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바삭 이세계 힐링 라이프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잉크맛쿠키
작품등록일 :
2024.08.30 17:49
최근연재일 :
2024.09.17 23:45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379
추천수 :
187
글자수 :
95,302

작성
24.09.04 18:35
조회
329
추천
13
글자
12쪽

이세계 첫 튀김의 효능.

DUMMY

“좋아, 지방만큼은 훌륭하군. 이거면 제대로 된 기름을 뽑아낼 수 있겠다.”


 두툼하게 자리 잡은 비계를 칼로 썰어서 떼어냈다.


“로냐, 거기 화구에 솥 좀 올려. 그리고 물 한 바가지. 불도 붙이고.”


 로냐는 망설임 없이 지시를 따랐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겨서 손끝에 불을 만들어 나무에 붙였다. 신기하구만. 새삼 여기가 이세계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나는 깍둑 썬 비계를 하나하나 솥 안에 넣었다. 솥 안의 물은 금방 뽀얗게 변했다.

그리고 끓으면서 투명한 기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글자글 끓는 소리. 점점 고소한 기름내가 퍼진다.


“혹시 마왕성에 뭐든 좋으니 곡물가루 같은 건 없나?”


 튀김옷을 입힐 반죽이 필요한데······. 여기 주방에는 그런 게 보이질 않는다.


“글쎄요. 전리품 창고를 뒤져보면 뭔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서 찾아볼까요?”

“흠. 그럼 됐어.”


 튀김옷 없어도 되는 쪽으로 가야겠군.


 나는 주걱으로 비계를 천천히 저으며 기름이 완벽하게 뽑히기를 기다렸다. 주걱이 솥 바닥을 긁는 소리만 들릴 때, 로냐가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또 제가 도울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괜찮습니다.”

“도울 건 없고,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 마왕의 집사라고 했었지? 그럼 제법 높은 자리 아닌가?”


 로냐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네. 이인자 정도는 됩니다.”

“그럼 이런 주방 잡일은 굳이 네가 할 필요 없잖아. 다른 하인을 시키면 될 텐데. 지금도 좀 피곤해 보이고.”


 내 질문에 로냐의 눈초리가 약간 가늘어졌다.


“김튀김 님께서 저희 마족에게 귀한 이세계 지구 분이시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방인이니까요. 만에 하나를 대비하는 것이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그러자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서 긴 손톱이 튀어나왔다.


“고양이냐? 손톱도 숨길 수 있다니.”


 내가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로냐는 다시 손톱을 감추었다.


“김튀김 님은 배짱이 제법 두둑하시군요. 놀라지도 않으시고.”

“죽은 다음에 여기서 다시 눈 뜬 일을 겪었는데, 애지간한 거로는 안 놀라지 않을까?”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요.”


 게다가 지금은 이 기름에 집중해야 할 때니까. 손톱이 튀어나오든, 발톱이 튀어나오든 내 알 바 아니다. 


“······.”


 그런데 기름에 집중하는 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로냐가 비계에서 녹아내린 기름 냄새에 반응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주방을 가득 채우자, 로냐의 코가 살짝 옴찔거렸다.


 어느새 앞으로 기울어진 고개. 조금씩 천천히 더. 거의 솥 안으로 들어갈 기세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눈 아래가 그늘진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집사 자리가 보통 일이 아닌 모양이군.


“야야.”

“흐음······. 과연······.”


 로냐가 내 말은 듣지도 못한 채 미세한 감탄사를 흘렸다.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좀 나와 봐. 니 머리카락 튀겨지겠다.”


 주걱을 휘두르며 로냐를 밀어냈다. 로냐는 뒤로 물러서며 눈을 크게 떴다.


“여기 지글거리는 게 튀김이라는 건가요?”

“이건 기름을 뽑는 거다. 뭐, 남은 비계도 튀김이라면 튀김이기는 하지. 소금 후추 쳐서 먹으면 나쁘지 않아.”


 로냐는 내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다시 눈길이 솥 안으로 향했다.


 좋아. 이 정도면 기름은 순조롭게 마련되었고. 


 과연 무엇을 튀겨야 할까.

 밑처리를 할 수 없는 흙돼지 고기는 안 될 거 같고.


 내가 고민하는 동안, 로냐는 나 대신 주걱을 잡고 솥 안의 기름을 천천히 휘저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꼴깍 침 삼키는 소리까지 내 가면서.


“···바빠 보이셔서 도와드리는 겁니다. 그뿐입니다.”


 내 시선을 느낀 로냐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 역시 쓴감자를 어떻게 해봐야 하나? 감자튀김?



[재료 : 야생 쓴감자]

[분류 : 뿌리채소]

[등급 : E]

[분석 결과: 매우 쓴 맛이 강한 감자. 그대로 조리하면 쓴맛이 더욱 강화되어 식용에 적합하지 않음. 마족은 이 쓴맛에 강력한 강장 기능이 있다고 믿고 있음. 영양소는 대부분 지용성. 물에 넣으면 쓴맛을 뺄 수 있음.]



 저 설명을 믿는다면, 물에 담가서 쓴맛을 제거할 수 있다는 건데.


 일단 씻고 칼로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조금 잘라서 입에 넣어 보았다. 도대체 얼마나 쓴맛이-


“크헉?”

“김튀김 님?”

“커헉! 컥! 컥!”


 정말로 죽음의 쓴맛이다. 몸이 저절로 뒤틀리고 사지가 오그라들었다. 쓴맛이 혀를 파고든다. 벌레 잘못 먹은 개구리마냥 손으로 혀를 쓸어내야 할 정도였다.


 후, 물에 담그면 된다니까 상태창을 믿어 보자.

 물을 한 바가지 퍼서, 그 안에 쓴감자를 손가락 굵기보다 조금 가늘게 썰어서 담가 두었다. 넣자마자 전분처럼 탁한 것이 녹아 나오는 게 보인다.


 쓴맛을 빼는 동안, 나는 집게로 솥의 돼지기름 속에서 기름이 빠져 바삭하게 튀겨진 비계를 하나 건져냈다.

 뜨끈한 김이 퍼지고, 고소하면서도 눅진한 냄새가 난다.


 로냐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접시를 들고 와서 내가 건져낸 바삭한 비계를 받았다.


“과연. 예사롭지 않은 냄새입니다. 낯설군요.”


 눈빛이 마치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반짝였다.

 만약 로냐한테 꼬리가 있었다면, 지금 미친 듯이 프로펠러를 돌리고 있었겠지.


“아뜨뜨.”


 손으로 잡자 마찬가지로 상태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요리 : 엘루네아 토종 흙돼지 비계 튀김 - 최하급]

[등급 : D]

[분석 결과 : 엘루네아 토종 흙돼지의 비계에서 기름을 뽑아내고 남은 튀김. 겉은 바삭하게 튀겨졌으며, 속은 고소한 기름이 촉촉하게 배어있음. 깊고 진한 돼지기름의 풍미가 특징. 맥주가 없음을 한탄하게 될 것.]

[효능 : ?????]



 재미있군. 무슨 게임 아이템 생산한 것처럼 등급이 보인다.


 내 튀김 경력과 자존심을 생각하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최하급의 등급이라니. 여건이 열악하니까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나저나 튀김에 효능이라고 할 게 따로 있나? 우리나라 식당마다 벽에다가 음식 효능을 광고로 걸어놓기야 한다마는······.


 비계 튀김이 식을 동안, 물에 담가두었던 쓴감자를 꺼내어 한입 씹어봤다.


“오.”


 놀랍게도, 그 끔찍했던 쓴맛이 많이 사라졌다. 아삭거리는 단단한 식감. 조금 텁텁한 맛과 풋내. 혀끝에 남는 흐릿한 쓴맛이 있지만 거슬리지는 않았다. 그저 풋풋한 채소 정도다.


 보통 감자를 튀길 때는 전분가루나 튀김가루를 살짝 묻혀주는 게 정석이지만, 그냥 튀겨도 괜찮다. 패스트푸드점의 감자튀김처럼 매끈하게 튀겨지는 거지.


 온도계가 없으니 기름 가까이 손을 가져다 대어 온도를 가늠해 보았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경험상 어느 정도라고는 판단할 수 있으니까.


 음. 좋아. 이 정도면 튀겨도 되겠다. 나는 깨끗한 천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끓는 돼지기름 속에 썰어 놓은 쓴감자를 집어넣었다.


 치이익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

끓어오르는 기름 속에서 감자가 노릇노릇하게 익어간다.


 그렇게 튀겨낸 감자튀김을 튀긴 비계 옆에 소복하게 담았다. 그릇 위의 노릇노릇한 감자튀김과 비계튀김. 일단 폭력적인 비주얼이군.


 마지막으로, 주방 한쪽에 놓여 있는 작은 단지 속에서 소금을 꺼내 마무리.


“다 됐다. 이 튀김에 딱 어울릴 만한 소스를 곁들였다면 완벽했을 텐데.”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거라고 자평하면서 감자튀김을 하나 집었다.



[요리 : 야생 쓴감자 튀김 - 최하급]

[등급 : D]

[분석 결과 : 야생 쓴감자를 물에 담가 쓴맛을 제거한 후, 돼지기름에 튀겨낸 감자튀김. 겉은 황금빛으로 바삭하게 튀겨져 있으며, 속은 부드럽고 촉촉하게 살아있음.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이 정도면 정성이 갸륵하다고 할 수 있음.]

[효능 : ?????]



 돼지기름에 튀겨낸 감자튀김. 손가락으로도 느껴지는 이 바삭한 감촉과 기름기. 여전히 열받는 상태창의 설명과 등급.

 그리고 이것 역시, 효능이 뭔지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다 된 겁니까?”

  

 로냐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100점은 아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70점 정도는 되겠지.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이라고는 할 수 있겠군.”

“냉정한 평가군요.”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는 거다.”


 나는 로냐에게 접시를 내밀었다.

 비계 튀김과 감자튀김이 접시에 놓였을 때부터, 로냐는 시선을 떼지 못했었다. 엄청 먹고 싶겠지.


“하지만 너에게는 또 다르겠지. 자, 먹어봐. 믿기 힘든 맛일 테니까.”

“그럼, 사양하지 않고······.”


 로냐는 내 말에 순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다가 멈칫거렸다. 그리고 얼굴에 힘을 잔뜩 주며 간신히 말했다.


“아니. 아닙니다. 그러니까···이베트 님께서, 먼저 맛을 보셔야 합니다. 저는 다음에······.”


 당장 먹고 싶은 욕망과 집사로서의 책임감이 충돌하는 게 훤히 보이는구만.


 그때, 문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여기 있어.”


 이베트가 주방 문에 서 있었다. 온 마왕성에 퍼진 냄새 때문에 궁금해서 와봤다고. 코가 마치 강아지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다 됐으니까 와서 먹어봐.”

“그럴까? 로냐, 식기는 어디에 있지?”

“아니, 아니. 지금은 손으로 먹어봐. 튀김은 손으로 집어 먹을 때 더 맛날 때도 있으니까.”


 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던 이베트는 결국 손으로 감자튀김을 집어 들었다. 


 미간을 구기고 조금 경계하는 모습.

 하지만 조심스럽게 입에 넣자마자, 표정이 싹 변했다.


“오옷? 오오옷!”


 번쩍 뜨인 눈. 감자튀김을 씹던 이베트의 턱이 잠깐 멈췄다.

 저 느낌은 나도 안다. 상상도 못 할 맛의 정체를 의심하면서 혀로 다시 확인해 보는 거지. 그리고 기뻐하게 될 거다.


 이베트의 다시 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폭주한 것처럼 빠르게. 저러다 혀라도 씹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으음! 음!”


 이베트는 어깨가 다 떨릴 정도로 입을 쉴 새 없이 오물거렸다. 그리고 손으로 튀긴 비계와 감자튀김을 쉴 새 없이 집어 입으로 밀어 넣었다.


“이베트 님?”

“로냐, 너도. 너도 먹어봐!”


 이베트가 비계 튀김을 로냐의 입에 밀어 넣었다. 로냐는 당황한 듯했지만, 곧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흐음?”


 로냐의 눈도 크게 떠졌다. 전에 본 적 없는 강렬한 감정이 얼굴에 스치는 것 같다. 


“이게 튀김이라는 건가요? 맛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 그게 바로 튀김이라는 거다. 튀김의 맛이지.”

“그렇습니까.”


 로냐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하나 맛봤으면 됐다는 듯.


 하지만 자기 손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이베트의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튀김을 하나 더 집었다. 이번에는 감자 튀김을. 역시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이베트와 로냐의 손놀림이 그릇 위에서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야. 로냐? 삼키고 나서 집어야지?”

“이베트 님? 그건 제 손가락입니다. 씹지 마세요.”


 튀김이 가득했던 그릇은 순식간에 비어 버렸다. 남은 것은 부스러기. 그리고 이베트와 로냐의 손에 묻은 기름기 뿐이다.


“아아, 지금까지 내가 먹은 건 그냥 쓰레기에 불과했었구나. 깨달았어.”


 이베트는 만족스럽다는 듯 배를 매만지며 눈빛을 반짝였다. 


 바로 저거다. 저 표정. 저 반응. 저렇게 순수하게 튀김을 즐겨 주는 거.

 저런 리액션이, 그리고 텅 비어 버린 접시가 요리사를 가장 기쁘게 만드는 거지. 내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이정표이기도 하고.


“엇? 이베트 님?”


 그런 이베트의 얼굴을 보던 로냐가 깜짝 놀라더니 손가락으로 이베트의 눈가를 가리켰다.


 어···나도 알아차렸다. 뭔가 달라진 것을.


작가의말

어떤 감자튀김을 좋아하십니까?

패스트푸드에 사이드로 자주 나오는 가늘고 길쭉한 슈스트링이 역시 디폴트라고 할 수 있겠죠. 슈스트링도 나쁘지는 않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름진 해시브라운을 좋아합니다. 맥모닝을 먹을 때 꼭 추가로 주문하곤 합니다. 두 개 추가할 때도 있고요.


최악은 웨지감자입니다. 두껍게 반달 모양으로 생긴 그거요.

안쪽 식감이 맹탕 찐감자와 뭐가 다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바삭바삭 이세계 힐링 라이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은 매일 밤 11시 45분입니다. 24.09.12 6 0 -
공지 소중한 골드 후원, 감사드립니다! 24.09.03 125 0 -
16 튀김 반죽용 가루? 없으면 만든다. 24.09.17 43 8 12쪽
15 모둠 튀김의 효능. +1 24.09.15 68 9 12쪽
14 게살 고로케와 야채 튀김 한 접시. 게장 카레를 곁들인. 24.09.14 88 10 12쪽
13 추첨과 웨이팅 그리고 재료 준비. 24.09.13 105 7 13쪽
12 헛소리하는 걸 보니 배가 고픈 모양이군. 24.09.12 132 10 12쪽
11 마음을 바삭하게. +1 24.09.11 139 12 12쪽
10 세상에 나쁜 식재료는 없다. 24.09.10 156 11 13쪽
9 소스 없는 튀김은 김치 없는 라면. +1 24.09.10 170 11 17쪽
8 김튀김의 튀김 공방 2호점. 24.09.09 206 14 14쪽
7 감히 아마추어가 우습게 볼 세계가 아니다. 24.09.08 238 13 13쪽
6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 24.09.07 248 12 14쪽
5 판데모니아의 국빈, 김튀김. +1 24.09.06 277 12 12쪽
4 김튀김, 널 놓칠 순 없다. +2 24.09.05 320 15 14쪽
» 이세계 첫 튀김의 효능. +3 24.09.04 330 13 12쪽
2 귀빈맞이 마족의 진미죽. +2 24.09.03 364 13 15쪽
1 김튀김의 튀김. +2 24.09.02 494 17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