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생

새치, 뿌리염색 - 1

새치, 뿌리염색 - 1

요즘 홍이는 머리 염색을 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끔 미용실 가서 커트하거나 곱슬거리는 아줌마 파머를 했다. 입원하고 아직 한 달이 안 되어, 딱히 머리를 어찌해볼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 머리 스타일이 커트 머리니, 머리 기장이 좀 자라면 단순히 길이를 자르면 될 것이다. 최근 홍이를 간병 오는 둘째 딸 머리가 반백이라, 홍이 생각에 완벽한 반백은 아니더라도 저러고 다녀서야 되겠나 싶은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둘째 딸 머리 색깔은 전체적으로 밝은 갈색 계열인데 정수리 부분부터가 허옇다. 염색 한번 하면 될 거 같은데 ―――― 홍이가 두어 번 뭐라 해도 딸은 들은 채도 안 한다. 이제 둘째 딸도 오십이니, 염색을 안 하면 정수리부터 흰머리가 보이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홍이에게 딸은 언제나 아이다. 그래 두어 번 계속 염색을 좀 하라고 잔소리했다. 답답한 마음에 같이 있던 막내딸에게 언니 머리 염색 좀 시켜라 하니, 막내딸이 말하길, 됐단다. 한 다리 건너도 다르다고, 어미인 홍이 눈에는 거슬리는데, 동생은 그냥 강 건너 일 남 일인가 보다.

큰딸이 둘째 딸에게 홍이 주민등록증을 건넸단다. 왜 그걸 둘째 딸에게 줬나 했더니, 홍이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큰딸 집에서 둘째가 살고 있는 집으로 다시금 전입신고 시키라고 큰딸이 시켰다 한다. 큰딸네로 이사가 반년여 만에 쓰러져 입원해 있는 홍이가 주민등록상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다. 그 이유가 아무래도 궁금해 딸에게 물으니, 둘째 딸이 말하길, 세금 문제란다. 세금. 뭔 세금. 둘째 딸이 말하길, 자신이 전해 듣기로 홍이가 가진 지금은 월세를 받고 있는 사십 년 넘은 연립주택을 매매로 내놓으려는데, 홍이가 큰딸네에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되어있으면, 큰딸이 두 채 이상 집을 가지고 있어 매매 시에 발생하는 세금 금액이 높단다. 결국 연립주택 판 돈은 홍이 병원비로 들어갈 비용이니, 세금을 줄일 수 있으면 그만큼 통장에 남는 비용이 생기는 일이다. 홍이에게 나쁜 일만은 아니다. 지금이야 병원비를 홍이가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충당하고 있지만, 한 달 비용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니, 그 돈으로 얼마나 버티겠는가. 홍이는 병원을 퇴원해 집으로 가고 싶지만, 홍이가 완쾌되지 않으면 아마도 갈 집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홍이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으로 서운하다거나 누구에게 뭐라 할 수는 없다. 각자 일상이 있는데, 몸이 불편한 홍이에게 묶이어 일상을 포기하고 살 이도 없을 것이고, 홍이도 결국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이 현실을 계속 아닌척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집에 가고 싶다면, 완전하게 몸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금 큰딸네 집이건 어디이건 갈 수 있다. 그전에는 홍이는 병원에서 크게 걸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홍이는 괜스레 서글프다. 어쩌다 자기 몸이 이리 됐나 싶어, 그냥 먹먹해진다.

둘째 딸의 머리가지고 타박을 했지만, 지금 홍이는 알게 모르게 자신의 굳은 몸과 흐릿해진 기억력을 스스로 타박하곤 한다. 어제도 둘째 딸이 저녁 식사시간에 함께 있었는데, 알약 세 개와 가루약 모두를 챙겨 먹고도, 좀 지나 홍이는 약 먹어야 한다고 딸에게 말했다. 둘째 딸은 밥 먹고 약까지 다 먹었다고 알려준다. 홍이는 혼자 있을 때도 몸을 움직여보지만, 아직은 양치질 후에 물을 뱉을 때도 누군가 뱉을 그릇을 받쳐져야, 편하게 뱉을 수 있다. 딸은 이제 머리가 하얗게 되는 나이가 되었지만, 홍이는 몸이 기억을 잘 못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홍이도 새치 머리 몇 가닥 보이면 신경 쓰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반백이 된 머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은 기억력과 굳은 몸의 자신을 스스로 안아주고 안마해 줄 뿐이다. 둘째 딸이 다음 간병 올 때는 머리 염색을 하고 나타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