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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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리베봄
그림/삽화
해피리베봄
작품등록일 :
2024.08.28 02:47
최근연재일 :
2024.09.1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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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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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농사 - 1

DUMMY

텃밭 농사 - 1

- 벌레 먹은 깻잎



작년까지도 홍이가 농사짓던 주택가 텃밭이 있다. 깻잎 상추 호박 가지 고추 토란 방울토마토 등을 심었었다. 올해 봄부터 홍이가 노인 주간 돌봄센터에 매일 같이 다니고 큰딸네로 오면서, 그 텃밭과도 멀어졌다. 딸들 얘기로 추석이 가까워진 이 시점에 가보니, 그 텃밭은 밀림이란다. 텃밭이 밀림이라니, 홍이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했다. 홍이는 휴대전화기로 찍은 사진을 봤다. 사진은, 텃밭 대부분을 채운 작물이 깻잎이라는 사실과,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서 자연발생적으로 조밀하게 개체가 자랐고, 풀도 안 뽑고 농약도 안 해 엉성하게 키만 큰 작물이 서로 뒤엉켜 자랐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농약도 전혀 안 하고 조밀하기까지 하니 깻잎마저 벌레가 다 먹었다는 딸의 이야기를, 사진을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씨도 별도로 안 뿌렸는데, 작년에 흙에 흩뿌려진 깨가 저리 많았단다. 누가 봄 여름에 서너 번만 손을 봐줬어도 저리 키만 큰 작물이, 벌레가 잔뜩 뜯어먹은 작물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홍이도 가지 않았고, 딸들은 더욱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추석도 다가오고 너무 무성하니 한번은 건질 수 있는 깻잎이 좀 있나 살펴봐야겠다 딸이 생각한 모양이었다. 우선 현 상태를 보니, 잎은 너무 심하게 벌레 먹어, 한 뿌리에서 건질 수 있는 낱장 깻잎이 열 장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단다. 홍이 생각에 노동력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깻잎으로 보인다니, 텃밭 전체가 깻잎이었을 텐데, 벌레에게 다 양보하고 말다니, 벌레에게는 좋은 일이나, 그래도 소득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아까운 일이다. 작은 문제가 하나 더 남았다. 건질 것도 없으니 이제 베어버려야 하는데, 낫질할 줄도 제초기 사용할 줄도 아예 모르는 딸들뿐이라, 누가 그 작업을 하느냐가 문제다. 요즘 아직도 폭염이라던데, 누가 나서 수작업으로 작물을 뿌리째 뽑아줄 것인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와 줄기가 메마르면 보기에 좀 엉성하고 지저분하겠지만, 작물을 뿌리째 뽑는 일을 누구에게 네가 해라 강요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못하니 네가 해라. 이건 이치에 안 맞다. 네가 할 수 없으면 말하지 말라, 이것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홍이는 휴대전화기에 찍힌 텃밭 사진을 보다, 그냥 내려놓았다.

이제는 텃밭만의 문제가 아니다. 홍이 일상에서, 홍이 손이 안 거쳐, 홍이 눈에 안 차는 일들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홍이는 짜증을 낼 수 있겠지만, 그 짜증을 누가 다 받아주고, 누가 홍이 비위를 다 맞추어 줄 것인가. 과거에도 안 되던 일이고 앞으로도 가망 없는 일이다. 이제는 더더욱 어려워진 일이다. 이제 홍이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마음을 비우고 비워서 마음을 가볍게 해야만 한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병상 생활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홍이의 고집스러움은 지금 방향을 못 잡고 있다. 그러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도 몸이 예전 같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홍이도 안다. 그래, 그리되지 않으려고 재활치료도 열심히 하고 딸이 시키는 동작들도 열심히 한다. 홍이가 회복되어야, 최대로 회복되어야, 홍이도 주변 사람들도 일상이 일상일 수 있다. 홍이는 내려놓았던 휴대전화기를 들어 올려, 텃밭 사진을 한 번 더 바라다본다. 그리고 휴대전화기를 딸에게 준다.


작가의말

- 벌레 먹은 깻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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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텃밭 농사 - 1 24.09.13 6 0 4쪽
18 화장(火葬) - 1 24.09.12 10 0 4쪽
17 육하원칙(六何原則) - 1 24.09.12 12 0 4쪽
16 새치, 뿌리염색 - 1 24.09.11 12 0 4쪽
15 새로운 동거 – 1 24.09.10 11 0 3쪽
14 재활병원 – 2 24.09.10 10 0 3쪽
13 남자아이 - 1 24.09.09 8 0 3쪽
12 재활병원 - 1 24.09.05 12 0 2쪽
11 명절 - 1 24.09.04 12 0 3쪽
10 금강산도 식후경 - 1 24.09.03 19 0 4쪽
9 간병인 – 1 24.09.02 16 0 2쪽
8 장기 요양 6등급 - 1 24.09.02 17 0 4쪽
7 동래 - 1 24.09.01 12 1 5쪽
6 시댁 식구 - 1 24.08.31 10 0 3쪽
5 나이 - 1 24.08.30 13 0 3쪽
4 이모 - 1 24.08.30 13 0 3쪽
3 딸 노릇 - 1 24.08.30 18 0 4쪽
2 뇌졸중 집중 치료실 - 1 24.08.29 12 0 3쪽
1 뇌경색 - 1 24.08.28 30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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