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커로 독일 제국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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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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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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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온 세상이 융커다 (1)

DUMMY

주말 대낮에 남정네들 편지를 받는 일은 딱히 즐겁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한국에 사는 중학교 1학년 애가 수염 가득한 아저씨들 문자를 좋아할리가 없잖는가.

내 정신 연령이 30대 후반이긴 해도, 아니, 그래서 더 싫다. 대대장님이 보낸 문자를 받는 것 같다고.


아니, 그래. 편지를 보낼수는 있다.

근데, 편지를 보낼거면 돈이나 귀금속 같은걸 넣어... 아니, 이렇게 표현하면 너무 적나라하니까 '성의'라고 하자. 아무튼 성의를 보여야지. 응?


"망할 융커 새끼들."

"응? 뭐라고 했어, 위르겐?"

"어우, 깜짝이야. 노크 좀 하고 들어와, 페도어."

"하지만 여기는 너랑 내가 쓰는 기숙사인데."


후우, 융커라는 단어를 쓴 건 안 들킨 모양이다.

물론 원래 융커라는 단어는 대농장주, 특히 독일 동부의 대농장주를 일컫는 말이지만... 지금은 자유주의자들이나 쓰는 비하 표현이란 말이지.

그러니까...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대충 '수구꼴통' 같은 뉘앙스다. 애초에 융커도 정치적 용어였으니까 용례도 비슷한 셈이다.


"... 이게 뭐야?"

"편지."

"위르겐, 니가 잘생기긴 했는데 그렇다고 연애 편지를 자랑하는 건-"


나는 말 없이 편지 하나를 던졌다.

'보병은 전장의 여왕'이라던가, '기병이야 말로 진정한 남자들의 병과' 같이 달달한 연애 편지 따위에는 하등 쓰일 일이 없는 문장들을 본 페도어는 조용히 입을 닫는 걸 택했고.


"하아아아...."

"... 위르겐, 그래서 진짜 어느 병과로 갈거야?"

"글쎄."


편지에는 낭만과 감성을 자극하는 얘기 뿐이었다.

그 말인 즉슨, 자신들이 뭘 해줄 수 있다는 이득에 관한 걸 논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들이 맹자라도 되는건가? 이로움을 말하면 발작하는 병이라도 있는거냐고.


그런 건 다 차치하고 본다면, 나는 기병만 아니면 그만이다.

다들 내가 기병으로 갈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병은 좀 그래.


그래, 뭐. 사실 내가 기병이랑 인연이 깊긴 하지.

내 조상도, 내 아버지도 기병 병과인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승마기도 하고.

근데... 거기 미친 놈들이나 들어가는 병과잖아. 나 같이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21세기 현대인은 절대 적응할 수 없을거라고.


게다가, 기병이라는 병과는 완전히 망했다!

나는 말 타고 뛰어다니는 게 즐거운거지, 기관총 앞으로 돌진하다가 개죽음 당하는 게 즐거운 건 아니란 말이다!

그런 임무를 안 맡으면 된다고? 그러면 후방에서 수송 업무나 해야 한다. 서류 작업은 다시 하고 싶지가 않단 말이다!


"또 이상한 생각 하고 있나보네."

"내가 무슨 틈만 나면 이상한 생각 하는 미치광이처럼 보여?"

"응."


... 개자식. 비겁하게 팩트를 들고 오다니.


하여간 편지 얘기로 돌아가자면... 나는 편지들에 하나같이 대답을 하지 않을 예정이다.

편지 보낸 양반들이야 기분이 더럽겠지만, 내 알 바인가? 꼬우면 나한테 뭐라도 제시했어야지.

German Junkers 또 불만 있어요? 오다 내 사관학교로. 나의 Berlin Spicy Mouth로 당신의 사상 Photoshop 해줄 수 있다.


"근데... 이 편지는 내 외삼촌한테 온 거 아니야?"

"오이겐 폰 팔켄하인(Eugen von Falkenhayn) 소령님 말하는거면 맞아. 그 아저씨도 기병 출신이잖아."

"외삼촌이 이렇게까지 미사여구를 잘 늘어놓는 사람인 줄 몰랐는데."

"뭐, 황실에서 배우시고 계신 거 아닐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꺾었다.


"운동 하러 가본다."

"또 말 타러 가게?"

"누구를 말에 미친 놈으로 보나."

"아니었나?"


어쩌다가 페도어가 저런 독설을 날리게 되었을까!

오호 통제라, 역시 프로이센 융커들의 잘못된 교육방식이 페도어에게 독설을 장착한 것이다! 절대 나 때문이 아니라!


"또 미친 생각 하고 있나보네. 조심해서 다녀와라."

"... 하, 씨. 억울하네."

"너한테 답장 못 받을 장교들도 억울할걸?"


... 뭐야, 어떻게 알았지?


"진짜 답장 안 하려고 했어? 그래놓고 나한테 '나는 안 미쳤다'고 주장했던거야?"

"나가볼게!"


페도어의 제파식 질문 공세를 기가 막힌 기동방어로 회피한 나는, 밖으로 나와 몸부터 풀었다.


어차피 맨몸운동이긴 한데... 안 풀면 큰일난다.

실수로 부상이라도 당해봐라. 21세기에서도 부상당하면 한참 앓는데, 19세기에는 진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이러고 있는 게 엄살 같다면 쿨리지 대통령 아들내미가 어떻게 죽었는지나 알아보고 와라. 테니스 치다 생긴 물집이 곪아서 패혈증으로 죽었거든. 이건 심지어 20세기 초반 얘기다!


몸도 다 풀었으니 운동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


"저 친구, 누구인가?"

"위르겐 폰 자이틀리츠라고-"

"아, 제대로 찾아왔군."


... 어느 뚱땡이 콧수염 할아버지가 사관학교를 찾아왔다.


"반갑네, 제군.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라고 한다네. 자네를 만나러 왔네."

"... 저를요?"

"그래. 슐리펜 백작이 극찬하더군."


슐리펜 작전의 기저에 깔려 있는 게 '상대의 예측을 깨는 기동전'이라는 걸 까먹은 내 패착이었다.



***



그래, 뭐.

원래 인생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될 리가 없잖아. 그냥 수긍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미리 마련된 응접실에 들어섰다.

내가 운동하려고 나온 거라 제복차림이 아니어서 옷을 좀 갈아입고 오느라 늦었는데, 신기하게도 비스마르크가 손수 커피를 따르고 있었다.


"자, 이리로 들어오도록 해."


... 이홍장이랑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던걸까?

어쨌거나 비스마르크쯤 되는 사람이 앉으라고 했으니 안 앉을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자리에 앉아 가볍게 커피를 홀짝였다.


"오, 질 좋은 커피군요."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커피일세."

"... 식민지는 혐오하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어쨌거나 가지게 됐으면 최대한 잘 써먹어봐야 하지 않겠나."


역시 현실주의자는 현실주의자다.

그 말인 즉슨, 전생의 나와 정 반대에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겠지. 이상을 포기할바에야 죽는게 더 편한 인간이었으니까.

물론 이번 생의 나와는 거의 동류라고 봐야 한다. 권력의 맛을 이제서야 알다니, 인생 초회차 내내 손해봤어엇!


... 헛소리는 여기까지만 하자.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나랑 친하면 또 모르겠지만, 전혀 모르는 거물이잖는가. 진중할 필요가 있다.


"흐음... 이거야 원, 생각을 읽을 수가 없구만."

"어린아이의 생각은 원래 읽기 힘든 것-"

"표정에 생각이 다 드러난다고 그러더니. 하여간 슐리펜 그 양반은 나를 골탕먹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군."


스읍, 그 정보를 퍼뜨린 건 아무리 생각해도 힌덴부르크 같은데요.

그 아저씨는 진짜 무서울정도로 내 생각을 잘 읽는단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마땅찮은게 더 무섭고.


"하여간,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다른 게 아닐세. 자네를... 조금 확인하고 싶어서 말이야."

"... 하나만 먼저 여쭤봐도 됩니까?"

"뭔가?"

"군 입대까지 5년이나 남은 어린애 하나한테, 왜 다들 이렇게 유난들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니, 그렇잖는가.

내가 미친놈처럼 날뛴 건 날뛴거고, 현실은 현실이다.

독일 제국이라는 나라는 고작 2회차 빙의자에게 흔들릴만큼 병신인 나라가 아니란 말이다. 여기가 조선인 줄 아나.


그러니 나한테 이 정도로 관심을 주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아니, 내가 20대에 참모총장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사람들이 이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푸흡... 미안하네. 실례했군."


하지만, 내 생각을 비스마르크는 비웃었다.


"오히려 자네에게 묻고 싶구만. 황혼 속을 향해 달려가는 늙은이가, 미래를 확인하는 게 이상한 일인가?"

"... 제가, 미래입니까?"

"자네가 아니면 누가 미래겠는가? 참모총장이 후계자로 지목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였는데."


... 슐리펜의 후계자라고?

내가 혼란한 게 대놓고 보이자, 노련한 외교관 답게 비스마르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저런, 모르고 있었나? 그 망할 노친네는 남들한테 중요한 건 이 악물고 안 알려준다니까."

"슐리펜 백작님이 저를 많이 아끼시는 건 알았지만...."

"아끼는 수준이 아닐세. 편지로 나에게 뭐라고 했는 줄 아나?"


그러면서 비스마르크는 가슴팍에 있는 편지를 꺼내들었다.


"읽어보게나!"


[자네보다 몇 배는 뛰어난 친구를 발견했네. 나는 이 친구를 차기 참모총장으로 기를 생각일세.]


... 이건 편지가 아니라 쪽지 아닌가?

하여간 슐리펜 백작 아니랄까봐 이러시네. 이상할 정도로 간결함을 추구하는 양반답게, 남을 긁을 때도 극한의 효율을 따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비스마르크 상대로 최고의 효율을 발휘한 것 같고.


"나보다, 나보다 뛰어나다니! 이 모욕,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그래, 이럴 줄 알았다.

사실 슐리펜 백작 얘기 나왔을 때부터 '백작 할배한테 긁혀서 온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진짜일줄은 꿈에도 몰랐지.

비스마르크라는 사람이 원래 다혈질이긴 해도 역사적 위인이니까, 당연히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다고.


에휴, 그래. 내가 뭘 바라냐.

내 눈에서 위인 필터가 빠지고 나니 비스마르크가 어떤 사람인지 더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융커 중에서 유일하게 외교 센서가 장착된 사나이.

모두가 이상을 논할 때 현실론을 들고 나와, 철과 피로 독일 제국을 건국한 남자.

그럼에도 누구보다 전쟁을 혐오하는 반전론자이자 평화주의자이며, 독일 제국의 팽창은 땅이나 해군력이 아닌 과학력으로 이뤄내야 한다고 믿었던 선구자.


솔직히 말해서, 2회차 특전이 아니었다면 비스마르크의 반도 못 따라잡았을거다.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확신을 가지고, 뚝심 있게 밀어 붙일 수 있는 능력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니까.


"... 뭐 하는가? 내 눈이 틀린 게 아니라면, 나에 대한 선망과 경애로 가득 차 있는 것 처럼 보이네만?"


거, 이 할아버지 또 기분 좋아지셨네. 저 정도면 조울증이야, 조울증.


"흐하하하하! 그래, 나 비스마르크는 절대 13살 짜리 어린놈에게 질 사람이 아니지! 흐하하하!"

"독일 통일의 영웅을 누가 무시하겠습니까?"

"그렇지! 망할 슐리펜 백작 같으니라고, 감히 새파랗게 어린 사관생도랑 나를 비교해?"


... 아, 어떡하지?

내 몸 속에 잠들어있는 반골 본능이 깨어나오려 한다!

지금 터지면 다 뒤지는거다. 상대는 비스마르크야! 전 수상이라고! 참아야 한다!

나는 성인이다... 왼 뺨을 맞았으면 오른 뺨도 돌려대는 성인이다....


"자이틀리츠군, 역시 자네는 뭘 좀 아는구만! 돌아가신 자네 아버지도 자랑스러워-"

"예, 뭐. '전' 수상님이 독일 제국의 프로이센화를 추진하지만 않았어도 제 아버지가 돌아가실 일은 없었겠지만, 연옥 속을 헤메이시면서 참 자랑스러워 하시겠죠. 암요."

"... 뭐?"


아, 못 참았다. 조졌네 이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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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1 Endzeit
    작성일
    24.09.12 22:03
    No. 1

    갑자기 겐고로라니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Almagest
    작성일
    24.09.14 22:19
    No. 2

    원래 융커는 작위 없는 최하급 귀족, 더 정확히는 '도련님' 정도의 의미를 담은 단어죠.
    그게 독일에선 사자공과 튜튼 기사단국 이래의 동방식민운동이 대박을 치며 많은 융커들이 포메른과 프로이센의 농장주가 되어 내려오며 뜻이 꽤나 변질되었고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bl******..
    작성일
    24.09.14 23:45
    No. 3

    유교반골 본능 on!
    뒤지더라도 할말은 하고 죽겠다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양마루
    작성일
    24.09.17 20:41
    N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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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화. 혁신과 진보의 시대 (1) +5 24.09.07 1,043 42 12쪽
8 7화. 온 세상이 융커다 (3) +3 24.09.06 1,051 44 12쪽
7 6화. 온 세상이 융커다 (2) +3 24.09.05 1,045 46 13쪽
» 5화. 온 세상이 융커다 (1) +4 24.09.04 1,111 38 11쪽
5 4화. 슐리펜의 군사학 교실 +4 24.09.03 1,129 38 12쪽
4 3화. 사관학교 (2) +5 24.09.02 1,137 41 12쪽
3 2화. 사관학교 (1) +5 24.09.02 1,197 42 12쪽
2 1화. 힌덴부르크 라인 +3 24.09.02 1,305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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