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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맛쿠키
작품등록일 :
2024.08.30 17:49
최근연재일 :
2024.09.17 23:4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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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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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헛소리하는 걸 보니 배가 고픈 모양이군.

DUMMY

 자간이 벗은 로브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녀석은 검은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연미복 같은 정장 차림이었다.


 이베트가 입고 있던 드레스와 비슷한 색상 조합이군. 고급스러운 벨벳처럼 보이는 게 뭔가 제대로 격식을 차리고 온 모양새다.


 뭔가 저런 검정 빨강 조합이 마족에게 일반적인 것인가 싶을 때,


“김튀김.”


 갑자기 자간이 머리를 깊이 숙였다.  무슨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과장된 큰 몸짓으로.


 연회장에서 그렇게나 싸가지 없게 시비를 걸었던 놈이, 패배조차 인정하지 않았던 놈이 지금 와서 고개를 숙인다고? 당황스럽구만.


“그날의 내 행동은 분명 경솔했다. 사과하고 싶다네.”


 아예 말로 사죄의 뜻을 분명히 드러냈다. 낮고 무게감 있으면서도 또 겸손한 목소리다. 저러니 오히려 의심스럽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나 싶을 정도로.


“어, 음···사과할 짓은 했지, 확실히. 그런데 지금 와서 갑자기?”

“그대가 원로파 동지들에게 나눠줬던 튀김, 나도 맛을 봤다네.”


 고개를 든 자간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마치 그 맛을 떠올리는 듯, 그의 표정은 유연해졌다.


“그 맛 하나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맛이었다. 게다가 그대는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진짜 실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라면서?”

“뭐, 그랬었지. 소스고 뭐고 없었으니까. 기름도 한 종류뿐이었고.”

“대단하군. 내가 튀긴 것하고 비교 삼아 먹어봤는데······. 부끄러울 정도의 차이였지.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지. 내가 너무 오만방자했다. ”


 자간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테이블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사죄의 뜻으로, 늦었지만 폐하의 말씀대로 김튀김 너를 국빈으로 예우하려고 한다. 우리 원로파의 공통된 의견이라네.”


 세상일 참 알 수 없는 법이구만. 이게 이렇게 흘러가나?


 저번의 그 연회장에서 나에게 시비를 걸고 튀김 대결에서 박살나는 꼴을 봤을 때만 해도. 앞으로 이놈하고 어떤 형태로든 충돌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괜히 가게에 와서 시비를 건다거나, 깽판을 친다거나.

 하지만 이런 걸 예상하지는 못했다고.


“참 이상한 일이군. 오만의 대공께서 이 정도로 겸손해도 되나?”


살짝 비꼬는 듯한 말로 긴장을 풀려 했다. 자간은 잠시 미소를 띠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내가 오만의 대공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다니. 그 짧은 시간에 마족의 역사까지 공부하셨나 보군.” 

“그냥 어디서 주워들은 거다.”


 로냐가 말해준 거지만, 무심하게 대꾸했다.


“오만의 대공이니까 오만해야 할 때와 겸손해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거라네. 지금은 겸손할 때인 것 같군.”


 뭐, 다행히 적대적인 목적으로 온 건 아닌 거 같고. 식칼을 찾고 어쩌고 할 상황은 아니다. 나는 주방 테이블에 팔을 짚고 선 채 물었다.


“그래 뭐, 인사치레는 이 정도로 하고······. 이 꼭두새벽에 날 찾아온 이유가 뭐지?”


 자간은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는, 눈치가 있다면 그 날 연회장의 분위기를 읽었을 거라고 말했다.


 분위기를 읽는 정도가 아니라, 전후 사정을 이베트에게서 직접 들었었지.

오래오래 평화롭게 살고 싶은 이베트와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원로파 대공들의 관계를.


“제법 사이가 나빠 보였는데. 이베트하고 너 말이다. 뭐, 악감정이 있다던가?”


 모르는 척 던진 내 물음에 자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도 훨씬 깊고 어려운 문제지. 그래서 여길 찾아온 거고."


 자간은 잠시 말을 멈췄다. 뭔가 생각을 정리하려는 것 같았다. 들리는 건 새벽 빗소리뿐이다.


“김튀김.”


 한참만에 자간이 입을 열었다.


“존재라는 것은 시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네. 시간 속에서 탄생하고, 시간 때문에 소멸하지. 우리 마족도, 인간도 마찬가지일세.”


 뭔가 철학적인 이야기인가 싶은데, 곱씹어 보니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 가혹한 운명 앞에서, 필멸은 순환으로 맞섰지."


 생명이 후대를 남기듯, 용사가 죽으면 다음 용사가 태어나고, 마왕이 죽으면 다음 마왕이 이어가는 것. 그것이 순환이라고 자간은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 폐하는 그 순환을 억지로 틀어막은 거라네. 그건 미련이야.”


 이 부분에서 자간의 목소리가 조금 단단해졌다.

 분명 이베트가 말했었지. 죽고 싶지 않다고.


 이베트가 순리를 틀어막은 대가가 나중에 이 엘루네아에 어떤 참사로 다가올지, 자신은 두렵다고. 그래서 이베트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거라고 자간은 말했다.


 글쎄. 이베트가 해준 말과는 조금 다른 거 같은데.


“마왕이 죽으면 대공 중 하나에게 마왕의 힘이 계승된다면서? 그게 네 목적 아니냐? 마왕 자리 차지하는 거.”


 이베트가 오래 사는 게 너에게는 상대적인 기회 박탈인 거 아니냐고. 이베트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자간은 내 말에 느긋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허허, 마왕의 힘이 나에게 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라네. 필연이라고 단정 짓지 말게나.”


 녀석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자간은 나를 한참 응시하다가, 조금 더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그런 범부로 폄하하지 말게. 불쾌하군.”


 불쾌할 것까지야.


 흠. 아무래도 요리사라는 직업이 접객을 겸하다 보니, 내가 사람 속내는 잘 알아차리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이 자간 녀석이 뻔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거 같다.


 잠시 숨을 가라앉힌 자간은 자기가 오늘 여기 튀김 공방을 방문한 것은 단지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라서라고 밝혔다.


“잘못된 선택?”

“막힌 순환을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폐하를 향한 우리 원로파의 공세는 거세질 것이오. 그래서 경고하는 것이라네.”

“설마 이베트를 상대로 반역이라도 할 작정인가?”


 자간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반역? 난 단지 멈춘 수레바퀴를 다시 굴리려는 것뿐이지. 수레 자체를 때려 부술 생각은 없다네. 나는 전쟁광이 아니거든.”


 자간은 의자 등받이에 느긋하게 기댄 채,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베트를 몰아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인간 왕국과 교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마족의 실용적인 마학을 익힌 용사가 얼마나 강해질지, 과연 폐하는 버틸 수 있을지······.”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내세운 교류라면 이베트도 반대하지 못할 거라고. 그 교류를 통해서 용사의 힘을 키우면, 결국 깨진 균형으로 인해 생사가 달라질 거라고.


 나는 순간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이 돌아갔다.

 이베트는 죽음과 소멸을 두려워하는 마왕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평화를 선택할 게 뻔하다. 평화에 반대하는 건 자기 발목을 자르는 일이나 마찬가지니까.


 그 평화가 이베트를 몰아내는 것이 된다면 계산이 복잡해지겠는데······.


 자간 이 녀석, 오만한 바보인 줄 알았는데, 모략 쪽으로는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다.


 이렇게나 중요한 계획을 나한테 쉽게 털어놔도 되는 건가? 


“이런 이야기를 나한테 해도, 상관없나? 이베트 귀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나는 일부러 무심한 듯 물었다. 자간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의 진의를 확인하고 싶었다.

 자간은 차분히 웃으며 말했다.


“진심을 터놓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김튀김, 단도직입으로 말하지. 힘이 되어 주시게.”


 갑자기? 나더러?

 황당하군.


 자간은 사람 좋은 웃음을 씨익 흘리더니 나를 향해 척, 손을 내밀었다.


“우리 원로파와 함께 할 인재로 영입하고 싶다는 뜻이네.”

“······.”

“우리 마족은 그동안 음식을 그저 약이나 배를 채우는 수단으로만 여겨 왔었지.”


 하지만 내 덕분에 미식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알게 되었다고. 이제 미식의 즐거움이 시작된 거라고.


“그래서?”

“새 시대가 열리고 나면, 미식의 문화도 꽃필 것이야. 그때는 김튀김 그대의 힘이 절실하지 않겠나?”


 쉽게 말해서, 앞으로 잘 밀어줄 테니까 이베트 통수를 치고 자기 손을 잡아라, 이런 뜻이구만.


이 한마디 하려고 자기 입장이니 철학이니 개똥같은 소리를 그렇게 길게 떠들어 댔다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자간의 손을 잡는 대신, 그 비어 있는 손에 포크를 쥐여 주었다.


“음?”

“헛소리 찍찍 하는 거 보니까 배가 고픈 모양인데. 뭐라도 튀겨 줄 테니까 먹고 나가.”

“······.”


 여기 엘루네아에서 권력 놀이에 끼어들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는 튀김 요리사일 뿐이다.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하다.

그저 이곳에 튀김에 대한 내 신념을 알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마족들에게 맛있는 튀김의 즐거움을 주는 것. 그것뿐이다.


 누굴 배신하고 원수지고, 정도를 벗어나는 거. 나하고는 안 맞다. 그럴 성격이었으면 애초에 튀김 장인으로 우직하게 걷지도 않았을 거다.


 자간은 포크를 응시하고 있다가, 그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답은 들은 거로 치겠네. 식사 때도 아직 멀었으니, 튀김은 다음에 맛보도록 하지.”

“거 이왕 인간 왕국하고 교류할 생각이면······.”


 쓰잘데기없는 생각 말고, 인간의 농업 기술이나 좀 배워보라고 자간에게 말했다. 


 그게 마족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될 거니까. 그리고 농업을 통해 온갖 식재료와 기름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으면 나도 좀 편해지겠지.


“···고려해 보겠네.”


 무심하게 대답한 자간은 돌아 나가다가 잠깐 고개를 틀었다.


“지난번에 튀김 대결을 했을 때, 내가 경솔하게 섣불리 덤벼서 망신을 당한 건 기억하고 있겠지?”


 자간은 다음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선포했다. 


“다음번? 또 도전하려고?”

“물론이다. 그리고 내가 이길 거라고 믿네. 이건 정치적인 입장이 아니라, 나 개인의 빚이라고 해 두지.”


 자간은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니 언젠가 꼭 갚아 주겠다고 말했다. 


“그래, 뭐 열심히 해봐라. 지는 싸움인 걸 알면서도 덤벼야 할 때가 있는 게 사람이니까. 마족도 다르지는 않겠지.”

“후후···어째 오만의 칭호는 나보다 김튀김 그대에게 더 어울리지 않는가.”


 공방 안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싶을 때,


 부우우우웅-


 진동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꼭 휴대폰 진동 울리는 거 같은데?


“이런, 실례하지.”


 자간은 재킷 안쪽으로 손을 쑥 집어넣더니 화려하게 장식된, 손안에 쏙 들어갈 정도의 마석을 꺼냈다.


 그리고 그 마석을 손에 쥔 채, 턱을 들어 올리고 시선은 내려다보며 손가락 끝으로 마석을 톡톡 두드려댔다. 흐음 소리를 내면서.


 저 모습, 너무나 익숙하다. 마치 우리 아버지가 문자 메시지 확인할 때의 모습 같다.

 저 마석이 마족에게 일종의 휴대폰 같은 장치인 건가? 겉보기에는 그냥 번들거리는 돌 같은데.


“흠? 김튀김?”


 뭔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린 자간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튀김의 튀김 공방 2호점 튀김 교환권 추첨에서 낙첨되었다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그대하고 관련이 있는 건가?”


 아, 로냐에게 부탁했던 거다.

이런 식으로 해결한 모양이구만.


작가의말

 추석이 코앞이니 슬슬 냉장고를 비워야 할 타이밍입니다. 온갖 튀김으로 가득 차게 될 테니까요.

 오늘은 냉동실에서 냉동만두 꺼내 먹었습니다. 당연히, 만두 중의 만두, 만두지왕은 군만두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군만두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조리할 때 주방이 엉망이 된다는 점이겠죠. 기름이 튈 수 밖에 없으니까요.

 에어프라이어라는 현대 문명의 축복이 있습니다만, 기름에 푹 담가서 농후하게 튀긴 것과 뜨거운 공기로 대충 바삭하게 만든 것은 하늘과 지하 100층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맛이냐 편리함이냐. 어려운 문제군요.

 그렇기에, 미리 튀겨 놓고 얼린 냉동만두를 사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겁니다. 이거면 에어프라이어에 돌려도 기름에 튀긴 진짜 맛을 간편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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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소스 없는 튀김은 김치 없는 라면. +1 24.09.10 171 11 17쪽
8 김튀김의 튀김 공방 2호점. 24.09.09 206 14 14쪽
7 감히 아마추어가 우습게 볼 세계가 아니다. 24.09.08 239 13 13쪽
6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 24.09.07 248 12 14쪽
5 판데모니아의 국빈, 김튀김. +1 24.09.06 278 12 12쪽
4 김튀김, 널 놓칠 순 없다. +2 24.09.05 320 15 14쪽
3 이세계 첫 튀김의 효능. +3 24.09.04 330 13 12쪽
2 귀빈맞이 마족의 진미죽. +2 24.09.03 365 13 15쪽
1 김튀김의 튀김. +2 24.09.02 495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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