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커로 독일 제국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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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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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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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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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3화. 미치광이들의 시대 (2)

DUMMY

"... 요새 얼굴이 좀 폈다?"

"중위님, 혹시 저를 격무에 시달리게 하실 생각이라면-"

"그럴리가 있나. 아무리 기병이 맛 간 놈 들 천지라지만, 눈 앞에서 연대장이랑 농담 따먹기 하는 소위를 어떻게 갈궈?"


휴, 다행이다. 아직 최소한의 이성은 남아있구나.

... 아니, 어쩌면 아직 중위 밖에 안 되서 그런 걸지도 모른 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양반도 이 미친 병과에서 중령 쯤 달면 눈이 휙휙 돌아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 자동차라는 거 말이야."

"... 정말 죄송하지만, 생산량이 부족합니다."

"연대장님이 달라는 걸 거부한 놈한테 퍽이나 달라고 했겠다."


그렇게 말하며, 중위는 슬쩍 웃었다.


"그거, 빠르냐?"

"빠르죠."

"어느 정도로?"

"엔진만 개량되면 습보(gallop, 60km 정도)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 그러면 자동차에 창을 다는 건-"

"... 진심이십니까?"

"... 좀 미친 생각이긴 해."


차 타고 돌격이라니, 그거 완전 대체역사 커뮤니티 떡밥이잖아.

보스턴에서 차 타고 돌격한 보스턴 차 사건이라던가, 조지 워싱턴은 발전된 엔진의 힘으로 미국 독립을 이뤄낸거라던가 하는 떡밥.


"그래도 실험해볼 가치는-"

"가치가 있을리가 없잖습니까!"

"에이, 실험은 해봐야 아는거야!"


역시 유럽은 이해할 수 없는 판타지 대륙이 맞다.

실험 따위는 안 해도 조질 게 분명하잖아! 자동차로 돌격하면 차는 멀쩡하겠냐고! 폐차나 안 되면 다행이고, 늘상 평화로운 파키스탄에서도 고칠 수 없는 폐품이 될 가능성이 90%란 말이다!


하지만, 내 눈 앞의 과학 정신 투철한 이과는 마음을 고쳐먹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음, 역시 창보다는 세이버를 달아야-"

"다임러 사는 절대 그딴 실험에 협력 안 할겁니다."

"네가 뭔데?"

"다임러 최대 주주요."

"... 너 아직 20살도 안 된 소위인데?"


나는 가볍게 웃으며 가슴팍에서 담배를 꺼냈다.

나 정도면 시가야 무리 없이 피울 수 있는 자산가지만, 영 입에 안 맞더라고. 폐 속 까지 들어오는 짜릿한 연기의 맛은 아무것도 대체할 수 없어! 시가로 속담배는... 좀 아닌 것 같다.

물론 이 시기 담배라는 게 저타르나 저니코틴 따위와는 4천 광년 쯤 떨어져 있는데다, 필터도 없는 막 궐련이라서 좀 독하긴 하지만... 21세기보다 독하게 사니까 아무튼 좋았쓰!


"돈도 많은 놈이 그딴 거나 피우고 말이야."

"뭐, 피우기 쉽잖습니까."

"... 그건 그렇지."


시가 하나 다 태우는 데 30분은 잡아야 한다.

하지만 궐련? 빨리 태우면 20초 만에 하나 태울 수도 있다. 딱 봐도 노동자와 하급 군인들에게 특화된 스트레스 해소 수단 아닌가.

암암, 나 같이 노동자들한테 총 맞기 딱 좋은 사람이 시가 같은 거나 피우고 있으면 쓰나. 이런 부분에서 보통 사람인 척이라도 해야 한다. 애초에 한국에서는 최하층이기도 했고.


"그래서, 또 서류입니까?"

"... 응."

"주십쇼. 빨리 처리하게."


나는 담배 하나를 꼬나물며 깊게 한 숨을 쉬었다.


그래, 뭐. 하기 싫은 일 하는 게 직업이지,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직업이냐.

그냥 나는 서류에 둘러 쌓여 살란다. 말 타고 기관총 앞으로 돌격하느니 이게 낫지. 빌어먹을 팔병신 황제 새끼.


그런 생각을 하며 일을 했기 때문일까, 묘하게 불길한 느낌이 스쳤다.


그리고 늘상 그렇듯, 이런 불길한 기분은 틀린 적이 없었다.


"비스마르크 공작님이 자네를 찾으시네, 자이틀리츠."

"... 저를요?"


그 쫌생이 할배가?



***



비스마르크는 슐레히스비히-홀슈타인에 있었다.

슐레히스비히-홀슈타인이라, 흠... 덴마크랑 전쟁해서 비스마르크 뜯어낸 땅인데. 역시 비스마르크의 취향이란 깊고도 어둡다! 빌헬름 2세 수준은 아니긴 하지만.


"켈룩, 왔나?"

"몸이 그렇게 아프시면서 저를 부르시다니, 취향 한 번 독특하시군요. 아직도 수상께서 깨먹은 커피잔이 눈에 훤한데."

"... 아직도 그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쫌생이 같으니라고."

"수상님만 하겠습니까."

"에잉, 한마디를 안 져주는- 켈룩! 켈룩, 켈룩!"


그 뒤로도 한참을 기침한 비스마르크는, 힘 없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를 부른 건, 다른 게 아닐세."

"정치 하라는 얘기면 집어 치우십쇼. 안 할 겁니다."

"... 독일 제국, 망해야겠지?"

"켈룩! 그게 무슨-"

"흐하하...! 드디어 한 방 먹였군!"


아오, 미친 양반 같으니라고.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 진짜 진심을 말씀드립니까?"

"어차피 곧 죽을- 쿨럭, 인간 아닌가. 부담 없이 말하게."


나는 가슴팍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어차피 면전에서 담배 피우는 게 별로 실례도 아닌 19세기인데다, 니코틴 없이는 이 양반한테 편하게 말 못 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스핑크스? 그딴 싸구려나 피우나?"

"허, 싸구려라뇨. 이래뵈도 고급 궐련 브랜드인데."

"시가가 없는거면 내거라도 피우게."

"... 저는 궐련이 시가를 대체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융커 자리를 부르주아가 차지하는 것 처럼."

"... 뭐?"


비스마르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정치 권력 없이, 융커가 루르 지방의 자본가와 대립할 수 있습니까? 정말로?"

"... 그래서?"

"토지 귀족의 시대는 끝났다는겁니다. 그래서 저도 영지니 뭐니 다 팔아버린거고."


융커는 정치 권력의 힘으로 자본가를 수탈하고 있다.

딱히 융커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자본가는 노동자들을 수탈해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최소한의 선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융커의 이권은 뺏기기 싫으니까, 노동자는 계속 수탈하고 싶으니까 국수주의라는 마약으로 노동자들 눈을 멀게 해놓고, '독일 국민이 원했다' 따위의 헛소리나 하는 게 미래라고.


나는, 그딴 미래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이번 생에서 내가 돈 많은 귀족이라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사회 최하층이었던 내 전생이 바뀌나?

나를 여기로 보낸 새끼가 누군지는 몰라도, 진짜 호의호식하는 미래를 원했으면 전생의 기억을 지워버렸겠지. 굳이 천성 반골을 여기까지 보내버린 이유가 뭔지는 너무 명확하잖아.


"독일 제국은 비정상이고, 저는 그걸 정상화하는 게 목표입니다."

"어떻게 할겐가?"

"... 그 전에 하나만 여쭤보죠. 화는 안 나십니까?"

"내가 자네에게 진심을 말하라고 했잖는가."


... 이런 데에서는 은근히 또 아량이 넓네.

대체 비스마르크라는 인간이 뭐 하는 인간인지 모르겠다. 사람이 일관성이 없냐. 아, 그래서 외교관이랑 정치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건가?


"... 독일 제국은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에서 져야만 합니다."

"... 거 참 쉽겠구만. 우리 황제 폐하가 많은 도움을 주시겠어."

"그 뒤에는... 사실 제대로 된 계획이 없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건 비스마르크여서 안 알려주는 게 아니라, 진짜 계획이 없다.

계획을 세우다보면 플랜 Z-Z까지 세워야 할 지도 모른다고. 내가 역사에 손 댄 게 한 두개가 아닌데, 원 역사대로 흘러갈리가 없잖아.

애초에 선지자 취급을 받고 있었으면 역사고 나발이고 하나도 안 건드렸다. 내가 바라는 건 오직 정상 국가의 장성급 장교니까 이러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쿨럭, 생각했던 것 보다는 덜 치밀하구만."

"대체 수상님한테 저는 뭐 하는 애길래 그러십니까?"

"망할 놈의 꼬맹이, 내 앞에서 독일 제국은 망할 나라라고 주장하는 미치광이."


... 젠장, 반박할 수가 없다! 외교관 겸 정치인이라는 양반이 비겁하게 팩트를 들고 오다니!


"뭐, 됐네. 내 유언이나 들어주게."

"... 본인 자식들한테나 말씀하십쇼. 제가 아니라."

"아니, 이건 전 수상 비스마르크가 하는 이야기니 새겨듣게."


나는 이미 다 타들어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비스마르크의 말을 경청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네. 그래서 이 꼴이 났지."

"역사가들은 아마 공이 훨씬 크다고 말할겁니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야. 나는 모자란 한 인간에 불과했네. 자네 또한 마찬가지겠지."

"... 예.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압니다."

"그러니- 쿨럭! 자네 옆에 쓴소리를 해줄 사람을 두게. 나는... 정상이 아닌 사람이기에 그러지 못했으니."

"... 노력해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비스마르크의 방을 나섰다.


빈 체제를 끝장내고 자신의 손으로 유럽을 재편한 거인은,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



"에잉, 비스마르크 그 양반. 결국에는 죽어버렸구만."

"... 황제 폐하...?"

"장례식은 참석하지. 국장으로 치루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보고."

"... 예."


관료가 나가자마자, 빌헬름 2세는 참아왔던 광소를 터뜨렸다.


"흐하하하하! 흐헤헤, 결국 죽어버렸구만! 그래그래! 아주 잘 됐어! 그 망할 할배 자식새끼들이 설마 국장을 할 리가 있나!"


당연히 밖으로 나간 관료가 들었지만, 그런 건 빌헬름 2세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사실은 들은 관료도 별 생각 없었다. 원래 저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제 나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구만! 흐하하하하!"


똑똑.

밖에서 장성급 장교 한 명이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


그 장성은 환히 웃으며 들어왔고, 금방 입을 열었다.


"폐하, 위르겐 폰 자이틀리츠 소위가 비스마르크 전 수상의 병세를 악화시켰다고 합니다!"

"그것이 정말인가?"

"예! 자이틀리츠 소위가 비스마르크 전 수상의 병실을 다녀간 뒤, 병세가 심히 악화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자이틀리츠 소위가 다시금 비스마르크 전 수상을 꺾은 것 아니겠습니까?"

"흐하하하하하! 역시 자이틀리츠 가문은 충신들의 가문이구만!"


정말 놀랍게도 사실만 전했으나, 원래 사실이라는 건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법이었다.


"안 되겠어! 내 당장 자이틀리츠 소위를 찾아가겠네! 마침 베를린에서 근무중이라지?"

"참으로 그러합니다! 헌데 명분이...."

"그건 자네가 찾아야지."

"... 예, 폐하."


그리고 그 장성은 금방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 놈, 대체 뭔 짓을 했길래 올린 서류가 이렇게 많아? 이걸 전부 혼자 했다고?'


한 사람이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 당연하다. 혼자 한 게 아니니까 - 양의 서류 뭉치들.

그리고 그 서류의 내용들조차 매우 깊이 있고 심도 있는 기병대의 필요 사항 - 이것도 당연하다. 진성 말박이들의 의견을 취합한 것 뿐이니까 - 이었으니, 명분으로는 딱이었다.


물론 장성이 능력 없는 정치 군인이라서 그렇게 보인 것이긴 하지만, 빌헬름 2세도 멍청하기는 마찬가지.


"폐하, 이 정도의 능력을 가진 인재는 전쟁 대학에 보내야만 합니다!"

"흐하하, 역시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예, 폐하! 전례에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런 규정을 하나하나 따지다보면 이런 인재를 놓치게 될 게 뻔합니다!"


그 장성은 아주 즐겁게 말을 이어나갔다.


"저 카를 폰 빌라우메(Karl von Villaume), 제 군 경력 전부를 걸고 이 소위를 길러내겠습니다!"

"하하, 잘 부탁하네! 프로이센 전쟁대학(Preußische Kriegsakademie)에서 잘 가르쳐주게나! 앞으로 자이틀리츠라는 성은 위르겐을 의미하게 될테니!"


'이 놈 이름을 어떻게 잘 팔기만 하면, 앞으로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정치 군인이자 프로이센 전쟁대학의 교장, 카를 폰 빌라우메는 그렇게 내심 웃고 있었다.


이런 특혜를 거부할 미친 놈이 있다는 건 전혀 알지 못 한 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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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98 박종찬.
    작성일
    24.09.10 19:52
    No. 1

    매일매일 기대하면서 잘 보고있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38 bo****
    작성일
    24.09.10 23:31
    No. 2

    카이저가 저정도로 밀어주면 어떻게든 카이저라이히 존속시키는게 주인공에게 이득일듯 비록 카이저가 외치는 못했지만 내치는 영프러 동시에 상대할정도로 독일을 키워냈으니 외치야 주인공이 잡아주면 독일이 세계대전 못이길 것도 없음 특히 러일전쟁 직후라면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양마루
    작성일
    24.09.17 21:39
    No.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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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미치광이들의 시대 (3) +3 24.09.11 946 34 14쪽
» 13화. 미치광이들의 시대 (2) +3 24.09.10 949 40 12쪽
13 12화. 미치광이들의 시대 (1) +2 24.09.10 960 38 13쪽
12 11화. 미래는 과거에 집어 삼켜지고 +6 24.09.09 1,000 40 13쪽
11 10화. 혁신과 진보의 시대 (3) +5 24.09.09 987 40 13쪽
10 9화. 혁신과 진보의 시대 (2) +6 24.09.08 1,037 42 12쪽
9 8화. 혁신과 진보의 시대 (1) +5 24.09.07 1,043 42 12쪽
8 7화. 온 세상이 융커다 (3) +3 24.09.06 1,051 44 12쪽
7 6화. 온 세상이 융커다 (2) +3 24.09.05 1,044 46 13쪽
6 5화. 온 세상이 융커다 (1) +4 24.09.04 1,109 38 11쪽
5 4화. 슐리펜의 군사학 교실 +4 24.09.03 1,128 38 12쪽
4 3화. 사관학교 (2) +5 24.09.02 1,137 41 12쪽
3 2화. 사관학교 (1) +5 24.09.02 1,197 42 12쪽
2 1화. 힌덴부르크 라인 +3 24.09.02 1,304 40 12쪽
1 프롤로그. +2 24.09.02 1,314 3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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