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요괴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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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밤의꿈
작품등록일 :
2024.08.27 01:26
최근연재일 :
2024.09.0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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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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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취중진담

DUMMY

“에휴.”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서 슬기는 허리를 굽혔다.


은후의 어깨 쪽 옷깃을 꽉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


“끙차!”


슬기는 가장 가까운 나무 밑으로 은후를 옮겨 와 나무 기둥에 상체를 편하게 기댈 수 있게 그를 앉혔다.


가방을 열고 챙겨 가져왔던 물병을 꺼내서 손수건에 적셨다.


질질 끌고 오느라 여기저기 흙이 잔뜩 묻은 은후의 얼굴을 살살 문질러 닦아 주었다.


그러면서 또 자세히 살폈다.


흙 이외에도 자신에게 전기 공격을 당한 탓에 까맣게 탄 옷과 검게 그을린 피부, 그리고 머리카락 몇 가닥은 불에 구운 오징어처럼 동글동글 말려 있었다.


스르륵.


털썩.


나무에 기대 앉혔던 은후의 몸이 옆으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그러고는 슬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형상이 되었다.


“······에이씽. 엄청 무겁네.”


슬기는 투덜거리면서도 그를 밀치지 않았다.


물을 적신 손수건으로 정성스레 그의 얼굴을 닦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킁킁. 근데 이게 무슨 냄새지?”


은후의 살과 머리카락이 탄 냄새와 주변에 가득히 충만해 있는 숲의 냄새를 제외하고서도, 공기 중에 섞여 새로이 풍기는 이질적인 냄새가 또 있었다.


“······술?”


어쩐지 달콤한 과일을 담아 만든 알코올의 향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은후가 날숨을 내쉴 때마다 더욱 진해졌다.


“······음? 설마?”


그렇다면.


요괴를 취하게 만드는 꽃가루.


조금 전에 은후가 뒤집어쓴 만월화의 꽃가루가 이런 식으로 작용하였던 건 아닐까.


꽃을 얻은 이후로 쭉 자신을 안고서 산신의 영역을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만 했으니, 은후 혼자 따로 술을 마시거나 할 시간은 전혀 없었다.


“아,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어쩐지.”


그래. 어쩐지.


조금 전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평소답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전기 공격도 어찌해 보지 못하고 꼼짝없이 다 맞아 버렸던 거다.


이 강한 요괴가 그렇게 허무하게 당할 리가 없는데.


“그럼 그렇지, 풉.”


원인을 알아내자 슬기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어쩐지 무지 안심도 되었다.


“푸하핫.”


‘그러니까 그게 다 술주정이었다는 거지. ······좋았어!’


바로 슬기는 복수를 결심했다.


자신을 깜짝 놀라게 한 그가 무척이나 괘씸했다.


그래서 이따가 그의 의식이 돌아오면 이걸로 잔뜩 놀려 줘야지, 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대략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흐음.”


은후에게서 조금씩 기척이 느껴졌다.


그의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곧 눈꺼풀을 깜빡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은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가장 먼저 지척에 있던 슬기의 콧구멍이 커다랗게 보였다.


다시 눈을 뜨자마자 보게 된 세상의 첫 광경이었다.


“흡.”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자기 보게 된 그녀의 콧구멍에 놀란 은후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 슬기의 어깨에 기대고 있던 상체를 확 일으켜서 뒤로 급히 물러나다가 어지럼증을 느끼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어? 괜찮아요?”


슬기가 걱정스레 물었다.


“으음. 내가 왜 여기 이렇게······. 어떻게 된······.”


머리를 부여잡고 상황을 파악하려고 한 은후가 말을 멈추었다.


그의 미간이 순간 더욱 깊게 패었다.


자신의 기억력이 쓸데없이 너무 좋았던 탓에, 딱히 떠올리고 싶지 않았는데도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이 모조리 선명하게 기억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나한테 뭐라고 했었는지 생각나요?”


“그래.”


“으응? 정말로? 다?”


“그래. 다 기억난다.”


슬기는 대답을 하는 은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김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흐음. 요괴라 그런가. 그런 말을 해 놓고도 전혀 안 부끄러워하네. 하긴 은후가 딱히 뭔가에 부끄러워할 성격이 아닌가. 애초에.”


“뭐가 말이냐?”


“나한테 애 낳아 달라고 한 거요.”


이번엔 슬기의 대답에 오히려 은후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그게 왜 부끄러운 말이지?”


“아니, 음. 너무 솔직한 거 아닌가요? 완전 돌직구에다가.”


“나로서는 네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모르겠다만, 처음에 널 만났을 때도 난 진심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고.”


“······뭐라고요?”


“······아닌가. ······그래. 이젠 조금 다르구나. 그땐 아이만 갖고 싶었는데,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다. 가능하면 너와의 아이를 가지고 너와도 쭉 함께하고 싶구나.”






여전히 아이가 가장 먼저이고, 그다음이 슬기 자신이라니, 뭔가 순서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건 분명.


‘대시······ 하는 거 맞지?’


다시금 그가 한 말들을 천천히 되새겨 보다가 순간 심장에 훅 하고 꽂히듯 들어와 버려서 슬기의 귀가 또 시뻘겋게 물들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살면서 지금까지 대시 같은 거, 수도 없이 많이 받아 봤다.


시골에서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았을 때도 이성 친구들에게 여러 번 고백을 받았었고, 오디션에 합격해 서울에 올라와 연습생으로 지내고 있을 당시에도 늘 끊이지 않고 있었다.


나름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에다, 그것도 블루칩이 될 거라는 평가를 받았고, 그게 아니었더라도 외모 자체가 스스로 보기에도 꽤 괜찮았으니까.




“도시 어느 소녀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도도하면서도 예쁜 얼굴. 무언가 사람을 압도해 버리는 신비감이 있다.”




미에 관해선 누구보다도 냉정한 평가를 하는 연예 기획사에서 언제나 자신을 향해 입이 닳도록 그렇게 칭찬을 했었으니, 아마 일반인들의 눈에도 그럴 것이다.


도시로 온 이후로 만난 사람들은 거의가 화려했다.


언변도 좋았고 자신들을 포장하는 기술들도 뛰어났다.


특히나 연습생인 자신에게 이성적으로 다가오려고 시도했던 대부분의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남들보다도 특출하다고 나름의 평가를 받고 있던 이들이었다.


미적으로 아주 뛰어난 아름다움을 지녔거나, 아니면 아직 젊은데도 사업 수완이 좋거나 하는.


그러나 그들이 자신을 유혹하기 위해 속삭였던 그 어떠한 달콤한 말들도, 사실은 전혀 달콤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무엇보다도 매력적이었을 제안들을 듣게 되었을 때조차도, 마음이 흔들렸던 적이 없었다.


단 한순간도.


슬기는 차라리 어린 시절 학급 친구에게서 들었던 참으로 순박했던 고백이 훨씬 더 좋았다.


부끄러워 토마토처럼 새빨개진 얼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아 더듬더듬, 얼핏 그냥 단어의 나열로만 들리는, 이상하지만 귀엽고 어눌한 말들.


너무 꽉 쥐어서 한눈에 보기에도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훤히 내보이면서, 그저 필사적으로 온 마음을 전하기에만 급급했던 그 예쁜 고백들이 말이다.


솔직함과 순수함.


그때 그 소년의 말속에는 그게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 은후의 말속에도 그와 비슷한 울림이 녹아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은후가 그 옛 친구처럼 귀엽고, 순박하다는 건 결코 아니지만.


외모만 놓고 보자면 은후 쪽이 도시 남자들보다도 훨씬 화려하고 매혹적이다. 또 무서우리만치 아름답다.


은후와 그때 그 소년.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인데 이상하게도 같은 떨림이 느껴졌다.


‘아, 아닌가? 오히려 지금이 훨씬 더······.’


두근두근.


심장이 마구 뛴다.


온몸이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가 한 말들은 거짓이 아니다.


전부가 솔직한 진심이라는 것이 여실히 잘 전해졌다.


그걸 완전히 인식하고 나니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괜히 그의 관심 대상을 다른 이로 돌려 보려고 급히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말을 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어쩐지 더 어색하게 커지고 또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다, 다른 예쁜 요괴들도 있잖아요! 아까 본인 입으로 인기도 많다면서요! 그냥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해 보지 그랬어요?”


슬기의 말에 은후는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다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네가 더 예쁘다.”


“에? ······거, 거짓말! 시엘 님이나 가은 마녀님만 해도 얼마나 아름다운······.”


슬기가 애써 그의 말을 부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은후가 먼저 그녀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그렇다. 여태껏 보아 온 그 어떠한 여인들 중에서도 네가 제일 예쁘다.”


“······히익!”


슬기는 목덜미까지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은후는 이번에도 정말 솔직하게 자신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내뱉고 있었다.


거기다 슬기는 아직 잘 몰랐지만 사실 요괴라는 종족들은 타고난 기질부터가 그랬다. 거짓말을 잘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바로 그때그때 말하고, 그러다 간혹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어느 한쪽이 먼저 굽히기보다 차라리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것을 택하는 그들이었다.


거기다 은후는 그런 요괴 중에서도 최강자다.


남의 눈치를 보고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고, 쓸데없이 상대를 배려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하며 살아도 되는, 그는 그런 위치에 있는 존재다.


“처음에는 그저 네 외모가 좋았고, 그다음에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네 노래가 좋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네가 좋다.”


“아, 아직도 취했어요?”


“아니. 조금 어지럽긴 하지만 이제 멀쩡해.”


그의 대답을 들은 슬기는 잠시 멍해 있다가 문득 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씩씩거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평소 무뚝뚝해서 말재주가 없다고 여겼던 요괴 남자에게 왠지 아까부터 자꾸 말로 밀리는 기분이 들고 있었던 탓이다.


‘왜 지는 거 같지?’


그 때문에 괜스레 오기가 생겨서 이번엔 그만 유치한 거짓말까지 하고야 말았다.


“그, 그거 알아요? 인간 여자는 서른 살이 되기 전에는 결혼 못 해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애도 못 낳는다고요! 버, 법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어요!”


“······.”


순간 은후가 벙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표정을 본 슬기는 드디어 이겼다는 생각에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다시 은후가 말했다.


“······그럼 네가 서른 살이 되면 나의 아이를 낳아 주겠느냐?”


“······네?”


“그 말뜻은 즉, 네가 서른 살만 되면 나와 혼인도 하고 아이도 낳아 주겠다는 거지?”


“······네? 응? 어? 어라? 어? 아, 아니, 저기! 그게 왜 그렇게? 그러니까, 그건,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뭔가 일이 꼬이고 있다.


그렇게 느낀 슬기는 은후가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이 자리에서 바로 짚어 주려고 했다.


그런데 이 간악한 요괴는 그런 낌새를 먼저 눈치채고 슬기가 말을 정정하지 못하도록 잽싸게 막아 버렸다.


“알겠다. 그럼 나는 네가 그리 나와 약조한 것으로 알고 있겠다.”


“에? 에? 네? 아니! 저기요! 사람 말을 좀 끝까지 들······.”


슬기가 그렇게 사정을 해도 은후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지 않았다.


저 혼자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끄덕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옷에 묻은 흙들을 괜히 더 과한 동작으로 탈탈 털고 다시 떠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자, 다시 가자꾸나.”


“아아아아! 정말!”


은후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순간 그가 다시 비틀거렸다.


어지럼증이 가시지 않은 것인지 슬기가 그의 손을 맞잡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가 또 쓰러지기 전에 슬기가 재빨리 은후의 팔을 잡아서 자신이 있는 쪽으로 당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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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취중진담 24.08.29 16 0 11쪽
47 두 번째 약, 절벽 위의 꽃 24.08.29 13 0 12쪽
46 마녀 특제 전설의 페이셜 스킨케어 24.08.29 11 0 11쪽
45 마녀 특제 전설의 페이셜 스킨케어 24.08.28 13 0 12쪽
44 실력 24.08.28 13 0 12쪽
43 음. 어째 험난할 거 같지? 24.08.28 15 0 13쪽
42 훈련이라는 이름의 꽁냥꽁냥 24.08.28 13 0 11쪽
41 뭐? 드라마? 24.08.28 15 0 12쪽
40 뭐? 드라마? 24.08.28 15 0 12쪽
39 독종 24.08.27 15 0 12쪽
38 능력 개화, 훈련이라는 이름의 스킨십 24.08.27 16 0 11쪽
37 나의 아름다운 요괴 매니저 24.08.27 17 0 12쪽
36 나의 아름다운 요괴 매니저 24.08.27 15 0 11쪽
35 무대 공포증이 있는 여가수 24.08.27 16 0 12쪽
34 트라우마 24.08.27 15 0 11쪽
33 Supernova, 드디어 무대 위로 24.08.27 14 0 13쪽
32 백귀야행 24.08.27 15 0 13쪽
31 백귀야행 24.08.27 17 0 12쪽
30 이걸론 아직 끝난 게 아니지 24.08.27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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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전기 ××구이 24.08.27 1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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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누구의 사주인가 24.08.27 18 0 10쪽
22 누구의 사주인가 24.08.27 1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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