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충 싸움꾼이 퓨전펑크를 제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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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혁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14 11:25
최근연재일 :
2024.08.2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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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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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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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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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강렬한 기억

DUMMY

우려는 소문이 되었고, 소문은 소식으로 변했다.


하루가 지날수록 문을 닫는 가게가 늘어났고, 거리는 을씨년스러워졌다. 동네에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쉽게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동안 그레이엄이 러스티드에 다녀갔고, 길리엄은 똑같이 중립을 선언했으며, 그레이엄 역시 데칸처럼 길리엄에게 경고를 했다.


마침내 일 년 같은 일주일이 지났다.


데칸이 다시 러스티드에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대신, 누군가가 러스티드의 앞에 시신 한 구를 놓고 갔다. 데칸보다는 그레이엄과 더 가까웠던 사람이었다.


“이런 씨...”


“어떤 미친 새끼가...”


시체 치우는 일이야 하루가 멀다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아주 벌집을 만들어놨네.”


칼로 난도질을 당했다거나 약을 과다하게 복용해서 얼굴이 누렇게 뜬게 아니라, 마구잡이로 난사한 탄환을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본보기인지 꼬리 자르기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이게 처형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동시에, 너희도 결국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이기도 했다.




러스티드가 장사를 접은 것은 그 즈음이었다.


고작 오십 명 될까 말까 한 러스티드의 조직원들은 총으로 무장했고, 사람들 사이에 긴장한 기색이 감돌았으며, 앨런도 일에서 손을 놓게 되었다.


꼬마들이 밖에 무슨 일이 생겼느냐고 물어보면, 별일 아니라는 듯이 에둘러댔다.


길리엄에게 뭔가를 물어볼 때마다 너는 알 필요 없다는 말만 하는 것인지 도통 몰랐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앨런은 그런 생각을 하며 1층 창가에서 턱을 괸 채 앉아있었다. 오른손은 품 안에 넣어둔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빼어놓았던 탄창은 어느새 결합한지 오래였다.


후두두두둑!


먹구름 낀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굵은 빗줄기가 낡은 실외기를 사정없이 때렸다. 간헐적으로 번개도 쳤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심장께가 괜히 아려오는 듯했다. 권총을 내려놓고 손으로 흉터를 만져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는 리히텐베르크 자국이 뚜렷했다.


자신의 부모는 대체 왜, 유산으로 시한폭탄을 물려주고 훌쩍 떠나버린 것일까.


부모도 그렇고, 43구역도 그렇고, 길리엄도 그렇고.


죄다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 뿐이었건만, 이제는 렉타스 브라더후드까지 지랄을 하니 좀 우울한 것 같았다.


우르르릉...


쿵!


그런 앨런의 위로 큰 그림자가 졌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러스티드의 가드 노릇을 하는 남자였다. 물 탄 술병과 유리잔 두 개를 들고온 남자가 앨런의 반대편에 앉으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아무것도요.”


남자는 흐음, 하더니 마개를 열고 술을 부었다. 한 잔을 앨런에게 내밀더니 말했다.


“마셔라. 이제 너도 어른이니까.”


“길리엄은 아직 아니라던데.”


“책임질 것이 생겼다면 어른이 된거야.”


앨런이 멍하니 술잔을 바라보자, 한 쪽 눈에 안대를 찬 남자는 씩 웃으며 술을 한 입에 털어넣었다.


“크.”


덕분에 심각했던 앨런도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작게 웃으며 물었다.


“취하면 총이나 제대로 쏘겠어요, 오셰이?”


“내가 우리 가게 최고 명사수야 임마.”


잠시 머뭇거린 앨런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맛없을 것 같아요.”


“인생이랑 똑같은거지.”


그렇게 말한 오셰이가 앨런에게 내밀었던 한 잔을 더 털어넣고 말했다.


“그게 어른들이 술을 찾는 이유야. 길리엄이 찾더라. 내려가 봐.”


“네.”


자리에서 일어난 앨런이 지하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러스티드 주변을 감시하거나 불침번을 섰지만, 길리엄은 아니었다. 평소처럼 무언가를 수리하거나 만들거나 했다.


지하로 내려가자 팔짱을 낀 채 담배를 피우고 있던 길리엄이 눈에 들었다. 앨런이 안으로 들어서자 길리엄이 말했다.


“저 왔어요.”


“앨런. 앉아봐라.”


“왜요.”


앨런은 겉보기에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뺀질거리는 모습이었지만, 갓난아기 시절부터 앨런을 키워온 길리엄의 눈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간혹 한쪽 다리를 떨거나 몸을 들썩이는 것이, 역시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이 정도로 조직간의 큰 충돌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 그런 듯했다. 하지만 고아들의 맏형으로서, 또한 러스티드의 막내로서 앨런이 해줘야 할 일이 있었다.


“너한테 시킬 일이 있다. 앨런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데칸이 이기든 그레이엄이 이기든, 결국 다음 타겟이 러스티드가 될 것이란건 자명한 사실.


“이 동네 족보 안 까먹었지?”


“그걸 말이라고...”


그렇다면 누구랑 싸워야 하는지는 알아야 했다.


자신은 러스티드를 지켜야 하고, 벤이나 오셰이 같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정보원이랍시고 보낸 사람이 총 맞아 죽으면 그게 더 손해다.


그러니 이 역할에는 앨런이 가장 적절했다.


발 빠르고 은밀한 소년. 어디에 발을 뻗어야 할지 잘 알고 있는 눈치 빠른 녀석. 데칸과 그레이엄이 탐내던 러스티드의 유망주.


며칠 전이라면 절대 못 나가게 했겠지만, 이제는 괜찮을 것 같았다.


“슬쩍 둘러보고 와라. 할 수 있겠냐?”


“그럼요.”


“생각은 하고 대답하는거냐?”


“그럼요.”


길리엄이 곧장 잔소리를 하려는데 앨런이 먼저 치고 들어왔다.


“...괜히 나대지말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만 알아오란거잖아요.”


길리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안 시켜도 혼자 몰래 나갔을 것 같아서 불렀다.”


“잘 아시네.”


글렌은 어떻게 되는 걸까. 데칸과 그레이엄 중 누가 이기는 것일까. 마침 답답하던 차에 좋은 기회였다.


괜히 길리엄에게 고맙기도 하고, 뭔가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앨런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길리엄은 작업대 위에 놓아둔 기계장치를 앨런에게 내밀었다.


“받아라.”


“이게 뭐에요?”


“시간 나면 손보던거.”


앨런은 기계장치를 받아들고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요즘 길리엄이 제작에 몰두하던 그 물건이었다.


두꺼운 팔찌처럼 생겼는데, 이상한 회로 따위가 얼기설기 엮여있고, 그 가운데에는 빛나는 보석이 박혀있었다. 길리엄의 지인들이 선물로 주고 간 그 보석이었다.


보석의 반대편으로 팔찌를 돌려보면, 걸쇠가 달려있어 그것을 열고 팔에 끼울 수 있을 듯했다.


“착용해봐. 왼쪽 손목에 끼워라.”


톡-


잠금장치를 풀고 팔찌를 손목에 차니, 앨런의 손목에 꼭 맞았다. 입을 헤 벌리고 멍하니 팔찌를 구경하던 앨런에게 길리엄이 말했다.


“방패다. 대전차 로켓이면 몰라도 총알 정도는 충분히 막아줄거야.”


“오.”


“근데 몇 번 쓰면 고장 나니까 절대로 나대면 안 된다. 그렇게 좋은 물건은 아니니까.”


“네. 알았어요.”


“아, 그리고.”


“?”


“족보에 없는 놈이 있으면, 밖에서 온 놈이니까 특히 조심해라.”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거린 앨런은 다시 한번 길리엄의 후드를 입고, 권총과 탄창을 갈무리한 뒤 밖으로 나섰다.


“후...”


앨런이 뭐라도 적당히 알아오면, 그 이후에는 등껍질 안에서 웅크리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밖으로 나갈 것인지 선택해야했다.


조금 쓰레기 같긴 하지만, 두 조직간의 전쟁이 길어지길 바랐다. 다른 조직원들이 많이 죽으면 많이 죽을수록 러스티드는 안전해졌으니까.


물론 이번이 좀 노골적일 뿐이지, 항상 그렇긴 했다.




**




러스티드는 43구역의 중앙에 있었다. 출발할 때는 동서남북 어느 쪽이라도 가깝지만, 정작 방향을 잘못 찍으면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


동네의 길 자체도 미로처럼 되어있고, 지금처럼 누가 어디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돌아다니는 것은 상당히 위험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 굳이 정해진 길로 다니지 않는 것이다.


목적지를 정해서 냅다 찾아가기보다는,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스윽 둘러보기로 했다.


낑낑거리며 건물 위로 오르자, 지상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르르릉...


쿠웅!


번개가 쳐, 순간적으로 세상의 빛깔이 반전되었다. 가늘게 뜬 앨런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가게들은 유리창이 다 깨져있고, 네온으로 조명한 간판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매달려 있었다. 거리 곳곳에 시신들이 널려있는 것이 보였다.


“...제기랄.”


이미 시작된 것이다.


급하게 시선을 좌우로 돌리다가, 시선의 저편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주변이 어두워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분명히 총기가 불꽃을 토해내고 있었다.


앨런이 곧장 후드를 뒤집어쓰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이제는 소년의 푸른 눈동자와 팔찌만이 빛을 내었다.


지상으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대신 건물 옥상을 밟고 다니거나, 삐죽 튀어나온 간판을 붙잡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등 곡예를 펼쳤다. 이게 훨씬 빨랐다.


얼마나 뛰었을까.


탕! 탕! 타타타탕!


“으아악!”


“앞에! 앞에!!”


“뒤로! 뒤로 돌아가라고!”


“이 개자식들아!”


렉타스 브라더후드가 쓰레기통이나 실외기, 코너 따위에서 엄폐를 하고 손만 내민 채 마구잡이로 건물을 향해 총을 쏴대는 광경이 눈에 들었다.


주변에는 총에 맞아 죽은 시신이 한가득이고, 그레이엄을 비롯한 갱단원들이 본거지로 쓰는 건물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보아하니 데칸이 먼저 친 모양이었다. 기습은 성공적이었고, 그레이엄은 건물을 엄폐물 삼아 간신히 저항하고 있었다.


앨런은 길리엄이 선물한 방패를 믿고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어라?’


몇몇 남자가 건물 뒷편의 문을 열고 조용히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갱단 보스 그레이엄이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치나 싶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낯선 얼굴이 하나 있었다.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이야!’


이 동네 족보란 족보는 줄줄이 꿰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 자신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길리엄이 말했던 외지인이 분명할 것이다. 건물 옥상에서 머리만 내밀고 숨어있던 앨런이 천천히 뒤를 밟았다.


샛길로 빙 돌아가는 것이, 반전을 꾀하기 위해 기습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남자 넷이었는데, 그중 세 사람은 그레이엄의 부하들이라 낯이 익었다. 다른 한 명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금발 남자였다. 자세히 보니 파이트 클럽에 왔던 손님이었다.


빗소리와 총소리가 그들의 이동을 숨겨주었다. 네 사람이 점점 렉타스 브라더후드에게 접근을 했고, 곧 얼굴만 내밀면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기습조 세 사람은 신중했다. 천천히 탄환을 재우고 총의 슬라이드를 당겼다. 그리고 준비가 끝났다는 듯 처음 보는 금발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외지인이 오른손을 하늘로 가게 하더니 무어라 입을 중얼거렸고, 곧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남자의 오른손에서 푸른 번개 한 줄기가 터져나왔다.


파지지직!


그 장면을 지켜본 앨런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얼터드 바디가 인외의 힘을 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앨런이 알고 있던 어떠한 상식을 깨부수는 듯했다.


‘마법사!’


앨런은 단숨에 저 사람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마법도시 랭글리셔에 살고 있다던 마법사라는 족속임을 깨달았다.


마법사의 존재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금발 남자가 시연한 마법이, 발작의 전조가 있을 때 보이는 것과 똑같은 색깔이라는 사실이었다.


마치 기억 속 저편에 잠들어있던 무언가를 깨운 것처럼, 단조로울 뿐인 초보적인 마법이 앨런의 가슴 속에 작은 파문을 남겼다.


앨런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총을 든 세 사람과 마법사 한 명이 천천히 렉타스 브라더후드에게 접근했다.


“총알!! 총알 가져와!!”


데칸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꿈에도 모른채 총을 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코너를 돌면 데칸을 바로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런데, 마법사가 씨익 웃더니 앞서 가던 같은 편 세 사람을 번개로 지져버렸다.


지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악!”


“그그그그그!”


난데없이 전류를 뒤집어 쓴 세 사람이, 눈깔을 뒤집고 침을 질질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살점 타들어가는 냄새가 알싸하게 퍼졌다.


데칸이 깜짝 놀라 총을 겨누고, 마법사는 태연하게 걸어나왔다. 곧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며 씩 웃었다.


데칸과 마법사가 뭐라뭐라 이야기하더니,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앨런으로서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레이엄이랑 같은 편 아니었어?


다른건 몰라도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빨리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후드를 뒤집어 쓰려는데, 어디선가 억센 손이 날아와 앨런의 후드를 벗겼다.


“야, 꼬맹아.”


생전 처음 보는 또 다른 남자가, 자신에게 총부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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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페노버로 향하는 길(1) +1 24.08.23 20 2 16쪽
10 밀린 월급 +2 24.08.22 24 2 15쪽
9 그 전쟁의 끝 24.08.21 12 2 14쪽
8 양동작전 24.08.20 14 1 14쪽
7 까불고 있어 +1 24.08.19 23 3 14쪽
6 수상한 의뢰인 24.08.18 23 3 14쪽
» 강렬한 기억 24.08.17 28 4 13쪽
4 감도는 전운 24.08.16 25 4 15쪽
3 은밀한 거래 24.08.15 37 4 16쪽
2 뒷골목의 법칙 24.08.14 54 6 15쪽
1 43구역 24.08.14 92 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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