자를 보다 브리드에게 말했다.


“비전투라더니 딱히 그렇지도 않네.”


브리드 덕분에 살았다.

아니, 금쪽이.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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