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특성은 없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리유.
작품등록일 :
2024.09.02 12:44
최근연재일 :
2024.09.18 21:50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882
추천수 :
11
글자수 :
117,510

작성
24.09.02 12:45
조회
138
추천
1
글자
12쪽

적성검사

DUMMY

<프롤로그>






사람들은 말한다.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내겐, 운명이 마치 손안의 주사위처럼 느껴진다.

때론 내 뜻대로 굴러가고,

때론 완전히 예상을 빗나간다.


어느 날, 나는 주사위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평범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주사위를 굴릴 때마다 세상은 변화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내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세상은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이유는 없었지만, 모든 것이 분명하게 망가져 갔다.


어쩌면 이 모든 혼란의 시작과 끝이 나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사위는 내 뜻을 따르지 않았다.

마치 이미 정해진 운명의 조각처럼, 무작위로 굴러갔다.

나는 행운을 빌며 주사위를 굴렸고, 세상은 점점 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주사위를 굴릴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멈출 것인가.

내가 내리는 선택이 세상을 구할지, 아니면 파괴할지······.





「 세상에 나쁜 특성은 없다 」


< 1. 적성검사 >







오늘은 적성검사가 있는 날.

이른 시간에 각성자 센터에 도착한 연우는 초조한 얼굴로 전광판을 주시했다.


[11번 차연우님, 3번 검사실.]


알림음과 함께 연우의 이름이 화면에 표시됐다.


‘으으··· 엄청 긴장되네.’


연우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검사실로 향했다.


“차연우님, 우측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으세요.”


무미건조한 안내원의 목소리.

연우는 작게 대답하며 커튼이 쳐진 곳으로 들어갔다.


‘속옷까지 벗어야 하나?’


벽면의 안내문을 읽으며 옷을 갈아입자, 커튼 밖에서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서류 확인하시고 서명하세요.”


탈의실에서 나오자 여러 장의 문서가 보였다.

연우는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안내원을 바라보자.

그녀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각각의 항목을 설명해주었다.


“형광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꼭 체크해 주세요.”


연우가 서류를 확인하자 안내원이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적성검사는 신체검사와 채혈, 다양한 장치를 사용하는 정밀 검사로 이어졌다.


장치에 손을 대기만 하면 적성을 파악하는 소설 속 장면을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병원에서나 볼 법한 검사로 적합성을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는지 다소 의문이었다.


검사가 끝난 후,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안내원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전과 달라진 응대에 연우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불편한 점은 없으셨어요? 검사 결과는 영업일 기준 5일 후에 나올 예정이에요. 그리고 감응 검사에서 다소 특이한······.”


*


택시가 ‘상식헌터인력사무소’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 앞에 멈추자, 연우는 택시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섰다.


딸랑.

사무소의 출입문이 열리자, 소장 황상식이 반기며 손을 흔들었다.


“어서 와, 연우야.”

“선배.”


인사를 나눈 연우가 소파에 앉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어휴~ 힘들다.”

“고생했다. 어땠어?”

“잠시만요, 어제 저녁부터 물 한 모금도 못 마셔서요.”

“아, 금식했지? 저쪽에 율무차라도 타먹어라.”

“그럴게요. 선배도 드실래요?”

“됐어, 커피 많이 마셨어.”


연우는 정수기로 가서 율무차를 타며 말했다.


“내일 사냥 가는 날이죠?”

“그래, 여주 게이트. 일정에 변동 없지?”

“검사비 때문에 지출이 컸거든요.”

“검사관은 뭐래?”

“인터넷에 나온 후기랑 비슷했어요. 뭘 물어봐도 두루뭉술하게 넘기더라고요.”

“괜히 기대하게 만들었다가 원망 듣기 싫어서 그럴 거다.”

“그렇긴 해요. 그런데 선배, 감응 검사가 뭔지 아세요?”

“글쎄, 검사받은 지 오래돼서··· 왜?”

“아니요, 그냥 좀 특이하다고 해서요.”

“특이할 게 뭐 있겠어? 신경 쓰지 마. 괜한 걱정만 늘어.”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적성 검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도 말고 딱 오십만 넘길 빌어라. 그럼 인생이 순탄해져.”

“그럴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네요. 선배는 각성 전에 몇이었죠?”

“사십칠······.”

“···기분이 어땠어요?”


적합도가 50% 이상이면 각성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3년 동안 봉직해야 하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그런 점에서 황상식의 적합도는 상당히 아쉬운 수준이었다.


“그때는 눈 뒤집혀서 아무 생각도 없었지.”

“그래도 잘 풀렸잖아요.”

“다행이지 뭐, 각성 한 번 해보겠다고 모은 돈 다 털고 전세 보증금 빼고 대출받고 에휴······.”


쓸모없는 특성을 각성한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기에, 모험을 한 셈이었다.


“너도 팔 다리 멀쩡할 때 악착같이 모아라. 솔직히 비각성 헌터가 사냥 다니는 거 쉽지 않다.”

“잘 알죠. 선배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지이잉.

휴대폰 진동음에 연우의 시선이 테이블로 향했다.

황상식에게 온 문자 메시지인 듯했다.


“내일 사냥에 쓸 총기 반출한다고 오라네.”

“바쁘실 텐데, 저는 이만 일어날게요.”

“잠깐은 괜찮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황상식은 휴대폰을 연신 두드리고 있었다.


“조금 힘들어서요.”

“그래? 그럼, 새벽 5시까지 오고.”

“네, 그럼 내일 봬요.”


*


황상식과 헤어진 연우는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검사실 안내원의 말이 떠올라서였다.


-감응 검사에서 다소 특이한 패턴이 발견됐어요. 추적 관찰을 위해 패치를 부착해 드릴 테니 24시간 후에 제거해주세요.


검색어를 입력하자 관련 문서들이 화면에 떠올랐다.

하지만 연관 없는 내용들 뿐.

결국 여러 단어를 조합한 끝에 관련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기] 적성 검사 다녀왔는데 이거 뭐야?


(사진)


검사 끝나고 무슨 추격? 한다고 파스 같은 거 붙여 주던데 이거 뭔지 아는 사람? 알러지도 올라오고 너무 가려워


-이거 뭐야? 나는 안주던데

-예약 엄청 밀려있던데 언제 한 거야?

└어제 다녀왔어!

-이거 펜타닐 패치 아닌가?

└그게 뭐야?

└마약성 진통제

······.


열흘 전 작성된 글로,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아래쪽 댓글이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적합도 몇이야?

└아직 안나왔어!

└일주일 지났는데 아직도 안나왔어?

-늦었지만 근황 올릴게! 나 강화사 됐어!

└갑자기? 뜬금없네 일단 축하하고 그래서 등급은?

└인증 (적성검사내역서)

└적합도 88.2% 유력특성 강화?

└등급 A+?? 에이 조작

└(링크) 이 기사 쓰니 같은데?

└미쳤네...

└와 성지순례왔습니다

└성지순례왔습니다. 강화 뽑게 해주세요

└성지순례왔습니다. 치유 뽑게 해주세요

└성지순례왔습니다. 증폭 뽑게 해주세요

└성지순례왔습니다. 각성비 후원해 주실분...


“뭐, 뭐야? 이거?”


화들짝 놀라며 정신없이 스크롤을 내렸다.

수없이 이어지는 성지순례 댓글.

연우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댓글에 올라온 기사를 클릭해 보았다.



[인터뷰] ‘A급 강화사 나혜지’ 국군의 화력을 책임진다.


며칠 전 A급 강화사로 각성한 나혜지 씨, 기억하시죠?

군은 그녀의 등급을 인정해 국군의 화력을 책임지는 명예 대령으로 임명했습니다.

유이슬 기자가 보도합니다.

“사격 명령에 따라 포대에서 발사된 포탄이 표적을 향해 힘차게 날아갑니다. 이번 훈련은 6문의 K9A1 자주포가 15.7km 떨어진 표적을 향해 40발을 발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발사된 포탄은 모두 강화 된 상태였다고 육군은 전했습니다······.”



기사에 첨부된 영상을 클릭하자 자주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표적지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장면이 재생되었다.


‘이 정도 화력이면 대형 몬스터도 쉽게 잡겠는데?’


강화사는 물질에 강화 효과를 부여할 수 있는 특성을 각성한 헌터의 명칭이었다.


강화된 물질은 몬스터의 역장을 뚫을 수 있기에 원거리에서 화기를 운용하는 군이나 헌터에게 특히 환영받았다.


물론 등급에 따라 운용할 수 있는 시간과 질량이 달랐지만.


포대 단위로 사용되는 포탄에 강화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은 능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얘는 게이트 사냥도 편하게 할 수 있겠다

└고급인력이라 안전상의 이유로 게이트 출입 관리할걸?

└전차나 자주포 끌고 가면 되지 않아?

└부피가 커서 게이트에 못 들어가

└공룡 보다 큰 몬스터도 튀어 나오는데 왜 못 들어가?

└(사진) 게이트 안쪽에서 찍은 사진인데 게이트 크기가 다름.

└분해한 다음에 들어가서 조립하면 가능하지 않아?

└사람 손으로 뚝딱뚝딱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서



‘댓글이 핫하네.’


댓글란은 토론의 장이 되어 있었다.

이슈가 되다 보니 대중의 관심이 쏠린 모양이었다.

연우는 한동안 기사에 달려있는 댓글을 보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이전 글로 돌아갔다.


‘혹시 모르니까······.’


연우는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렸다.


-성지순례 왔습니다...


충동적으로 작성한 댓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


다음날.


연우는 새벽부터 황상식의 차를 얻어 타고 여주의 한 골프장을 찾았다.


하늘마루 골프클럽. 여주 게이트가 위치한 곳이다.


주차장에 도착한 후, 총기와 장비를 운반카트에 실은 뒤 클럽하우스를 향해 이동했다.


“선배, 어제 기사 보니까 A급 강화사 나왔던데요?”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며칠 전부터 헌터넷이 시끌시끌해.”

“왜요?”

“영입 경쟁이지 뭐.”


황상식의 말에 따르면 기업 소속 여러 공격대에서 나혜지를 영입하기 위한 조건 제시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했다.


“나혜지 집안이 좀 사는 모양인지 자비를 들여서 각성했거든? 금전적으로 아쉬울 게 없다 이거지. 결국 계약금과 연봉만으로 어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공격대마다 희귀한 아이템 구한다고 헌터넷까지 와서 난리야.”

“너무 부러워서 현타 오려고 하네요.”

“나는 오죽하겠냐······.”

“선배랑 비교하면 어느 정도 수준이에요?”

“나혜지에 비하면 나는 반딧불이지.”

“등급 차이가 그 정도로 커요?”

“막말로 내가 C급만 됐어도 당장 인력사무소 때려치고 게이트 근처에서 장사한다······.”


황상식은 잔뜩 신이 나서 고등급 강화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만큼의 돈을 벌 수 있는지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그러는 사이 연우와 황상식이 클럽하우스에 도착했다.


“황 소장님!”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자 단단한 인상의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벌써 와있었네?”

“하하! 저야 뭐 일이 있을 때 부지런 떨어야지 별 수 있습니까.”

“연우야, 여긴 공혜성 헌터. 저번에 한번 봤지?”


황상식과 악수를 나눈 공혜성이 연우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냈다.


“연우 씨, 오랜만입니다.”

“공혜성 각성자님. 잘 지내셨죠?”

“거 말 편하게 하시래도 아직도 제가 불편합니까?”

“그건··· 아닌데요.”

“그럼 제발 각성자님 소리만이라도 어떻게 좀 합시다. 남들이 특성 물어볼까 남사스러워서 그렇습니다.”

“네······.”


연우가 가볍게 웃자 황상식이 혀를 차며 말했다.


“공 헌터, 등에 메고 온 방패 때문에 특성이 뭔지 뻔히 보이는데 괜히 연우 탓을 하고 있어? 연우야 난 들어가서 출입 허가 서류 접수하고 올 테니까 헌터들 오면 총기 나눠주고 점검도 미리 해놓고 있어.”


황상식이 클럽하우스 안으로 사라지자 공혜성이 운반카트를 가리키며 연우에게 물었다.


“샷건은 한 정 밖에 없네요? 가드는 저 혼자인가 봅니다?”

“얼마 전에 사무소 라이센스 등급이 올랐거든요. 헌터 사무국에서 대물 저격총 사용허가가 나왔어요.”

“오―스나이퍼.”

“소장님이 이번 사냥은 가드 라이플 스나이퍼 조합으로 간다고 하셨어요. 전투조는 공혜성 헌터님 포함해서 세 명. 지원조는 저랑 소장님이고요.”

“연우 씨는 드론 담당이죠? 카이팅 잘 부탁드립니다.”


텅텅.

공혜성이 전술 방패를 두드리며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상에 나쁜 특성은 없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은 21시 50분입니다. 24.09.07 14 0 -
19 치유 물약 (1) NEW 17시간 전 4 0 12쪽
18 각인 24.09.17 7 0 13쪽
17 운수 좋은 날 (2) 24.09.16 16 0 12쪽
16 운수 좋은 날 (1) 24.09.15 16 0 13쪽
15 기자회견 24.09.14 20 0 14쪽
14 붕괴 (3) 24.09.13 25 0 13쪽
13 붕괴 (2) 24.09.12 27 0 11쪽
12 붕괴 (1) 24.09.11 29 0 13쪽
11 행복의 조건 +1 24.09.10 35 1 12쪽
10 도깨비의 장난 +1 24.09.09 38 1 13쪽
9 세계수의 수액 (2) +1 24.09.08 39 1 14쪽
8 세계수의 수액 (1) +1 24.09.08 46 1 13쪽
7 진실과 거짓 +1 24.09.07 48 1 13쪽
6 평범한 일상 +1 24.09.06 53 1 13쪽
5 요행 +1 24.09.05 70 1 22쪽
4 각성 +1 24.09.04 78 1 16쪽
3 트리플 +1 24.09.03 88 1 18쪽
2 여주 게이트 +1 24.09.02 105 1 15쪽
» 적성검사 +1 24.09.02 139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