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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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리베봄
그림/삽화
해피리베봄
작품등록일 :
2024.08.28 02:47
최근연재일 :
2024.09.13 09:44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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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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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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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 - 1

DUMMY

금강산도 식후경 - 1



금강산도 식후경. 즉,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라도 배가 부르고 난 뒤에야 흥이 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좋은 것도 자신이 배가 불러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산만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한 사람이 일생을 살며 일상에서 먹고 살기 빠듯해서 놓치고 마는 것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 챙기지 못하고 놓친 것에 미련이 쌓여서 알게 모르게 사람은 뒤늦게 결국 골병이 들기도 한다. 홍이도 먹고 살기 빠듯해서 자신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오랜 세월을 살았다. 예전 많은 이들이 그러했고, 지금 세대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들 먹고 살기가 쉽기만 하겠는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자신을 챙기기가 수월한 이들이 얼마나 될까. 어쩌다 보면 자신을 챙기지 못해, 그로 해서 누적된 감정을 화를 가끔은 엉뚱하게 타인에게 퍼붓기도 한다. 일명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 ――― 내가 너를 어찌 키웠는데. 그럼, 누군가는 이리 말할지도 모른다. 언제 내가 그리 키워 달랬어. 그러나, 이 또한 무의미한 휘발성 단문일 뿐이다. 태어날 때 자기 의도가 얼마나 담겼었는지는 단정지을 수 없지만, 자신 생 안의 시간은 자신 몫이다. 한 사람이 나이를 더하면서 서서히 내려놓고 비우고 가벼이 살다 돌아가는 게 어쩌면 좋은 마무리가 아닐까. 왜 자신에게 묶여서, 왜 타인을 압박해 ――― 업을 더하고, 자신을 해치고 타인을 해치고 ――― 자신의 시간에 그늘을 어둠을 쌓는단 말인가. 두서없이, 너무 이상한 얘기만 했다. 하고픈 얘기는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자신의 생도 자신의 가치도 스스로가 만끽할 수 있도록 너무 자신에게 야박하지도 말고 타인에게 강압하지도 말며, 우선은 자신을 위해 다음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업을 적게 쌓도록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한 줄로 뭐라 단정적으로 적기에는 홍이는 홍이일 뿐이라서, 제대로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다. 홍이가 좋아하는 반야심경의 한 구절로 적는다면 ―――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이 문장, 어려운 말이기는 하다. 그냥 단순히 한자 그대로를 해석한다면,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홍이도, 팔십이 넘은 홍이도 아직 정확히 그 뜻을 품었다 올바르게 제대로 행했다 장담하지 못한다.

홍이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 하기는 좀 그렇다. 예전에는 둘째 언니와 국내 방방곡곡(坊坊曲曲) 두루 여행 다녔었는데, 남편이 쓰러지고는 그도 힘들어졌다. 그 후에는 주로 딸네 식구들과 가족여행으로 국내 관광지를 다녔다. 홍이도 체력이 좋던 시절이 있었다. 칠십이 되기 전이었는데, 둘째 딸과 금강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는 홍이가 딸보다 산을 더 잘 탔다. 지나치는 관광객들이 홍이 보고 나이에 비해 산을 잘 오르신다고 인사말을 해주는 이도 있었다. 오랜만에 오르기 가파른 높은 산에 오르니, 숨통도 트이고 성취감도 느껴졌었다. 그리 높은 산을 그때만 해도 혼자 힘으로 잘 올랐었다. 하지만 홍이도 나이를 비껴가지 못했다. 칠십 중반을 넘어서면서 걷는 게 점차 둔해졌다. 이제는 오르기 가파르고 험하기도 한 높은 산을 혼자 힘으로 걸어 올라가 보는 것이, 이번 생에는 어렵다 생각하니, 뭐라 말하기 애매하지만 가슴안에 시큰한 서운함이 인다. 설악산에도 한라산에도 소백산에도 속리산에도 그 많은 좋다는 산에 올라 봉우리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바라보며 느끼는 희열을 이제는 영상으로만 보아야 하는 것일까. 병상에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밖으로 걸어나가지 않으니 온통 머릿속에서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끄집어내고 과거를 불러내기도 한다. 아직 비우지 못한 커다란 야망 같은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나이 든 이가 지니게 되는 탄식이다.


작가의말

-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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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재활병원 - 1 24.09.05 12 0 2쪽
11 명절 - 1 24.09.04 12 0 3쪽
» 금강산도 식후경 - 1 24.09.03 19 0 4쪽
9 간병인 – 1 24.09.02 15 0 2쪽
8 장기 요양 6등급 - 1 24.09.02 16 0 4쪽
7 동래 - 1 24.09.01 12 1 5쪽
6 시댁 식구 - 1 24.08.31 10 0 3쪽
5 나이 - 1 24.08.30 12 0 3쪽
4 이모 - 1 24.08.30 13 0 3쪽
3 딸 노릇 - 1 24.08.30 18 0 4쪽
2 뇌졸중 집중 치료실 - 1 24.08.29 11 0 3쪽
1 뇌경색 - 1 24.08.28 30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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