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노릇 - 1
딸 노릇 - 1
당신이 누군가의 딸이라면, ‘딸 노릇’에 대해 어떤 입장이고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홍에게는 딸 넷이 있습니다. 딸들의 어려서 얘기, 결혼 얘기, 직장 얘기 모두 ―――― 타인이 세상을 사는데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딸들 사이가 좋냐고요. 아니요. 어느 집이나 그렇듯 서로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어려서도 그렇지만 컸다고 크게 틀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모니가 마야부인 옆구리에서 태어나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뒤 하늘과 땅을 가리키면서 외쳤다는 말 ――――.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이 세상에 오직 나만이 존귀하고
삼계가 고통 속에 있으니 내가 마땅히 평안케 하리라“
홍의 딸들도 각기 자신이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자신합니다. 어디 홍의 딸들만 그렇겠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이 그러하지요. 하지만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에 대해서는 서로 입장이 다릅니다. 삼계가 아니라 가까운 이들 사이에서도 이 부분은 난제입니다. 혈연으로 태어났으니, 이 생을 사는 동안은 어떻게든 연결고리가 끊기질 못하죠. 그게 서로에게 고통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아주 순백 백 퍼센트 순수성을 모든 순간 유지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는 어떤 경전으로도 다 치유되지가 않습니다. 사람은 각기 성향이 다 다르지요. 혈연관계라 해도 그렇습니다. 결국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타인에게 기대를 안 하면 다치지도 실망하지도 않는다고요. 그래도 가끔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생채기가 납니다.
홍의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 큰딸이 대학 1년생이고 둘째가 고2이던 그해 여름이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육십이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장남인지라 시대가 시대인지라 이리저리 치이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때 어쩔 수 없이 밖에서 하던 일을 접고, 동네 작은 슈퍼마켓을 시작했습니다. 간병도 해야 하고 생활도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남편이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열고 있다가 쓰러져서, 홍이 보조인으로 등록하고 간간이 동네 전월세를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매물로 나온 산을 보러 갔다 쓰러진 탓도 있고 해서, 일명 골든타임을 놓쳤다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6개월 넘게 입원했다 퇴원했지만, 몸에 마비는 심했습니다. 그 후 호전된 것이 반편이 마비인 상태로, 십사오 년을 살다 갔습니다. 그 사이 셋째와 막내도 대학을 졸업 했습니다. 홍도 힘든 시간을 버티었지만, 딸도 남보다 편한 성장기를 보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딸들이 알게 모르게 다들 강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외부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부 관계에서도 불쑥불쑥 튀어 오릅니다. 홍의 딸들은 그냥 보통 자매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가 있고 누구나 타인의 이야기에도 수긍할 수 있지만 그 접점에 가끔 감전 사고가 납니다.
딸 노릇 얘기한다는 게 이상한 과거 얘기만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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