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의 주치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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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생
작품등록일 :
2024.09.0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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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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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 부인 (2)

DUMMY

제 5 화 계백 부인 (2)


사립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오는 그녀.

걸음걸이가 우아했으며, 여인이 입고 있는 옷은 소매가 다소 넓었다.

머리는 뱀이 똬리를 튼 것과 같이 위로 하고, 두 가닥을 길게 늘어뜨렸다.

언뜻 보기에도 그리 비싸 보이지는 않는 소박한 옷차림이었으나, 단아했으며 기품이 있어 보였다.

또한, 얼굴은 맑고 깨끗했으며 단아한 외모와는 달리 당당한 모습이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웅성웅성-


-저, 저분은 계백 부인이 아니오?

-그렇게 말이오! 대장군 계백의 부인이 맞소!


‘이분이 계백 장군의 부인?’


사람들의 소곤거림을 들은 윤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뉘 시옵니까?”


윤찬이가 다가가 그녀에게 물었다.


“아랫마을에 살고 있는 여인이올시다. 우리 아이가 아파서 이곳을 찾아왔소.”


직접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그녀.


‘이분이 그 유명한 계백 부인이란 말이지? 계백 장군이 최후의 전쟁에 임하기 전에, 가족들을 먼저 죽였다는 유명한 일화! 그 일화 속의 비운의 여인을 마주하다니! 그것도 바로 앞에서 말이야!’


비록 자신이 성형외과 의사였지만 아무리 성형해도 이토록 단아한 얼굴은 만들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 그, 그렇습니까?”


쿵쿵-

윤찬의 심장 뛰는 소리.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뭉클한 기분이 들어 윤찬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목 의원 되시오?”

“그렇습니다.”

“내가 제대로 찾아왔군요. 우리 아이가 열병에 시달려 괴로워하고 있어요. 어찌, 치료할 방도가 있겠소?”


계백 부인의 등에 업혀 칭얼거리는 아이.


‘이 아이의 운명도······.’


윤찬이 잠시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의원님?”

“일단, 진료를 해봐야 하니,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러고 보니 제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저 분들이 먼저 오셨으니, 저 분들 먼저 봐주시지요.”


계백 부인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요. 괜찮습니다.”


아이를 힐끗 보니 머리가 불덩이 같고 입술이 바짝 마른 것을 볼 때, 인플루엔자가 틀림없었다.


“아닙니다! 먼저 진료를 받으세요. 부인!”

“그렇습니다. 대장군 어르신의 부인이신데 저희가 어찌 감히, 먼저 치료를 받겠사옵니까.”

“맞습니다. 그러니 먼저······.”


그러자 사람들이 앞다퉈 자신의 차례를 양보했다.


“그러시겠습니까. 부인?”

“아니요. 그럴 순 없소. 똑같이 아파서 온 처지인데, 내가 특별히 대우받을 까닭이 없어요. 난, 괜찮으니, 저 사람들을 먼저 치료해 주오.”


계백 부인이 한사코 사양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곳에 앉아 이 물수건으로 아이의 몸, 구석구석을 좀 닦아주십시오.”


윤찬이 계백 부인에게 물에 적신 천을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계백 부인이 아이를 평상에 내려놓았다.


잠시 후,

그렇게 진료가 다시 시작되었고 마침내 계백 부인의 차례가 돌아왔다.

진료를 시작하는 윤찬.

문진과 이어 아이의 심장 소리, 폐 소리를 확인한 후, 구강을 살펴보고 내린 결론은 역시나, 인플루엔자 감염이었다.

다행히도 시중에 돌고 있는 폐렴은 아닌 듯했다.


“부인, 아무래도 심한 고뿔에 걸린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합니까.”


걱정스러운 표정의 그녀.


‘아이가 어리고, 맥박을 확인해 보니 부정맥 증세가 있어. 약을 신중하게 써야 할 것 같아. 천산엽 농도를 최대한 옅게 달여야 할 듯 하다. 흰 버드나무 껍질이 혈액순환개선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으니, 여기에 마른 민들레 잎을 넣어 달여 먹이게 하면 훨씬 효과가 있을거야.’


“너무 심려 마십시오. 제가 곧 약을 지어 올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자, 이거······.”


계백 부인이 손가락에 끼고 있던 가락지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내 가진 것이 없어 그러니 약값 대신 받아 주시오.”

“아니옵니다! 약값은 별도로 받지 않고 있습니다. 넣어 두십시오.”

“아니오. 그럴 순 없소. 정, 쓸데가 없거늘, 팔아서 불쌍한 병자들을 치료하는 데, 써 주시오. 수 많은 전투에 나가 싸우느라 저들도 몸 성한 곳이 없을 것이오.”


끝끝내 반지를 빼, 바닥에 내려 놓는 계백 부인. 아무리 사양한들, 도로 가져갈 기세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염치없지만 받겠습······.”


바로 그때였다.


우당탕-

악!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병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부인은 위험하오니, 안에 계십시오.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덜컹-

그렇게 윤찬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누구신데, 의원에서 소란을 피우시는 겁니까?”

“네 놈이 목윤찬이란 자냐?”


허리에 칼을 찬 서너명의 껄렁한 놈들이 밖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왈패 패거리인 듯 싶었다.


‘후, 조폭이냐? 하여간 7세기든 21세기든, 이런 버러지 같은 인간들은 꼭 있구나. 뭘 주워 먹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렇소만.”

“음, 듣자하니, 네 놈이 이곳에서 약을 팔아 폭리를 취한다더군!”


그 중, 대가리로 보이는 놈이 앞으로 나섰다.


‘어휴, 거 참! 냄새나게 생겼네.’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오? 난, 약값은 일절 받지 않고 있소.”

“미친 놈! 그게 말이 되느냐? 세상에 이문을 남기지 않은 장사가 어디 있겠느냐? 헛소리 하지말고, 이곳에서 계속 약을 팔고 싶으면, 우리의 허락을 받아야 하느니라. 우리에게 이문의 절반을 상납하면 허락토록 하지.”


‘미쳤구나. 아무리 악덕 사채업자라도 그렇게는 안해! 그리고 난 너희들한테 동전 한닢 던져줄 생각이 없거든?’


“혹시 몸이 아픈 자가 있으면 순서를 기다리시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돌아가시오. 난, 당신들과 흥정할 생각이 전혀 없······.”


그 순간, 대가리가 성큼성큼 다가와 윤찬의 멱살을 잡았다.


“네 놈이 실성을 해도 단단히 실성한 모양이구나? 필시 죽고 싶어 안달이 난 게야.”


죽일 듯 윤찬을 노려보는 왈패 대가리.

당장이라도 윤찬을 땅바닥에 패대기 칠 기세였다.


바로 그 때,


“네 이놈! 그 더러운 손을 놓지 못하겠느냐? 어디 감히 의원님을 겁박하는고!”


방안에 있던 계백 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계집이 지금 뭐라고 떠드는 게야? 네 년이 목숨을 재촉하는구나?”


계백 부인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것을 보니 왈패 대가리는 그녀의 정체를 모르는 듯 했다.


“나라가 풍전등화일진데 사내거늘 전장터에 나가 적과 맞서 싸우지 못할망정, 불쌍한 병자들의 등을 쳐 먹고 행패나 부리다니! 어찌 한심하지 않을 수 있을꼬. 이곳은 병자들을 치료하는 신성한 의원이니 지금이라도 왈패짓을 멈추고, 물러간다면 더 이상 너희들을 탓하지 않겠느니라. 알겠느냐?”


‘살벌하네! 카리스마 미쳤는데?’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왈패를 꾸짖는 계백 부인이었다.


“저 년이 실성을 해도 단단히 한 모양이군! 오냐, 네 년이 두려운 것이 없나 본데 오늘 본 떼를 보여 주마.”


퉤퉤-


대가리가 솥뚜껑 만한 손에 더러운 침을 뱉어 문지르더니 성큼성큼 계백 부인에게 다가갔다.


“너희들이야 말로 명을 재촉하는구나? 내가 그리 일렀거늘!”


쯧쯧,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는 그녀.


“저승길을 재촉하는구나. 이년!”


발걸음의 속도를 높여 잡아먹을 듯이 덤벼드는 대가리.


바로 그 순간,


휘리릭-

빛과 같은 속도로 360도 회전하는 그녀.

답설무흔(踏雪無痕)을 익혀, 눈위를 걸어도 자국이 남지 않은 듯 했고, 아니면 등평도수(登萍渡水)를 익혔는지, 물위를 미끄러지듯 걷는 듯한 놀라운 움직임이었다.


‘어어? 저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맞다! 와호장룡! 거기서 장쯔이가 했던 것 같은데?’


깜짝놀란 윤찬이 눈을 깜박거렸다.


“네 이놈! 정녕 네가 죽고 싶은게냐?”


어느새 대가리의 허리춤에 채워진 칼을 꺼내 그의 목을 겨누는 그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으윽!”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벌벌 떨며 계백 부인을 곁눈질하는 대가리.


“너, 넌 누, 누구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차마 대비를 하지 못한 대가리.

그의 목소리가 마구 흔들렸다.

설마 자신의 목을 벨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난, 이 나라 백제의 대장군, 계백의 처이니라.”

“·········!”


그때서야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린 대가리.


“대장군을 따라 수 많은 전장터에 나갔었으니라. 수 백, 수 천의 적 수급을 내 손으로 베었거늘, 내가 어찌 하찮은 네 놈 목숨 줄을 끊지 못하겠는고.”


추상같은 목소리가 움막 전체에 울려 퍼졌다.

더욱더 칼날을 목에 들이미는 그녀.


“죄, 죄송하옵니다. 제, 제가 부인을 몰라뵈었습니다! 한, 한번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발, 부탁이옵니다. 대장군 부인!”


천하의 계백장군의 부인인지 몰랐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꼬.

대가리가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기 시작했다.


“네 놈의 목을 베어 저잣거리에 효시해 본보기로 삼고 싶다만, 이곳은 의원이니 차마 피를 보지 않겠느니라.”

“감사하옵니다! 정말, 감사하옵니다!”


대가리가 사색이 된 얼굴로 벌벌 떨었다.


“다시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말거라. 알겠느냐?”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스링-

악!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순식간의 검이 호선을 그렸고.

툭-

대가리의 꽁지머리가 바닥에 산산히 흩어졌다.


“썩 물러가거라!”

“네네. 부인! 이, 이놈들아! 얼른 가자!”


그렇게 대가리가 부하 왈패들과 함께 꽁지가 빠지도록 줄행랑을 쳤다.


‘와, 카리스마 쩌네. 이게 정말이라고?'


그런 계백 부인을 보며 넋을 잃어 버린 윤찬.

그가 눈을 부비적거리며 재차 확인했다.


“만세! 계백 부인 만세!”

“만세! 목 의원 만세!”


그러자 모여있던 병자들의 양 손을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의원님! 청이 있습니다.”


계백부인이 윤찬에게 목소리 톤을 바꿔 나지막이 물었다.


“말씀하십시오. 부인.”

“보아하니 의원님 혼자 이 모든 치료를 하시는게 버거워 보여, 제가 도움을 좀 드렸으면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어휴,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대장군 부인의 도움을 받겠습니까.”

“괜찮아요. 돈도 받지 않으시고 병자들을 치료해 주고 계시잖아요. 이토록 고귀하신 일을 하시는데, 제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더없은 영광일 것이에요.”

“그래도······.”

“우선 마당을 좀 쓸어야겠군요. 좀 전에 그 놈 머리카락이 지천에 깔려 있어서······.”


쓱쓱-

곧바로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이,이러시면 안되는데!"


‘고귀한? 돈을 안 받고? 어라? 이, 이건 아닌데? 이렇게 되면 일이 꼬여 버리는데?’


그 모습을 윤찬이 멍하니 바라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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