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관학교 대신 일반대를 가는 건데."
사관학교에 간 건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공부는 자신 있었고, 성적만 잘 받아서 졸업만 하면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됐으니까.
영관까지만 진급한 다음 전역하면 연금도 꽤나 나오니, 그 뒤로는 편한 인생을 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생각한 대로 됐다.
군인이라는 직업이 내 성격과 잘 맞았는지 성적도 우수했고, 커리어도 나쁘지 않았다.
대한민국 육군을 통틀어서 나보다 빨리 진급한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처럼 대한민국 육군에게 버려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 그냥 닥치고 있을 걸."
한 번만 시류와 타협했으면 됐다.
만약 그랬다면 영관급은 물론이고 장성급도 노려볼 수 있었겠지.
어쩌면 은퇴 후에 국회의원일을 하면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 당돌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고작 대위 밖에 되지 않은 놈이, 장성급 장교들의 생각이 틀렸다며 물어 뜯었다.
그러니 멀쩡히 군생활을 할 수 있을리가 있나.
나는 '높으신 분들 기분 상해죄'로 옷을 벗게 된 것이다.
"이제 뭐 해먹고 사냐."
당장에 취업부터가 걱정이다.
사관학교에서 배운 거라고는 군사학과 문과 지식 뿐인데, 당연히 사회에서 써먹을 수 있을리가 없잖는가.
옛날 쌍팔년도 시절처럼 군 생활을 사회 진출용 커리어로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내 빅데이터에 따르면, 지금 같은 '불안성 실명'에는 니코틴이 특효약이다.
"... 하,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니코틴이 머릿속을 팽팽 도는 이 기분.
그래, 역시 현대인의 3대 필수 영양소는 니코틴, 알코올, 카페인이 맞아. 이제야 좀 사람 사는 것 같네.
나는 당당하게 걸어다니며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보급관님이 - 군생활을 20년이나 더 하신 분이라 막 말하기 좀 그렇다 -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나는 오늘 전역인 몸.
오늘 전역하는 병장한테는 머리 검사도 안 하는 게 대한민국 국군의 표준 아니던가. 오늘 전역하는 장교는 더더욱 건드릴리가 없다. 암암.
이런저런 잡생각과 함께 터벅터벅 걷다보니, 벌써 부대 밖이었다.
"충성!"
"어, 그래. 근무 열심히 서지 말고 대충 서라."
"... 예, 알겠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어차피 나는 군법이고 나발이고 상관 없어졌다.
그 말인 즉슨, 근무 시간에 영외로 나가버려도 된다는 뜻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늘상 하던 일이지만.
그렇게 마음 먹고 부대 초소 앞에서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려는 순간.
"어, 어?"
병사의 의문 섞인 목소리와 함께, 거친 엔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이거 두돈반 엔진 소리인데?
"중대장님! 피하십쇼!"
고개를 들자마자 보이는 건, 강원도 산골짜기가 아니라 두돈반의 범퍼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한 가지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 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때는 군의 최정상에 서보고 싶다는 소망을.
- 작가의말
아직 초보 작가지만, 모쪼록 재미있게 읽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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