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의 주치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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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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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줄행랑 (1)

DUMMY

제 10 화 삼십육계 줄행랑 (1)


“보, 보인다! 희미하지만 보인다!”

“그렇소!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정남이 맞소?”


눈을 감은 천을 풀어 헤친 몇몇 사람이 소리쳤다.


‘아르테미시아(개똥쑥) 약효가 나타날 때가 됐지. 선명하게는 아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보이긴 할 거다. 안충을 뽑아냈어도 그 상처가 아물어 정상적으로 앞이 보이려면 며칠 더 걸릴 거고.’


‘할배, 지금 앞이 보인다 하셨소?”


눈이 보인다는 외침에 박달이 득달같이 달려가 물었다.


“박달인 게냐?”

“네네. 할배, 제가 보이시오?”

“그렇구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기는 하지만 전보다는 훨씬 낫구나!”

“정말이오?”


신기한 듯 박달이 소리쳤다.

“그렇대두. 앞이 칠흑 같은 밤처럼 먹통이었는데, 지금은 보인다! 보여! 이게 다 저 의원님 덕택이야!”


감격에 겨워하는 노인.


“맞소! 의원님이 우리를 헌신적으로 우리를 돌봐주셔서 이제 앞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지신명이 도왔어. 불쌍한 우릴 가엾게 여겨, 하늘이 내려준 신의시오! 화타란 말이요!”


또 다른 사람이 맞장구를 치며 윤찬을 칭송했다.


‘젠장, 여기서도 화타야?’


윤찬이 어이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스승님, 정말 병자들의 눈이 나았습니다!”


호들갑을 떨며 좋아하는 박달.


“스승? 지금 나보고 스승이라고 한 거냐?”

“하하하, 제가 너무 앞서간 것입니까?”

“아니다. 넉살이 좋구나. 나를 스승으로 모시면 앞으로 괴로울 텐데, 괜찮겠느냐?”

“각오했습니다!”

“그래? 어디 두고 보자꾸나.”

“네. 스승님! 그나저나 정말 돌림병이 아니었군요.”


박달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란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병이 있으니까.”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렇게 한가하게 공치사할 때가 아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거늘, 너는 지금부터 흑호두 껍질을 모아, 곱게 갈아야 할 것이다.”

“호두 껍질을요?”


박달이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 최대한 조심한다고 했으나, 병자들의 눈에 미세한 상처가 생겼을 텐데, 자칫 염증이 생겨 덧날 수 있느니라. 그럴 때는 흑호두 껍질이 효과가 있지.”


흑호두 껍질은 항바이러스, 항진균 효과가 탁월했다.


“네. 스승님!”

“흑호두 껍질을 벗겨내 잘게 다진 다음, 상처 부위에 붙여두면 진균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있다. 게다가 무좀이나 습진에도 효험이 있으니, 잘 기억해 두거라.”

“네! 알겠사옵니다. 바로 준비토록 하겠사옵니다.”


배움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인가.

박달이 환한 얼굴로 바삐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윤찬의 치료를 받은 마을 사람들은 조금씩 시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


백제 황궁.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성충과 왕유능타가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수의박사,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의원 윤찬이 마을에 들어간 지 벌써 닷새가 지났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잖소.”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목 의원도 역질에 걸린 것이 아닌가 싶소이다.”

“진정, 이 역질은 치료 방법이 없는 것이오?”


성충이 근심 어린 목소리로 한탄했다.


“그러하옵니다. 여러 가지 비방을 연구해보았으나, 뾰족한 수가 없는 듯하옵니다. 송구합니다. 상좌평 어르신!”

“허, 정말 큰일일세. 나라가 안팎으로 어지러운 지금, 이 일을 어찌할꼬. 그토록 어질었던 어라하(의자왕)께선 정사를 소홀히 하시고, 신라 놈들이 호시탐탐 우리 백제 땅을 노리고 있는 와중에, 이런 역질까지 창궐하다니! 하늘도 무심허이.”


성충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의자왕과 같은 부여(扶餘)씨로 왕족 출신인 성충.

누구보다 병법에 밝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 하늘이 내려주신 재상이라 칭송받았다

그러나 머지않은 미래에 의자왕의 방탕한 모습에 간언하다 죽고 마는 안타까운 인물.

의자왕은 황산벌 전투에서 패한 후, 성충의 간언을 듣지 않은 것을 땅을 치고 후회했었다.

어쨌거나 원인 모를 역질 앞에서 어진 성충은 속을 끓였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빤하나 속수무책이었던 것.


“상좌평 어르신, 아무래도 역질의 싹을 없애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왕유능타가 어려운 말을 꺼냈다.

그의 선택은 불을 질러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키자는 것이었다.


“허어, 난감합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한 나라의 재상으로서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일.


“예부터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면, 큰 뜻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목 의원은 어떻게 한단 말이오?”

“그도 역질에 걸렸을 가능성이 농후하옵니다. 군사들을 보내 최종적으로 확인한 후, 마을에 불을 놓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그것이 최선이오?”

“안타깝지만 그러하옵니다.”


왕유능타는 이미 결심이 선 모양이었다.


“알았소. 정녕 이 방도밖에 없는 거라면, 어쩔 수 없겠지요. 불쌍한 백성들과 목 의원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역질이 백제 땅 전역에 퍼지게 할 수 없는 노릇일 테니.”

“그러하옵니다.”

“이보시오. 내 마지막으로 묻겠소. 역질에 효험이 있는 약은 정녕 제조가 불가능한 것이오?”


미련이 남는지 성충이 재차 확인했다.


“그러하옵니다.”


왕유능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며칠 더 말미를 주는 것도 아니되오? 공산성 안에 멀쩡한 백성들도 더러 섞여 있을 것 아니오?”

“송구하오나 아니되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이미 역질의 씨앗이 몸속에서 자라고 있을 것이옵니다.”


왕유능타는 보균자의 개념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알았소. 내가 병관좌평(兵官佐平) 윤충, 흑치상지 대장군과 상의해 보겠소.”

“알겠사옵니다!”


결국, 백제의 조정은 역질에 걸린 공산성 백성들을 전부 죽여, 역질의 씨를 말리기로 결심했다.


***


공산성 마을.


윤찬의 극진한 치료를 받은 공산성 마을의 병자들은 날이 갈수록 회복 속도가 빨라졌고, 며칠이 지나자 상당할 정도로 시력을 회복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윤찬은 이곳에 남아 끝까지 병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의원 어르신, 제 절을 받으십시오.”


기골이 장대한 한 남자가 윤찬의 거처를 찾아와 다짜고짜 엎드려 절을 했다.


“누구신데, 갑자기 절을?”


당황한 표정의 윤찬.


“저는 이 마을에 사는 상도라고 하옵니다!”


기골이 장대할 뿐만 아니라, 맑은 피부 톤에 눈빛이 제법 날카로운 훈남이었다.


“상도? 그런데 왜 나한테 절을 하는 게요.”

“제 부모를 살려주신 은인이시니 당연한 것이 아니옵니까?”

“아, 당신 부모가 눈 벌레에 감염된 병자였던 거요?”

“그러하옵니다. 의원님 덕분에 저희 부모님이 광명을 찾으셨으니, 자식 된 도리로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사옵니까. 이 한 몸 다 바쳐 의원님을 뫼시고자 합니다!”

“아, 아니에요. 몸까지 바칠 필요는 없는데?”


바로 그때였다.


“상도 형님 아니시오?”


소반에 음식을 차려 내온 박달이 그를 보자 반갑게 맞이했다.


“둘이 아는 사인가?”

“그러하옵니다. 상도 형님은 우리 마을에서 제일가는, 아니 백제 땅 내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제일 검이지요!”

“제일 검?”


윤찬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러하옵니다.”

“이보게. 상도! 박달의 말이 사실인가?”

“백제 땅에서 제일 검인지는 모르겠사오나, 지난날, 윤충 대장군을 모시고 대야성 전투에 참여해, 대야성의 성주 김품석의 목을 날린 자가 소인이옵니다.”


‘헐! 대야성 전투라면 의자왕이 해동증자라고 불리던 시절, 아직 정신이 멀쩡할 때 펼쳤던 전쟁 아니던가? 그 전투에서 대야성 성주의 목을 날린 자가 지금 내 앞에 있는 건가? 그것도 목을 조아리며?’


매 순간이 역사적인 체험이었지만, 지금이야말로 백제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윤찬이었다.


“그렇다면 백제 병사였다는 건데, 지금은 어찌 이곳에 머물러 있단 말인가?”

“스승님, 그건 제가 말씀드립죠. 상도 형님 위로 두 분의 형님이 계신데, 두 분 다 전투에 참가했다 전사하셨습니다요.”

“아, 그런 일이 있었군.”

“이에, 상도 형님이 모시던 윤충 대장군께서 연로하신 부모를 보양하라는 뜻에서 특별히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신 겁니다.”“모시던 주군의 지엄한 명령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 뜻을 따라 낙향하였지만, 언제든지 나라가 위급할 시엔 전장에 나갈 생각이옵니다. 의원님!”


‘멋지네. 두 명의 형제를 잃었어도 이토록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다니! 어떻게든 군 면제 받으려고 지랄발광하는 인간들하곤 차원이 달라!’


“대견한지고. 자네 같은 용감한 젊은이가 있으니, 이 나라 백제의 미래도 어둡지만은 않은 듯하구나.”

“그러하오니, 그때까지라도 저를 거두어주십시오. 늙은 부모의 생명을 구해주신 은인이니, 신명을 다해 의원님을 보필하겠사옵니다!”


‘잠깐! 지금 저 사람이 내 보디가드가 되어 주겠다는 건가? 모래시계, 이정재처럼? 음, 어차피 지금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물고 뜯는 군웅할거의 시대! 오늘 당장 목이 달아난다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혼돈의 카오스이지 않은가. 이런 혼란한 시기에 저런 보디가드 하나 있어서 나쁠 건 없지. 보아하니, 충성심도 대단한 것 같은데 말이야.’


“음, 난 그대가 모시는 윤충 대장군같이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괜찮겠는가?”


슬쩍 상도를 떠보는 윤찬.


“열세 살에 전장에 나가 윤충 대장군을 모셨습니다. 대장군님은 전장의 용자시고, 의원님은 병자들을 돌보는 인자시니, 어찌 똑같이 비교하오리까. 부디 소인을 내치지 마시고, 의원님을 모실 수 있게 해주십시오. 간청하옵니다!”

“흠흠, 자네 뜻이 이토록 간절한데, 내가 뭐라고 함부로 자네 뜻을 꺾겠는가. 다만, 앞으로 힘든 일이 많을걸세. 그래도 괜찮겠는가?”

“백골난망이옵니다! 신명을 다해 의원님을 모시겠습니다!”


상도가 옆에 있던 검을 들어 충성을 다짐했다.


“알았네. 자네 뜻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껄껄껄, 윤찬이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러면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밖에 나가서 공놀이 좀 해보겠나?”

“공······놀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상도.


“형님! 스승님이 아주 재미난 공놀이를 가르쳐 주셨사옵니다. 밖에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같이 나가시죠.”


그러자, 박달이 상도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아, 알았다.”


영문도 모른 채, 상도가 박달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


같은 시각, 공산성 입구.


“어휴, 무슨 하늘이 이토록 우중충하노? 곧, 비가 올 것 같구먼.”

“그러게나 말일세. 하늘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 것 같아.”

“아이고, 이 불쌍한 마을 사람들을 어찌할꼬?”

“그런 생각하지 말게. 우린 그저 명령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이만 가세.”

“그럼세.”


병관좌평 윤충의 명을 받은 병사들이 공산성 안으로 들어올 무렵이었다.


딱!

딱-!


마을 어귀에 다다를 무렵,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린가? 장작 패는 소리 같기도 하고, 몽둥이로 패는 소리 같기도······. 이거 큰일 난 듯허이. 아무래도 마을 사람들이 폭도로 변한 것 같아!”

“그, 그럴 리가 있나? 눈이 먼 사람들이 무슨 장작을 패고 몽둥이질을 한단 말인가?”

“그야 가보면 알겠지! 얼른 가보자고.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세!”


그렇게 병사들이 낯선 소리에 동요하던 순간,


“와! 상도 형님이 담장 밖으로 날려 버렸다!”

“역전일세. 역전!”


와와-


아이들의 함성이 멀리 퍼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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