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무당이 작두 말고 라인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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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니들
작품등록일 :
2024.08.2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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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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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빛나는 별을 향해

DUMMY

누구에게나 잘 보일 필요는 없다.

잘 보일 사람한테만 잘 보이면 된다.


대한민국 정부의 가장 핵심 부처이지만 숨겨져서 아무도 모르는, 이능국.

이능국에서도 이 상식은 통한다.


이능국 3층 회의실. 한창 서류 판별이 한창이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뛰어난 사람들을 걸러내는 작업이다.


뽑히고 뽑혀서 서류에 올라온 만큼 이들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게 중요했다.


과연 이들 중에 특별한 능력을 발휘할 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 가능성을 갖춘 이들, 가능자라 불린다.


약간의 능력을 보이지만 아직 발현 전인지 모호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왜 살다 보면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은가.


와... 보통이 아니네.

괴물 아냐? 저게 된다고?


그런 이들이 가능자다.


보통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끝낼 거다.


그렇지만 그 광경을 같이 지켜보는 자들은 항상 우리 주변에 있다.


혹시 다음에 또 저런 상황을 마주한다면 주위를 둘러보길 바란다.


그곳에서 이능국의 누군가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있을 테니.


이능자가 될 가능성을 보이는 자들, 가능자를 관리하는 게 이능국의 일이다.


지금 여기에 가득 쌓여있는 대단하신 분들의 신상 명세를 모두 파악해야하는 것도 이능국이 해야 할 일.


이 많은 후보 중에서 이능국의 집중 케어에 오를 사람을 선별하는게 오늘 이능국 전략팀에서 담당할 일이다.


이능국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전략팀의 핵심 업무이기 때문에 회의실은 긴장감이 팽팽했다.


다들 말없이 서류를 넘기며 종이뭉치를 넘기는 소리만 들려왔다.


사락-사락-


이 서류를 만들기 위해 며칠동안 야근한 탓인지 전략팀 직원들의 눈이 퀭했다.


강철 체력의 이능국 엘리트들이어도 매년 이 시즌에는 매번 피곤한 게 당연했다.


그때, 침묵을 깨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누구야.”

보안에 민감한 탓인지 팀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팀장님, 박철 대립니다.”

“어이구, 철이 들어와.”


순식간에 굳었던 목소리가 풀렸다.


“피곤하실까 봐 오는 길에 커피 가지고 들렀는데 바쁘실까요?”

“뭘 또 이런 걸...”


말로는 사양하지만 팀장의 미소는 숨길 수 없었다.

마침 피곤하던 찰나였다.


“팀장님은 오늘 단 게 땡기실 것 같네요.”

“맞아. 박철 대리. 어떻게 알았어.”


팀장의 대답에 미소로 대꾸했다.


“오늘은 영 아메리카노가 안 땡기더라고.”

“바닐라라떼에 두유로 바꾸고 시럽 한 펌프 추가. 맞으시죠?”

“캬, 역시 박철 대리는 내 취향을 기가 막히게 알아.”


입맛을 다시며 커피를 받아 들고 한 모금 쭉 마신다.


깜빡이는 눈동자, 꿀꺽이는 속도, 그리고 이어서 만족한 입꼬리.


“크으으... 맛 좋다!”


커피 한 모금과 팀장의 감탄으로 냉랭했던 회의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뀐다.


“어떤 때는 무당 같다니까...! 혹시 진짜 신내림 받은 거 아냐?”


팀장의 질문에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


무당이라고 불릴 만큼 민감한 능력.


그것이 내가 가진 능력이다.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미묘한 차이를 홀로 알 수 있으니까.


여기 잠깐 회의실을 둘러본 것만으로 벌써 많은 걸 알아낼 수 있다.


‘대리와 과장, 저 둘은 서로 불륜 관계고, 막내는 다음 주에 퇴사 통보? 음... 내일은 전략팀 회식이 있군.’


모든 걸 파악하는데 단 1초면 충분했다.


하지만 민감한 능력을 이대로 갈무리했다.


오히려 무작위로 들어오는 정보를 차단한다.


잘 보일 사람한테 에너지 쓰기도 바쁜데.

굳이 이런 잡스러운 정보까지 알아낼 필요는 없으니까.


만족스러운 팀장의 웃음을 뒤로 하고 회의실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나머지 분들은... 취향을 몰라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갖고 왔네요.”


사실 안다.

이들의 취향을.

하지만 굳이 내가 왜?

능력을 발휘해야 하지?


잘 보일 필요도 없는 사람들에게.

그냥 적당히 맞춰주기만 하면 된다.


아메리카노면 됐지. 뭘.

애초에 여기 들어올 구실로 커피를 사 온 거니까.


과장은 방금 전 팀장이 마신 달달한 커피가 탐이 나는 듯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과장한테는 잘 보일 생각이 없는데?


그래도 다들 커피를 마시더니 힘이 나는 모양이다.

먹을 걸 주면 너그러워지는 건 만국의 공통이다.


엄밀히 말하면 여기는 전략팀이 아닌 내가 낄 자리가 아니다.


삼엄한 회의실에 타 팀이 끼는 건 용납 못 하는 이능국이니까.

그런데 커피를 마시더니 내 존재가 이곳에 스며든 듯했다.


옆자리에 앉은 나를 지나쳐 시계를 보더니 직원은 촉박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 별로 없네요. 빨리해 볼까요?”


“여기 정치 쪽 김만기 국회의원이요. 이번까지 4선에 재산이 3배 늘었어요.”


“4선은 거기가 원래 지역 텃밭이고 재산은 보니까 내부정보로 얻었네요.”


“가족이 이능력자인데.”


“모계쪽 D등급이어서 가능성 낮을걸요?”

“그럼 탈락이네요.”


한 명을 두고 설전을 벌이며 모든 가능성을 확인하는 직원들.


지금 이곳에서는 가능자들의 확률이 실시간으로 매겨지고 있었다.


“자 다음.”

“이번에 메달 딴 올림픽 선수에요.”

“세계신기록 맞지?”

“네. 3관왕이고요.”

“근데 원래도 잘했잖아. 이번에 기업 스폰도 두둑이 받았고.”

“그래도 부계 A등급인데요.”

“그래? 성장세는?”

“최근 들어 기록 경신 중이고요.”

“그럼 일단 킵.”


모든 종이가 이 과정을 거쳐 차곡차곡 분류되고 있었다.


이제 당분간 이능국에서 관리해야 할 가능자로 분류된 신상명세서였다.


대한민국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연예계와 모든 분야에서 특출난 실력을 보인 자들의 정보가 종이 하나에 담겨 있었다.


언제 이능력자로 발현될지 모르기 때문에 이능국의 집중관리 대상자였다.


그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재원이니까.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국가에서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쓸 것이다.


남들보다 빨리 그들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이능력자로 발현되자마자 협상하는 게 이능국의 설립 목적이자 역할이었다.


일종의 국가적 저점 매수.


싹이 보이는 인재를 미리 선점한다.


“이번에는 잘 골랐어야 할 텐데.”


초조한지 팀장은 입술을 물어뜯는다.


싹이 보이는 사람을 놓치는 것도 문제지만 이능력자도 아닌데 붙들고 있는 것도 재원 낭비니까 분류 작업은 늘 신중해야 한다.


쌓여있던 박스는 줄어들어 갔다.

끝이 보였다.


직원들은 길고 긴 한차례 분류가 끝나자 개운하다는 듯이 기지개를 켰다.


서류만 보던 시선이 위로 향하고 그들은 곧 다른 고민에 빠졌다.


“시작할까요? 파견 요원?”


그 말을 듣고 헛기침을 했다.

“큼큼...”


볼일은 끝났다.

이번 관리 대상을 확인했으니 됐다.


여기서 더 듣다가는 팀장 선에서 책임질 수 없는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 나갈 참이었다.


집중하던 직원들은 그제야 화들짝 놀랐다.


“어? 대리님, 아직까지 안 갔어요?”

“뭐야. 다 들은 거예요?”

“진짜 방금 얘기 비밀이에요.”

“빨리 가요. 빨리. 알려지면 우리 죽어요.”


손사래를 치며 직원들은 나를 문밖으로 내보내기 바빴다. 그들의 재촉에도 굳이 서두르지 않았다.


내 시선은 향하는 곳은 그들이 아니다.


“팀장님, 파이팅입니다! 가보겠습니다.”


내 시선은 팀장의 얼굴에 정확히 꽂혔다.


내가 잘 보여야 할 사람. 이 순간에는 팀장이다.


이마에 밝게 빛나는 별.

나만 보이는 별.


저게 내가 타야 할 라인이고,

내가 잡은 동아줄이다.

절대 썩지 않는 동아줄.


나는 어떤 라인을 타야 할지 안다.

그 사람의 이마에 별이 보인다면 그 라인을 타면 된다.


수많은 사람이 썩은 줄도 모르고 요상한 라인을 타느라 얼마나 애쓰는지.


곧 사라질 임원들에게 아부하고 골프를 치고 뇌물을 갖다 바친다.


난 쓸데없는 데 내 노력을 낭비하지 않는다. 확실한 라인만 잡는다.


지금 이 순간에는 오직 팀장에게서만 이마의 별이 빛나고 있었다.


별이 눈에 훤하니 사회생활이 이렇게 쉬울 수가 있을까.


내가 나가려고 하자,


“그래. 우리도 쉬었다 하지.”


팀장도 따라 나왔다.


회의실 문이 닫히고 복도에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곧 좋은 소식 있을 거야. 파견 요원.”


목소리를 낮춘 채 팀장이 속삭였다.


‘오늘 저녁 8시.’


이미 회의실에 들어갔을 때부터 내가 뽑힐 걸 알고 있었다. 팀장 책상에 있는 공문들을 민감한 시각으로 이미 스캔 완료했으니까.


하지만 연기가 필요하겠지.

놀라는 연기쯤은 이제 도가 텄다.


깜짝 놀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렸다.


놀라는 표정에 팀장은 뿌듯해했다.

“쉿! 비밀이야. 아직 발표 전이니까.”


“감사합니다. 팀장님. 덕분이에요.”

“덕분은 무슨. 윗분들이 다들 박철 대리 이뻐하시더라니까. 나보다 더 사회생활 잘해. 아직 나도 파견 요원 못 가봤는데. 이제 갔다 와서 곧 임원 달겠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팀장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가 봐. 저녁에 연락 오면 받고.”

“네. 팀장님.”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자 창문이 시선에 닿았다. 구름과 습도를 보아하니...


“오늘 퇴근 시간에 비 올 거에요. 우산 챙기세요.”


“오늘? 비 온다는 예보 없었는데...”


그렇지만 그는 우산을 챙길 것이다. 내가 했던 말은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문이 닫히고 중얼거리는 팀장의 혼잣말에 청각을 곤두세웠다.


“...아씨... 내 우산 어딨더라?”


별을 향한 내 조그만 조언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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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공지 사항 24.08.22 158 6 15쪽
2 2. 합격 24.08.21 183 7 10쪽
» 1. 빛나는 별을 향해 +1 24.08.20 240 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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