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커로 독일 제국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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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슐리펜의 군사학 교실

DUMMY

먼저 입을 연 건 페도어였다.


"이 정도로 긴 거리를 우회 기동하는거면, 병사들의 피로도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가."

"네. 걸어서 행군하는 건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철도 체계를 이용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페도어는 쭈욱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저 작전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필요한 요소들을 툭툭 던지는데, 미래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도 놀랄만큼 정답지에 가까웠다.


당연히 아이가 생각한거라 어느정도 허점은 있었지만, 역시 저쪽도 천재는 천재다.

뭐, 저런 사람들이 군부에 차고 넘치니까 독일 제국이 슐리펜 계획을 실행이라도 할 수 있었던 거겠지만... 쟤는 빙의자가 아닌 '평범한 아이'라는 걸 기억해라.

역시 2차 세계 대전까지 장성 해먹는 사람들은 뭔가 다른 건가. 미래 지식 없었으면 나는 장성은 커녕 장군참모 과정도 못 밟았을지도 모르겠다.


"... 여기까지입니다."


긴 대답이 끝나고, 슐리펜 백작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주 좋은 반론이다. 훌륭한 군인이 되겠구나."

"감사합니다!"

"위르겐, 제군은 어떤가."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슐리펜 계획이 병신인 이유는 100가지도 넘게 댈 수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결과론적인 이야기를 해버리면 안 되잖나. 괜히 의심받는 건 질색이다.


사실 제일 무난한 대답은 페도어가 한 대답인데, 이미 뺏겼으니 어쩔 수 있나.

그것 말고 무난한 반론이 있나? 하, 씨. 답이 없어서 고민하는 거면 몰라도, 답이 하도 많아서 고민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위르겐, 너무 무리하지 말거라."


힌덴부르크의 말이었다.

하지만, 진심을 담은 그 말이 나에게는 트리거처럼 작용했다.


"대부님, 혹시 새로운 지도가 있으십니까?"

"... 새로운 지도?"

"예."


그래, 그냥 내 맘대로 하자.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하던지 융커 새끼들이 바뀔리가 없다는 건 3년 동안 독설을 쏟아내면서 절실히 느낀 것 아니던가.

이것저것 다 따지고 나서 머리를 들이미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어차피 여기서 헛소리 해도 내 모가지가 잘리지는 않을테니까 그냥 말하자.


"다행이군. 내가 가지고 있네."


슐리펜 백작은 기대감에 찬 시선과 함께 지도를 나에게 건넸고, 나는 자연스럽게 옆에 있던 펜을 주워 선을 천천히 그려나가며 입을 열었다.


"계획에서는 네덜란드를 침공합니까?"

"아니, 그런 계획은 없네. 중립국이잖나."

"그러면 벨기에 방면 공세도 포기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벨기에도 중립국일텐데."

"프랑스가 침공하겠지."


내가 이래서 고민하는 걸 포기했던거다.

이 망할 융커 새끼들은 한타 한 번 이기면 전쟁을 이기는 줄 알고, 상대도 본인들이랑 똑같다고 생각하거든.

그딴 전쟁은 이미 끝났다. 내전이라는 특수한 경우였던 남북전쟁조차 남부의 산업능력을 박살내서 끝냈지, 한타를 잘 해서 끝낸 게 아니란 말이다.


"프랑스의 정치 상황은 알고 계십니까?"


즉, 전쟁은 이제 더 이상 군인의 영역이 아니다.

원래부터 그랬지만, 이제는 군인이 전략을 '조언'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단 말이다. 군인에게 결정권이 가면 안 된다고.


"... 위르겐, 그게 중요하더냐?"

"중요합니다. 상대의 전략적 목표는 정치가가 정할테니까."


슐리펜 백작은 그제서야 웃음기를 거뒀다.


"프랑스의 사정도 파악했으니 하는 말이겠지, 제군?"

"예."


나는 펜으로 알자스-로렌을 찍었다.


"프랑스는 이곳으로 옵니다."

"전술적으로는 최악의 선택 아닌가."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최선의 선택이죠. 보불전쟁의 복수."


원 역사에서도 프랑스의 작계는 제17계획 하나 뿐이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모든 상비군을 긁어 모아서 알자스-로렌으로 꼬라박는다는 계획.

'독일군이 프랑스 국경으로 몰려오면 공세와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고, 벨기에쪽으로 독일군이 우회하면 막는 독일군이 적어지니까 이거 완전 럭키비키잖아?' 라는 계획이다.


미친 소리 같겠지만, 프랑스는 그런 나라다.

곧 뒤져도 프랑스는 유럽 최고의 나라여야 하고, 간지와 로망을 버리느니 목숨을 버리는 진성 마초들의 나라란 말이다.

그걸 꿰뚫고 있지 못한다는 말은, 독일 융커들이 주적에 대한 분석도 제대로 안 했다는 말이지! 젠장, 망할 새끼들.


"왜 그게 최선의 선택이지?"

"프랑스 내부의 정치적 혼란은 보불전쟁 때문이라 그렇습니다. 전쟁이 나면, 알자스-로렌으로 돌격하라는 여론에 정치가들이 압사당할겁니다."

"그래. 그러면 벨기에쪽 침공은 왜 안한다고 생각했지?"

"벨기에가 프랑스한테 침공당하면, 영국은 나폴레옹이 보이기 시작할텐데... 프랑스가 영국과 전쟁을 하겠습니까?"


그러니 프랑스는 알자스-로렌으로 갖다 박을 수 밖에 없다.

미쳤다고 스위스를 침공할 건 아니지 않은가. 그 산악지대에 군대를 보내자는 새끼가 있다면 프랑스 군인들이 쿠데타라도 일으키리라.


"그래서, 여기까지 생각했다면 제군이 그리는 계획도 있겠지?"


거, 애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시는 거 아닙니까?

내가 멍한 표정으로 슐리펜 백작을 계속 바라보고 있자, 슐리펜 백작은 다시금 자연스럽게 웃음지었다.


"허허, 자네가 애라는 걸 또 까먹었구만. 산전수전 다 겪은 군인이 있는 줄 알았어."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칭찬 맞네. 힌덴부르크 대령, 대체 애를 어떻게 길렀길래 친자보다 똘똘한겐가?"

"켈룩!"


세상에, 힌덴부르크 아들내미는 힌덴부르크의 역린인데.

역시 슐리펜이다! 나 같은 범부는 상상도 못한 약점 돌파를 보여주는구만! 프로이센 정신에 눈 앞이 캄캄해진다!


"테스트를 훌륭하게 통과했네, 제군들."


그래, 일종의 테스트라고는 생각했다.

애초에 애들한테 저런 걸 보여주는 의도가 뭐겠는가. 천재성 테스트지.


슬쩍 옆을 보니까 페도어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 때문에 이러는건지 도저히 감도 안 잡히네. 혹시 정신이라도 놓은건가?


"위, 위르겐, 테스트는 무슨 얘기야...?"


아, 그거 때문이었구나.

나는 정말 자신있는 표정으로 위풍당당하게 속삭였다.


"나도 몰라."

"뭐?"

"진짜 모른다고."


페도어가 날 미친놈 보듯 쳐다봤지만 무시하고 슐리펜 백작을 쳐다봤다.


"둘 다 셀렉타 수업을 준비하게."

"... 저희 사관학교에 그 과정이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저희 나이가-"

"아니, 참모본부에서."


... 네?

참모본부에서 만 13살짜리 애들 데리고 토론형 수업을 하시겠다고요?


"질문은 받지 않겠네."


참모총장이 저렇게 말했는데, 사관생도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참모본부로 끌려가서 3일 밤낮을 수업받았다.

참 좋...았다. 시발.



***



"그래서, 다들 어땠나."


슐리펜 백작이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여전히 웃음이 익숙치 않아 보였지만, 최소한 9년 전의 비인간적인 기계보다는 나았기에 참모본부 사람들 또한 웃으며 대답했다.


"페도어 폰 보크, 그 친구가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끝내주던데요."

"그 나이에 그 정도의 전술적 식견을 보여주다니, 이미 훌륭한 군인입니다. 군에 빨리 입대했으면 좋겠군요."

"다른 것보다, 언어적 재능이 정말 부럽습니다. 이대로 대 프랑스 정보부에 보내도 될 정도입니다."


슐리펜 백작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 친구는 프랑스어를 잘하긴 하더군."


그 뒤로도 보크에 대한 수많은 칭찬이 오고갔지만, 정작 자이틀리츠를 향한 말은 없었다.


"흠흠, 다들 자이틀리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힌덴부르크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지만, 참모본부의 반응은 침묵이었다.

그 침묵을 깬 건 참모본부에서 오래 근무하고, 힌덴부르크와 오래 일했던 참모들이었다.


"... 힌덴부르크 대령님, 자이틀리츠에 대해서 평가할 게 없잖습니까. 저희 같은 범부들이 뭔 평가입니까, 평가는."

"걔를 우리가 하루 이틀 봅니까. 9년 전부터 천재였고, 지금도 천재 아닙니까."


베테랑들조차 논외로 평가하는 천재.

그러니 전쟁대학(Preußische Kriegsakademie)을 갓 졸업한 중위와 대위들은 허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저도 나름대로 천재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닌 것 같습니다."

"너무 상심하지 말게. 천재지변이라고 생각해."

"쟤는... 사람이 맞습니까? 애가 어떻게 저런 판단을 내립니까?"


다들 고평가 하는 게 사실 당연했다. 자이틀리츠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 군인이었으니까.

전술, 작전술 개념은 프로이센 군부 내의 베테랑과도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전략 단위로 넘어가면 그 슐리펜과 설전을 벌일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면서도 작전 중 발생할 특수 상황을 재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임기응변 능력도 갖추고 있는, 과감함과 신중함을 동시에 갖춘 완성된 군인이었다.


하지만 그가 진정 압도적인 천재성을 발휘하는 것은 외교와 대전략이었다.


'보불전쟁이 승리한 이유는 러시아랑 암묵적 불가침조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융커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외교를 망친 순간부터 전쟁은 진거나 다름 없는데 작계가 의미가 있나요?'

'지금이라도 황제께 달려가서 러시아와 친선을 도모하거나, 그게 안 되면 프랑스 파리까지 일주일 내로 뛰어갈 수 있는 방법이라도 구해오시죠.'

'전부 안 된다고요? 그러면 양면전선 열고, 국가의 마지막 역량까지 긁어 모아서 소모전 하시던가요. 그건 또 싫으시잖습니까.'


프로이센의 유구한 전통인 양면 전선과 그를 타개하기 위한 전술적 접근.

전략보다는 전술이 더 중요하고, 전투를 이겨서 전략적인 불리함과 양면 전선을 타개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발상.

그것에만 매몰되어 있던 참모들은, '전략이 전술보다 앞서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는 새 시대의 천재에게 무참히 반박 당했다.


하지만 참모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어느 2류 열강의 3류 군대마냥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참모들은, 그의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닫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새로 온 참모들은 그제서야 슐리펜 백작이 왜 소문과 달리 유해졌는지를 깨달았다.


"참모총장 님 생각도 이해 못하는 놈들만 군대에 가득했으니 얼마나 기분이 안 좋으셨겠어?"

"참모총장 님이 후계자를 찾으셨으니 당연히 유해지셨겠지."

"... 사표 내겠습니다. 저는 똑똑하지 않은가 봅니다, 힌덴부르크 대령 님...."

"허허, 내가 자네 사표를 수리할 것 같나? 가서 일이나 하게."


사실은 슐리펜 백작이 왜 성격이 유해졌는지, 힌덴부르크가 왜 한층 감성적으로 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들의 후임이 역사에 길이 남을 천재라는 점이었고, 당연하게도 그런 천재들이 어느 병종으로 갈지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보크와 자이틀리츠라. 둘 다 대체 어느 곳으로 갈지 모르겠구만."

"보크는 보병으로 갈 것 같은데, 자이틀리츠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자이틀리츠도 보병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워 게임 할 때의 과감함이나 집안의 전통을 고려하면, 기병을 선택할 것 같네만."

"직사포 운용도 괜찮았고, 포병으로 전장을 뒤엎는 걸 선호하는 것으로 봐서는 포병으로 갈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얘기가 진행되자, 모두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 천재만 있으면, 우리 일이 편해지지 않을까?'


자이틀리츠의 기숙사에 수많은 편지가 쏟아진 건 그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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