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요괴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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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밤의꿈
작품등록일 :
2024.08.27 01:26
최근연재일 :
2024.09.0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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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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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DUMMY

“헐.”


연일 TV에서 나오는 귀신 영상들을 보며 황당해하는 사람은 이현수 외에도 또 있었다.


바로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던 슬기였다.


슬기의 경우엔 이현수의 스튜디오에서 처음 작업할 당시에는 귀신들이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는 정도뿐이었는데, 함께하는 동안 이현수의 영력에 물든 건지 작업을 거의 다 마무리할 무렵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척 놀랐지만, 이 역시 곧 익숙해졌다.


요괴들도 바로 옆 건물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데, 귀신도 있을 수 있겠지 하고 무덤덤하게 넘겨 버렸다.


주시하고 있던 TV 속 영상 중간중간에 다른 익숙한 얼굴들도 더 보였다.


“······설마 저거 은후랑 흑아 님, 그리고 청웅 대표님인가?”


그들도 귀신처럼 모습을 변신하긴 했지만, 슬기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본판의 모습들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본신의 모습이 은빛 도깨비, 검은 여우, 푸른 곰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쉽게 눈치챘다.


그냥 그 모습에서 유령처럼 투명감이 더해지고 외형만 조금 변형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지금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가 어딘지도 슬기는 알고 있었다.


허종우가 언제나 허세 가득한 얼굴로 귀에 못이 박히게 자랑을 했었던 바로 그 건물이었다.


“흑아도 잠깐 외출한다더니, 저것 때문이었나.”


자기를 지키라 명령했던 흑아를 다시금 불러내고 대신 호위로 이태진을 붙여 주더니, 다 저기로 몰려갔던 모양이다.


아리송한 얼굴을 하며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자 같이 밥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던 가은이 조용히 분노를 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 저 요괴들이, 정말.”


“······하하, 하하하하.”


“슬기 양,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마저 먹고 있어요. 태진 님이 옆에 있긴 하겠지만, 혹시 모르니 집 주변의 결계들은 강화해 두겠습니다. 그래도 외출은 하지 말고요. 금방 돌아올게요.”


“네.”


파앗─!


그렇게 말하며 먼저 식탁에서 일어난 가은은 바로 마녀의 지팡이를 소환하더니 공간 이동 마법을 시전해서 단숨에 사라졌다.


화, 화가 단단히 난 거 같은데.


저렇게 인상을 쓰며 말하는 가은은 처음 봤다. 언제나 온화한 그녀였는데.


슬기는 뺨을 긁적이며 다시 TV 쪽으로 눈을 돌렸다.


화면 속에서는 여전히 귀신들과 은후 일행의 얼굴들이 번갈아 가며 차례대로 나오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난다.


분명 저 소동은 자신을 위해서 그런 것이겠지.


그래서인지 고맙기도 하고, 또 자꾸만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이제부터 가은에게 잔뜩 혼이 날 것이 분명한 상황은 참으로 안 된 일이지만.


슬기는 화면 속에서 날뛰고 있는 그들을 볼 때마다 배시시 웃으며 마저 식사를 마쳤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 슬기 양. 날짜 나왔다.]


루시퍼에서 연락이 왔다.


그것도 청웅에게서 직접.


“네? 무슨 날짜요?”


[이제 서야지, 무대. 다시 데뷔 무대야.]


“아. 어, 언제예요?”


[당장 이번 주 토요일. 뭐, 준비는 충분하다고 생각해. 사실 넌 우리 회사에 오기 전부터도 그럴 만한 실력이 충분히 있었으니까. 자신 있지?]


“네!”


[자세한 사항은 도진이를 통해서 알릴게. 아직 은후 님이나 흑아한테 맡길 수는 없으니까, 도진이랑 좀 더 같이 일해야 할 거야.]


“네.”


[아, 혹시라도 저번 사건으로 인해서 그가 불편해졌다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줄게. 언제든지 말만 해.]


“아니에요. 괜찮아요. 잘해 주고 계세요.”


[응. 그리고 허종우 일은 이제 신경 안 써도 돼. 혹시 몰라서 귀신들은 한동안 계속 거기에 그대로 두겠지만. 여하튼 자금줄을 끊어 놨으니까 헛짓거리는 더 이상 못 하겠지.]


청웅이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설사 본가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놈 아버지 성격상 앞으로 절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거고. 귀찮은 일은 거의 끝났다고 보면 돼.]


“네.”


[그래, 그럼 정말 걱정하지 말고. 네 일에만 집중하도록 해. 수고하고. 좋은 결과 있길 바랄게.]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슬기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있었다.


“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자신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대가 두려워서? 긴장되어서?


아니.


이건 틀림없이 기쁘기 때문이다.


‘다시 설 수 있어. 무대에.’


빛나는 그곳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가득 벅차오르는 희열.


세차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슬기는 잠시동안 가만히 눈을 감고 기도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드디어 토요일.


슬기가 다시금 데뷔 무대에 서게 되는 날이 되었다.


회사에서 내어 준 미니밴을 이도진이 운전을 해서 방송국으로 향했다.


아직 은후도 흑아도 면허를 취득하지 않은 상태다.


조만간 둘 다 같이 시험을 치러 갈 거라고 했다.


‘······왜 걱정이 될까.’


은후랑 흑아가 아니라 그 시험장이 걱정된다.


‘아니, 지금은 그거 걱정할 때가 아닌가.’


슬기는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유리 밖의 풍경 중에 그 어느 것도 사실 제대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차 안은 극도로 조용했다.


함께 탄 스타일리스트는 물론이고 은후와 흑아 그리고 도진도 말이 없었다.


오늘이 슬기에게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그들도 잘 알기에, 그들은 슬기가 혼란스럽지 않게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방송국에 도착하고서 안내를 받아 배정받은 대기실로 들어왔다.


“보자, 일단 시간은 넉넉하고. 그럼 인사를 돌러 가볼까?”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체크한 이도진이 말했다.


슬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히 화장만 수정한 뒤에 그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아무리 루시퍼 소속이고 또 현재 세간에 화제를 낳고 있는 음원의 주인공이라고 할지라도, 아직 신인은 신인이었기에 돌아다니며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지난번 데뷔 때 이미 경험이 있기에 슬기는 꽤나 능숙하게 인사를 돌았다.


대기실에 있는 선배 가수들뿐만이 아니라 복도를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까지 가리지 않고 슬기는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익숙하게 대처하는 도진과, 나름 선방을 하는 흑아와 달리 상대적으로 은후의 목은 무척이나 뻣뻣하긴 했지만, 딱히 그것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은 다행스럽게도 없었다.


좋은 소속사와 빵빵한 지원이 한눈에도 보이는 까닭에 슬기를 질투의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간혹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그녀에게 잘 보이려는 이들이 더 많았다.


저 태도들은 오늘 무대의 결과에 따라서 더 극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또각또각.


멈칫.


높은 힐을 신고서 다음 대기실로 향하던 슬기의 걸음이 갑자기 멈추었다.


대기실 앞에 붙어 있는 종이 위에 적힌 어느 그룹의 이름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밀키웨이」




전에 슬기와 한 팀으로 활동할 뻔했던 멤버들이 그녀를 제외하고서 새롭게 팀을 만들어 데뷔한 그룹의 이름이다.


불운했던 그 첫 무대에 자신과 함께 올라갔었던 멤버들.


그리고 바로 그 의심스럽기 그지없는 민세영이 소속되어 있는 팀이기도 했다.


현재 그녀들은 삼촌 팬들 사이에서 꽤 인기를 끌고 있었다.


“슬기, 왜 그러느냐?”


“아, 아니에요.”


멀뚱히 서서 미동도 않고 있는 그녀를 보며 은후가 의아한 듯 물었다.


슬기는 고개를 저으며 빙긋이 웃었다.


“후.”


그리고 짧게 심호흡을 한 뒤.


똑, 똑, 똑.


그 문제의 대기실 문을 노크했다.


“네.”


안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들은 슬기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소리에 민감한 자신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그 짧은 대답만으로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세영.’


달칵.


슬기가 손잡이를 잡고 돌려 문을 밀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전 멤버들을 마주한 그녀가 말했다.


“오랜만이야, 다들.”


자신을 바라보는 세 명의 눈동자에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그리고 문제의 한 명에게서는 명확히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표정 속에 은연중에 묻어 있었지만, 일단은 그녀도 자신을 옅은 미소로 반기고 있었다.






“와아. 이게 누구야. 정말 슬기 맞지?”


가장 먼저 걸 그룹 밀키웨이의 맏언니 하나가 맑게 웃으며 말했다.


청순한 이미지의 그녀는 티 없이 깨끗한 흰 피부에 검고 긴 생머리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이리 가까이 와 봐. 얼굴 좀 자세히 보자. 와, 진짜 흉터가 흔적도 없이 깨끗이 잘 나았네. 잘됐다.”


그다음으로 보인 사람은 허스키한 중저음의 보이스와 함께 살짝 중성적인 이미지가 참 예쁘고 멋진 로빈.


“흐윽, 언니······. 다행이야.”


그리고 같은 연습생이었던 당시 슬기를 많이 따랐고 또 가장 친하게 지내던 시아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아의 눈가에 어느새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시아야. 화장 번지니까 울지 마. 예쁘게 꾸몄는데, 아깝잖아. 곧 무대에도 올라야 하고.”


“안 울 거야! 안 울어! 흥! 아니, 그런데 지금 그게 문제야? 언니, 왜 전화를 안 받아! 내가 연락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문자도 많이 남겼었는데 답장 한 번 없고! 언니 정말 너무해!”


“미안. 일이 좀 많았어. 그리고 아직 얼굴도 다 나은 게 아니라 치료도 계속 받고 있고. 그거랑 같이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정말 정신이 없었어. 진작에 내가 연락을 해야 했는데 미안해.”


“······이 씽! 앞으로는 연락 좀 자주 해! 알았지?”


“응, 알았어.”


슬기가 시아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 주었다.


이 아이도 나름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연습생 시절 동고동락하던 친한 언니가 홀로 큰 어려움을 겪을 땐 정작 필요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


힘이 없는 신인이기에,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우선 회사의 결정 사항들을 전부 군말 없이 따라야만 했었으니까.


시아가 당시에 자신의 그런 복잡한 마음을 직접 털어놓았던 건 아니지만,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슬기는 그녀의 고뇌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슬기, 오랜만이다. 결국, 연예계로 돌아왔구나.”


회포를 풀고 있던 두 사람에게로 한 남자가 걸어왔다.


현재 밀키웨이의 매니저인 강명훈이었다.


슬기가 허니 에스프레소에 소속되어 있을 때도 그가 팀의 매니저였었는데, 아무래도 변동 없이 밀키웨이 매니저도 맡은 모양이었다.


아마 전의 그 사고를 겪지 않고, 그래서 은후를 만나지도 않았더라면, 현재 자신의 매니저는 은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였을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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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취중진담 24.08.29 16 0 11쪽
47 두 번째 약, 절벽 위의 꽃 24.08.29 13 0 12쪽
46 마녀 특제 전설의 페이셜 스킨케어 24.08.29 11 0 11쪽
45 마녀 특제 전설의 페이셜 스킨케어 24.08.28 13 0 12쪽
44 실력 24.08.28 13 0 12쪽
43 음. 어째 험난할 거 같지? 24.08.28 15 0 13쪽
42 훈련이라는 이름의 꽁냥꽁냥 24.08.28 13 0 11쪽
41 뭐? 드라마? 24.08.28 15 0 12쪽
40 뭐? 드라마? 24.08.28 15 0 12쪽
39 독종 24.08.27 15 0 12쪽
38 능력 개화, 훈련이라는 이름의 스킨십 24.08.27 16 0 11쪽
37 나의 아름다운 요괴 매니저 24.08.27 17 0 12쪽
36 나의 아름다운 요괴 매니저 24.08.27 14 0 11쪽
35 무대 공포증이 있는 여가수 24.08.27 16 0 12쪽
» 트라우마 24.08.27 15 0 11쪽
33 Supernova, 드디어 무대 위로 24.08.27 14 0 13쪽
32 백귀야행 24.08.27 15 0 13쪽
31 백귀야행 24.08.27 16 0 12쪽
30 이걸론 아직 끝난 게 아니지 24.08.27 19 0 12쪽
29 전기 ××구이 24.08.27 17 0 11쪽
28 전기 ××구이 24.08.27 19 0 13쪽
27 쓰레기는 자근자근 밟아 준다 24.08.27 17 0 12쪽
26 쓰레기는 자근자근 밟아 준다 24.08.27 1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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