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 1
나이 - 1
홍은 1938년생이지만 주민등록번호는 ‘39’로 시작한다. 호적에 늙게 올라간 것이다. 홍에게는 공식적인 나이가 한 살 적어져서 크게 이득을 본 경험은 별로 없다. 오히려 한 살 더 많은 것이 기세에 눌리지 않는데 도움이 된다 싶을 때가 있었다. 꼭 한 번씩 원래는 ‘38년생’이라고 말하는 번거로움이 불필요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홍에게도 십대가 있었고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 오십 대가 있었다. 홍은 중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가지 못했다. 그래, 홍에게는 딸뿐이지만 다른 것은 못해져도 기본 교육만은 마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면 자기 스스로 알아서 살길을 찾아갈 거라 생각했다. 홍은 서른에 결혼을 해, 딸 넷을 낳았다. 그리고 오십이다 싶을 때 남편 간병을 시작했다. 육십이 되었을 때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그 후에는 딸들이 결혼해 사위와 손녀 손주들이 생겼다.
홍이도 그러하지만, 많은 이들이 물리적인 나이에 따라 같은 세대가 받아들이는 생의 주기를 따라 산다. 홍의 세대는, 태어나 자라 결혼하고 아이 낳고 길러서 자녀를 독립시키는 것이 보통이었다. 홍의 결혼은 같은 세대에서는 늦은 결혼이었지만, 그 외의 외면적인 생의 주기는 평범했다. 조금 달랐다면 전업주부로 살지 않고 생활전선에 일찍 뛰어들어, 딸들이 결혼한 후에도 몇 년을 더 일해 왔다는 점이다.
처음에 슈퍼마켓을 정리하고 상경할 때는 맞벌이인 막내딸 집에서 어린 손주도 보며 살 마음에서였다. 막내딸 집에서 그렇게 얼마간 지내다, 고등학생 아들을 둔 큰딸 집으로 옮겨가게 된다. 큰딸 아들은 첫 손주로, 아이는 세 살 경부터 초등학교 삼사 학년 될 때까지 홍이가 데리고 키웠다. 어려서 엄마와 떨어져 다른 도시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서인지, 더욱 서로 간에 정이 애틋했다. 손주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재수를 해 대학에 입학하는 것까지 큰딸네 집에서 보고 나니, 좀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그때가 팔십이었다. 그래 새로이 분가해 살기 시작했다. 곧이어 코로나 시기가 찾아왔고 코로나도 한번 앓았다. 팔십이 넘어서며 조금씩 인지 장애가 찾아왔다. 코로나 시기에 둘째 딸과 이년 정도 함께 살았다. 셋째 딸은 십여 년 전에 캐나다로 가족 이민을 가서 직접 얼굴 대면하기는 어렵고, 화상통화로 서로 안부를 전했다. 이제 홍의 나이 팔십 중반에 들어섰다. 한국의 평균수명에 근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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