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커로 독일 제국 정상화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현대판타지

새글

브리스트
작품등록일 :
2024.08.31 23:38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2,139
추천수 :
828
글자수 :
118,179

작성
24.09.02 18:00
조회
1,306
추천
40
글자
12쪽

1화. 힌덴부르크 라인

DUMMY

군인이라는 직업은 가정적인 직업이 아니다.

이 명제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참이었지만, 1880년의 독일 제국에서도 참이었다.


그렇기에,


"아이 나옵니다!"


한 아이가 태어나고.


"사, 산모님...?"


한 어머니가 죽었을 때.

그때 한 남자는 곁에 있지 못했다.


자신의 아내가 죽었을 때, 그리고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자신은 작계나 만지고 있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남자는 작전참모도 포기한 채 자진해서 독일 제국의 아프리카 식민지로 향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1884년, 독일 제국의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프란츠 폰 자이틀리츠의 목숨은 그렇게 사그라들었다.


그가 세상에 남긴 것은 단 두개 뿐이었다.

막대한 양의 유산과, 고작 4살 밖에 안 되어서 고아가 되어버린 불쌍한 그의 자식, 위르겐 폰 자이틀리츠.

고작 4살짜리 꼬마가 살아남기에는 험악한 세상이었기에, 주변 사람들은 크나큰 걱정에 빠졌다.


하지만 자이틀리츠 가문이 어떤 가문이던가.

무려 프리드리히 대왕 이전부터 군에 종사하던 유서 깊은 융커 가문 답게, 인맥과 돈을 적절히 이용한 위르겐은 훌륭하게 자라났다.


유년 사관학교에 진학하며 천천히 군에 대한 열망을 키워나간 10살 짜리 아이.

프로이센 중앙 사관학교(Preußische Hauptkadettenanstalt)로 진학할 예정인 예비 사관후보생이자, 융커들이 주목하는 천재 소년.


그게, 바로 나다.



***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시작부터 이상할 정도로 인생이 꼬였다.


그래, 어머니가 돌아가신건 그렇다고 치자.

의학이 발전하기 전까지 산모가 죽는 건 꽤나 흔한 일이었으니까 그럴 수 있다.


근데 내 아버지가 죄책감에 외국으로 향했다는 건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는데 왜 가정을 버리는거야? 이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니고, 내가 내 엄마를 죽였다고 생각한 게 틀림 없다. 그래서 집 근처로도 안 온거지. 내 아침 드라마 빅데이터가 증명한다.


하여간, 거기부터 내 인생이 개 같이 꼬였다.

원래 내 계획은 적당히 자라나다 무난하게 미국으로 도망치는 거였다고!

독일에서 군인 해봤자 히틀러 눈치나 보다 전범이 되어버리는 게 정해진 미래일텐데, 굳이 독일에 남을 이유가 없잖아?


하지만 이민 따위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음, 융커다운 부친처럼 군에 투신할게야! 그렇지?'

'암암! 자랑스러운 프로이센 융커라면 군에 가야지!'

'하하, 아버지를 닮아서 아주 똘똘한게 상급 대장에 오를지도 모르겠구나!'


내가 어린 것도 이유지만, 사실 이민의 '이' 자만 꺼내도 권총 맞을 것 같은 게 더 큰 이유였다.


게다가, 저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죽을 각이 날카롭기도 하고.

내 미래 계획이 죄다 성공한다고 해도, 융커 혐오자 콧수염씨가 날 암살하려 들게 뻔하잖나.

나대다가 두돈반에 치여 죽은 1회차의 교훈에 따라, 내 목숨이 위험한 짓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내가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었다.


당연히 다른 나라에 이민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저런 문제가 없더라도, 독일 제국의 융커들이 외교를 조져놔서 독일인 이민자를 군인으로 안 받아줄테니까!


아, 독일 제국에 친화적인 국가가 있기는 하다.

근데 그런 나라라고 해봐야 오스트리아 - 헝가리랑 오스만 제국이고... 얘들 군대에 들어가는 건 북한군에 입대하는 거랑 다를 게 없잖아.

나는 정상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는 정상인이라, 군대에서 쓰는 공식 언어가 7개인 병신 누더기 제국이랑 미스터 갈리폴리씨한테 전함 NTR 당하는 유럽의 환자한테 입대하고 싶지 않단 말이다.


그것 말고 다른 나라는... 하, 그래.

소련군 장성 게오르기 자이틀리츠나, 대한제국군 대장 이노긴씨가 될 수도 있겠지.

근데 그런 걸 골라야 하겠냐고! 스탈린이랑 고종이라니, 상사로서 최악의 인물들이잖아!


"... 어우, 상상할 뻔 했네."


그런 끔찍한 상상은 내 정신 건강에 해로울 게 분명하다.

이글스의 암흑기를 함께 했던 나라고 해도 한도치라는 게 있다고. 스탈린이나 고종을 상사로 두느니 자살하고 만다.


어쨌거나, 결국 내 꿈에 가장 가까운 길은 독일에 남는 것이다.

마침 융커인데다, 나름대로 인맥도 두둑하고, 심지어 융커 아버지의 후광까지 있으니까.


게다가 21세기의 군제는 기본적으로 병사 개개인의 학습 능력을 요구한다.

근데 독일은 이 시기 그 어떤 나라보다 공교육을 잘 받는 나라기도 했으니, 21세기식 혁신적 군제를 가져와도 부작용이 적을 수 밖에 없고.


그래.

히틀러가 집권하는 거 말고는 전부 희망찼다는 얘기다.

다르게 말하면, 저 모든 걸 다 내팽게치고 미국으로 가는 게 나아보일 정도로 히틀러가 미친놈이라는거고.


스탈린이나 고종이 그냥 커피라면 히틀러는 TOP.

앞의 둘은 인간으로서의 자질이 심히 부족할 뿐 정신병동에 수감되어야 할 사람들은 아니지만, 히틀러는 필히 정신병동에 수감되어야만 하는 정신병자라고.

그 미치광이의 범죄 정권에 충성하는 군인은 절대 사절이다. 인간 도축 공장이라는 '빨간 약'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패전한 독일에서 히틀러나 유사한 미치광이의 집권을 막을 수 있을까?


정답은, '절대 못 막는다' 이다.


단정짓는 이유는 딱 하나다.

독일 제국이 심각한 수준의 보수 반동주의 중독이니까.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독일 제국이 망하는 1918년까지 프로이센 의회에 투표하는 융커들은 대략 1인 200표였다!

물론 독일 제국 의회는 좀 다르긴 했지만, 어차피 프로이센이 독일을 지배하는 독일 제국의 구조에서 그게 중요할리가 있나.


다른 예시도 많았다.

전통적인 지주 계급인 융커에게 저런 정치적 권력을 쥐어줬으니, 당연히 정치도 보수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거든.


러시아와 프랑스에게 곡물을 수입해오면 융커들이 손해를 보니 수입로를 막는다.

그러고도 농경지의 농민 이탈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서부의 산업 지대에서 '정당한 권리'(보통 다른 국가에서는 뇌물이라고 부른다)를 요구하는 게 아예 관례가 되어버렸고.


그 외에도 예시는 많은데 굳이 더 얘기하지는 않겠다.

그나마 선진적이라는 교육과 복지도 실상은 딱히 개혁을 위한 게 아니기도 하고.

사회주의자들이 치고 나오는 걸 막기 위해 던져준 비스마르크의 유화책이라는 독일 내의 평가가 적절하다고 봐야지.


그렇다고 독일 제국이 1차 세계 대전을 이길 수 있나?


아니, 절대 불가능하다.

미국이 참전하지 않더라도, 동부전선이 어마어마하게 빨리 끝나도 절대 이기지 못한다.

원 역사에서도 독일은 개전 2년만인 1916년에 한계를 맞닥뜨리게 됐으니까.


1916년, 순무의 겨울.

비료는 화약으로, 농기구는 총과 대포로 바꿔먹어야 했던 독일 제국이 겪은 최악의 식량난.

국가가 국민들을 굶긴 시점에서, 이미 독일 제국은 국가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꼼짝없이 히틀러 아래에서 군 생활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범죄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인간 도축 공장을 묵인한 채 전범의 길로 빠져들어야만 하는 것인가.


'절대, 절대 그럴 일은 없어.'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주고 싶어 군인이 된 거지,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새끼들을 지켜주겠다고 군인이 된 게 아니란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나왔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지지로 집권했으니까.

결국 히틀러를 막으려면 독일 국민들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배후에 중상이 있었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 대신, 진심으로 독일 국민들이 패배를 체감할 수 있도록.


근데 그걸 하려면... 단순한 군인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국가를 뒤흔드는 군인을 '황제'라고 부르는 건, 로마 시절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사회적 합의 아니던가.

그런 정치 군인의 길을 걷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 그러니까, 4살까지 말이다.


내 아버지가 저 아프리카 오지에서 죽은 뒤, 나는 하나의 희망을 찾았다.

내 대부를 자처하며 나타난 한 소령이라는 희망을.


"위르겐, 나 왔다."

"대부님, 오셨어요?"

"에잉, 편하게 부르라니까 또 이러는구나."

"어떻게 편하게 부르겠어요? 전도유망한 소령님한테 말이에요."

"허허, 말은 잘도 하는구나."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

앞으로 50년동안 상장폐지 될 일 없는 최상급 코인이자, 군부 최고의 라인이라고 볼 수 있다.


"에이, 앞으로 참모총장직에도 오르실걸요?"


그도 그럴게, 1차 세계 대전 중반부터 독일 제국 육군 참모총장이니까.

그 뒤에는 바이마르 공화국 2대 대통령직도 하니까, 굳이 내가 정치를 안 하더라도 독일을 뒤바꿔 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힌덴부르크는 전역 후 예비군으로 지내다가 전쟁과 함께 복귀한 케이스고, 현역 때는 참모총장이 되지 못했다.

그말인 즉슨, 1차 세계 대전 전까지는 저 압도적인 지위를 써먹을 수 없다는 말이 되겠지.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21세기 대한민국 육군 인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자, 원균의 최면어플을 가지고 있어 인맥이 저렇게 좋은 거라고 오해받던 남자 아닌가!

정말 당연하게도 나는 이미 그 준비를 끝내뒀다.


"아, 그 친구는 어디 간다고 하더냐?"

"페도어요?"


페도어 폰 보크(Fedor von Bock).

나와 동갑이고, 그쪽도 유서 깊은 융커 집안이다.

거기에 외가 쪽이 진짜 미친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그래. 그... 외가가 팔켄하인 집안인."


페도어의 외삼촌 중 유명한 2명은 나중에 전부 병과대장을 단다.

심지어 그 중에 한 명은 힌덴부르크 이전의 참모총장이기도 하고.


이 모든 건 전부 내 예상대로... 였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페도어가 저런 인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2회차에서나 눈치챘고, 그 전까지는 그냥 '기총소사를 맞고 죽은 나치 독일의 장성' 정도로 기억했을 뿐이다.

게다가 페도어랑 같은 학교를 다니는 건 내가 예측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는가. 운이 좋았고, 잘 받아먹었을 뿐이다.


"페도어는 포츠담으로 간다던데요."

"포츠담이라. 거기도 좋지."


어느새 자리에 앉은 힌덴부르크에게 커피를 내주며 나는 입을 열었다.


"대부님."

"... 또 무슨 진지한 얘기를 하려고 그러느냐. 괜히 떨리게."

"별로 진지한 얘기는 아니구요, 그냥...."


천재 코스프레도 성공했겠다, 슬슬 머리 굵은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은 시기겠지.


홀짝.

슬쩍 커피를 마셨는데 꽤나 씁쓸했다. 역시 내 혀는 아직 좀 어린가.

씁쓸한 혀를 달달한 디저트로 달래며, 나는 힌덴부르크에게 물었다.


"유럽의 평화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 위르겐, 뭘 잘못 먹은게냐?"

"아뇨, 멀쩡해요."


힌덴부르크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유럽 역사상 이 정도로 긴 평화가 있던가요? 역사책에는 없던데."

"다들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서 그런게지, 위르겐."

"글쎄요. 영국하고 대립각을 세우는 걸 보면 다들 비이성에 빠진 것 같은데요."


나는 다시금 커피를 홀짝이며 이어갈 말을 찾았고-


"위르겐, 똑바로 듣거라. 네가 똘똘한 아이니까 하는 이야기란다."


힌덴부르크는 내가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전했다.


"앞으로 20년 쯤 뒤면 영국과 우리는 전쟁을 하고 있을게야."


... 이러면 얘기가 더 쉬워지겠는데?


작가의말

원 역사의 인물들은 첫 등장시에 원어로 된 이름이 함께 적힐 예정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융커로 독일 제국 정상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평일 18시 연재 + 주말 비정기 연재입니다. +1 24.08.31 565 0 -
22 21화. 동부 운송 주식 회사 (1) NEW +4 22시간 전 556 30 12쪽
21 20화. 중국 원정기 (4) +2 24.09.17 744 27 12쪽
20 19화. 중국 원정기 (4) +2 24.09.16 793 33 12쪽
19 18화. 중국 원정기 (3) +5 24.09.15 870 39 13쪽
18 17화. 중국 원정기 (2) +6 24.09.14 944 30 15쪽
17 16화. 중국 원정기 (1) +5 24.09.13 973 37 12쪽
16 15화. 미치광이들의 시대 (4) +5 24.09.12 1,023 37 12쪽
15 14화. 미치광이들의 시대 (3) +3 24.09.11 946 34 14쪽
14 13화. 미치광이들의 시대 (2) +3 24.09.10 949 40 12쪽
13 12화. 미치광이들의 시대 (1) +2 24.09.10 961 38 13쪽
12 11화. 미래는 과거에 집어 삼켜지고 +6 24.09.09 1,001 40 13쪽
11 10화. 혁신과 진보의 시대 (3) +5 24.09.09 989 40 13쪽
10 9화. 혁신과 진보의 시대 (2) +6 24.09.08 1,038 42 12쪽
9 8화. 혁신과 진보의 시대 (1) +5 24.09.07 1,045 42 12쪽
8 7화. 온 세상이 융커다 (3) +3 24.09.06 1,052 44 12쪽
7 6화. 온 세상이 융커다 (2) +3 24.09.05 1,045 46 13쪽
6 5화. 온 세상이 융커다 (1) +4 24.09.04 1,111 38 11쪽
5 4화. 슐리펜의 군사학 교실 +4 24.09.03 1,129 38 12쪽
4 3화. 사관학교 (2) +5 24.09.02 1,137 41 12쪽
3 2화. 사관학교 (1) +5 24.09.02 1,197 42 12쪽
» 1화. 힌덴부르크 라인 +3 24.09.02 1,307 40 12쪽
1 프롤로그. +2 24.09.02 1,316 30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